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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우선덕선생님의 "팔녀각" 서평

이재홍 소설집 팔녀각을 읽고

                                        우  선  덕

소설가 이재홍을 언제 어느 날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하겠다. 여러 사람이 있는 데서 소개받았고 그 후 몇 번 조우하였다. 매번 복잡한 자리였으므로 잠시 스치는 눈인사와 말 몇 마디가 우리 만남의 전부였다.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는 것.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그가 재직하던 서울게임대학에 나가 반 학기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게까지 되었다. 그때는 조금 더 자주 볼 수 있었다. 휴식시간이면 교수실에서 커피를 나누며 여러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나누었다.
그를 언제인지 모르는 그 처음 소개받았던 날이나, 어쩌다 보게 되었을 때나 반년 간 자주 보며 지낼 때나 기분은 한결 같았다.
한결같이 무조건 반가웠다. 한결같이 전부터 잘 아는 친밀한 사람이라는 느낌이었다.
세월이 지나며 그의 사정을 몇 몇 사람에게서 전해 들었다. 조금은 알게 된 듯하지만 그러나 진짜로는 나는 이재홍을 알지 못했다. 거의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재홍의 소설을 한 편밖에 읽어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가 지금까지 쓴 글을 다 읽어봐야 나는 그를 조금은 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그를 보면 잊지 않고 채근을 해댔다. 언제 책을 내느냐, 언제 책이 나오게 되느냐. 빨리 소설집 하나 묶어야 하지 않느냐.
철없는 내 말이 그는 부담스러웠을지 모른다. 준비된 소설이 있는데 어느 소설가인들 책을 내기 싫어서 책을 내지 않으리. 문단과 출판사정을 잘 알면서도 나는 그를 보면 끈질기게 다그쳤다. 책을 내요, 책을!
오로지 그를 제대로 알고 싶다는 단순한 바람이 그 따위 몰상식한 발언을 하게 만들었다. 글은 곧 사람이며 글 안에 글 쓴 사람이 알게 모르게 다 들어 있는 까닭이어서였다. 작자의 생각, 사는 방식, 살아 온 날, 살아갈 날까지도 말이다.

서두가 길었다.
드디어 그의 책이 나왔다. 성급하게 작가의 말부터 열었다. 소설가 이재홍은 말하고 있었다.    
⌜나의 글쓰기(스토리 텔링)는 우리들 가슴속에 내재된 그리움들을 되새김질하는 행위이다. 우리들이 그리워하는 그 모든 것들은 우리들의 소중한 삶의 흔적들이다.⌟
그렇지. 우리가 그리워하는 모든 것은 우리 소중한 삶의 흔적이지.
⌜그 흔적들이 퇴색되고 소멸된다는 것은 비극이다. 그래서 나는 펜이라는 정을 들고 소설이라는 대리석에 그리움들을 새겨 넣고 있다.⌟
왜 소설을 쓰는가. 왜 나는 쓰지 않으면 안 되는가. 언제 왜 어떤 이유로 글을 쓰게 되었는가. 어떤 이유로 이 행위를 멈추지 않고, 혹은 멈추지 못하고 계속하고 있는 것인가. 소설쓰기는 과연 나에게 무엇인가.
소설가마다 각기 다른 사연과 답을 갖고 있기에 내가 특히 관심을 갖는 대목이었다. 본격적으로 그의 소설을 읽기 직전이지만 이재홍의 소설쓰기가 그리움을 새겨 넣는 행위였음을 나는 비로소 정식으로 알게 된 셈이었다.
작가의 말 다음에는 책 표제와 14편의 작품 제목이 아주 소박한 형태, 작은 글씨로 적혀있었다.
숨비소리. 점순이. 팔녀각. 나는 긴 머리의 여자가 좋다. 사과빨갱이의 결혼. 도깨비의 심판. 가면무도회. 추방명령. 무너진 동굴. 까치야, 까치야. 일주일 동안의 처용이. 여드렛당의 숙명. 변신.
각 단편소설 제목이 말해 주듯, 그는 소설소재를 여러 곳에 다양하게 두었다. 하긴 아무리 간단하게 살아온 사람이라도 뒤를 돌아보면 자신의 궤적이 그리 수월치 않았음을 알게 되리라.
이재홍은 살아온 거처만 대략 살펴봐도 남보다 단순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게 분명하다. 태어나 유년을 살찌운 곳은 제주도이며 목포에서 소년기를 보냈다. 서울 또한 소년기의 그에게 한 지점을 내준다. 장기간의 일본유학도 다녀왔다. 공주에서 있었으며 다시 서울에 자리 잡았다. 속사정을 모르지만 거취만도 대단한 이력 아닌가.
그중 유년을 보낸 제주도는 대개 작가가 그렇듯 이재홍의 소설쓰기에 있어서도 중요한 장소가 된다. 제주도를 배경과 무대로 한 ‘숨비소리’와 ‘팔녀각’을 읽어보면 당장 알 수 있을 것이다. 두 작품은 지금까지의 이재홍 소설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큰 만큼 벌써 여러분에 의해 주목을 받았다.
<알다시피 ‘숨비소리’란 해녀들이 깊은 수심에서 숨을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다가 수면으로 떠오르면서 내는 긴 숨소리이다. 말하자면 물속이 상징하는 어둠, 갇힘, 인내의 공간과 수면 밖의 열림과 생존, 자유의 두 가지 세계에 대한 통로가 ‘숨비소리’인 셈이다
제주라는 조금 특별한 공간과 해녀라는 직업들과 제주 방언들이 조화를 이루며 특수상황 속의 인간실존과 화해에 대해 이재홍은 나름대로의 해답을 제시한 셈이다. -유금호>
책 서평에서 많은 부분 할애되고 있는 ‘팔녀각’도 제외 할 수 없다.
<성장소설적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는 ‘팔녀각’은 여러 개의 소설적 모티프가 혼재되어 있는 작품이다. 할머니와 팔녀각으로 암시되는 숙명적인 인습의 질곡과 샤머니즘적 세계관이 표면적인 모티프라면 그를 거부하려는 새로운 세계관인 어머니의 탈 인습적 의지와 당당히 본능에 충실하려는 생물학적 욕구와 그 좌절에서 오는 절망과 죽음의 이면적 모티프로 작용하면서 그것이 나의 순진한 시점을 통해 형상화되고 있다. 이상에서 볼 때 이재홍이 왜 이 작품에 그토록 애정을 지니고 있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바로 그의 성장의 전부를 상징적으로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지향하는 소설적 목표는 이 함축적인 정서랄까 한이랄까 본능이랄까 건강성이랄까 무당의 끼라할까 등을 풀어나가는 것이다.    
  …… 中略……
이재홍에게 제주도는 숙명적인 덫인 동시에 행복한 창작력의 보고이기도 하다. 그가 제주도에서 자라났다는 것은 한 생을 소설 창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억매이게 하는 질곡의 밧줄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다른 작가가 가지지 못한 상상력의 원천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또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가 이 보고를 어떻게 잘 이용하느냐가 앞으로의 그의 소설가로서의 성패를 좌우할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노벨문학상도 자기 지방을 처절하게 사랑하고 그것을 최고의 가치로 긍정하면서 생생한 체험으로 풀어나간 작가들에게 주어지는 것임을 상기할 때, 이재홍에게도 제주도의 생체험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소설적으로 형상화하느냐가 관건이 됨은 재언을 요치 않는다. -한승옥>
나머지 작품 중에서 ‘점순이’의 줄거리는 이렇다.
빵집사장으로 자수성가한 나는, 지금은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도 만나기 힘든 사기요강을 인사동에서 사와 애지중지 닦는다. 술이 잔뜩 취한 날 밤 요강을 요긴하게 쓰게 되면서 나는 자연스레 요강에 얽힌 과거로 회귀한다. 내가 점순이로 불렀던 순자와 유년시절 고향인 무안 근처 마을에서의 일들이 떠오른다. 소꿉장난에서 부부로 지냈던 순자, 즉, 점순이와 내가 성장해가면서 어언 남녀 유별한 사이가 된 일. 어린 날에는 그토록 아롱다롱하게 지낸 점순이가 건너 마을 영호네 형과 보리밭에서 나오는 걸 보고는 그만 점순이 아버지에게 일러바친 일. 그 일로 점순이가 아버지에게 호되게 맞고 나와의 사이가 더욱 멀어진 일. 요강으로 인해 나는 점순이를 찾아볼 생각을 한다. 점순이가 결혼에 두 번 실패하고 고향에서 다방을 냈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점순이가 다리를 심하게 전다는 소식에, 당시 내가 한 고자질로 매를 맞아서라는 죄책감으로 거의 충동적인 고향 행을 하는 것이다. 주인이 자리를 비운 다방에서 나는 종업원아가씨로부터 점순이 다리가 10년 전에 교통사고가 원인이었음을 알게 된다. 마침 후배 동수를 만나 점순이를 만나러 온 사연이며, 점순이 엉덩이에 점이 있는 걸 혼자 아는 까닭에 나만은 점순이로 부른다는 비밀한 이야기까지 술김의 객기로 털어놓는다. 그러나 아뿔싸, 동수는 점순이가 얼마 전에 세 번째로 결혼한 점순이의 부군이란 사실을 나는 몰랐던 것이다. 그러니 점순이가 새 남편 동수에게 얼마나 치도곤을 당했을지는!

‘나는 긴 머리의 여자가 좋다’는 회사의 평범한 사원인 내가 말술에도 끄떡하지 않는 걸 사장에게 간파당해 졸지에 술 상무 역을 하는 이야기다. 월급을 타는 이들의 비애가 여기에 있다.
나는 어느 날 또 술 상무 노릇을 하다가 시중드는 아가씨 중에서 참으로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난다. 아가씨는 어린시절에 흠모했던 여자 반 반장 순녀를 생각나게 한다. 순녀와, 또 당시 함께 했던 반 친구들과, 곤궁했던 시기의 그리운 추억이 나를 붙잡는다. 추억 가운데에 여자 숙직선생을 대신하여 반 친구들이 대신 숙직을 하고 이불이 모자라 순녀와 동침을 하게 된 밤이 있다. 그 후 나는 순녀를 볼 때마다 얼굴이 붉어진다. 순녀가 그런 나에게 쪽지를 쥐어준다.
‘나를 볼 때마다 그렇게 얼굴이 빨개지면 어떻게 해? 바보처럼…….’
술 상무를 했던 다음 날 아침에 나는 낯선 숙박업소에서 눈을 뜬다. 탁자 위에 메모지가 있다.
‘오빠야. 나 편하게 자다가 가요. 무슨 남자가 바보처럼 머리 냄새만 맡다가 자요? 혹시 고자??? 호호호. 영 억울하면 다음에 한 번 더 봐요. 내가 두 배로 앙갚음 할 테니까. 먼저 가요.’

‘사과빨갱이’의 나나, 내가 지켜보는 재일교포 2.5세 형기도 ‘긴 머리 여자’의 나와 다르지 않은 인물이다. 어른이 읽는 동화를 표방한 ‘도깨비의 심판’에서 나오는, 전지전능한 도깨비마저 영악하지 못하고 심성이 그저 곧고 고우며 따뜻하다. 전래동화 속의 장난꾸러기, 심술쟁이 도깨비와는 격이 다르다. 못된 사람에게 바른 길을 가르쳐 주기 위하여 도깨비 딴에는 몹시 무서운 경험을 하게 해주지만 얼마나 신사적이며 양반인지 정말로는 끔찍스러운 경험도 되지 못한다. 글을 읽는 독자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다.
운동권 여자아이와의 허탈하고 쓰린 사랑마저(가면무도회), 소설 속의 나는 너그럽다 못해 여리기 한량없다. 각기 다 다른 소재에 속하는 추방명령. 무너진 동굴. 까치야, 까치야. 일주일 동안의 처용이. 변신. 그 모두에서 주인공이거나 내레이터인 나와, 조연은 너나없이 바보일 정도로 선량하기만 하다.
‘여드렛당’의 숙명은 ‘팔녀각’과 같은 궤에 있다. 고향과 토속. 뱀의 전설에 얽혀 묶여있는 어진이가 저주의 숙명에서 빠져나오려는 고통 끝에 그 전설로 다시 회귀해 들어가는 점이 ‘팔녀각과’는 다른 결말이지만.    
분명히 제주도는 이재홍 소설에서 한 축이며 바탕이다. 대부분의 많은 작가가 자신의 성장과정과 유년기 체험, 유년기 환경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으리라. 이재홍처럼 고향, 토속, 전통, 샤머니즘, 등 우리 것을 캐내고 그 계보를 잇는 글을 쓰는 일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소설집을 내는 이유 중 하나가 지금까지의 세계를 점검하여 한 단계 마무리하는 지점이자 다음 세계의 첫 발짝을 가늠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이재홍에게 다른 말을 건네고 싶다. 그의 책을 읽은 독자로서 나는 감히 그에게 진짜자유를 주고 싶다는 충동을 받았다. 숙명이니, 숙명의 덫이니, 그야말로 덫일 주문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이다.
숙명이라니?
작가에게 글을 쓸 숙명 외에 또 다른 어떤 숙명이 있단 말인가. 이제 숨비소리를 놓아주고, 팔녀각의 어머니와 성두와 할머니를 풀어주는 일도 그른 일만은 아닐 터이다. 소설들 속의 ‘나’를 그만 해방시켜준다 한들 누가 무어라 하랴.
그 후 살아낸 세월의 축적이 작가에게 얼마나 크고 많은가. 깊고 넓은가. 얼마 후쯤 작가는 소설집 ‘팔녀각’을 잊고 그의 시선을 먼 지평, 광활한 신개척지에 두면 좋겠다. 소설이라는 그의 대리석에 잘 벼린 새로운 정을 들어 과감히 한 끌 한 끌, 더 잘 다듬어지고 더욱 깊어진 그의 세계를 새겨 나가기를 진심으로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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