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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홍의 소설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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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일 1 : 팔녀각.hwp (87.0 KB)   Download : 6
[데뷔작]팔녀각

                           팔녀각(八女閣)
                                                                                            

  아침 이슬을 털며 솟아오른 태양이 뒷산에 걸터앉을 무렵.  넋건지기굿을 구경하기 위한 사람들이 장산포 앞바다 방파제로 꾸역꾸역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박수무당들이 연주하는 징과 장고, 제금과 해금의 소리가 방파제를 타고 은은하게 퍼져 나가는 동안, 버드나무 가지로 엮어 만든 고리짝의 장단은 구경꾼들의 어깨를 들썩거리게 만들었다.
  철썩거리던 파도 소리는 굿판에 압도되어 이미 숨을 죽이고 있었다. 바다쪽을 향해 차려진 상위에는 용왕께 바쳐지는 제물, 산신께 바쳐지는 제물, 지신께 바쳐지는 제물들로 가득 채워졌다.
  남색 치마에 몽두리를 걸친 당골네는 거센 파도처럼, 때로는 잔잔한 파도처럼 춤을 추어댔다. 그에 뒤질세라 안울립 벙거지마저 당골네의 머리위에서 덩실거렸다.
  "……정미년 햇머리 시월 초여드렛날 박씨 영가 혼령이 수사에 갔으니 대신을 넣고 극락으로 모실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아무쪼록……."
  법사들이 외치는 지신경의 청아한 화음을 타고 땅을 짓이기듯 콩콩 뛰는 당골네. 그녀의 손에 쥐어진 칠성 방울과 칼이 쉴 새 없이 허공을 찔렀다.
  구경꾼들이 당골네의 춤사위에 넋을 뺏기고 있는 동안, 한편에서는 갓 베어 온 싱싱한 대나무가 조심스럽게 놓여졌다. 아주 굵고 곧은 대나무는 어머니의 혼백을 낚아 올릴 대신대였다.
  굿판을 돕는 풋내기 보조 당골네가 대나무의 잔가지들을 잘라 내기 시작하였다. 꽁지부분에 이르러서는 한 움큼 되는 잎사귀들을 그대로 남겨두고 있었다. 그녀는 매끄럽게 다듬어진 대나무 꽁지에 베 한 필을 낚싯줄 마냥 매달았고, 조리와 쪽박과 채를 함께 달아 주었다.
  그 곁에서 할머니는 어머니가 쓰던 밥그릇에 서너 주먹의 쌀을 퍼 담았다. 쌀 속에는 당골네가 만들어 준 종이인형이 넣어졌다. 그리고 뚜껑을 닫아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밀가루 반죽을 두른 후, 보조 당골네에게 조심스럽게 넘겨졌다. 보조 당골네는 대신대에 매달린 베에 밥그릇을 싸 묶었다. 십여 미터에 이르는 대신대는 어머니의 넋을 건지는 낚싯대로 변하여 바다에 드리워졌다.
  "넋이 걸리면 대신대는 자기 집을 찾아가게 되는 벱이여. 대신대를 처마에 걸어 두고 밥그릇을 열어 보면, 죽은 사람의 손톱이나 머리카락덜이 들어 있제. 고것으로 장례를 지내는 것이여."
  당골네의 몸짓 하나하나를 지켜보던 읍내 한약방의 정씨 할아버지가 곁에 앉아 있던 젊은이들을 향해 진지하게 설명해 주고 있었다.
  대신대를 잡는 사람은 영혼과 연대가 맞아야 되기 때문에, 넋이 걸릴 때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번갈아가며 붙잡았다. 넋이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자, 당골네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주변을 휘익 둘러보았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매서운 눈빛을 던져댔다. 순간, 그녀의 시선이 나의 시선과 일직선을 그었다. 번쩍거리는 눈의 광채가 강하게 나를 엄습해 왔다.
  "영가 혼령께서 지일로 애끼던 아드님이 한번 잡아 보아야제."
  나는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성큼성큼 다가가서는 그녀로부터 대신대를 넘겨받았다. 그러자 당골네는 마치 악단의 지휘자라도 되는 양, 박수무당과 법사들을 선두 지휘하며 덩실덩실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찰랑거리는 칠성 방울과 번뜩거리는 칼은 당골네의 율동에 따라 격렬하게 움직였다.
  "……현무주작 산황대신. 지리산 이 고장 산황대신. 서도 칠성. 남도 칠성. 북도 칠성……. 십오만 시주님 칠성만본 김씨 삼혼 칠백……."
  굿을 하는 쪽은 살아 있고, 굿을 구경하는 쪽은 죽었다고 표현되리만큼, 구경꾼들은 굿판에 몰입되어갔다. 날개와 발이 꽁꽁 묶여 꿈틀거리는 닭을 당골네가 움켜쥐었을 때야 비로소, 구경꾼들은 마른 침을 꼴깍거리기 시작하였다. 당골네는 푸들푸들 몸서리치는 닭을 바다 한 가운데로 냅다 집어 던졌다. 일렁거리는 파도는 티끌만큼의 주저도 없이 닭을 낼름 삼켰다. 곧이어 당골네는 바다를 향해 두 손을 모았다.
  "용왕님네! 김씨 영가 혼령의 대신이오! 부디부디…… 동해바다 용왕님. 서해바다 용왕님, 남해바다 용왕님, 북해바다 용왕님! 이렇게 걸게 잡수시고 약소하다 마시우고 영가 혼령을 모실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당골네는 젯상에 있던 제물들을 골고루 바다에 흩뿌리며, 어머니의 넋을 돌려 달라고 애원하였다.
  어머니는 십여 년이라는 세월 동안 내 기억 속에서 희미하게 퇴색되어 가는 한 장의 흑백사진이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넋을 건져야 한다는 상황이 전개되면서 어머니에 대한 기억들은 점차 선명한 칼라사진으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대신대를 들고 있던 나는 차츰 은빛바다의 황홀경에 몰입되어갔다. 은빛 찬란한 물결들은 마치 연잎들이 둥둥 떠 있는 환상을 안겨 주었다. 연잎 사이로 연꽃 한 송이가 불쑥 피어오르고, 그 연꽃 속에서 화사하게 웃는 어머니가 이내 나타날 것만 같은 생각이 나의 뇌리를 가득 채웠다.

  어린 시절부터 매달 초사흗날 새벽만 되면 나는 목욕을 강요당하였다. 찬 새벽 공기에 쪼그라진 고추를 쥐고 투덜거리면, 할머니는 여지없이 내 등을 후려치곤 하였다.
  "아이고메 이 철딱서니 없는 자석아. 장손인 니가 팔녀각에 치성을 잘 올려야 아무런 재앙이 없고 가문이 번성헐 수 있다는 것을 아직도 모르것냐?"
  그러나 내 코밑의 솜털이 짙어지면서 나는 할머니의 집요한 요구를 뿌리치기에 급급하였다. 팔녀각에 치성을 드리는 날만 다가오면 나는 여인들이 앓는 생리통과 같은 정기적인 병을 앓아야 했다. 팔, 다리, 어깨, 머리, 배 등의 부위는 돌아가면서 내 질병의 대상이 되어 주었다.
  보름전, 팔녀각의 치성을 앞두고 나는 밤새 팔이 아프다는 꾀병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꾀병은 할머니에게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인자 더 이상은 할매의 미신놀음에 응할 수 없당께."
  나는 두 눈에 쌍불을 켜고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평생 팔녀각에 치성을 올려 온 할머니에게는 가당치 않는 수작이었다. 할머니는 하루 내내 고무신짝으로 땅을 두드리며 꺼억꺼억 울었다. 그날따라 팔녀각이란 존재가 한없이 증오스럽기만 하였다. 홧김에 술 한 잔 걸친 나는 도끼를 들고 팔녀각으로 향하였다.
  "염병헐 놈의 귀신덜 다 뒈져 뿌려라!"
  도끼로 팔녀각 기둥을 마구 찍어 댔다. 제 정신이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이 말리지 않았더라면 팔녀각 기둥 하나쯤은 부러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 날 이후로부터 나에게는 간헐적인 발열 현상이 일어났다. 게다가 꾀병이 사실로 되어 오른팔까지 뒤틀리기 시작하였다. 눈을 감으면, 푸르뎅뎅한 이무기가 나를 덮쳐 왔다. 읍내의 병원과 한약방을 전전하였지만, 전혀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팔녀각을 건드리면 동티가 난다는 말을 반신반의하며 읍내 당골네 집을 찾았다.
  "도끼질은 뭣땀시 했어? 그렁께 팔빙신이 되뿌렸제. 팔녀각 신령님덜이 저주를 헌 것이다 그말이여. 싸게 풀어줘야 쓸 것인디……."
  나는 당골네의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나 하나 밖에 없는 손자가 어떻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던 할머니는 굿판을 벌이고 말았다.
  살풀이굿이 벌어지던 날, 내 머릿속에는 아까운 돼지만 날아갔다는 생각이 가득 차 있었다. 몸이 낫지 않으면 당골네로부터 돼지 값을 톡톡하게 받아 내리라는 생각뿐이었다. 굿판으로부터 흘러드는 징소리는 나를 잠의 세계로 이끌었다. 또 다시 푸르덩덩한 괴물과 싸우는 꿈을 꾸었다. 괴물과의 대결 때문에 잠의 세계는 벌건 피로 물들었다. 땀에 뒤범벅되어 허우적거리는 나를 깨운 것은 방문을 여는 소리였다. 이미 굿판의 소음은 사라지고 고요가 흐르고 있었다. 붉은 태양을 등진 할머니가 유령처럼 서 있었다.
  "몸은 쪼께 나았냐? 신령님께 사죄를 고혔응께 금방 나아질 것이여. 참, 모레는 느그 엄니 넋을 건지기로 혔다. 당골네가 그러는디 집안의 우환을 막을라며는 느그 엄니 넋도 건져 줘야 쓴다고 하드라."
  할머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냅다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니 할매. 뭔 말씸이랑가요? 워메 그 육실헐 놈의 당골네. 엄니 돌아가신 지가 십년이 넘어뿌렸는디 인자 와서 넋을 건진다고 말헙디요?"
  "느그 엄니 넋이 시방까지도 쓸쓸허니 바닷가에서 떠돈다고 헝께 그런다. 불쌍시럽게도……."
  "글씨 다 쓸디 없는 짓이여라우. 지발 그만 둡시다."
  "니도 싸가지 없는 불효자석이구먼. 느그 엄니가 무주고혼이 되야갔고 느그 애비 곁에도 못 가불고 떠돈다는디 워째 니가 그랄 수 있다냐?"
  할머니는 치맛자락을 들어 올려 눈시울을 찍었다. 할머니가 찍어대는 몇 방울의 눈물 앞에서 나는 무력하게 무너져 내렸다. 아니 당연히 무너져 내려야 했다.
  툇마루 기둥에 구부정하게 앉아 있는 할머니의 모습. 잡초처럼 헝클어져 있는 할머니의 머리카락이 그날따라 석양의 붉은 기운을 받아 몹시도 초라하게 나의 시야를 파고들었다. 나는 '엄니가 돌아가신 것도 모두 할매 때문이잖소?'라며 목청을 돋우고 싶었지만, 그 소리는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맴돌다 사라져 버렸다.
  잠시 침묵으로 일관하는 나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던 할머니는 가래 섞인 한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그때였다. 딸가닥거리는 소리가 단조롭게 들려오던 부엌 쪽에서 접시 깨어지는 소리가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할머니는 고개를 홱 돌렸다.
  "이 오사헐 가시나야! 또 부시냐? 밥값은커녕 허구헌 날 쳐 부셔대니 원."
  지금까지 나긋나긋했던 할머니의 목소리는 깨어진 접시의 소리보다도 더 날카롭게 집안을 울렸다. 부엌 쪽에서는 벌레 소리까지도 삼켜 버린 듯한 적막이 감돌았다. 할머니의 나에 대한 노여움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황급히 할머니의 소매를 잡았다.
  "할매 고정허시쇼. 넋이건 혼이건 건져야 헐 것이라면 건져야지라우. 할매 말씸대로 따를 것잉께."
  그때서야 할머니는 치맛자락을 툭툭 털며 일어섰다.
  나는 부엌으로 통하는 쪽문을 열어 젖혔다. 희미한 남포등 밑에서 꼼지락거리던 복례가 엉거주춤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혀를 날름거렸다. 그리고 배를 쓸어 보였다. 나는 눈을 찡긋거리며 쪽문을 닫았다. 검붉은 석양의 후광을 받아 푸르스레한 팔녀각 속으로 할머니가 곰처럼 엉금엉금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할머니의 삶은 팔녀각의 문지기 역할이었다. 할머니의 허리춤엔 항상 팔녀각의 열쇠와 곡간 열쇠가 딸랑거렸다. 그래서 장산포 사람들은 우리 할머니를 '딸랑할매'라고 불렀다. 쇠약해지는 송씨 가문을 살리기 위해서는 팔녀각에 깃든 혼령들을 섬겨야 한다는 것이 할머니의 주장이었다. 집에 우환이 생기거나 병이 생기면, 할머니는 어김없이 팔녀각을 뻔질나게 드나들며 두 손을 모았다.
  게다가 할머니는 툭하면 가위 점을 쳤다. 가령 손자가 상갓집에 가는 일이 생기면, 혹시 부정이나 타지 않을까 하고 가위에게 물었다. 먼 거리를 떠나게 되면 안전한 여행이 될 수 있는가 가위에게 물었다. 그런 후에 할머니는 외출을 허락하였다.
  할머니는 녹이 슬어 날이 무딘 가위 손잡이에 무명실을 몇 겹 걸고 오른 손으로 실을 거머쥐었다. 그때마다 가위는 목이 메어 숨이 막힌다는 듯이 허공에서 팽그르르 돌았다. 오른쪽으로 감겼다 왼쪽으로 감겼다 발버둥치길 몇 번, 할머니는 가위가 축 늘어져서 움직이지 않게 될 때까지 기다렸다.
  "가세님. 가세님. 영험허신 가세님. 우리 귀허디 귀헌 우리 손주가 길을 떠난다고 허는디요. 이번에 떠나는 질에 무신 부정이나 끼지는 않겄능게라우?"
  가위가 원을 그리며 슬쩍 한바퀴를 돌거나 파르르하고 떨게 되면, 그 것은 할머니의 물음에 긍정적인 답이 되는 것이었고,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고 가만히 있게 되면, 할머니가 묻는 물음에 부정적인 답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한 때는 가위 점을 칠 수 없도록 가위를 변소에 빠뜨려 버린 적도 있었지만, 할머니의 가위 점은 어김없이 계속 이어졌다.
  할머니는 5대 독자인 나를 금보다 옥보다도 더 귀하게 여겼다. 장산포의 남정네라면 누구나 배를 타고 어업에 종사하고 있었지만, 아버지를 바다에서 잃은 후로부터
  "나 눈에 흙이 들어가도 배 타는 일만은 안 되는 줄 알그라."
  하고 못 박아 놓고 있는 터였다.
  나는 어머니를 잃은 뒤, 할머니로부터의 탈출을 자주 생각하였다. 그러나 탈출의 계획을 실행하지는 못하였다. 아니 실행할 수가 없었다고 하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나는 줄에 얽매인 한 마리의 강아지였다. 온실 속에서 고이 길러지는 남자…… 남자다운 힘은 부엌데기인 복례를 방안으로 끌어들여 발가벗겨 놓고 색정을 불태울 때만 발휘되고 있었다.
  "네 이 눔아. 성두같은 불쌍놈의 자석과 정을 나눠서는 안 되는 줄 알그라. 절대로 안 된다잉? 나 눈에 흙이 들어가더라도 고것만은 안 되는 것이제."
  복례와의 관계를 눈치 챈 할머니는 눈에 불을 켜고 역정을 냈다.
  "나가 아그를 밴 것 같은디요."
  복례의 임신 사실을 접한 것은 내가 팔녀각에 도끼질을 하기 열흘 전의 일이었다. 내가 도끼를 들고 광기를 부렸던 것도 할머니를 설득할 길이 막연하였기 때문에 발산된 화풀이였다.
  신 김치를 입안에 가득 넣고 오물거리던 어머니의 얼굴은, 여물지도 않은 석류를 입에 털어 넣는 복례의 얼굴에 겹쳐, 나의 뇌 한구석에서 선명하게 되살아나고 있었다. 부엌 한구석에서 웩웩 입덧하는 복례의 모습은 어머니의 생전 모습 그대로였다. 웩웩거릴 때마다 어머니는 소화가 안 되어서 그런다고 소다를 한입씩 털어 넣곤 하였지만, 그것은 분명 임신이었다.

  어느 고대 왕실의 비각인 냥, 검게 그을린 비석 한 개를 뱃속에 넣고서 도도하게 웅크리고 앉아 있는 팔녀각. 송씨 가문을 어둠 속에 가두고 있는 거대한 피라미드였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비늘이 달린 푸르뎅뎅한 괴물과 싸우는 꿈을 자주 꾸었다. 꿈속의 괴물은 다름 아닌 팔녀각의 변신이었다. 기왓장을 비늘 삼아 치장하고 네 다리로 기세당당하게 버티고 있는 한 마리의 이무기였다.
  "옛날에는 여그 장산포에 왜구덜이 구름 때처럼 몰려오곤 했제. 그, 그 해적놈덜이 살림살이라믄 몽땅 뺏어 가불고, 집이란 집덜은 다 불 싸질러불고, 거그다가 여자덜까지 욕보이고 끌어가부렸어……. 긍께 뭐시냐. 그때 그 욕을 보지 않을라고 우리 시고모할매가 쩌기 앞바다에 몸을 던져부렸구먼. 같이 뛰어든 여자덜이 모두 여덟명이었제. 그 후로 시할부지께서 그네덜의 넋을 달랜다고 요 팔녀각을 지었당께."
  낯선 사람이 나타날 때마다 할머니는 우리 가문에 얽힌 팔녀각의 내력을 술술 헤프게 퍼주었다. 그러한 사실들을 스스로 목격이라도 한 듯이 몸서리까지 쳐대곤 하였다.
  팔녀각이 지어진 이후, 우연이었던지 필연이었던지는 몰라도 이상하게 우리 가문은 손이 귀한 가문이 되어 버렸다. 가문의 가장들은 한결같이 젊은 나이에 요절하였다. 고조부는 동학혁명에 참여하였다가 참형 당했고, 증조부는 일제치하에 징용으로 끌려가 생사불명 되었다. 거기에다 조부는 6.25때 전사했고, 아버지는 고깃배를 타다 풍랑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가문의 대를 이을 수 있는 손을 한 명씩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이었다. 가문을 이어갈 수 있는 손은 이어지고 있었지만, 젊은 나이에 홀로 된 여인들은 열녀가 나온 가문의 정숙한 여인으로서의 희생을 강요당해 왔고, 그녀들 역시 그 자체를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팔녀각이 세워진 이후, 장산포에는 새로운 풍습이 생겨났다. 홀로 된 여인이 정절을 지키다 세상을 뜨게 되면, 팔녀각 가장자리에 다듬잇돌만한 위령비를 세워 주는 풍습이었다.
  홀시어머니 밑에서 갖은 고통을 겪으면서도 정절을 지키며 살았던 우리 가문의 여인들은 당연하게 팔녀각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한 사실들을 긍지로 느끼며 살아 온 할머니는 자신의 뒤를 잇고 있던 홀 며느리에게도 당연히 수절을 강요하였다.
  언젠가부터 장산포에서는, 송씨가문으로 시집가는 여자는 청상과부가 된다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입방아 찧고 있었다. '송씨 집안에 시집갈 년' 혹은 ‘송씨 집안에 딸 시집보낼 놈’이란 새로운 욕이 생길정도로 우리 가문은 괴담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그러던 터에 몰락한 양반집 딸을 돈으로 사 왔다는 소문과 함께 어머니는 여천이라는 곳에서 시집을 오게 되었다. 어머니는 시집을 오고 나서야 송씨 가문의 내력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어머니가 갓 시집왔을 때,
  "시고모할매 영혼 혼례식은 벌쌔 올려줘부렸고, 매일같이 치성을 드리고 있응께 인자는 별 탈이 없을 것이다. 공연시리 동네 연놈덜의 입방아에 놀아나덜 말어야 쓴다. 알것냐?."
할머니는 며느리의 등을 두드리며 떠도는 입소문을 불식시키기에 바빴다. 그 때마다 어머니는 우연의 일치일 것이라고 되받아 치며 그냥 넘기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어머니의 가슴 한구석에서는 설마라는 일말의 불안감이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속담을 증명이라도 하듯, 내가 태어난 지 백일도 넘기기 전에 아버지는 물귀신이 되고 말았다. 결국 어머니는 송씨 가문의 한 많은 여인들의 내력 속으로 빨려 들 수밖에 없게 되어버렸다.
  어머니는 핏덩어리인 나 때문에 팔자를 고치겠다는 생각은 할 수도 없었다. 가끔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으면, 팔녀각의 시집 못간 처녀 원귀들이 송씨 가문에 득실거려서 남정네들의 씨를 말리고 있다는 것이 한결같은 점괘였다.
어머니가 팔녀각의 영혼들을 증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다.
  "그렇코롬 치성을 드렸는디 자손덜을 다 잡아먹어 부린답디까?"
  양처럼 고분고분하던 어머니가 할머니에게 대들기 시작하였다. 팔녀각에 치성 드리는 일도 할머니 몫으로 넘겨 버렸다. 어머니의 반란은 항상 당당하기만 하던 할머니의 기세마저 짓누르고 있었다. 논밭에 나갈 때에도 어머니는 일부러 팔녀각을 피해 멀리 돌아서 다녔다. 마당에 서면 빤히 바라보이는 팔녀각을 어머니는 철저하게 외면하였다.  
  "니마저 조상님덜처럼 명이 짧아 부리면 어쩌까이?"
  내 키가 방문 높이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어머니의 불안감은 더해 갔다. 그러던 어머니의 관심이 교회로 이어지기 시작하였다. 며느리의 반란을 조용하게 지켜보던 할머니는 며느리가 교회에 나간다는 사실만은 용서하지 않았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대립은 끝이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라고 표현해야 할 만큼 팽팽하게 이어졌다.
  교회를 다니게 되면서 조상의 제사를 내팽개친 옆집 순돌네를 손가락질하며 혀를 끌끌거리던 할머니였다. 게다가 '미신을 믿으면 천국에 못 간다.'는 전도사의 말을 곱씹어가며 교회에 적개심을 품고 있었던 할머니였다.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이었다. 그때까지도 할머니와 어머니의 전쟁은 이어지고 있었다. 어린 나로서도 암울한 분위기를 인식할 정도였다. 옆집 순돌이 엄니도 안타까웠던지 슬며시 나에게 귀띔을 주었다.
  “니가 교회에 나간다고 해뿌리면, 느그 할매라고 어쩔 수 있긋냐? 차라리 느그 엄니 손잡고 너도 교회나 나가뿌려라.”
  어른들의 세계가 어렵다고만 생각하고 있던 어린 나의 머리 속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 넣어주는 말이었다. 나는 할머니에게 교회에서 운영하는 여름성경학교에 나가겠다고 생떼를 쓰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쉽게 내 청을 받아줄 할머니가 아니었다.
  "고것이 무신 새 날러 가는 소리다냐? 혹시 에미가 뽐뿌질헌 것 아니냐?"
  오히려 할머니는 꿩새끼처럼 숨을 죽이고 있던 어머니에게 화살을 돌려댔다. 내가 단식투쟁에 돌입한 후에야 할머니는 방학동안만이라는 단서를 달며 허락해 주었다. 나의 승리는 곧 어머니의 해방으로 이어졌다. 왜냐하면 내가 어디를 가더라도 어머니의 보호를 받고 다녔기 때문이다.
  장산포에서 읍내로 나가기 위해서는 가파른 돌산을 넘어야 되었다. 교회는 읍내 장터 곁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20리정도는 족히 되었다. 여름학교가 열린 보름간은 매일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가끔 나가는 교회였다면 그런대로 바람도 쏘일 겸 재미가 있었겠지만, 매일 나가야 하는 교회는 어린 나에게 힘이 들었다.
  어머니는 이런 나의 심리를 파악했던지, 교회가 끝나면 어김없이 하얀 십리사탕과 엿가락을 한 움큼씩 내 손에 안겨 주었다. 또한 다리가 아프다고 엄살을 피우면 업어 주기까지 하며 나의 비위를 맞추기에 바빴다.
  어머니는 교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 갈 때마다 반드시 산허리에 있는 아버지의 무덤을 찾았다. 나는 풀숲을 헤치고 들어가야 하는 아버지의 무덤이 싫었기 때문에 산지기 성두네 집에서 어머니를 기다리곤 하였다. 어쩌면 얼굴도 모르는 아비의 무덤에 털끝만큼의 정도 느낄 수 없었다는 쪽이 솔직한 마음인지도 몰랐다. 어머니 또한 나에게 전혀 강요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못생긴 성두를 앞장세우고 풀숲으로 사라지곤 하였다. 성두는 마흔이 넘은 홀아비였다. 애꾸눈을 가진 그는 다리마저도 절었다. 항상 알 수 없는 웃음을 질질 흘리고 다녔다. 장산포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의 무리 속으로부터 그를 소외시켰다. 성두라는 존재는 이방인으로 남아 있었다. 어른이건 아이들이건 할 것 없이 모두 '성두야. 성두야.' 하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가 어디에서 어떻게 흘러들어 왔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고,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가 처음 장산포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가진 것이라고는 보따리 한 개와 아장거리는 계집아이 뿐이었다고 하였다.
  "워메, 빙신이 어디서 얼굴 반반한 미친년을 봐 부렸던 모양이시…….혹시 어디에서 훔쳐 온 애는 아닐랑가 모르겄네."
  그 아이의 외모가 워낙 예뻤던지라 사람들은 제 멋대로의 상상력을 동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일시적인 관심일 뿐이었다. 가끔 우물에서나 빨래터에서 입방아 찧는 아낙들의 심심풀이 수다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때마침 일손이 필요하던 할머니는 그에게 문중의 산지기 역할을 맡겼다. 그는 궂은 일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였다. 마을사람들이 병신, 머저리라고 놀려대고 구박하는 불구의 몸을 가진 그였지만, 한 사람의 몫을 단단히 해내주었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무덤으로부터 돌아올 동안, 나에게는 동갑내기인 성두네 딸 복례와 노는 것이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내가 복례 앞에 나타날 때마다 그녀의 시선은 항상 내 손에 쥐어진 엿가락으로 몰리곤 하였다. 내가 엿가락을 나누어 주면, 복례는 팔짝팔짝 뛰며 기뻐하였다.
  아비의 뒤치다꺼리를 해내야 했던 복례는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때문에 그녀는 내가 학교에서 배웠던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을 좋아하였다. 가끔은 소꿉놀이를 하며 어른들의 삶을 흉내 내기도 하였다. 그렇게 그녀와 노는 재미가 무르익을 무렵이면, 어김없이 어머니는 성두를 앞세우고 나타났다. 마을로 돌아가는 도중에 어머니는 옷매무새를 몇 번이고 고쳐댔다.
  "풀이 하도 우거져 있응께로 요로코롬 사람 애를 먹인당께. 아가 나 옷에 아무 것도 묻지 않았제?"
  어머니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몇 번이고 되물었다. 그때마다 나는 건성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산마루를 넘어 마을로 들어설 때면, 어머니는 넓게 펼쳐진 바다 위에서 날갯짓하는 갈매기들을 지긋하게 바라보곤 하였다.
  "오매! 쩌그 저 바닷새들은 좋컸다."
  "뭐땀시?"
  "한없시 자유스럴 것잉께."
어머니는 들풀이 휘날릴 정도로 한숨을 푹푹 쉬어댔다. 흘낏 훔쳐보는 어머니의 눈에는 이슬이 고였다.
  집에 돌아오면, 에미가 어딜 들렸느냐, 혹시 다른 남자들한테 이상한 눈빛을 주지 않더냐는 등의 할머니의 괴상한 질문에 나는 진절머리 쳤다. 어이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하며 눈을 부라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교회에 다녀 올 때에는 매번 아들의 무덤을 들려서 오는 며느리의 행적을 안 뒤로부터, 할머니는 의심증을 조금씩 풀기 시작하였다.
  주일학교가 끝나 갈 무렵은 무더위가 극성을 떨었다. 그날도 교회가 끝난 후, 우리 모자는 어김없이 성두네 집을 찾았다. 내가 복례와 놀이에 빠져 있는 동안 성두와 어머니는 숲 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에 갑자기 먹구름 한 판이 하늘을 가리기 시작하였다. 순식간에 소나기가 내렸다. 갓 사 입은 어머니의 꽃무늬 원피스가 비에 젖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복례와 나는 우산을 챙긴 뒤, 비닐로 된 비료봉지를 우비처럼 뒤집어쓰고 산으로 들어갔다. 아비의 무덤가에는 성두도 어머니도 보이지 않았다.
  소리 내어 어머니를 부르려던 순간, 숲 속으로부터 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비는 더욱 거세어지고 있었다. 복례를 무덤가에 두고서 나는 숲을 헤쳤다. 커다란 소나무 옆에 서 발견한 어머니와 성두를 보며 하마 터라면 소리를 지를 뻔 하였다. 어머니는 소나무를 잡고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성두는 어머니의 허리를 잡고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기이한 모습이라고 생각하였다. 어머니의 신음소리를 듣고서야 더 이상 그 광경을 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였다. 되돌아서서 냅다 뛰었다. 아비의 무덤가에 있던 복례의 손을 낚아채 무작정 뛰었다.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 온 나는, 툇마루에 앉아 처마 밑에서 떨어지는 빗방울만 말없이 바라보았다. 복례는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복례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나는 얼굴을 붉히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 언제인가 장터 국밥집 앞에서 이루어지던 암캐와 수캐의 행위가 연상되어 떠올랐다.
  비는 언제 내렸냐는 듯이 풀잎에 이슬방울들을 매달아 놓고 맑게 개었다. 저만큼 숲 속으로부터 풀벌레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후줄근하게 젖은 어머니와 성두가 숲 속으로부터 튕겨져 나왔다.
  "오매! 염병헐 놈의 비. 오매! 오사헐놈의 비."
  어머니는 치마의 물기를 털어 내며 투덜거렸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마을로 향하였다. 내 시선이 어머니의 얼굴에 자주 머물렀다.
  "아가야. 뭐땀시 자꾸 나 얼굴을 보냐? 뭐시라도 묻었냐?"
  쪽진 어머니의 머리카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어머니의 발그스레한 볼을 적시고 있었다. 나는 씽긋이 웃으며 뭉게구름이 흘러가는 하늘만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나는 내 작은 가슴속에 꼬옥꼬옥 묻어 두어야 할 일이 생겼다고 생각하였다. 가슴이 무겁다고 생각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 후로도 교회가 끝나면 한결같이 성두네 집을 찾았다. 어머니와 성두가 숲 속으로 사라지면, 뒤엉킨 두 사람의 영상이 내 머리를 가득 채웠다. 그 자체가 싫다고 느끼기 보다는 그런 연상을 할 때마다 내 신체 일부가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느낌, 표현하기 힘든 느낌은 복례를 꼭 끌어 안아보게 만들었다. 기묘한 일이었다.  
  여름방학이 끝난 후, 할머니와의 약속대로 교회에 더 이상 나갈 수가 없게 되었다. 초가을로 접어 들 무렵이었다. 어머니는 날이 가면 갈수록 수척해져 갔다. 가끔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살며시 사라졌다가 땀이 범벅되어 돌아와 곤하게 잠들곤 하였다. 때로는 부엌에서 배를 잡고 웩웩거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였다.  
  장산포 뒷산자락이 진노란 단풍으로 치장될 무렵. 할머니와 어머니의 말싸움은 잦아지기 시작하였다. 마을사람들은 과부들의 히스테리쯤으로 생각하며 관심이 없었다.
  태풍의 여파로 소나기라도 금방 쏟아져 내릴 것 같던 날. 그날도 시어미와 며느리의 언성이 온 집안을 뒤흔들고 있었다.
  "니 뱃속의 씨가 언놈의 씨냐? 싸게 바른대로 말 못허것냐?"
  "……"
  고개 숙인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석고상처럼 서 있었다.
  "인자는 우리 가문도 끝장이 나 부렸구먼. 내일부터 어찌 얼굴 들고 나다닐 수 있겄냐? 농약이라도 먹고 니 죽고 나 죽어뿌리자."
할머니의 말끝에 고개를 쳐든 어머니의 눈에서 광채가 흘렀다.
  "그럽시다요. 나도 차라리 콱 죽어 버리는 것이 낫것소. 더 이상 송씨가문에서 의미 없는 종살이는 지긋지긋허구만요."
  "뭐시여? 니년이 우리 가문의 얼굴에 먹칠을 혀 놓고도 뻔뻔시럽게 대들어야? 인자는 팔녀각에 비를 세우는 일도 끝나부렸구나. 조상님들께 낯부끄러워 어떻게 살란 말이냐. 아이고메. 아이고메……."
  할머니는 마당 한 복판에 주저앉아 땅을 쳐댔다. 고부간의 싸움에 이미 지쳐버린 나는 어느 쪽이 꽁무니를 뺄 것인가 지켜 볼 뿐이었다. 행여나 할머니의 말대로 둘 다 농약이라도 먹게 된다면, 나는 천애의 고아가 되어 버린다는 사실이 두려움으로 엄습해 왔다.
  땅거미가 질 무렵에야 겨우 싸움을 멈춘 할머니는 머리에 수건을 둘러메고 누워 버렸다. 어머니는 읍내에 나가 석유를 받아 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눈물을 떨어뜨리며 집을 나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너무 측은해 보였다. 왠지 그날따라 어머니를 혼자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따라 오지 말라는 어머니를 꾸역꾸역 쫓아 나섰다. 어머니는 복례네 집 근처를 지날 무렵 한동안 머뭇거렸다.
  "읍내에 갔다 올라믄 너무 늦겄지야? 복례 아부지헌테 석유를 쪼께 꿔 가불까?"
  나는 흔쾌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복례네 집을 향해 앞장섰다. 나에게 복례의 방에 들어가도록 일러두고서 어머니는 성두의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내가 깜빡깜빡 졸 때까지 긴 시간을 성두와 이야기 나누었다. 간헐적으로 어머니의 훌쩍이는 소리가 나의 잠을 깨웠다. 밤이 이슥해져서야 어머니와 나는 마을로 향하였다.
  "석유가 없어서 어쩔까이. 석유는 지가 받아 갈 것잉께. 살펴 가십시다이."
  성두는 호롱불을 들어올리며 큰길까지 나와 주었다. 호롱불에 비친 그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날따라 칠흑 같은 어둠이 어머니와 나를 에워쌌다. 가끔 성냥불같은 번개가 쿵하고 마을 뒷산을 때려댔다.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번개는 어머니의 얼굴에 얼음 같은 새파란 빛을 남기고 사라져 갔다.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마다 나는 어머니의 하얀 치마폭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성두네 집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한동안 집 앞에서 서성거렸다. 나는 들창문에 비친 할머니의 모습과 어머니의 모습을 번갈아 보았다. 어머니의 긴 한숨이 나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머니는 돌아서서 팔녀각을 한동안 응시하였다. 그리고 바다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나는 왜 바다로 향하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할머니가 잠자리에 들 때까지 피해 있기 위해서라는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와 내가 방파제에 이르렀을 때, 거센 파도는 한두 덩이의 포말을 장난스럽게 던져 왔다. 그때서야 비로소 나는 어머니의 치마를 잡아당기며 집으로 돌아가자고 졸랐다. 어머니는 방파제 위에서 나를 꼭 껴안았다. 어머니의 품은 따스하고 포근하다고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깊은 한숨이 또 다시 나의 귓전에 내려앉았다. 나는 어머니의 팔에 꽁꽁 묶여 있었다. 숨이 막혀 왔다. 그래도 나는 빠져나가지 않았다. 그래야만 조금이라도 어머니를 위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순간 어머니가 나를 놓아 주었다. 싸늘한 공기가 내 볼을 스치는 순간, 어머니의 몸이 파도를 향해 날아갔다. 본능적으로 내 팔이 나아갔지만, 파도가 어머니의 몸을 덥썩 삼켜버린 후였다.
  "엄니!  엄니! 엄니!"
  파도소리는 마치 조롱하듯이 내 절규를 삼켜버렸다. 나는 '엄니!'를 계속 부르며 마을 쪽으로 뛰어갔다. 시위를 떠난 천둥번개가 마을 한가운데를 강타하였다. 순간, 번갯불에 반사된 팔녀각이 내 시야에 떠올랐다. 그리고 이내 사라졌다.

  모두의 잠을 빼앗아버린 새벽녘, 마을사람들은 방파제에 몰려 수군덕거리고 있었다. 할머니와 나는 이미 넋이 나가 있었다. 팔녀각이 불타고 있다는 소리에도 관심이 없을 정도였다. 다음날, 팔녀각은 불에 그슬린 흉측한 몰골을 드러냈다. 마을사람들이 물을 길어다 불길을 잡은 덕분에 기둥과 기둥 사이에 얼기설기 이어져 있던 난간들만 없어졌을 뿐, 네 기둥은 건재하게 버티고 있었다. 검게 그을린 기둥은 불이 나기 전보다 오히려 더욱 강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난간이 없어진 팔녀각에서 비석들이 금방이라도 뛰어나와 사방으로 흩어지며 도망갈 것만 같았다.
  팔녀각 주변을 돌아보았을 때, 풀이 우거진 고랑 속에서 낯익은 석유통을 발견하였다. 어젯밤, 어머니와 내가 성두네 집에 놓아두고 왔던 석유통이 분명하였다. 내 코끝을 스치는 바람결에 석유냄새가 베어 있었다.
  태풍이 지난 후. 잔잔한 바다 어느 곳에서도 어머니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었다. 평소보다 더 많은 갈매기들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어머니의 유품은 벗어 놓은 고무신과 파도에 떠밀려 온 치맛자락뿐이었다. 달포 넘게 수색 작업을 폈지만, 어머니는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장례를 지내기 위해 장산포 둑에서는 매일같이 어머니의 넋을 건지기 위한 굿판이 벌어졌다. 시신이 없다면 넋이라도 건져 장례를 치러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제 아무리 날고뛴다는 무당들을 데려다가 굿판을 벌였지만, 어머니의 넋은 건져지지 않았다.
  결국, 하는 수 없이 어머니가 평소 입었던 옷과 신발을 허수아비에 씌워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할머니는 팔녀각에 자신의 비가 세워질 자리를 비워 두고 어머니의 위령비를 세워 주었다.
  "워매, 딸랑 할매가 노망해 부렸는 갑다. 어찌 그 불여시같은 여천댁의 비석을 세웠을꺼나잉? "
  장산포 사람들은 어머니의 비석을 세운 것은 할머니의 횡포라고 입을 삐쭉거렸다. 그네들은 어머니와 성두와의 관계를 알고 있었고, 팔녀각까지 어머니가 불태웠다고 수군거렸다. 그네들은 열녀라고도 할 수 없는 어머니의 비석이 팔녀각에 세워졌다는 사실이 이해될 수 없는 일이라고 입방아 찧었다. 그때마다 팔녀각에 불을 지른 범인은 어머니가 아닌 성두의 짓이라고 해명하고 싶었지만, 그냥 내 가슴 속에 묻어 두고 말았다.

  어머니가 바다로 간 이후. 아버지의 곁에 봉우리를 튼 어머니의 가짜 무덤을 찾곤 하였다. 그 때마다 복례의 얼굴에는 검은 구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울 아부지 맨날 산에만 간다? 요새는 밥도 안 묵어. 저러다가 죽기라도 허면 어쩐다냐?"
  유난하게 커다란 복례의 눈에 맑은 눈물이 고였다. 내가 어머니의 무덤을 찾을 때마다 성두는 어미의 무덤가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는 내가 나타나면 한쪽 눈을 깜빡거리며 허둥지둥 일어섰다. 그렇게도 질질 흘리고 다니던 그의 헤픈 웃음은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뒤뚱거리며 숲 속으로 사라지는 그의 모습은 왜소해 보이기만 하였다.
어머니의 죽음에 그가 무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불쑥 내 정수리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왠지 그를 탓하고 싶지 않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 성두는 농약을 먹고 자살을 기도하였다. 복례가 가까스로 성두의 목숨을 살려 놓았지만, 그의 몸은 마비되어 바깥출입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성두는 그때부터 십여년 동안 복례가 끓여 주는 미음으로 목숨을 이어왔다.
  내가 중학에 들어갈 무렵부터 복례는 할머니 밑에서 부엌일을 시작하였다. 복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침저녁으로 산을 넘으며 제 아비의 식사를 꼬박꼬박 챙겼다. 그녀는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녀의 해맑은 미소는 나의 마음을 달뜨게 만들었다. 그때마다 나의 마음 한 구석에는 복례를 아내로 맞아들이겠다는 생각이 짙게 깔리고 있었다.

  회상에서 돌아온 내 시야에는 다시금 은빛 연잎들과 같은 바다물결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지난 세월들에 너무 취해 버린 나머지 어머니의 넋을 건져야 하는 현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대신대를 쥐고 있던 팔에 힘을 불끈 주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동티가 났던 오른팔이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굿을 한 덕분인지 약을 먹은 덕분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대신대를 쥐고 있던 팔에서는 점차 힘이 소진되고 있었다. 대신대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당골네가 나에게서 대신대를 빼앗아 갔다. 당골네는 어머니와 인연이 있었던 사람들에게 대신대를 잡도록 권하였다. 해가 바다를 향해 뉘엿뉘엿 기울 때쯤. 당골네의 춤사위마저도 힘을 잃어 가고 있었다. 하얗게 변해 가는 당골네의 얼굴에서는 굵은 땀방울만 주렁주렁 열렸다. 구경꾼들도 지루하다는 듯이 하품을 뱉어내기 시작하였다.
  어머니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인가…… 초조한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그때였다. 구석진 곳에서 교미중인 한 쌍의 개가 내 시야를 파고들었다.  순간 나의 뇌리에서는 용접 불꽃같은 그 무엇인가가 떠올랐다. 나는 벌떡 일어섰다. 읍내 쪽을 향해 내달렸다. 당골네의 춤사위는 계속 이어졌다.
  바리지게에 성두를 지고 굿판으로 되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한결같이 토끼가 되어 귀를 쫑긋거렸다. 둥그렇게 뜬 눈들은 벌겋게 상기된 채 씩씩거리고 서 있는 나와, 바리 위에서 웅크리고 있는 성두를 번갈아 보았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지게를 세우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성두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성두를 대신대 쪽에 앉혔다.
  성두는 퀭한 한쪽 눈만 깜빡거리며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에 바빴다. 나는 동네 구멍가게 아주머니가 쥐고 있던 대신대를 빼앗아 성두에게 내밀었다. 성두는 내가 시키는 대로 대신대를 받아 들었다. 할머니를 비롯한 어느 누구도 나의 행동을 막지 않았다. 오히려 당골네의 춤사위와 박수무당들이 울리는 악기 소리는 더욱 더 요란스러워져 갔다.
  구경꾼들은 웅크리고 앉아 대신대를 쥔 성두의 모습을 보며 귓속말들을 주고받기에 여념이 없었다. 성두의 등장은 뜻밖에도 시든 굿판을 되살리고 있었다. 주변상황에 아랑곳 하지 않고 성두는 진지하게 대신대를 움켜쥐고 있었다. 환자답지 않게 자세도 곧았다. 무슨 말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의 입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듯이 쉼 없이 움직였다. 그 대화의 상대는 아마도 어머니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성두의 몸이 뒤틀리며 바다로 빨려 들었다. 당골네는 황급히 성두에게 다가섰다.
  "워메, 걸려부렸구먼!"
  누군가의 입에서 탄성이 튀어나왔다. 당골네는 날렵하게 성두를 낚아채 둑 가장자리로 끌어올렸다. 웅크렸던 성두의 몸은 꼿꼿하게 펴지기 시작하였다. 대신대를 꽉 움켜쥔 그는 당골네의 몸짓마냥 허공을 향해 껑충껑충 뛰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대신대에 매달았던 물건들이 물 밖으로 튀어 오르며 물보라를 일으켰다. 석양빛에 어우러진 물보라는 아주 짧은 사이에 앙증맞은 무지개를 만들었다. 성두는 대신대를 머리 위로 올려 거머쥐었다. 대신대와 성두의 몸은 직각을 이루었다. 성두는 대신대를 휘휘 휘저으며 마을을 향해 뛰었다.
   당골네는 대신대의 끝을 잡고서 허둥지둥 뒤따랐다. 뒤뚱거리며 뛰어가는 성두의 모습을 보는 사람들의 입과 눈은 커다랗게 열린 채 한동안 닫히지 않았다. 성두의 모습은 창을 머리 높이 올려 적진으로 돌진하는 병사를 연상하게 하였다. 쇠약해져 걷기조차 힘들었던 성두에게 들린 어머니의 혼령은 기적을 연출해내고 있었다.  
  어머니의 넋을 찾긴 찾았지만, 어머니는 끝내 송씨 가문을 거부하였다. 성두를 앞세운 어머니의 넋은 우리 집을 외면한 채 산마루를 탔다. 당골네가 성두를 막아 세우며 팔녀각 쪽으로 인도하였으나, 성두에게 실린 어머니의 의지는 막을 길이 없었다. 어머니는 고개를 넘더니 성두의 집으로 들어갔다. 결국 어머니의 넋을 하늘로 올리는 승천 굿은 성두네집에서 이루어졌다. 어머니의 밥그릇에는 한 오라기의 머리카락이 들어 있었다. 그날밤, 성두는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로 숨을 거두었다.

  그로부터 사흘 뒤에 공교롭게도 어머니와 성두의 장례가 언덕 하나를 사이로 치러졌다. 장례가 끝난 후, 할머니는 팔녀각에 미리 세워두었던 어머니의 비석을 뽑아놓고 몇 번이고 혼절을 거듭하였다. 때로는 팔녀각 속에서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기도 하였다.
  그날 밤이었다. 비늘 달린 괴물이 내 앞에서 붉은 피를 토하며 꺼억꺼억 몸부림치는 꿈을 꾸었다. 괴물의 눈은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을 때, 나의 잠옷은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방안은 온통 벌건 색상으로 물들어 있었다. 방문을 열었다. 팔녀각이 붉은 불덩이를 온몸으로 토해 내고 있었다. 팔녀각의 불길은 소담스런 꽃다발 같았다. 그때였다. 비명에 가까운 복례의 목소리가 마당에 울려 퍼졌다.
  "불이야! 불이야! 하이고메 딸랑할매가 팔녀각 속에 있어라우!"
                                                         『창조문학』(1997,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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