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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홍의 소설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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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명령

  추방명령
                                                                                          
  다다미 위에 흐트러져 있는 장난감, 동화책, 옷들. 아내의 손은 그것들을 차곡차곡 여행용 가방에 집어넣고 있었다. 그날은 아들 녀석이 일본 땅으로부터 추방되는 날이었다. 다다미방이 꺼져버릴 듯 한 한숨을 내쉬는 아내의 손놀림은 거칠기만 하였다.
  유학생활을 마칠 때까지 함께 있어야 할 녀석을 한국 땅으로 보내야 한다는 사실은 가슴 한 구석을 도려내는 아픔이었다. 하지만, 녀석이 일본 땅에 있는 한은 우리 속에 갇혀 제 머리를 박아대는 야생 꿩과 같은 신세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닐 수 있는 자유의 땅으로 보내어진다는 표현이 나았을 지도 모르겠다.

  네 살배기였던 녀석은 일본에 도착하면서부터 투쟁생활을 시작하였다. 언어와의 투쟁. 문화와의 투쟁. 아비와의 투쟁. 이래저래 녀석은 싸움닭마냥 상처가 아물 날이 없었다.
  땅거미가 질 무렵이면, 골목 담벼락에 웅크리고 앉아 외계인 같은 얼굴들을 가득 그려댔다.
  "아빠 친구들의 얼굴이야."
  "보고 싶니?"
  "응, 지금쯤 애들은 재미있게 놀 거야."
  녀석은 노을이 가득한 서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분명 한국을 생각하고 있으리라. 며칠 전에 한국은 어느 쪽에 있느냐고 묻던 녀석에게 나는 해가 지는 쪽이라고 말해 주었다. 허구한 날 조무래기들과 골목을 누벼대던 녀석에게 텅 빈 일본의 골목길이란 사막과도 같았다.
  녀석은 도쿄(東京)에 도착한 즉시 아카츠츠미(赤堤)보육원에 보내어졌다. 구청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은, 적정 수준 이상의 돈벌이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보육비를 부과하였으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보육비를 받지 않았다. 때문에 수입원이 없는 유학생들은 보육비를 한 푼도 내지 않고 아이들을 맡길 수 있었다.
  나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아침저녁으로 녀석을 모시고 다니는 운전사였다. 녀석은 매일 자가용-털털거리는 중고자전거-의 뒷좌석에 앉아 거드름을 피웠다. 오전 8시까지는 보육원에 보냈고, 오후 6시가 되면 어김없이 집으로 데려왔다.
  일본어를 전혀 구사할 수 없었던 녀석. 보육원의 교사들은 한결같이 황당해 하였다. 녀석이 조금이라도 일본생활에 적응된 후에 보육원에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하였지만, 가난한 유학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마누라도 생업전선에 나서야 하는 현실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보육원 생활이 시작되면서 녀석의 하루는 눈물로 얼룩졌다. 아침마다 눈물을 짜며 보육원으로 가기 싫다고 뗏장을 놓았고, 데리러 가면 뭐가 그리 서러운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을 쏟아대며 달려들었다.
  때로는 교사들이 말도 안 통하는 녀석에게 홀대를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였다. 그러한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선배의 애가 구박을 받아 자폐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접하고 있던 터였기 때문이다.
  녀석의 보육원 생활은 철저하게 원시인적인 방법으로 시작되었다. 자신의 모든 의사전달은 몸짓을 통해 이루어졌다. 화장실에 가야 할 경우에는 제 고추를 잡아야 했고, 물이 마시고 싶으면 빈 컵을 가지고 입을 뻐끔거려야 했다. 그러다가 자신의 의사전달이 잘 안 이루어지면 보육교사에게 한국말을 지껄이며 울부짖었다.
  녀석의 그러한 고통들은 잠시뿐이었다. 이래저래 한달정도 지나자 녀석은 쉽게 적응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너무 신기할 정도로 언어의 적응이 빨랐다. 제일 먼저 녀석이 습득한 단어는 빠가(바보)라는 욕이었다. 집에 돌아오면 의미도 알 수 없는 일본말을 아무렇게나 쫑알거렸다. 언어소통도 잘 안 되는 주제에 동네 꼬마들을 줄줄이 달고 와 함께 노는 녀석이 기이하게만 느껴졌다. 골목대장이었던 한국에서의 기질을 일본에까지 와서 십분 발휘하고 있었다.
  어느 일요일 오후. 녀석은 꼬맹이들과 유치원 놀이를 하고 있었다. 물론 녀석이 소유하고 있는 그림책과 장난감들은 모두 한국에서 가져온 메이디 인 코리아. 일본아이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나는 책상 위에 턱을 괴고서 꼬맹이들과 어울리는 녀석을 지켜보곤 하였다. 녀석이 구사하는 말의 반은 일본어, 나머지 반은 한국어였다. 흥이 나면 꼬맹이들을 향해 따발총을 쏘아 붓듯이 한국말을 거침없이 퍼부어 댔다.
  "야, 넌 홍(책)도 못 읽냐? 어이구 빠가(바보)."
  녀석은 제 가슴까지 쳐가며 답답해하였다. 꼬맹이들은 눈을 말똥거렸다. 곧 이어 녀석은 그림책 속에 웅크리고 있는 송아지를 가리키면서 또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건 송아지야. 이 빠가야. 따라서 해 봐. 송. 아. 지."
  녀석은 말도 안 되는 수작을 떨고 있었다. 완전히 한국어 교육시간이었다. 어쨌든 녀석의 수작이 꼬맹이들에게 통하고 있었다. 꼬맹이들은 분명히 '송.아.지.'라고 또박또박 발음을 내뱉고 있었다. 나는 웃음을 감추느라 혀까지 씹을 지경이었다. 녀석은 신명이 나 있었다. 또 다시 녀석은 닭을 가리키며 가네코(金子)군에게 질문을 하였다. 가네코는 즉시 대답하였다.
  "니왓토리.(닭)"
  그러자 녀석은
  "이런 빠가. 꼬끼오하는 닭이야. 닭."
  하며 면박을 주었다. 녀석에게 닭은 어디까지나 닭이었지 니왓토리가 아니었다. 그러자 꼬맹이들은 더 이상 녀석의 수작에 말려들지 않았다. 꼬맹이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다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니왓토리!"
  라고 합창하였다. 그래도 녀석은 계속 닭이라고 우겼다. 꼬맹이들 역시 더 이상 물러서지 않았다. 서서히 내가 나서서 중재를 해야 할 순간이라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돌렸을 때는 이미 녀석의 주먹이 가네코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자 꼬맹이들은 모두 녀석을 향해 주먹을 쥐기 시작하였다. 내가 저지하지 않았더라면 녀석은 몰매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위기는 항상 잔존하고 있었다. 녀석은 자신이 얼마나 황당한 고집을 피우고 있는지 전혀 깨닫지를 못했다.
  녀석의 그러한 카리스마적인 행위는 소(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계속되었다. 녀석은 '약자에게 강한 일본인, 강자에게 약한 일본인'에 대한 방어술을 스스로 배워 나가고 있었다.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교묘하게 정당화시켜 일본 아이들에게 고개를 뻣뻣하게 들었다. 결코 나약한 모습은 드러내지 않았다. 때문에 학교에서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이지메(괴롭힘)소동은 녀석에게 통하지 않는 단어였다. 그만큼 녀석이 일본화 되어 가는 속도가 빨랐다고 할 수 있었다. 급기야는 잠꼬대까지도 일본말로 하기에 이르렀다.
  바로 이 시기부터 나와 녀석과의 싸움은 불붙기 시작하였다. 텔레비전을 보아도 일본어, 게임기놀이도 일본어, 학교에서 공부할 때에도 일본어,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일본어였기 때문에 한국어는 녀석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인석아. 너는 한국 놈이니까 한국말을 써야 돼!"
  라고 윽박질러대면 그때서야 한국말을 쓰곤 하였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녀석은 자신의 신분을 일본화 시키는 혼돈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하였다. 놀이터에서 일본아이들과 어울리면서도 어미가 나타나면 애써 일본말을 더 지껄여 댔다. 한국말을 하는 제 어미의 옆으로 와서
  "창피하니까 절대로 한국말 하지 말어. 알았지?"
  라고 귓속말을 하며 어미를 피할 정도였다. 서서히 어미아비가 한국인이라는 사실까지도 부끄럽게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새벽부터 구질구질하게 비가 내리던 어느 날. 나는 강의를 지각하면서까지 녀석을 비 한 방울 스치지 않도록 하여 학교로 바래다주었던 적이 있었다. 교실 입구에서 헤어질 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애들과 싸우지 말고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해."
  라고 당부하며 녀석의 팔을 흔들었다. 녀석은 대답 대신에 주변을 지나치는 아이들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주둥이를 쭉 내밀어 붕어 입을 만들더니 검지를 입술 위에 얹었다.
  "아빠. 여긴 일본학교이니까 한국말은 쓰지 마세요."
  녀석이 속삭이듯이 던진 작은 목소리는 커다란 북소리의 여운처럼 나의 귓전에서 메아리치고 있었다. 순간 머리끝까지 치솟는 분노를 참지 못해 녀석의 팔을 낚아챘다. 학교를 빠져 나왔다. 비가 내리든 말든 우산도 쓰지 않은 채로 녀석을 한적한 골목으로 몰았다. 녀석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할아버지가 어느 나라 사람이지?"
  "한국사람."
  "아버지와 엄마는?"
  "한국사람."
  "너는?"
  "한국사람."
  "한국 사람인 것이 싫으니?"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나는 지금까지 한국 사람이라고 해서 창피하다는 생각은 한번도 한 적이 없다. 친구들도 네가 한국 사람이니까 좋아하고 있을 거야."
  녀석을 다시 교실로 보내고 전철역으로 향하던 나의 입에서는 한숨만 연신 터져 나왔다.
  어느 날 밤.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다. 나의 방에는 유학생들로 가득하였다. 한국에 일시 귀국했던 후배가 들고 온 두꺼비소주를 들이키며, 텔레비전 화면에 빠져 있었다. 한국과 일본이 월드컵진출권을 두고 한판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녀석도 잠을 잊은 채 그 틈바구니에서 축구를 보고 있었다.
  막상막하의 열띤 공방전이 화면에서 전개될 때마다 유학생들은 환호와 한숨을 거듭거듭 내뱉고 있었다. 그러나 녀석은 그들과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녀석이 응원하는 팀은 일본팀이었다. 녀석은 'J리그'라는 일본프로축구를 좋아하였다. 물론 주변의 친구들이 모두 프로축구를 열광하고 있었기 때문에 녀석도 쉽게 빠져들었다. 녀석은 노트, 연필, 지우개에 J리그의 심벌마크가 박힌 것만을 살 정도로 일본 축구에 심취해 있었다. 프로축구선수들 중에서도 일본으로 귀화한 라모스라는 남미(南美)선수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때문에 라모스가 한국선수들에 의해 쓰러질 때마다 녀석은 눈을 찔끔 감으며 안타까워하였다.
  "그래 잘 한다. 아주 짓밟아버려."
  라며 야유를 보내는 유학생들을 가끔 얄밉다는 듯이 새우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녀석은 고독한 응원을 하고 있었다. 수많은 태극물결 속에서 한 장의 일장기를 흔드는 격이었다. 양팀 모두 득점이 없는 상태에서 일본선수가 단독 드리블을 하며 우리 수비진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유학생들은 숨을 죽이고 있었지만, 녀석은 신난다는 듯이 박수를 치고 있었다. 나는 녀석을 향해 날카로운 목소리를 던지고야 말았다.
  "네가 일본 사람이냐? 한국선수를 응원해야지."
  녀석은 슬그머니 자리를 떠나 잠자리로 기어들어 가버렸다. 내가 심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무튼 급속도로 일본화 되어 가는 사고력을 바꾸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우선 녀석의 뇌리에서 사라지고 있는 우리말을 되살리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였다. 집에 들어오는 순간부터는 한국말을 써야 된다는 강요가 시작되었다. 집안에서 일본말이 튀어나올 때마다 군밤을 때리기로 약속까지 하였다.
  그 후부터 녀석과 나라는 부자사이는 점차 멀어지는 관계로 뒤바뀌고 있었다. 녀석이 집에 돌아오면 내 눈치를 보기에 급급했다. 가끔 실수로 일본말을 내뱉었다가 움찔거리며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눈동자는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나는 그런 녀석을 외면하며 딴전을 피워야 했다.
  "녀석아. 아빠의 공부가 끝나면 너는 한국에 돌아가야 한단 말이다. 그때 한국에서 우리말을 못하면 어떻게 공부할 거냐? 다 너를 위해서 아빠가 한국말을 쓰라고 하는 거야. 알겠니?"
  그때서야 녀석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다미 위를 때구루루 굴렀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녀석이 변하기 시작하였다. 초등학교 2년생이 민족주의자로 변신하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변화는 일본으로 갓 유학 온 대학후배 때문이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한국에서 같은 대학의 후배였던 그가 일본에까지 와서 내가 살고 있는 주택의 2층으로 세 들어 왔다는 사실은 너무 깊은 인연이었다. 나는 그의 짐이 정리되자 환영연을 베풀어 주었다.
  술잔이 탁구공처럼 왔다 갔다 하면서 적당하게 취기가 돌았다. 후배는 난데없이 내 아들 녀석의 기(氣)를 살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선배님, 유학생활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애들의 기를 죽여서는 안 됩니다. 대한민국의 뿌리들인데..."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녀석은 기가 살대로 살아 있는데, 더 이상 어떻게 기를 살리라는 것인가. 나는 후배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뚱딴지처럼 무슨 말이야?"
  "일본 땅에까지 와서 애 기죽일 필요가 있습니까?"
  "자네가 뭘 몰라도 한참 모르고 있다고. 녀석은 기를 좀 죽일 필요가 있어."
  "내가 느낀 바를 한번 말할까요? 한국말 못한다고 기를 죽이고, 떠든다고 기를 죽이고... 그렇게 되면 애들은 비뚤어진 다구요.
  "천만의 말씀이야."
  "벌써 반항심리를 보이더라니까요. 알몸을 노출시키면서... "
  후배는 이마에 핏대까지 세워가며 목청을 돋우고 있었다. 알몸노출이란 용어가 너무 황당하여 나는 덤빌 듯이 되물었다.
  "알몸노출이라니. 자네야말로 애를 이상하게 보는 것 같은데..."
  "내가 직접 녀석의 행동을 지켜보며 밤새 분석한 결과인데. 어제 저녁에 녀석이 제 고추를 꺼내어 흔들더군요. 그래서 그러면 못 쓴다고 말렸지요. 하지만 녀석은 더 신이 나서 엉덩이까지 까 보이더라고요."
  나는 후배의 말을 들으며 웃음을 토해 내고 말았다. 심각하게 말을 늘어놓던 그는, 입속의 술까지 뱉어내며 웃는 나를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이봐. 그렇게 일본문화를 모르면서 어떻게 유학을 왔어? 좀 더 지나면 알게 될 거야. 녀석은 크레용신쨩이란 만화영화 주인공의 흉내를 내고 있어."
  "허긴 크레용인지 크레파스인지 그렇게 말은 하더라구요."
  "지금 일본에서는 대단한 붐을 일으키고 있어. 꼬맹이들이라면 다들 크레용신짱의 흉내를 내지. 하다못해 대학생들도 술집에서 엉덩이를 까 내릴 정도이니까."
  "허허 그런가요? 망측스럽군요. 허긴 보기 민망스러울 정도로 벌거벗은 스모선수들을 생각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네요."
  후배는 입맛을 쩝쩝 다시면서 한동안 머리만 긁적거리더니 술을 마셔대기 시작하였다. 아무래도 처음으로 대면하는 일본문화에서 충격을 받은 듯 하였다. 나 역시 아들 녀석의 행위를 처음 대하였을 때, 기절할 뻔하였던 경험이 있던 터라 갓 유학 온 후배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크레용신쨩이란 만화영화의 주인공은 유치원 꼬마이다. 평범한 샐러리맨인 아버지. 가정주부인 어머니. 단출한 세 명의 가족은 일반적인 가정에서 있을 수 있는 해프닝을 코믹하게 연출해 내고 있었다. 자신의 성기가 코끼리의 코라고 생각하는 주인공 신짱은 크레용으로 고추 옆에 코끼리의 귀를 그려 놓고서 '조오상,조오상(코끼리,코끼리)하고 외쳐댔고,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코끼리의 히프인냥 흔들어대곤 하였다.
  "선배님, 여기에서는 그런 불량 만화영화들을 규제도 않나요?"
  "허허허. 불량 만화영화? 조만간에 한국쪽 출판사에서 서로 판권을 따겠다고 아우성일 테니까 두고 보라고."
  결국 후배는 일본생활에 점차 젖어가면서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녀석에게 동화되어 친구사이가 되어 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어 발음이 정확한 녀석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는 기본적인 일본어를 익혀 나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녀석과 친해지는 것은 일본어를 터득하기 위한 그의 목적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지만, 그는 천성적으로 아이들을 좋아하고 있었다.
  녀석은 그를 '2층아저씨'라고 불렀다. 학교로부터 돌아오기만 하면 그를 찾아가곤 하였다. 나에게 꾸중만 받던 녀석에게 있어서의 '2층아저씨'는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집에 돌아오면 전자오락을 하기에 바빴던 녀석의 생활은 공부하는 분위기로 바뀌어 갔다. 잠잘 시간이 되어 돌아오는 녀석의 손에는 손수 만든 태극기가 들려 있기도 하였고, 한국지도가 들려 있기도 하였다. 녀석은 그로부터 가져온 지도를 펴놓고서 입을 열었다.
  "아빠, 독도가 우리 땅인데도 일본사람들이 자기 땅이라고 우긴데. 나쁜 사람들이야. 그렇지? 아빠."
  나는 녀석에게 고개를 끄덕거려 주었다. 그는 녀석에게 한글교육까지 시켜 주었다. 그러한 후배가 고마울 따름이었다. 운동권에 있으면서도 가난을 이기기 위해 과외 아르바이트를 했던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능숙했다.
  땅거미가 지는 어느 날. 그날따라 집 앞이 시끌시끌하였다. 평소 녀석과 어울리던 조무래기들과 스즈키(鈴木)의 어머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 어미의 손에 매달려 있는 스즈키의 눈가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 녀석에 대한 성토가 거침없이 튀어 나왔다. '아차 또 터졌구나' 하는 생각에 두 눈을 끔뻑이며 연신 허리방아를 찧어댔다.  
  "쓰미마셍.(죄송합니다)"
  이란 단어만을 반복하였다.  
  "고레이죠와 (더 이상은) 참지 않을 것입니다."
  라는 협박성의 말을 남기고 그녀는 떠나갔다. '허, 참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야. 애들 싸움을...' 라고 혼잣말을 뱉었다. 입구에 놓인 애먼 쓰레기통만 걷어찼다. 쓰레기가 산산이 흩어지고 있었다. 매일 아침, 녀석이 책가방을 짊어질 때마다
  "오늘은 애들과 싸우지 마라. 지는 것이 이기는 게야."
  라는 말을 반복했건만, 녀석의 싸움질은 더 이상 어떻게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오늘도 녀석을 혼내는 일로 하루를 마무리 지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앞섰다. 이를 악물고 현관 쪽으로 향하였다. 그 때였다.
  "오지상(아저씨)"
  뒤를 돌아보았다. 앞집에 사는 계집아이 하루코(春子)였다.
  "오. 하루코짱.  무슨 일이니?"
  "아노데스네, 쿄우와 (저요, 오늘은) 스즈키 쪽이 나빴어요."
  "도우시테(왜?)."
  "스즈키쿤가네 (스즈키군이요) 이군에게 더러운 조선 놈이라고 말했어요."
  "아, 소우닷다노(아, 그랬니?) 그래서 싸웠니?"
  "응. 다카라 시카라나이데 쿠다사이.(예. 그러니까 혼내지 마세요)"
  조그만 두 손을 모아 간절히 부탁하는 하루코의 모습이 인형처럼 귀여웠다.  
  "아리가토우(고맙구나) 하루코."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재일교포 2세의 딸인 그녀는 녀석을 무척 따랐다. 지난 여름방학 때 한복을 입은 인형을 선물로 사다 준 뒤로부터 더욱 가까워진 것 같았다. '시카라나이데 쿠다사이(혼내지 마세요)'라는 여린 목소리가 허공에서 맴맴 돌았다. '에이 고얀 놈 같으니라고, 맞아 싸다 싸. 쌤통이다.'하며 어금니를 질끈 물었다. 내심 스즈키의 한 쪽 눈마저 더 시퍼렇게 해줬더라면 시원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아르바이트에서 돌아오지 않은 시간이었다. 녀석은 다다미방 구석에 바짝 쳐 박힌 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이미 체념한 희멀건 눈으로 나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엔 핏기가 마른 손톱자국이 박혀 있었다.
  내가 녀석에게 가까이 가면 가까이 갈수록 녀석의 몸은 벽모서리로 움츠러들고 있었다. 어쩌면 녀석은 하나의 작은 점이 되어 구석으로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와락 녀석을 껴안았다. 내 품에 안긴 녀석의 몸은 경련을 일으켰다. 사시나무처럼 떨며 숨소리마저 감추고 있었다.
  사사건건 녀석을 피해자로 만드는 일본생활. 항상 녀석을 제어하는 역할을 도맡아 하는 나는 공포의 대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진정으로 녀석의 앞날이 걱정되는 순간이었다. 아비를 잘 못 둔 탓에 이 곳 일본 땅에 까지 와서 수모를 당한다는 측은한 생각이 머리에 꽉 찼다.
  녀석과 나 사이에는 약속이 있었다. 싸움을 해서는 안 된다는 약속이었다. 약속을 어기게 되었을 때에는 반드시 벌이란 것을 받게 되어 있었다. 잘잘못을 가리기 이전에 나는 녀석을 앉혀 놓고 벌을 세워야 했다. 녀석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이어서 나는 싸운 이유를 심문하기 시작하였다. 녀석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싸움의 발단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학교가 끝난 후. 조무래기들이 스즈키의 집으로 모였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에서는 권투시합이 한창이었다. 그 시합은 한국선수와 일본선수의 시합이었다. 공교롭게도 한국선수의 승리로 끝났다. 녀석은 만세삼창을 불렀고, 주변의 조무래기들은 심기가 뒤틀리기 시작하였을 것이 분명하였다. 그때 스즈키는 한국선수가 너무 야비하게 싸워 이겼다고 시비를 걸었고, 녀석은 정정당당하게 싸워 이겼다고 응수하다가 싸움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야 인마. 그렇다고 해서 스즈키의 눈두덩을 그렇게 되도록 때리면 되냐?"
  "2층 아저씨가 한국 사람을 얕잡아 보거나 깔보는 녀석들은 두들겨 패 줘도 괜찮다고 했어요."
  녀석은 후배의 고추철학에 세뇌 당하고 만 듯 하였다. 후배는 녀석을 만날 때마다 '넌, 매운 고추를 먹고 자란 대한민국사람이야. 너를 얕잡아 보는 쪽발이가 있으면 두 주먹을 이렇게 꽉 쥐고서 눈퉁이를 갈겨주는 거야. 알았니? 고추 맛을 단단히 보여줘야 해.'라며 주먹을 세게 쥘 수 있는 방법까지 일러주곤 하였다. 그 때마다 나는 어린애에게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고 야단도 쳤었다. 그러나 그는 녀석이 혹시나 이지메(괴롭힘)를 당할지도 모른다며 고추철학을 굽히지 않았다.
  "그래도 싸우면 안 된다고 했지? 오늘 싸운 만큼의 벌은 받아야 돼."
  녀석은 계속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짜디짠 눈물은 공교롭게도 핏기 서린 손톱자국 위를 달리고 있었다. 녀석의 눈물은 텅 빈 나의 위벽을 긁어내리고 있었다. 녀석은 계속 큭큭거리며 어깨를 들먹거렸다. 순전히 후배의 탓도 있었지만, 어쨌든 자신이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녀석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상담실로 안내된 나는 담임의 심각한 얼굴을 보며 또 다시 사건을 일으켰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담임은 무겁게 입을 열더니 '우선은 먼저 보여줄 것이 있다'며 나를 자연과학실로 이끌었다. 자연실습기자재가 가득 차있는 교실이었다. 벽에는 채집된 식물 및 곤충들의 표본들이 걸려 있었다.
  담임은 일본지도 앞에 서더니 손가락으로 지도의 서쪽을 가리켰다. 우리나라 쪽이었다. 그가 손가락으로 눌러 댄 곳은 울릉도 옆에 있는 독도였다. 일본지도에는 울릉도와 독도 사이에 굵은 점선을 그어 독도를 일본영토로 표시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짧은 탄성을 질렀다. 다케시마(竹島)라고 쓰인 글씨를 지운 빨간 색연필 자국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독도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분명 녀석의 필체였다.
  녀석이 대단한 일을 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자 나도 모르게 피씩 웃고 말았다. 그러는 나를 바라보는 담임의 표정은 일그러지고 있었다.
  "도우시테 와라이마스까? (아니 왜 웃습니까?) 부모로서 책임감을 갖고 사과하지는 못할지언정."
  "쓰미마셍(미안합니다.)"
  "고노 찌즈오(이 지도를) 가지고 애들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이 지도는 비쌉니다요."
  그는 노골적으로 변상을 요구하고 나왔다. 그는 벽에 걸린 지도를 내려 접어들더니 나를 다시 상담실로 이끌었다.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는 나를 향해 그는 입을 열었다.
  "코코와(여기는) 일본입니다. 아이들에게 민족성을 일깨워 주는 것은 좋지만, 너무 조국을 강요하시는 것 같더군요. "
  담임의 굳은 얼굴표정은 피어날 줄 몰랐다. 녀석이 국어(일본어)시간에 잘못된 발음을 지적 받으면 오히려 '나는 한국인이니까.'라며 입방아를 찧어댔고, 스포츠 이야기가 나오면 막무가내로 한국이 최고라고 우기며 수업분위기를 망친다는 것이었다.
  내 목구멍에서는 '그야 한국 놈이니까 당연한 것이 아니냐.'라는 말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았으나 꾹꾹 참고 말았다.
  잠시 후. 녀석이 상담실로 불려왔다. 녀석은 아주 담담한 표정이었다. 아비에게 야단을 맞을 땐 고개를 푸욱 숙이고 깽깽거리던 녀석이었지만, 그날만은 오히려 두 눈을 크게 뜨고서 도전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담임은 녀석의 기를 제압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굵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오또오상노 마에데(아버지 앞에서) 반성을 확실하게 하고, 나에게도 용서를 빌어야 하지 않겠니?"
  "복구와(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어요. 아빠 독도는 우리 땅이지?"
  녀석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에게 응원을 요청하고 있었다.
  "소래와소우(그건 그래). 독도가 우리 땅이란 말은 맞아. 하지만 많은 아이들이 공부하는 저 지도에 낙서를 한 것은 네가 잘못했다. 잘못했다고 해라. 그래야 되겠지요? 선생님."
  나도 역시 굵은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하며 담임에게 얼굴을 돌렸다. 그의 볼 근육이 파르르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놓치지 않고 바라보았다.
  그때서야 녀석은 잘못했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교실로 돌아갔다. 담임과 나의 화제는 독도문제로 넘어갔지만, 그의 입에서는 계속 '다께시마(竹島)'라는 단어가 이어졌고, 나의 입에서는 '독도'라는 단어가 이어졌을 뿐이었다.
  내가 그와 헤어질 무렵
  "고노고로(요즘) 조총련 민족학교 학생들과 우익의 싸움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곳이라고 안심할 수 없습니다."
  라는 말을 내 뒤통수에 던졌다. 그의 말을 되새김질하며 옮기는 발길은 무겁기만 하였다. 얼마 전에 텔레비전 뉴스에서 보았던 조총련계 학생들에 대한 우익의 테러행위가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워놓고 있었다.
  조총련계의 여학생들은 한복을 교복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네들은 쉽게 우익들의 테러대상이 되었다. 돌팔매질을 당하거나 한복을 찢기는 수난을 겪었다. 그래도 여학생들은 굴하지 않고 교복을 지켰다.
  그 이후. 녀석에게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온한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의 유학생활 역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생활들은 조용한 폭풍전야였을 뿐이었다.
  녀석과 일본아이들 간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녀석은 마치 천하장사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씨름선수마냥 상대들을 하나 둘 쓰러트리며 나아가고 있었다. 하루하루 얼굴의 상처는 아물 날이 없었다. 가끔은 코피가 터진 아이의 부모로부터 항의를 받아야 했고, 나는 사과를 하기에 바빴다.
  녀석이 싸우는 대부분의 이유는 철없는 감정싸움이었다. 김치냄새, 마늘냄새로부터 시작되는 조무래기들의 조선인에 대한 놀림을, 녀석은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하나의 도전장으로 받아들였다.
   일 대 일의 싸움은 사라지고 삼 대 일, 사 대 일, 오 대 일... 단결력이 뛰어난 일본민족의 본성이 녀석을 상대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제 아무리 깡다구가 있다고 하더라도 점차 전세(戰勢)는 녀석에게 불리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녀석은 물러서거나 꼬리를 내리지 않았다. 대부분의 싸움은 녀석이 걸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편에서 걸어와서 이루어지는 싸움이었다. 학교에서 유일한 외국인. 그것도 한국인. 녀석은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드러내며 일본 학생들과 대립해 나가고 있었다. 일장기를 그리는 미술시간에는 일장기 위에다 태극기를 그려서 제출하는 해프닝도 연출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이곳은 일본이니까 일본에 동화되어야 한다.'고 나무랄 수도 없었다. 또한 아비로서 녀석이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윽박지르며 '무조건 싸운 네가 잘못했다.'라고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나는 녀석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이대로라면 녀석은 수십 명, 수백 명과 아니, 일본 전체와 싸워나가는 싸움개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메웠다.
  그래서 나는 녀석을 일본 땅으로부터 추방시키기로 결정하고 말았다. 어차피 유학생활이 끝나는 1년 뒤에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녀석이었지만.

  나리타(成田)국제공항을 향해 달리는 동안,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녀석은 기뻐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전혀 볼 수 없었던 환한 웃음이 녀석의 얼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빠. 한국에 가면 일본말 안 쓰고 한국말 열심히 할 거야. 싸우지도 않고... 참, 아빠, 비행기 타면 독도가 보여?"
                                                       『창조문학』 (1998,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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