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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홍의 소설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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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동화 -도깨비의 심판-

                   도깨비의 심판(어른을 위한 동화)
                                                                                                                      
  푹신한 구름 위에서 낮잠을 즐기고 있을 무렵이었다. 대낮부터 지상 쪽에서는 내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잡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몸을 이리저리 뒤척거리다가 잠자기를 포기한 나는  구름 한구석에 구멍을 뚫어 지상 쪽을 내려다보았다. 곧 숨이 끊어져버릴 것만 같은 음산한 신음소리가 숲이 무성한 공원 한 구석에서 솔솔 피어오르고 있었다.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소리였다.
  나는 소리가 들리는 쪽을 더듬어 내려갔다. 공원 한 구석에 중년의 사내가 쓰러져 있었다. 대낮부터 술에 찌든 취객인가 싶었지만, 그에게서는 아무런 냄새도 맡을 수가 없었다. 가까이 다가서서 살펴보았더니 그의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나는 투명상태를 벗어나 계속 앓는 소리를 내고 있는 그를 부축하여 벤치에 앉혔다.  
  "여보세요. 정신이 좀 드시나요? 강도라도 만났소?"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할 말이 없소……."
  그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긴 한숨을 푹푹 쉴 뿐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요?"
  "조무래기들에게 이렇게 당해버렸습니다. 공원 저쪽에서 떼를 지어 한 아이를 개 패듯이 때리고 있기에 참견을 좀 했더니…… 물론 참견을 한 내가 잘못이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나도 자식을 키우는 사람으로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이다. 허허. 세상이 무서워졌어요."
  중년의 사내는 손수건으로 핏빛이 선연한 얼굴의 상처를 짓눌러 댔다.
  "그 녀석들은 어미애비도 없나. 너무 심하게 다쳤어요."
  "요즘 아이들…… 갈수록 포악해지고 있어요. 무서운 사람이 없어요. 제 멋대로 입니다. 얼마 전의 신문기사도 못 봤습니까? 제 부모를 버리고, 때리고, 죽이는 판국이지요. 그런 놈들이 위아래를 알아 볼 것 같습니까?"
  "그런 놈들은 모두 혼내줘야 해요. 잠깐만 기다리시오. 댁을 이렇게 만든 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알아보리다."
  "당신이 어떻게?"
  사내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서 추적전파를 가동하여 가해자들의 행방을 찾았다. 내 동공 속의 모니터에 포착된 녀석들은 바로 근처에 있는 S중학교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그를 이끌고 학교로 찾아갔다.
  "꼬옥 내가 뭔가에 홀린 것 같구먼. 이미 도망간 녀석들을 어디에서 찾는단 말이요? 당신은 초능력이라도 가졌단 말이요?"
  사내는 나를 못 믿겠다는 식으로 계속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빙긋 미소만 보내 주었다. 의심으로 가득 찬 사내에게 믿음이란 전파를 쏘았다.
  "좋소. 형씨를 믿어 보리다."
  가해자들은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대여섯 명의 무리들이 학교 운동장 한 가운데에서 벌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담을 튀어 넘어 밖으로 빠져나갔다가 돌아오던 중에 규율선생님께 적발되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사내를 발견하고서 고개들을 푸욱 숙이고 있었다.
  "바, 바로 저 놈들입니다. 내 이 놈들을……."
  두 팔을 걷어붙이고 기세 좋게 녀석들을 향해 뛰어가던 사내는 아이들 앞으로 다가서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나는 의아해 하며 입을 열었다.
  "아니, 가서 혼을 내주지. 왜 멈추시오?"
  "저렇게 벌을 받고 있으니까 됐습니다."
  사내는 아이들을 혼내기보다는 오히려 규율선생님께 선도를 부탁한 후, 학교를 빠져나와 나에게 고개를 꾸벅해 보였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억울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했던 좌절감이 다 풀렸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녀석들의 부모를 불러 치료비라도 받아내고 싶지만, 내 자식들 생각이 나서……. 꼭 산적처럼 생긴 양반이 신통한 능력을 가졌군요. 뭐 하는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절뚝거리며 내 곁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착한 사람…….' 다리를 절며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내 입에서 문득 새어 나온 말이었다. 그에게 어떤 기쁨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이 궁리 저 궁리를 하며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의 호주머니 속에서 한 장의 복권이 투영되고 있었다. 나는 복권의 번호에 힘을 불어 넣어주었다. 그리고 그를 향해 소리쳤다.
  "내일이 복권 추첨일인데, 꼭 맞춰보시오."
  중년의 사내는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힐끔 뒤돌아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걷기 시작하였다. 내일이면 복권당첨으로 춤을 덩실덩실 추게 될 그의 모습이 내 시야에서 전개되고 있었다.
  나는 다시 구름위로 되돌아가 눈을 붙였다. 해가 서산을 향해 곤두박질 칠 무렵, 축 처진 어깨를 보이며 사라진 사내의 모습과 규율선생님께 혼나고 있던 녀석들이 자꾸만 내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궁금하기도 하여 S중학교 주변에 구름을 정지시키고 학교 안을 기웃거려 보았다. 바로 그때였다. 한 대의 경찰 백차가 교정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되어 경찰의 뒤를 밟았다. 물론 내 몸은 투명상태였다. 경찰은 교무실로 들어서자 극히 사무적인 투로 입을 열었다.
  "폭력 신고가 있어서 왔습니다. 3학년 1반 담임선생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예, 접니다만……."
  구석 쪽에 앉아 있던 앳된 남자선생이 쭈뼛거리며 일어났다.
  "선생님이 김장군이라는 학생의 담임이십니까?"
  "그렇습니다만……."
  "사실은 그 학생이 폭력신고를 해 왔습니다. 담임선생님께 맞았다고……."
  "예에?……."
  담임은 비틀거리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오히려 곁에서 살쾡이처럼 귀를 기울이고 있던 교감이 이마에 핏대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아니? 선생님! 애들을 때려서는 안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얼마나 때렸으면 애가 신고를 했겠어요? 학교 망신시킬 일 있습니까?"
  교감은 교무실이 떠나갈 듯한 목소리로 한동안 담임을 향해 질책하였다. 그런 후, 경찰을 돌려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새파랗게 젊은 경찰은 부동의 자세였다. 신고를 한 피해학생을 직접 만나야겠다는 것이었다.
   잠시 후에 신고를 하였던 학생인 김장군이 불려 왔다.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타난 김장군은 중년사내를 때렸다던 무리에 속해 있던 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녀석은 제 담임을 힐끔 쳐다보더니 경찰 앞에 우뚝 섰다. 경찰은 녀석의 이름을 확인함과 동시에 구타당한 사실들을 확인하기 시작하였다.
  "선생님으로부터 맞은 곳이 어디니?"
  "온 몸을 다 맞았어요. 손바닥, 머리, 어깨, 허리, 다리 모두……."
  "선생님, 이 아이의 말이 맞습니까?"
  녀석의 말을 듣던 경찰은 담임에게 진의를 확인하고 있었다. 하지만, 담임은 힘없는 눈빛을 던지고 있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였다.
  "김장군, 어디에서 맞았니?"
  "상담실에서요."
  "네가 맞는 것을 누군가 보았니?"
  김장군은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경찰은 목격자를 찾고 있었으나, 목격자가 없었다. 경찰은 선생님으로부터 맞았다는 곳을 점검하기 시작하였다. 녀석이 옷을 벗어 보여 주는 곳마다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녀석의 행동거지로 미루어 생각한다면 분명히 맞을 짓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생채기들을 보면 담임이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언뜻 솟구쳐 올랐다. 담임은 여전히 말없이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경찰은 진단서를 끊어서 부모와 함께 경찰서에 정식으로 고발장을 접수해 달라는 부탁을 김장군에게 남기며 교무실을 빠져나갔다. 담임은 고개를 푸욱 수그리고 경찰을 배웅했다. 김장군은 담임의 그런 뒷모습을 바라보며 씨익 미소 짓고 있었다. 아주 고소하다는 표정이었다.
  교사는 사랑의 채찍이 아닌 폭력의 채찍을 휘둘렀고, 학생은 제 스승을 고발하여 학교로 경찰을 불러들였다는 현실이 너무 싸늘하게 느껴져서 옷깃을 여미고 말았다. 뭔가 뒤죽박죽된 세상이 되어버린 듯 하였다. 스승에 대한 경외심이라든가 존경심 같은 것은 이미 땅에 떨어져 있는 요지경 세상이라는 생각이 가슴 깊숙하게 스며들었다.
  학교를 떠나 구름 위로 향할 때였다. 누군가가 쏟아내는 애절한 흐느낌이 속삭임처럼 귓전을 파고들었다. 당연히 내 시선은 그 흐느낌을 쫓을 수밖에 없었다. 건물 옥상의 구석진 곳에 김장군의 담임이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제자로부터 고발을 당했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는가. 그의 모습이 측은해 보였다. 나는 공중에 머물러 그의 모습을 한동안 묵묵히 바라보았다. 말벗이나 되어 줄 요량으로 옥상으로 향하는 순간, 담임은 옥상의 난간으로 올라서고 있었다. 5층 건물의 옥상에서 떨어진다면, 아래쪽이 시멘트바닥인 만큼 처참한 상황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나는 재빠르게 그에게로 다가가서 그의 몸을 옥상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내 몸은 투명상태를 벗어나 있었다. 담임은 얼굴을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원망으로 가득 찬 눈초리였다.  
  "당신은 누군데, 저의 앞길을 방해하지요?"
  "나? 그냥 지나가던 도깨비지. 젊은 사람이 너무 위험한 짓을 하기에 이렇게 막았소. 하늘에서 당신을 부르지도 않았는데, 왜 벌써 가려해?"
  "세상 살기가 너무 힘듭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힘들다는 것입니까? 이야기 좀 들어봅시다."
  나는 그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였다. 그의 입에서는 김장군의 이야기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김장군은 요즘 학교생활이 너무 엉망이었지요. 그래서 조용히 타일러 볼 생각으로 상담실로 불렀습니다. 녀석은 아무리 타일러 보아도 반성의 기색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대나무자로 녀석의 손바닥을 몇 대 때렸더니, 뜻밖에도 경찰에 폭력신고를 했더군요."
  나는 더 이상 모르는 사실인 것처럼 듣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담임이 아니면, 김장군 쪽이 거짓을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렇다면, 그 아이의 몸에 난 피멍들은 뭐란 말입니까?"
"당신이 어떻게 그 사실을? 어쨌든 좋습니다. 당신도 나를 폭력교사로 보고 있는 것 같으니……. 나는 녀석의 손바닥만 때렸을 뿐입니다. 워낙 싸움개 같은 녀석이라서……."
  나는 녀석의 피멍들을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나의 화면에는 패싸움하는 녀석의 모습이 재현되고 있었다. 다시 눈을 떴다.
  "선생님한테 감정이 많은 학생이로군요."
  "그렇겠지요. 그 동안 녀석의 나쁜 버릇들을 고쳐 보기 위해 무척 애썼습니다. 저한테 호되게 혼난 적도 많았지요. 결국엔 제 등에 비수를 꼽는군요. 제가 못난 탓이지요."
  정말 날카로운 칼에라도 찔린 듯이 담임의 얼굴은 고통스럽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교육의 잘못됨을 자기 탓으로 돌리는 담임의 슬픈 모습이 측은해 보였다.
  "선생님 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습니까? 부모들 탓이 더 크겠지요."
  "실은 그럴 지도 모르겠습니다. 장군네는 돈이 많은 사람들이지요. 가정방문을 한번 갔던 적이 있습니다. 값비싼 백과사전들이 서재에 가득했고, 구하기 힘든 외제 양주들이 가득했고, 전문가들도 갖지 못하는 그랜드 피아노도 놓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장식용이었을 뿐이었어요. 먼지가 자욱했으니까요. 사채놀이를 하는 집인데, 돈만 있으면 애들 교육은 끝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진정한 정신적 사랑보다는 가식이 가득 찬 물질적인 사랑이 우선되어 교육을 시키고 있더군요. 어쨌든 그 아이는 저에게 야단을 맞으면 언제나 어머니를 불러왔고, 그 녀석의 어머니로부터 귀한 5대 독자를 구박하여 기를 꺾지 말아 달라는 항의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 덕분에 폭력교사로 낙인 찍혀 시말서도 여러 번 썼었지요. 이젠 지쳤어요. 교사로서 무능함을 느낍니다.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런 일들 때문에 자살을 한다는 것은 너무 나약한 양반이군."
  "제자를 때린 죄로 경찰서에 출두한다는 사실이 너무 끔찍합니다. 분명 신문과 방송에서는 제 얼굴을 크게 내비치며 폭력교사라고 밀어붙일 것이 뻔하기 때문에……."
  담임은 이미 삶의 의욕을 잃고 있었다. 나는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 그의 시야에 비추어 주었다.  
  지상으로 곤두박질하여 시멘트 바닥에 피를 뿌리는 담임 자신의 몸을 클로즈업 시켜 보여 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홀어머니가 절규하는 모습과 자신의 아내와 갓 태어난 자식이 슬픔에 잠겨 있는 모습들도 한꺼번에 보여주었다. 또한 자신이 설계해 왔던 미래의 삶들을 머리에 떠오르게 해 주었다. 그는 눈을 꼬옥 감으며 다리를 후들후들 떨었다.
  환상의 세계에서 현실로 돌아 온 담임은 사시나무 떨 듯이 떨고 있었다. 나는 그의 등을 톡톡 두드리며 마음의 안정을 유도하였다.
  "자살을 시도하는 것도 용기요. 그런 마음을 거두는 것도 큰 용기이지요. 대신에 당신의 고통을 조금 덜어 드리리다. 나를 믿으시오. 김장군이라는 학생은 선생님의 노력대로 좋은 학생으로 돌아 올 것입니다. 또한 경찰에 가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날 믿나요?"
  "예 믿습니다."
  "그럼 내려가서 학생들을 지도하시지요."
  그는 축 쳐진 조금 전과 전혀 다른 활기찬 모습으로 옥상을 떠났다. 나는 김장군을 찾아 나섰다. 녀석을 찾아내야만 어떤 해결책이 나올 것 같았다.
  석양이 물든 시가지는 주홍색 빛에 젖어 있었다. 내 시야에 잡힌 장군은 제집 대문을 들어서고 있었다. 나는 녀석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 붙었다. 녀석은 초인종을 누를까말까 망설이다가 주머니에 든 열쇠로 문을 열었다. 집은 조용하였다. 녀석의 발자국 소리만이 텅 빈 공간을 울릴 뿐이었다. 응접실로 들어선 녀석은 한동안 멍청하게 서 있었다. 집안에 갇혀 있던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장군에게 다가왔다. 장군은 강아지를 향해 냅다 발길질하며 소리를 질러 댔다.
  "나를 맞아 줘야 하는 것은 너와 같은 똥개가 아니란 말이야. 우씨 배고파!"
  녀석은 괴성을 지르며 럭비선수마냥 소파 위로 몸을 던졌다. 자욱한 먼지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탁자 위에 놓여 있던 리모콘을 집어 들어 음악을 켰다. TV도 켰다. 집안의 전원 스위치는 모조리 켜대기 시작하였다.
  녀석은 위스키 병들이 종류별로 진열되어 있는 장식장을 열었다. 위스키를 한 병 꺼내 들더니 마개를 열고 한 모금 벌컥 삼키었다. 그리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컴퓨터를 켰다. 마우스를 쥔 녀석의 손은 민첩하게 움직였다. 잠시 후, 화면에는 발가벗은 여자의 몸들이 뒹굴기 시작하였다. 녀석의 흐릿했던 두 눈동자가 초롱초롱하게 밝아지고 있었다.
  나는 녀석의 방을 가상의 세계로 설정하기위해 서서히 컴퓨터의 화면을 조작하기 시작하였다. 화면 속의 여자들의 알몸은 괴로워하고 있는 담임의 모습으로 변하였다. 방안은 점차 칙칙한 동굴로 변화되어 갔다. 장군이 평소에 두렵게 느끼던 어둠이 짙게 깔렸다.
  장군은 자지러질 듯이 놀라며 출구를 찾았지만, 녀석은 이미 내가 만든 덫에 갇혀 있었다. 동굴 안에서 담임의 흐느끼는 소리가 지속적으로 흐르고 있었다. 녀석은 갑작스런 조화 때문에 어찌할 바를 몰라 비명만 질러댔다. 담임의 흐느낌이 이어지는 동안 모니터에서는 녀석이 저지른 비행들이 총 망라되어 흘렀다. 폭력 조직을 만들어 약한 학생들을 괴롭히던 장면들, 동네 골목에서 여학생을 희롱하던 장면들, 술을 마시고 본드에 취해 어른들에게까지도 주먹을 휘두르던 장면들…….  
  나는 연약한 학생의 모습으로 변장하고 녀석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이 싸움꾼. 너는 싸움이 특기인 것 같군. 지금부터 나하고 싸움을 하는 거야. 서로 지칠 때까지 계속 하는 거야."
  무작정 녀석을 일으켜 세운 뒤 싸움을 걸었다. 마치 인형을 들고 화풀이를 하듯이 녀석을 요리조리 팽개치며 고통을 주었다. 잠시 묵묵히 당하고만 있던 녀석은 점차 본래의 성질을 드러내며 덤벼들었다. 하지만, 어림없는 짓이었다. 나는 녀석에게 자신의 몸이 조각조각 흩어지는 환상을 맛보게 한 후에야 싸움을 멈추었다. 그리고 녀석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인 염라대왕을 등장시켰다. 염라대왕은 방구석에 있던 옷걸이를 변화시킨 허상(虛像)에 불과했으나, 내가 생명력을 불어넣은 만큼 완벽하게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왜 이렇게 소란을 피우느냐?"
  나는 재빠르게 염라대왕의 앞에 무릎을 꿇고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
  "예, 저 김장군이 저를 이렇게 무참하게 때렸습니다."
  "내 이 노옴, 감히 약한 학생을 괴롭혀? 여봐라! 이 녀석을 당장 불구덩이에 처넣어라."
  염라대왕은 곁에 있던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물론 신하들은 빗자루나 쓰레기통 같은 방안의 사물들을 변화시킨 허상들이었기 때문에 생긴 몰골들이 괴상하기 짝이 없는 괴물들이었다. 신하들은 장군을 향해 우르르 몰려들었다. 녀석은 사력을 다해 발버둥쳤다. 그러나 괴물의 힘을 이겨낼 재간은 없었다. 이글거리는 불덩이들이 녀석의 시야에 펼쳐졌다. 뜨거운 불길을 피하던 녀석은 염라대왕을 향해 하소연하였다.
  "저는 맞기만 했을 뿐, 한 대도 때려보지 못했습니다. 살려 주세요!"
  나는 녀석의 시선이 나에게로 오는 순간, 옷을 주섬주섬 벗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미리 새겨 두었던 새파란 멍들을 들춰 보이며 나뒹굴었다.  
  "내 이 노옴! 저렇게 상처가 심한데, 안 때렸다고 거짓말을 한단 말이냐?"
  "정말, 억울합니다. 억울합니다."
  이때, 볼펜으로 변화시킨 장군이의 담임을 염라대왕 앞에 등장시켰다.
  "우리 장군이를 살려 주십시오. 저를 대신……."
  "그대는 또 누군가?"
  "장군이를 가르치고 있는 담임선생입니다."
  "그렇다면, 너도 아이를 잘 못 가르친 죄로 불구덩이로 가거라."
  경찰복을 입고 있던 신하 한 명이 담임을 냅다 불구덩이 속으로 집어 던졌다. 담임의 비명소리가 동굴 속에서 메아리쳤다. 그 비명소리는 간담을 써늘하게 하는 음산한 소리였다. 동시에 녀석도 불구덩이로 던져졌다. 활활 거리는 불길이 장군이의 몸을 에워쌌다. 녀석은 허우적거리며 소리 질렀다.
  "선생님. 살려주세요. 선생님! 아아악!"
   장군은 진저리치며 방바닥을 허우적거렸다. 녀석의 온몸은 땀으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주변의 물건들이란 물건들은 방바닥에 아무렇게 나뒹굴고 있었다. 녀석이 눈을 뜨고 제정신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가상의 세계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장군은 천장에 붙어 있는 형광등을 눈부시게 바라보고 있었다. 꿈을 꾸어도 너무 지독한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도 가장 찡하게 가슴에 남아 있는 것은 자신을 구하기 위해 나타난 담임이 불구덩이로 떨어지는 장면이었다. 자신 때문에 항상 애를 먹어 왔던 담임이 자기를 위해 불구덩이에 떨어지던 장면은 장군의 마음속에 숨겨진 양심이란 부분을 콕콕 찔러대고 있었다. 장군은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밖은 점차 어둠이 짙게 깔리고 있었다. 한 마리의 새가 후드득 둥지를 찾아 들고 있었다. 보금자리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자국소리도 어둠 속에서 분주하기만 하였다. 골목 한 귀퉁이 어느 집에서 흘러나오는 식구들의 웃음소리가 검은 어둠의 물결들을 뒤흔들었다. 밤이 깊어지는 시간에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장군이의 부모는 어떤 삶을 가지고 있을까. 한번 궁금증을 품으면 기어코 답을 찾아내고야 마는 내 성격은 장군의 어머니를 찾고 있었다. 장군의 어머니는 그다지 멀지 않은 아파트에 있었다.
  그녀는 담배 연기가 자욱한 전등불빛 속에서 네다섯 명의 여인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스톱 판을 벌이고 있었다. 유리 재떨이에서는 벌건 립스틱이 묻은 꽁초가 연기를 모락모락 피우고 있었다. 앞가슴을 풀어헤치고, 치마를 걷어 올리고, 소매를 걷어 올린 여인네들의 모습은 어제오늘에 다듬어진 자세가 아닌 듯싶었다. 서로가 자신이 들고 있는 패와 바닥의 패를 번갈아 보며 상대방의 눈치를 살피기에 정신들이 없었다.
  자신이 잘 못 쳐 놓은 세장의 바닥 화투를 보며 분을 삭이지 못해 씩씩거리던 장군의 어머니는 광을 세장이나 들고서 먹을 패가 없다고, 내어놓을 패가 없다고 투덜대고 있었다. 치맛자락에는 시퍼런 지폐가 아무렇게 놓여져 있었다.
   나는 괴이한 그녀들의 행색에 얼이 빠져, 얼굴표정들을 하나하나 살피었다. 그녀들의 머릿속에는 화투와 돈만이 가득했을 뿐, 가정에서 기다리고 있을 자식과 남편에 대한 생각들은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나는 각자의 화투짝에 가족들의 얼굴을 띄워 보았다. 하지만, 집을 걱정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갑자기 애들 생각은 왜 나는 거야? 정신집중이 안되는구먼."
  오히려 장군이 어머니는 화투패가 풀리지 않는 것을 자식들에게 전가시키고 있었다. 옆에서 허옇게 드러난 허벅지를 득득 긁고 있던 여인도 그녀의 말에 맞장구 쳤다.
"임자도 그래? 참, 이상한 일이네……."
  "어이구 이 아줌마들. 빨리 가서 장독대 간장뚜껑 닫고, 개밥까지 주고 오지 그래. 다 큰애들이야. 이젠 자기네들이 알아서 밥 챙겨 먹는다고."
  "허긴 그래. 우리 장군이도 다 컸어. 딸년이라도 다소곳하게 집에 처박혀서 장군이를 챙겨 주면 좋으련만……. 에그……. 소주 한잔만 줘."
  장군 어머니는 소주의 힘을 빌리면서까지 가족들의 얼굴을 쫓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녀는 치맛자락의 돈이 다 없어져야 일어서서 집으로 돌아갈 것 같았다. 급기야 나는 그녀가 화투 세장을 흔든 상대에게 광 바가지와 피 바가지를 쓰도록 상황을 설정하였다. 몇 번의 조작으로 그녀의 돈은 조만간에 바닥이 나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으로 훌훌 털지 못하였다. 오히려 핏빛으로 물든 독사눈을 뜨며, 그녀는 손에 끼고 있던 다이아몬드반지까지 저당 잡히며 자리를 보전하였다. 내 작전의 참패였다. 돈을 딴 쪽은 의기양양하였고, 잃은 쪽은 참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형평을 잃은 내 작전이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일단 모두에게 본전을 찾도록 판을 꾸몄다. 모두가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할 생각이었다.
  "어머, 다들 본전치기를 했네. 힘만 쭉 뺐잖아? 자, 지금부터 새로 시작하는 거야. 중국집에서 음식이 곧 도착하니까 밤참을 먹은 후, 판돈을 올려 화끈하게 몇 판만 더하자고."
  기껏 본전을 찾도록 해 주었더니, 모두 상대편이 가지고 있는 돈뭉치가 자기 수중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물욕들이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새로운 작전을 짜기 위해 밖으로 빠져나갔다. 바람을 쏘이며 그녀들을 골탕 먹일 방법을 궁리하였다. 때마침 중국집의 점원이 음식을 배달하였다.
  "아줌마, 요즘 경찰들 단속이 심하니까 문단속 잘하세요."
  중국집 점원이 빈 가방을 들고 밖으로 빠져 나가며 던진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무릎을 탁 치며 경찰의 모습으로 변신하였다. 문을 걸어 잠글 찰나에 나는 집안으로 뛰어들었다. 경찰을 본 그녀들은 표범에게 쫓기는 꽃사슴들 마냥 아우성치며 구석으로 도망 다니기에 급급하였다. 그러나 그녀들을 숨겨주기에는 비좁은 아파트였다. 모두들 구석진 곳으로 얼굴을 처박고 펑퍼짐한 엉덩이만 내 놓고 있었다. 나는 화투판을 장악하고서 그녀들에게 상습 주부도박단을 운운하며 엄포를 놓기 시작하였다.
   "당신들을 체포합니다."
  그제야 그녀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재미로 쳤을 뿐이라고 변명을 늘어놓으며 두 손이 발이 되도록 빌기 시작하였다. 나는 완강하게 경찰서로 가야 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모두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무릎을 꿇었다.
  나는 TV를 켰다. 그녀들 각자의 가정이 화면에 비추어지도록 조작하였다. 저녁밥을 못 먹고 허기진 배를 안고 어머니의 귀가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 아무렇게나 마루바닥에 쓰러져 잠이 들어 있는 아이들의 모습, 텅 빈 집이 무섭다고 울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대문밖에 쭈그리고 앉아 아내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남편의 모습……. 그리고 적막에 쌓인 응접실의 소파에서 멍청하게 앉아 있는 장군이의 모습이 계속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었다.
  "이보시오. 아주머니들. 저렇게 집을 내동댕이치고 화투판에 빠져 있으면, 아이들은 누가 돌볼 것이오? 곧 방송국에서도 카메라를 들고 이곳으로 몰려 올 것이니 각오들 단단히 하세요."
  장군이 어머니가 벌떡 일어나더니, 나(경찰)를 붙잡고 늘어졌다.
  "제발 이번 한번만 딱 눈감아 주세요. 우리 애 아빠가 알면 난 집에서 쫓겨납니다."
  나는 못이기는 척하고 한 가지 제안을 하였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눈감아 주는 대신, 한 가지 벌을 내리리다."
  나는 그녀들의 얼굴에 화투짝을 뿌려댔다. 화투는 그녀들의 얼굴로 파고들었다. 그녀들은 고통으로 응어리진 신음소리들을 내뱉었다. 나는 그녀들에게 거울을 보여 주었다. 얼굴의 양 볼에는 화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녀들은 또 한번의 비명을 지르며 얼굴의 화투들을 떼어내려 하였지만, 화투는 피부 속에 파묻혀 문신이 되어 있었다.
  "앞으로 가정을 보살피지 않고, 두 번 다시 화투를 만지게 될 경우에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문신으로 남을 것이오. 그러나 지금은 안심하시오. 잠시 후에는 깨끗하게 지워질 것이니……."
  내 말대로 그녀들의 얼굴에서 화투가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내가 한 말들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그녀들에게 화투를 치도록 시켰다. 그녀들이 화투를 만지자마자 화투의 선명한 문신이 그녀들의 얼굴을 뒤덮기 시작하였다. 모두가 그런 기이한 현상에 질겁하였다.
  "절대 내 말을 잊지 마시오. 평생 후회할 것이요."
  나는 흩어지는 그녀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파트를 벗어났다. 어둠이 점점 무르익고 있었다. 이번에는 장군의 아버지를 찾아볼 작정이었다. 시가지를 벗어난 변두리의 한적한 모텔에서 장군이의 아버지를 찾을 수가 있었다. 그는 객실에서 땀에 젖은 알몸으로 팬티를 입고 있는 중이었다. 그의 곁에서 한 명의 소녀가 팬티를 입고 있었다.
  "이봐, 우리 다음 주에 또 만나야지? 메시지를 받으면 속히 연락 줘."
  "흥, 원래 약속하고 틀리잖아요. 한 달에 두 번만 만나기로 했잖아요. 더 만나고 싶으면 한달 용돈을 올려 주세요."
  "알았어. 도대체 학생이 무슨 돈이 그렇게 필요해?"
  "식구들 먹여 살리려면 어쩔 수 있나요? 올려 주지 않으면 다른 상대를 찾을 거예요."
  "알았어. 올려 주면 될 것 아닌가."
  두 사람은 팔짱을 끼고 차고로 향하였다. 그들을 태운 승용차는 시가지를 향해 미끄러지듯 빨려갔다. 네온사인이 어둠을 몰아낸 번화가에서 소녀는 내렸다. 소녀와 그는 서로 포옹을 하며 헤어졌다. 누가 보더라도 부녀지간의 다정한 헤어짐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발랄하게 뚜벅뚜벅 걸어가는 소녀에게서 연민이 느껴지는 것은 웬일이란 말인가. 심청이가 아비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 몸을 팔았듯이, 여린 소녀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몸을 팔고 있다는 현실들이 가엽고 측은하기만 하였다. 아무리 돈이 궁하다고 할지언정 몸을 팔고 있는 소녀의 대담한 가치관이 놀랍기만 하였다. 이런 소녀를 더 이상 구렁텅이로 빠져들지 않도록, 도울 수만 있다면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그녀를 돕기 위해서라며 집이라도 알아두어야 될 것 같았다. 나는 소녀의 뒤를 밟았다.
  소녀는 제법 번화한 상점가로 들어갔다. 그녀가 들어간 곳은 메이커가 있는 옷가게였다. 잠시 후에 쇼핑백을 들고 나오는 소녀의 발걸음은 경쾌하기만 하였다. 골목으로 접어든 소녀는 공터의 가로등 불빛아래 쭈그리고 앉았다. 담배를 꺼내 피우면서 조금 전에 산 옷을 걸쳐 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나는 등이 구부정한 노인으로 둔갑하여 헛기침 소리를 내며 소녀에게 다가갔다.
"애야. 늦은 밤에 집에는 안 들어가고 여기에서 뭘 하니?"
"할아버지, 우리 집이 바로 코앞에 있는데 무슨 걱정이세요?"
  소녀가 가르친 집은 2층 양옥집이었다. 번듯한 집이었다.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리에서 나온 거짓말일 것이라는 쪽으로 해석하며 나는 소녀에게 재차 물었다.
  "애야. 너의 집이 진짜 여기냐? 밤거리는 무서우니까. 어서 집으로 가야지."
  "이 할아버지가 정말 사람을 못 믿네. 문패를 좀 보세요. 정학수. 우리 아버지예요."
   산비탈에 지어진 판자촌쯤에서나 살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은 완전히 빗나가고 있었다. 소녀는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였던지 냅다 뛰어서 집안으로 사라졌다. 나도 투명상태로 변하여 그녀를 뒤따라 집으로 들어섰다. 소녀를 질책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애야, 넌 허구한 날 늦는구나. 말만한 계집애가 이 시간까지 뭐했냐? 네 손에 들린 쇼핑가방은 뭐야?"
  "옷이야."
  "무슨 돈으로? 아버지가 돈 주던?"
  "꼼생이 아빠가? 엄마 웃기지 마세요. 요즘 불경기라고 해서 용돈도 줄였는데, 이런 메이커 옷을 어떻게 사주겠어요? 이 옷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내 힘으로 사 온 것이니까 걱정 말아요. 예쁘지? 나중에는 엄마 옷도 사줄게. 나 피곤해서 올라가 잘게요."
  "아버지 얼굴에 먹칠하지 말구. 하라는 공부나 하지……."
  소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들어간 문을 한동안 멍청하게 바라보고 서 있었다. 소녀는 피곤했던지 제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녀의 집은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풍요로운 집이었다. 중견기업체를 경영하는 아버지를 둔 그녀가 무엇 때문에 원조교제를 하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의 빗나간 사고방식을 고치기 위해서라도 나는 그녀의 꿈속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녀를 가상의 세계로 유도하였다.
  옷에 대한 욕심이 많은 소녀는 욕망의 늪 속에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나는 잠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천진난만한 소녀였기에 어떤 방법으로 그녀를 다스릴까 한참을 생각해야 하였다. 극약 처방으로 에이즈와 임신을 동시에 체험하게 설정하였다. 소녀의 배가 남산만큼 불러오기 시작하였다. 임신한 몸으로 교복을 입고 학교로 가는 소녀에게 숱한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이어졌다. 소녀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경멸의 눈초리들 때문에 몹시 괴로워하였다. 동시에 에이즈에 감염되어 그녀의 몸에서 반점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점차 온 몸을 뒤덮은 반점들이 벌레가 되어 자신의 몸을 갉아먹는 극한 공포 속에서 비명을 질러 댔다. 그 비명소리는 온 집안을 뒤흔들어 댔다.
  건너 방에서 잠을 자고 있던 부모들이 뛰어 들어와 소녀를 감싸 안았다.  비록 꿈속에서 일어난 일들이라고는 할지언정, 그러한 사건들은 평소에 소녀가 찜찜하게 갖고 있던 걱정거리들이었던 것이었기에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내가 소녀의 방을 빠져나갈 무렵, 소녀는 애절한 목소리를 던지고 있었다.
  "엄마 죄송해요……."
  저렇게 여린 소녀를 탐욕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장군이 아버지가 너무나 파렴치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가차 없이 장군이 아버지의 소재파악에 나섰다.
  그는 자신의 집에 있었다. 그의 아내는 장군을 품에 안고 단잠에 빠져 있었고, 그는 응접실에서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그의 눈동자 속에는 소녀의 벗은 몸이 가득 차 있었다. 나는 투명상태에서 벗어나 초인종을 눌렀다. 그가 문을 열고 나왔다. 그를 막무가내로 공원으로 이끌었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야?"
  "나? 나는 도깨비요."
  "도깨비이건 허깨비이건 나를 이런 곳으로 끌고 온 이유는 무엇이요?"
  그가 악다구니를 하는 동안 나는 벤치 앞쪽에 놓인 쓰레기통을 TV로 변화시켰다. TV에서는 그와 소녀의 정사장면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아니, 어떻게 이런 것을……. 이 테이프로 무엇을 요구할 작정이요."
  "당신의 파멸을……. 저 소녀는 당신 딸보다도 어린 학생이요. 인간의 탈을 썼기로서니 저럴 수 있는 게요?"
  "나는 그 아이를 강제추행 하거나 납치를 한 것이 아니요. 제 스스로 돈을 요구하면서 봉사를 하겠다는 데 어느 남자가 거절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반성하기는커녕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시키기에 급급하였다.
  "이 테이프는 당신과 인연을 맺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지게 될 것이오."
  "안돼, 안돼……. 좋소. 얼마를 요구하는 게요?"
  "돈, 돈, 돈……. 부부가 한결같군. 그러니까 자식교육이 제대로 될 리가 있나……. 당신의 딸을 나에게 넘기시오."
  "예끼 도둑놈, 감히 내 딸을 너 같은 잡놈에게? 난 못해. 차라리 내가 파멸되는 일이 있더라도……."
  그는 팔짝팔짝 뛰며 씩씩거렸다. 자신에게 항상 재롱을 떨어대는 딸의 모습이 그의 머리 속에 머물러 있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딸이었다. 그는 머리를 쥐어짜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댔다.
  "허허 파멸도 좋다? 자신의 딸이 귀하다면 남의 딸도 귀한 법. 너무 이기주의적이고, 비인간적이지 않는가?"
  "내가 잠시 미쳤었나 보오. 이번만 어떻게……. 내 이렇게 빌겠소."
  그는 고개를 숙이고 무릎까지 꿇고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충분히 반성을 하고 있는 태도였다.
  "좋소. 이번에는 참아 보리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해 두시오. 다시 한번 어린 학생들에게 그런 못된 버릇을 하게 된다면, 당신의 귀한 딸이 그 업보를 이어받을 것이오. 내가 무엇이든지 못하는 것이 없는 도깨비란 사실을 잊지 마시오."
  나는 그와 헤어져 구름 위로 올라갔다. 하늘에는 나의 전용구름만 두둥실 떠 있을 뿐이었다. 장군네 집 마당에 깔려 있던 잡초들 사이에서 꽃나무들이 꽃망울을 품고 있었다.  
  다음날이었다. 장군은 어머니와 함께 학교에 나타났다. 어제 출동했던 경찰이 이미 교무실에서 대기 중이었다. 장군의 어머니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담임에게 앙증맞기 짝이 없는 조그만 회초리를 선물하고 있었다.
                                                           『제주작가』 6호(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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