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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홍의 소설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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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빨갱이의 결혼

                 사과빨갱이의 결혼

  소방차의 사이렌소리가 아득한 곳에서 들려왔다. 점차 가깝게 울렸다. 바로 머리맡에서 울렸다.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시계의 알람소리였다.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사이렌소리를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깊은 수면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알람소리는 집요하였다. 가까스로 무거운 눈까풀을 들어올리고 시계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고요가 몰려왔다. 시계바늘은 4시를 알리고 있었다.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일어나는 내 몸뚱이는 제자리를 찾는 뼈의 마찰음으로 요동쳤다. 창문에 투영된 바깥은 아직 어둠이 지배하고 있었다. 옆집에 세든 노인네들의 도란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계의 알람소리는 나만을 깨운 것이 아니라 옆집 사람들까지도 깨워버리고 만 것이다. 온통 나무로 지어진 일본가옥구조의 탓으로 돌리기에는 미안하다는 생각이 앞섰다.
  세수를 하기 위해 싱크대로 향하면서도 하품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좀더 잘 수 있다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나를 지배하였다. 평소대로라면 늘어지게 늦잠을 자야할 일요일이다. 나에게 있어서의 일요일은 알람시계의 노예가 되지 않아서 좋은 날이고, 전철시간에 쫓겨 허둥대는 일이 없어서 좋은 날이고, 밖에서 마늘냄새를 풍길까 보아 조마조마하면서 김치를 먹지 않아서 더더욱 좋은 날이다. 하지만, 형기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라면 나의 평화로운 일요일을 잠시 접어두어도 좋으리라.
비상훈련에 쫓기는 병사처럼 내 몸짓은 바쁘게 허둥댔다. 싱크대에 머리를 처박고 고양이 세수를 한 후, 손수 다리미질하여 벽장에 걸어 두었던 까만 예복을 걸쳐 입고, 옆집 아키타(秋田)상으로부터 빌려 두었던 하얀 넥타이를 메는 시간은 번갯불에 콩을 구어 먹었다고나 해야 될까.
  일본에서는 까만 양복 한 벌이면 예복이 해결된다. 흰 와이셔츠에 하얀 넥타이를 걸치면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는 복장이 되고, 까만 넥타이를 걸치면 장례식장에 참석할 수 있는 복장이 된다. 넥타이 한 개를 바꿈으로써 경조사(慶弔事)의 복장이 뒤바뀌는 일본인들의 의복생활이 무척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5년 정도의 일본유학생활을 하는 동안, 일본인들의 결혼식 풍경을 한번도 구경해 본 적이 없었다. 그 동안 알고 지냈던 일본사람들의 결혼식이 몇 번인가 있기는 하였지만, 참석을 요청하는 초청장을 받아본 일은 없었다.
  유학초기에 나름대로 친해졌다고 생각하고 있던 스즈키(鈴木)의 결혼소식을 접했던 적이 있다. 내가 그 친구의 결혼소식을 접했을 때에는 이미 결혼식이 올려진 후였다. 서운하다 못해 무시당한 느낌마저 들었기에 내내 그 친구에게 앙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훗날, 나보다 더 친한 친구들도 초청대상에서 제외되었다는 사실을 접하고 나서야 오해를 풀 수 있었다.
  사돈의 팔촌부터 시작해 동네 시장골 국밥집 아줌마, 명함만 교환한 첫 대면의 사람까지 초청장을 보내는 우리네의 그런 결혼풍습과는 달리, 일본의 결혼은 가까운 친인척과 몇 명의 절친한 친구들만이 초청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비싼 결혼식 비용을 아끼기 위한 마음과, 자신의 결혼식을 빌미로 타인들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어우러진 경제적인 결혼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으로 축하를 해 줄 수 있는 사람들로 초청을 제한하고 있었다. 초청장을 보낼 때에는 접대준비를 위해 반드시 반송엽서를 넣어 보내 참석의 여부까지 확인하는 철저함을 보였다. 물론 나 역시 형기의 결혼식장에 참가하여 축하해 주겠노라고 반송(返送)답장을 이미 보름 전에 보내둔 터였다.  
  어쨌든 형기의 결혼소식을 우편으로 접한 후, 나의 흥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였다. 청첩장에 쓰여진 신부의 이름을 보고 입을 떡 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상식선에서 생각해 본다면 신부의 이름은 김 아무개, 혹은 이 아무개, 박 아무개식의 한국 이름이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눈을 씻고 청첩장을 다시 읽어보았지만, 신부의 이름은 가네다 에이코(金田 英子)였다. 그가 그렇게 증오의 눈으로 일관하던 일본인과의 결혼……. 내가 도깨비에 홀린 것이 아니라면 형기가 도깨비에 홀렸을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녀석의 결혼은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아니. 짜식이 미쳐도 유분수지 일본여자와 결혼을 해? 너도 일본에서 태어난 놈이라 어쩔 수 없구나. 그러니까 내가 네 놈을 만날 때마다 똥포, 똥포라고 했지……."
  오사카(大阪)행 고속전철인 신칸센(新幹線)에 몸을 담기 위해 도쿄(東京)역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날이 밝아 있었다. 속도가 시속 300킬로까지 나오는 시험주행을 마쳤다는 신칸센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빠른 속도로 뒷걸음질쳤다. 나는 의자를 뒤로 눕히며 눈을 감았다. 형기와의 기억들이 가물거리며 되살아나기 시작하였다.

  "한. 국. 사. 람. 이. 세. 요?"
갑작스럽게 등 뒤에서 날아드는 한국말을 들으며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숨을 덜컹 멈추게 할 정도로 훤칠한 덩치의 산적같은 사내가 떠억 버티고 서 있었다. 유난하게 진하고 굵은 눈썹을 박은 떡판만한 얼굴이 나를 향해 미소 지었다.
  왜소한 체구를 가진 나는 순간적으로 숨을 정지시키며 그를 올려보았다. 썩 잘하는 한국말이었지만, 어딘가 어색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사내. 얼굴의 광대뼈를 비롯한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로 보아 일본인이 아닐 것이라는 추측이 머리에서 반짝 스치고 지나갔다.
  "예, 그렇습니다만……."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하였다. 그는 정갈한 치열을 드러내 보이며 입을 열었다.
  "내 추측이 맞았군요. 반갑습니다. 나도 조선의 피를 받았습니다."
  그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저돌적인 악수요청에 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손을 내밀고야 말았다. 내 손을 덥석 잡은 사내의 손은 내 손의 2배는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조선이란 단어를 구사한 그의 말을 접하며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혹시 조총련계? 이 사내가 왜 갑자기 나에게 접근하는가…….
  싱글벙글 웃고 있는 그의 곁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는 공포감이 나를 엄습해 왔다. 서둘러 대학원 게시판을 빠져나와 버렸다. 분단된 나라의 인간이 갖는 이데올로기적인 경계심이었다. 유학 초년시절에 형기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형기의 모습은 캠퍼스에서 자주 접할 수 있었다. 나의 예감대로 북쪽 국적을 가진 조총련계 동포였다. 나는 애써 그를 피하기에 급급하였다.
  그와 마주칠 때마다 도일(渡日)하기 전에 철저하게 받았던 안보교육이 되살아났기 때문이었다. 되도록이면 기억 한편에 묻어 버리거나, 고무지우개로 지울 수만 있다면 내 머리통을 쪼개서라도 박박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그 안보교육은 나에게 숱한 공포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일본에 가면 조총련 쪽에서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여러분들에게 접근을 시도할 것입니다. 그들이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은 자연스럽게 접근해 오는 방법이고, 또한 조총련 기관지를 여러분들에게 보내는 방법입니다. 그들을 함부로 따라 나서지 말고, 그들의 기관지를 대하게 되면 그 순간 눈을 꼭 감고서 쓰레기통에……. 여러분들에게 위기가 닥치면 곧바로 대사관이나 영사관에 연락을 취해야 합니다."
  여행의 자유가 제한되었던 당시에는 외국여행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해야 했던 교육이었다. 철저한 반공교육이었다. 나는 반국가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까지 하였다. 분단국가라는 참담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강사의 말을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졸리는 눈을 꼬집고 또 꼬집었다.
  교육시간에 하품을 자주 하던 나는 유인물 위에 한 마리의 도깨비를 그리고 있었다. 기억 저편에서 초등학교 시절에 즐겨 그리던 반공포스터에 등장하던 빨간 도깨비가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흡혈귀 입을 가진 빨간 도깨비에 인민군 복장을 입히고서 '상기하자 6.25, 무찌르자 공산당'이란 표어를 써넣으면, 내 포스터는 다음날 교실 뒤편의 게시판에 어김없이 걸리곤 하였다. 선생님의 칭찬은 내가 직접 체험하지 못했던 공산주의의 이미지를 그렇게 심어주고 있었던 셈이었다. 그러나 남북적십자 회담이 열리고 TV에 비친 북쪽 사람들을 보면서 얼마나 황당해 하였던가. 그들은 내가 평소에 그리고 있던 빨간 도깨비 얼굴이 아니었고, 우리하고 똑같은 얼굴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도일(渡日)한 후, 국내에서 받았던 안보교육은 공산주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도쿄 한복판에서 민족학교에 다니는 한복차림의 학생들을 만나게 되더라도, 가끔 김일성 뺏지를 단 사람들을 발견하게 되더라도, 오금이 저리는 공포감을 느끼며 그 주변을 벗어나기에 급급하였다.
  어느 정도 일본생활에 적응되어갈 무렵, 나는 갑자기 입덧을 하는 여인네 마냥 한국음식을 먹고 싶어 안달하던 적이 있었다. 고추장이 먹고 싶었고, 김치가 먹고 싶었다. 배추를 사다가 소금에 절이고, 고춧가루를 듬뿍 뿌려 김치랍시고 먹어 보았지만, 한국음식에 대한 금단현상은 갈수록 더 하였다. 그래서 하루는 한국식당에 가서 제대로 만들어진 한국음식을 먹기로 작정하고 야쿠니쿠야(한국식 불고기집)에 갔다.
  반찬 하나하나에 가격이 책정되는 식당이었지만, 내가 먹고 싶은 한국음식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얼큰한 육개장 한 그릇과 배추김치, 깍두기, 총각김치를 각각 시켜 놓고서 걸신들린 사람처럼 먹어 치우기 시작하였다. 그릇을 반쯤 비우고 있었을 즈음, 카운터 쪽에서 낯익은 우리말이 들려오고 있었다. 반가웠다. 몇십년 만에 들어보는 우리말 같았다. 다가가서 손이라도 붙잡고 싶었다. 얼싸안고서 얼굴이라도 비벼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의 말투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나의 흥분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북한예술단이 워커힐에서 공연할 때 쓰던 그런 말투와 꽤 흡사하였다.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쭈룩쭈룩 흘러내리기 시작하였다.
  식당 내부를 둘러보았다. 벽에는 만수대의 사진이 그럴듯하게 걸려 있었고, 진열대에는 북한제 술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내 목구멍은 빗장을 걸고 더 이상의 밥을 거부하고 있었다. 북쪽 사람들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밥을 사먹었다는 사실은 분명 반공법을 위반하는 행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이 나를 납치하여 밀실로 끌고 갈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결국 반쯤 남은 육개장을 그대로 두고 부리나케 계산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살금살금 문을 열고 빠져나가는 나의 뒷덜미를 금방이라도 누군가가 움켜쥘 것만 같았다. 삐이꺽하고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 달아났다. 인적이 드문 한적한 곳에 이르러서야 멈출 수 있었다. 내 심장은 커다란 한숨을 내뱉고 있었다. 주변을 계속 살피었다. 다행히 아무도 나를 추적해 온 사람은 없었다. 그때서야 남기고 나온 육개장의 얼큰한 국물이 아깝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토록 조총련계에 대하여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던 내 앞에 등장한 형기는 두려운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나를 포섭하기 위한 공작원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면서 '동아시아정치학'이란 다카키(高木)교수의 강좌를 듣게 되었다. 형기도 그 강좌를 수강하고 있었다. 달갑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강좌를 포기할 수는 없었고, 빨갱이인 너와는 함께 강의를 들을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동안 강의실에서 부딪치는 형기와 나는 눈인사만 나눌 뿐, 이렇다할 대화는 없었다.
  유학생활이 무르익어 가면 익어갈수록 나의 긴장된 마음은 풀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꼬랑지를 사타구니에 넣고 깨개갱거리기만 하던 겁 많은 강아지같은 생활에서 탈피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생겼던 것이리라. 또한 나를 압박하던 빨갱이에 대한 경계심도 서서히 완화되기 시작하였다. 형기를 세심하게 지켜보면서 내가 너무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형기와 처음으로 술잔을 기울인 것은 학술세미나의 파티석상에서였다. 공교롭게도 그와 나는 자리배치를 나란히 받았다. 순간 어쩌자고 이런 빨갱이와 함께 자리를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외나무다리를 연상하면서 초연한 마음으로 그에게 술잔을 권하였다.
  "아이고! 이거 황공하기도 하고, 영광이기도 하고……. 어쨌든 고맙습니다. 듣자 하니 나보다 나이가 위인 것 같은데 형님이라고 불러도 괜찮겠지요?"
  대뜸 형님으로 부르겠다는 말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덩치가 산만한 그의 넉살은 나를 끌어들이는 힘이 있었다. 형기는 철저한 민족교육을 받아 모국어를 잘 구사하고 있었다. 그의 고향은 제주도라고 하였다. 남한사람이 북한국적을 가지게 되었다면 지독한 빨갱이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며 궁금증을 풀어나갔다.
  "그러면 고향에는 가보았어?"
  내 입에서는 반말이 금방 튀어나왔다. 그를 동생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의미가 깃든 반말이었다.
  "아닙니다. 아직……. 갈 수가 없는 처지입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지금 뼈로 남아 고향에 가고 싶은 꿈을 간직하고 있지요."
  "고향이 제주도라면서 어떻게 해서……."
  "말씀인즉, 어떻게 빨갱이가 되었냐는 것이지요?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들려줄까요? 우리 큰형은 민족학교를 다니지 않고, 일본학교를 나왔어요. 국적은 한국이고요."
  나는 깜짝 놀랐다.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한…….국? 친형이?"
  "그렇지요. 지금은 대학교수로 있어요. 한국으로 국적을 바꾼 지 한 5년 되었어요."
  "그러면 형님은 자주 한국에 가시겠군."
  "안 갔습니다. 단지 외국여행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일본과 북조선이 아직 국교가 없는지라……. 조선국적으로는 외국나들이가 힘들지요. 참, 우리 큰 아버지도 한국국적이고요."
  "그렇다면 서로 적인 셈인가? "
  "적이요? 하하하. 한국에서 오신 분들은 왜들 자꾸 흑백논리에 빠져 있지요? 자기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사고방식……. 정말 문제지요. 우리 동포들 집안은 다들 그렇게 뒤엉켜 있어요. 나도 국적을 바꾸려면 지금이라도 바꿀 수 있어요. 그러나 지금은 굳이 바꿀 필요성을 못 느끼니까요. 아직은 불편한 것 없어요. 북이건 남이건 내 조국인 걸요."
  나의 사고력은 잠시 미궁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성장하면서 교육을 받았던 멸공정신, 반공정신……. 북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적일 수밖에 없었다. 형기의 입에서 쏟아진 남과 북이 한 조국이란 논리는 좀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한잔 두잔 거듭되는 알코올은 내가 지니고 있었던 경계심 따위를 삼키고 말았다. 시부야(涉谷)의 어느 이자카야(선술집)로 옮겨서 2차가 시작되었다.
  "형기, 넌 역시 조선놈이야."
  긴장감이 풀린 탓이었을까. 나는 형기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서 마냥 쫑알거리고 있었다.
  "형님, 어이구 웬일이십니까? 저는 조총련 빨갱이에 불과한데요."
  얼큰하게 취한 형기는 그 동안 나에게 품고 있던 뼈있는 말을 던지고 있었다.
  "이 친구 왜 이래? 자네가 빨갱이인 것은 사실이잖아."
  "내일이라두 나같은 빨갱이하고 술 먹었다고 잡혀 가면 어떻게 하지요?"
농담이 섞인 그의 말이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의 등에서는 싸늘한 바람이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잡혀가지 뭐. 야 임마, 니, 한국 국적으로 바꿔버려라."
  "국적이 무슨 관계입니까? 그런 국적문제가 나오면 남이건 북이건 모두 속물들로만 보입니다. 나는 말입니다. 교포 3세가 아니라 2.5세입니다."
  형기는 난데없이 2.5세라는 논리를 들고 나왔다.
  "내가 2.5세라서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은 아직까지 남아 있습니다. 제가 조총련계에 속해 있었기에 민족교육도 받을 수 있었고, 때문에 형님하고 이렇게 떳떳하게 한국말로 이야기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3세들……. 특히 거의 대부분이 한국말을 못해요. 우리들의 혼이라고 할 수 있는 모국어를 잃어버리고 있지요. 이젠 모두가 조선인이 아닌 일본인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최소한 일본에 사는 동안은 조선인으로서 긍지를 가지고 살고 싶습니다."
  "그래, 그래, 자네는 멋쟁이야. 자네같은 동포들이 있으니까. 이 땅에서의 우리 민족혼은 이어져 갈 수 있는 거야. 자, 그런 의미에서 한 잔 건배!"
  건배! 건배! 건배! 너무 큰 소리를 내는 바람에 주객들의 시선은 한꺼번에 우리를 덮쳤다. 그때였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여자 손님이 자리를 뜨면서 한마디 거들었다.
  "일본사람들이 흉봐요. 조용히 좀 마시세요. 창피하게……."
  그녀의 입에서 한국말이 튀어나왔다. 일본인 커플이 다정하게 술을 마시는가 싶었는데, 한국여자였던 것이다. 우리에게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조금의 반성할 시간을 가졌다고나 할까…….
  "그런데 말입니다. 아까 그 아가씨 예쁘다고 생각했더니 우리 조선여자였군요. 요즘 우리 여성들을 훔쳐 가는 일본 남자들 많아요. 예전에는 위안부로 빼앗아 가더니……."
  "예전은 예전이고, 사랑을 하게 되면 국경을 초월할 수도 있겠지……."
  "그런 여성들 보면 자존심이 깎이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우리 큰아버지네 딸도 곧 일본사람하고 결혼하거든요. 더 이상 자식들에게 차별받는 조선국적을 남기지 않겠다나요? 다들 그런 식이지요. 특히 3세들이 더욱 그래요."
  형기는 술잔을 계속 부어댔다. 나 자신도 어느 정도 취해 있는 상황이었지만, 형기의 계속되는 원 샷은 내 취기를 빼앗을 정도로 걱정이 앞섰다. 형기는 고개를 푹 숙이며 쉰 목소리를 내었다.
  "그래. 어찌 3세들만을 욕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나 나나 이 일본 땅에서 태어난 것이 죄이지요. 일본인들이 겉과 속이 다른 이중인격의 소유자들이라면,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2의 자승의 인격자들이지요. 그만큼 이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는 셈입니다. 한국인도 못되고 일본인도 못되는 우리는 자칫 잘못하면 외계인이 될 수밖에 없는 위기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남쪽에 가면 똥포(同胞), 똥포하고, 북에 가면 귀포(歸胞),귀포하지요. 똑같은 조선인인데도 말입니다."
  형기의 말은 납덩이같은 무게가 있었다. 일본문화가 칼과 국화라고 표현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겉으로는 꽃처럼 웃고 있지만, 그들의 내심에는 비수를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풀이할 수 있을 정도로 이중성을 가진 일본민족……. 그리고 그 민족 속에서 남이냐 북이냐 하는 이념의 업보를 지닌 재일동포……. 형기의 말대로 동포들의 삶은 어느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삶이었다.
  형기는 술만 보면 게걸스럽게 마셔댔고, 담배는 필터부분까지 피우다가 남은 불씨에 다시 새 담배를 붙일 정도로 골초였다. 그러면서도 운동은 골고루 좋아했고, 특히 탁구와 테니스는 선수 못지않게 잘 했다. 일본 땅에서 치러지는 한국의 스포츠는 빠짐없이 관전을 하였다. 도쿄에서 남북 단일팀이 탁구경기를 하던 날. 형기는 한반도가 새겨진 통일깃발을 들고 목이 터져라 응원하였다. 우승컵을 받아든 남북 단일팀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글썽이던 형기의 모습은 내내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자리하고 있다.
  형기의 일본인에 대한 분노는 대단하였다. 취기가 가득 돌게 되면 그는 기이한 행동들을 서슴치 않고 해댔다. 기모노(전통의복)를 입고 걸어가는 여학생의 머리카락을 건드리며,
  "이것은 우리 유관순 언니의 몫이야."
  고방(파출소)앞을 지나다가도 때 묻은 손수건을 꺼내 펼쳐 흔들며,
  "만세! 만세! 만세!"
  어느 디스코클럽에 들어가서 여자들의 엉덩이를 만지며,
  "이것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몫이야."
  함께 있다 보면 위태위태한 상황이 자주 전개되곤 하였다. 다행이었던 것은 일본인들이 형기의 말을 못 알아듣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행동 자체를 코믹하게 연출하는 바람에 싸움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의 발작들은 어느 누구도 말릴 수가 없었다.
  나중에 그의 친구들을 통해서 안 사실이었지만, 그는 민족학교 시절부터 '쪽발이 킬러'라는 별명까지 붙을 정도로 일본학생들과 싸움을 자주 벌였다고 하였다.
  "형님, 내가 정말 변태 같아 보이나요? 일본 땅의 우리는 한없이 나약해요.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그랬듯이……."
  형기는 일본인들 앞에서 연약기만 했던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가끔 들려주었다.
  "우리 아버지는 나에게 너무나 자상했었지요. 모국어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한 아버지의 뜻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함께 길을 걸을 때에는 잠시도 쉼 없이 조선말로 나에게 말을 걸었었지요. 그러나 경찰이 나타나기만 하면 경직되어 곧 일본어로 말을 하곤 하였어요. 나는 그러한 아버지의 모습이 이해가 안 갔었어. 그러나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요. 일본인들이 우리 조선 사람들을 얼마나 괴롭혔는지……."
  서울에서 88올림픽이 치러지고 있었던 어느 날이었다. 형기로부터 흥분된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넘쳐흐르고 있었다.
  "형님, 오늘 우리 아버지 기분 끝나는 날이었어요. 서울에서 올림픽을 치른다고 아리랑을 부르더라고요. 그것도 경찰들이 드글드글한 고방 앞을 지나면서 말이요. 우리 아버지가 드디어 경찰 공포증에서 벗어났어요."
  형기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나는 형기의 말을 접하며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북쪽에서는 서울올림픽을 비방하며 방해까지 한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조총련계에 속해 있는 그의 아버지가 남쪽에서 열리는 올림픽 때문에 자긍심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막연하게나마 형기네 가정은 껍데기만 조총련계일뿐 우도 좌도 아닌 중도를 걷고 있는 동포들이 아닐까? 동포들의 세계를 새우 눈으로 보고 있던 나에게는 아무튼 흥미로운 일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형기가 조총련계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되었고, 더욱 더 친한 관계를 유지해 나가고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빨갱이에 대한 경계심은 이미 시궁창에 던져버린지 오래였다. 하지만, 나에게 다시금 위기의식을 심어주는 계기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은 후였다.
  "얼마 전에 유학생들이 간첩사건에 연루되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우리 집안은 국가의 녹을 먹는 공무원 집안이다. 흠집이 있어서는 안 된다. 조심해라."
  아버지의 말이 내 머리 속에서 해파리처럼 둥둥 떠다닐 즈음, 한술 더 떠서 가깝게 지내던 선배로부터도 충고를 받는 일이 일어났다.
  "요즘 조총련계인 형기와 친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 부친이 공무원이시라고 들었는데, 누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할거야. 염려되어서 하는 말이니까. 조심하여야 될거야. 반공법이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니까."
  그 선배의 충고가 고맙다고 하기 이전에 알 수 없는 공포감이 나를 엄습해 왔다. 유학생들 사이에 안기부의 끄나풀이 있다는 풍문을 들었던 적이 있었던지라 혹시 내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를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조총련계 동포를 만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간첩혐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닐까. 그렇다면 외화벌이를 나온 한국 연예인들이 코리언클럽에서 일하는 것도 다 반공법위반으로 잡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코리언클럽의 주 고객은 조총련계의 손님들이었으니까 말이다. 코리언클럽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유학생으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조총련계라는 이유 때문에 남쪽인 고향에 갈 수 없는 동포들은 코리언클럽에서 한국가요를 부르며 향수를 달랜다고 하였다.
  어쨌든 나의 동공 속에는 조그만 가방을 허리에 끼고 출근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꽉 차 있었다. 평생 말단 공무원을 면하지 못하는, 어쩌면 무능한 사람이었지만, 공무원으로서의 긍지와 신념을 가득 가진 아버지였다.
  다시금 나는 형기와 거리를 두기 시작하였다. 주변에서 은근하게 들어오는 압력은 무의식적으로 형기를 피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형기로터 만나고 싶다는 전화가 날아들었다. 차라리 내가 처한 상황을 설명한 후, 이해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약속장소로 나갔다. 그러나 뜻밖에도 형기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오사카로 돌아가서 아버지의 사업을 돕기로 하였어요. 아버지의 몸이 많이 안 좋으셔요. 공부는 나중에 다시 할 수 있겠지요. 오사카로 꼭 놀러 오세요. 내가 멋지게 한잔 살테니까."
  나는 가슴을 부여잡고 한숨을 푸욱 쉬었다. 어쩌면 안도의 한숨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학업을 포기하고 돌아가야 하는 형기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보다는 몸을 도사리기에 급급했던 이기심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형기는 헤어지면서까지 괴이한 짓을 연출하고 있었다. 신주쿠 역 부근은 많은 인파들로 북적거리는 곳이었다. 역을 향해 걷던 형기는 역 입구에 서 있던 행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당연히 내 시선도 형기의 시선을 쫓았다. 구두 속에서 하얀 양말이 삐쭉 엿보이는 관광객이었다. 목에 사진기를 걸고서 양손에는 코끼리표 전기밥솥을 들고 있는 폼으로 보아 분명 한국 사람들이었다. 일본에서는 별로 알아주지도 않는 코끼리표를 한국 사람들은 왜 그렇게 좋아할까…….  
  "형, 지금부터 연극을 좀 해보겠습니다."
  형기는 그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나를 향해 갑자기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이보라우. 이동무! 이동무! 날래날래 오라우요!"
  녀석의 목소리는 신주쿠 거리를 쩌렁쩌렁 울렸다. 그 순간 두 관광객은 머뭇거리더니 서둘러 짐을 챙겨 그 곳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형기는 그들의 뒷모습을 쓴 웃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형. 저 사람들 한국 사람이야. 이것이 조선 사람들이 가진 비극입니다. 잘 가시오."
  나는 '잘가'라는 말을 입속에서 우물거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근 일년이 지난 후에야 청첩장 한 장으로 그를 접하게 되었다. 청첩장을 받고 그에게 가야 되는가 말아야 되는가 하는 문제로 한동안 고민을 하였다. 그러나 그가 나에게 보낸 청첩장에서 그와 나의 정이 계속 숨을 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참석한다는 결정을 내리고서야 나는 홀가분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신오사카(新大阪)역에서 내린 나는 츠루하시(鶴橋)행 지하철을 탔다. 츠루하시는 동포들이 모여 코리안 타운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었다. 새벽부터 서두른 탓에 여유 있게 예식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팔목 시계의 바늘은 형기의 결혼식을 두 시간이나 앞두고 있었다. 시간을 때울 곳을 찾기 위해 어슬렁거려 보았다. 골목 끝 쪽에서 덩치 큰 사내가 걸어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내 눈은 깃사텡(커피숍)을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덩치 큰 사내가 내 앞에 이르러서야 형기란 사실을 알았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부둥켜안았다. 임꺽정같은 체구가 나를 숨막히게 하였다. 그는 결혼식이 시작되려면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서 식장 건너편의 깃사텡으로 나를 이끌었다.
  "축하한다."
  "아이고 고맙수다. 빨갱이 만난다고 잡혀가면 어쩔려구 이렇게 왔우?"
  "잡혀가지 뭐. 그 동안 연락 못해서 미안해. 논문 때문에 워낙 바빠서……."
  궁색한 변명의 보따리를 풀고 있는 나를 지켜보는 그의 눈빛이 따가웠다. 한동안의 공백때문인지 형기와의 만남이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무슨 말이든지 뱉어서 분위기를 돌리고 싶을 뿐이었다.
  "아버지 건강이 안 좋다고 했었잖아. 지금은 어떠시지?"
  "지금도 병원 신세를 지고 있지요. 실은 형님한테 이야기는 안 했지만, 추석 성묘단으로 아버지가 한국에 다녀오셨거든요."
  "그랬었어?"
  나는 입을 떡 벌렸다.
  "놀랄만도 하겠지요. 그 후로 북송선을 탄 고모와 작은 아버지와의 연락이 두절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화병이 나신 것이지요. 당신이 살아있는 동안 나를 결혼시켜야겠다고 이렇게 서둘러 식을 올리게 됐습니다."
  "그렇게 되었군……."
  "우리 아버지 말입니다. 요즘 남긴 유언이 뭔지 압니까. 할아버지의 유해와 함께 고향 제주에 묻어달라는……."
  "어렵지 않은 부탁이잖아."
  "우리같은 빨갱이는 한국에 갈 수 없잖아요. 우리는 정말 억울한 빨갱이입니다. 동포들 중에는 졸지에 빨갱이가 된 사람들이 많아요."
  형기는 징병으로 끌려와 정착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하였다. 강제징용으로 일본 땅에 정착하게 되어 지게품팔이로 가족의 생계를 이어나가던 형기의 할아버지는 졸지에 북한국적을 달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수교를 맺기 전에는 우리 모두가 조선인이었지요. 수교협정이 맺어지자 일본은 '한반도에서의 유일한 합법정부는 한국'이라고 발표를 하였고, 남쪽이 고향인 사람들은 모두 대한민국 국적으로 바꾸라고 공고하였지요. 그러나 지식인층들은 그러한 정책을 반대했어요. 왜냐하면 조국이 두 동강이가 나 있는 것도 한이 맺힐 일인데, 일본 땅에서마저 동포들 사이에 3.8선을 그어야 하겠느냐는 이유 때문이었으니까요. 그냥 조선인으로 살고 싶었던 게지요. 그렇게 반대하던 지식인들을 필두로, 일일시장에서 하루세끼 밥을 먹고 살기에 바쁜 동포들, 또한 세상물정 모르는 무지한 동포들은 국적을 바꿔야 하는 시한을 넘기고 말았지요. 그때부터 한국 쪽으로 등록을 마친 사람은 대한민국사람이 되어버렸고, 등록을 못했거나 안 했던 사람들은 모두 북한사람이 되어버렸어요. 당시에 근 90%가 남에 고향을 둔 사람들이었는데……."
  나는 계속 그의 말에 빨려들어 가고 있었다. 공산주의가 좋아서 조총련이 되어버린줄로만 알았던 그들의 과거를 듣고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뿐이었다. 진지하게 듣는 나를 향해 형기는 자신의 결혼식도 잊어버린 듯이 열을 올리고 있었다. 오히려 내가 시계를 보며 초조한 눈빛을 보이자, 그는 빙긋이 웃었다.
  "신랑보다 더 초조해 하시네요. 걱정마세요. 딱 한 가지만 형님에게 말씀드리겠어요. 형님뿐만이 아니라 대개의 한국 유학생들은 우리 조총련계 동포들을 무척 경계하지요. 그러나 빨갱이 세계에도 종류가 있는 법입니다.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혹시 알고 계시나요?"
  "빨갱이도 종류가 있나?"
  "그렇지요. 사과빨갱이, 수박빨갱이, 토마토빨갱이……."
  "푸하하……."
  나는 갑자기 그의 말을 들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과일이름에 비유한 빨간 의미는 그럴듯하게 들려왔던 것이다.
  "속은 하얗지만 겉이 빨간 사이비 빨갱이, 속은 완전히 빨갛지만 겉은 푸른색을 띠고 있는 양의 가죽을 쓴 빨갱이, 겉과 속이 모두 빨간 골수 빨갱이…….나는 어느 빨갱이에 속할 것 같으우?"
  "글쎄, 속도 겉도 하얀 무우같은데……. 종잡을 수 있어야지."
  "핫핫핫. 그래도 형님은 나를 좀 이해하고 있는 것 같군요. 하지만 무우 빨갱이는 없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이 공산주의세계를 좋아할 리가 있겠어요? 우린 대부분이 어쩔 수 없는 사과빨갱이들입니다. 남과 북의 정치인들이 교묘하게 이용을 하고 있을 뿐이지요. 우리는 이용을 당하고……."
  형기의 이야기를 듣는 나의 뇌리에서는 '비극'이란 단어가 둥둥 떠다녔다. 나는 형기의 큰 손을 덥석 잡고 말았다.
  "알았어. 자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봐. 한 가지 물어 보겠는데. 자네같이 일본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떻게 해서 일본여자와 결혼하게 됐어?"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눈을 크게 뜨며 금새 배를 잡고 웃어댔다. 깃사텡을 나온 형기는 식장으로 들어서더니 신부 대기실 쪽으로 나를 이끌었다.
  "에이코! 인사드려 내가 늘 말하던 한국에서 유학 오신 형님이셔."
  신부는 백합처럼 고개를 떨구며 나에게로 다가와서 인사하였다.
  "어서 오세요. 전 김영자(金英子)라고 합니다.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는 그녀의 낭랑한 한국말을 접하는 순간 머리를 숙이고 말았다. 내 얼굴은 낯 술을 마신 것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형기가 뒤에서 내 팔을 툭 치며 말하였다.
  "형님, 일본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해야겠수. 우리 동포들이 일본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자기 이름도 일본식으로 써야 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에이코는 한국국적인 민단계입니다. 한국에 유학도 했구요. 저기 저렇게 몰려오는 사람들 보세요. 저 사람들 반은 조총련계. 반은 민단계입니다."
                                                         『서귀포문학』10호(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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