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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홍의 소설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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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사자의 실수

                          저승사자의 실수
                                                                                    

  후암동 남산노인회의 멤버들은 매년 단풍놀이를 떠난다. 작년 가을에도 어김없이 단풍놀이는 시작되었다. 김노인은 이십 여명의 노인들과 함께 설악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버스가 한계령을 넘기 시작하였다. 노인들은 한계령이 내뿜는 절경에 넋을 잃고 있었다. 낭떠러지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도로에서 공포감을 느끼기는커녕, 굽이굽이 펼쳐진 단풍에서 색동 솜이불 같은 포근함을 느끼고 있었다.
  깊은 계곡이 혀를 날름거리는 산자락을 돌 때였다. 급커브를 틀던 버스가 갑자기 중심을 잃었다. 비틀거리던 버스는 도로의 난간을 뛰어넘으며 절벽 아래로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하였다. 노인들이 울부짖었다. 바위가 울부짖었다. 나무들이 울부짖었다. 산새들이 울부짖었다.
  잠시 후. 정신을 되찾은 김노인은 아수라장이 된 버스 안에서 튀어나올 수 있었다. 비린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 구겨진 버스 바퀴는 허공을 향해 풍차마냥 회전하고 있었다. 깨어진 창틀 사이로 기어 나오는 피투성이의 노인들. 버스 안에서 뒤엉켜 살려 달라고 아우성을 지르는 노인들…….
  김노인은 자신의 몸뚱이를 훑어보았다.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아무런 고통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홀가분한 느낌이 들었다. 우선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깨어진 유리 창문은 굶주린 식인 상어의 주둥이였다. 차안으로 뛰어드는 김노인의 몸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스르륵 차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의자와 의자 사이에서 꿈틀거리는 벗들의 팔을 잡아끌었지만, 김노인의 손은 마냥 헛손질만 하고 있었다. 순간, 김노인은 자지러질 듯이 놀라며 자신의 몸을 만져 보았다.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피로 물든 노인들 사이에 뒤엉켜 있는 자신의 육신을 볼 수 있었다. 김노인은 경악하며 또 하나의 자신의 모습을 무덤덤하게 바라보았다.
  곧이어 김노인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하늘로 올랐다. 강한 빛 속으로 무기력하게 빨려 들었다. 끝없이 전개된 꽃길을 지났다. 푸르디푸른 강을 한참 동안 건너갔다.

  바로 일 년 전. 김노인은 그렇게 이승과 마지막 이별을 하였다. 김노인은 지상(地上)과 천상(天上)의 갈림길에서 지옥(地獄)이 아닌 천당(天堂)으로 인도되어 천상의 영(靈)이 되었다.
  거추장스러운 육신(肉身)을 벗고 생활하는 천당은 무한한 자유가 있는 공간이다. 영의 세계는 김노인에게 내재되어 있는 마음의 움직임이 그대로 구현되는 곳이기 때문에 불가능이란 것이 없는 세계이다.
  김노인이 원하는 모든 것들이 현실로 이어지는 유토피아였다. 기뻐지고 싶으면 기뻐질 수 있고, 슬퍼지고 싶으면 슬퍼질 수 있으며, 고통을 느끼고 싶으면 그 고통이 자신의 곁으로 오는 그런 곳이다.
  천상의 영은 일년에 두번 지상으로 다시 내려갈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한번은 자신이 육을 벗어 던져 버린 제삿날에 하강할 수 있고, 또 한 번은 생명을 다한 인간들을 저승으로 이끌기 위해 저승사자의 신분으로 하강할 수 있다. 김노인의 첫번째 지상 나들이는 공교롭게도 이 두 가지 임무를 한꺼번에 띠고 있었다.
  "이보게 지옥 나들이 잘하고 조심해서 다녀오게나. 실수 없도록 하고……."
  지상으로 향할 때. 배웅해 주던 선배 영(靈)들은 김노인의 첫 하강(下降)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 제 아무리 지상과 연(緣)을 끊은 천상의 영이라고 할지라도 지상에 내려가게 되면 지상에서 살던 습관대로의 감정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실수를 범하는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지상에서 인간의 육을 걸치고 있던 시절, 좋은 짓을 하면 천당에 가고, 나쁜 짓을 하면 지옥에 간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고, 스스로의 입으로도 그러한 말들을 수없이 뱉어내곤 하였다. 그 당시, 아들 녀석으로부터 지옥은 어디에 있느냐, 천당은 어디에 있느냐는 등의 질문 공세를 받을 적마다 김노인은 대충 하늘을 바라보며 우주 어느 구석엔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입놀림만 했을 뿐이다.
  그러나 지상에서 깜깜하게 몰랐던 지옥과 천당의 실체를 천상에 올라가서야 알게 된 것이다. 김노인이 그렇게 애착을 갖고 살았던 지상이 곧 지옥이며, 김노인이 현재 생활하고 있는 영의 세계가 천당이란 사실을 말이다.
  천상에서의 김노인의 실체는 공기처럼 투명하기만 하다. 어쩌면 겔상태라고 해야 할까? 마치 재주나 피우듯이 수시로 시시각각 자신이 원하는 대로 형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지상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김노인의 몸은 지상에서 뒤집어쓰고 있던 육의 형태로 변하고 있었다.
  김노인이 지상의 대기권으로 진입하는 동안에도 저승길을 향해 튀어 오르는 영들의 숫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인간들이 육을 벗는 순간들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광경들이다. 업보(業報)만큼의 형벌을 받는 지옥의 풍경이 적나라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산산이 부셔져버린 자동차 속으로부터, 검붉은 불덩이가 활활 거리는 화재 현장으로부터, 소용돌이치는 물속으로부터, 바윗덩이가 쿵쿵 휘날리는 채석장으로부터, 기어가 맞물려 돌아가는 기름투성이 공장으로부터, 시퍼런 메스가 번뜩이는 병원으로부터 육을 벗어 던지고 날아오르는 영들. 영들. 영들…….
  그 많은 영들 중에서 천상의 문을 통과할 수 있는 영이 몇이나 될까. 지상을 떠나는 모든 영들은 한결같이 슬픈 표정들을 짓고 있다. 육으로 맺어진 연(緣)을 끊는 일은 너무 힘든 일인 것이다.
  육(肉)을 가진다는 사실은 감각을 가진다는 의미이며, 그 감각은 고통을 감지하게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감각을 가진 생명체들은 조그만 상처에도 고통을 느끼게 된다. 불에 의한 고통, 물에 의한 고통, 바위에 짓눌리는 고통. 송곳에 찔리는 고통들은 육을 가짐으로써 느껴지는 감각의 소산들이다. 일단 영혼이 육을 지니게 되면 당연하게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을 느끼게 된다. 중국의 진시황제가 불로초를 구하면서까지 육신을 영원히 갖고 싶어 하였지만, 육을 탐욕하는 자의 부질없는 환상에 불과하였다.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은 천상의 세계에 진입하고서야 비로소 가능해 지는 일인 것을 지상의 인간들은 알 리가 없다.
  천신(天神)은 지상의 윤회(輪廻)를 통해 업보(業報)를 소멸시킬 수 있도록 하였다. 업보를 소멸시켜 나가는 자에게는 천당의 생활을 주었고, 업보를 소멸시키지 못하고 계속 쌓아 나가는 자에게는 영겁회귀(永劫回歸)의 윤회를 주었다. 자신이 치러야 할 업보를 망각해 버리고 희로애락(喜怒哀樂)에 빠져 천계의 계율을 상실하였을 때에는 그 보다 더한 업보를 쌓아 고통을 치르도록 하였다. 윤회의 길은 벌레와 같은 하등동물에서부터 시작되어 인간과 같은 고등동물에 이르기까지 숱한 육을 거듭 뒤집어쓰게 되어 있다.
  김노인은 자신이 구더기와 같은 곤충으로, 뱀으로, 까마귀로, 때로는 개나 소로 전전하다가 인간으로 윤회를 거듭하며 업보를 치러 왔다는 사실을 천상에 오르고서야 알 수 있었다. 영이 인간의 탈을 쓴다는 것은 윤회의 원점이 되며, 천상의 문을 들어서기 위한 최종 단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천신은 인간에게 지혜의 능력을 부여하였다.

  태양이 떠오르고 있는 지상은 찬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지상에서 윤회를 거듭하고 있는 떠돌이 영혼들의 구슬픈 아우성이 가득 메아리쳤다. 김노인은 몇 겹의 구름을 헤치며 서울 상공으로 진입하였다. 진하게 서려 있는 요기(妖氣)때문에 차가운 바람이 쌩쌩 불었다. 갈수록 짙어지는 공기 속에는 천상에서 퍼트린 다양한 병균들이 우글거렸다.
  김노인이 저승으로 올려 보내야 할 사람은 결혼한 지 얼마 안 되는 여인이다. 개포동 아파트단지의 잔디밭 위에 안착한 김노인은 닫힌 아파트의 현관으로 아무런 저항도 없이 쓰윽 들어섰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오는 사람들과 스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김노인에게 눈길을 주는 이는 없었다.
  8층 804호 앞에 섰을 때였다. 김노인이 천상으로 인도해야 할 여인은 콧노래를 경쾌하게 불며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녀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다듬었다.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며 눈 화장을 고쳤다. 빨간 립스틱을 바른 입술도 다시 한 번 점검하였다.
  김노인의 시야에 투시된 원피스 속의 육체와 살결은 생기가 넘쳐흘렀다. 이러한 육을 벌써 버려야 하는 그녀의 운명이 측은하게 생각되었다.
  장바구니를 든 그녀의 입에서는 계속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김노인이 감지하고 있는 그녀의 생명시계는 제로 점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외출하는 상황으로 보아 그녀가 육을 벗어 던져야 할 곳을 전혀 예측할 수 없다. 분명히 객사(客死)할 운명을 띠고 있었다.
  김노인은 허공을 훨훨 선회하며 그녀가 가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세탁소 앞을 지나던 그녀는 여주인으로부터 찹쌀떡 한 개를 받아먹었다. 입을 오물거리던 그녀가 갑자기 숨을 들이키며 컥컥거렸다. 여인은 자신의 배를 움켜쥐며 주저앉았다. 새파랗게 질린 그녀의 얼굴에서 땀방울이 솟아올랐다. 그녀의 생명은 여기에서 끝나는 것인가? 김노인은 그녀의 영혼을 이끌기 위하여 재빨리 그녀의 앞으로 다가섰다. 그러나 그녀는 긴 한숨을 몰아쉬며 일어섰다.
  "휴, 그 놈의 찹쌀떡 때문에 사람 죽을 뻔했네."
  그녀는 진땀을 닦으며 약국으로 들어가 소화제를 사 마셨다. 그녀는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 당신이야? 시장 보러 나왔어. 좀 늦어질지 모르니까 바람피우지 말고 곧장 집으로 와 있어야 돼. 사랑해용."
  핸드폰에 콧소리를 남긴 그녀는 시계를 힐끔거리며 큰길로 뛰어나갔다. 그녀는 갑자기 차도로 뛰어들더니 손을 휘저어 택시를 불렀다.
  "대연호텔!"
  그러나 그녀를 위해 문을 열어 주는 택시는 한대도 없었다. 그녀는 발을 동동거리며 택시잡기에 여념이 없었다.
  갑자기 뻥! 하는 소리와 함께 트럭 한대가 비틀거리며 그녀 쪽으로  질주해 왔다. 끼이익! 급브레이크 소리는 주변의 모든 소음을 송두리째 삼키고 있었다. 바로 곧 이어 '탕! 와지끈!' 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녀의 외마디 비명도 허공을 가로질렀다. 김노인도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그녀의 생명은 결국 이렇게 끝나는 시나리오였구나.…… 어금니를 꽉 물고 꼬옥 감아 버렸던 눈을 떴을 때. 트럭은 그녀로부터 두세 걸음 앞에 세워져 있던 가로등을 들이받고서 정지되어 있었다. 그녀는 멀쩡한 모습으로 놀란 표정만 짓고 서 있었다.
  여인은 겨우 잡은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하였다. 김노인은 여인의 옆 자리에 앉아 그녀가 육을 벗어나야 할 시간을 계속 체크하였다.
  호텔에 도착한 그녀는 자신의 손목시계를 바라보며 엘리베이터 앞으로 뛰었다. 김노인은 그녀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그녀의 생명시계가 서서히 멈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머리위에 놓인 거대한 샹들리에의 흔들거림에도, 그녀가 탄 엘리베이터의 흔들림도 김노인은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10층에서 내린 그녀는 엘리베이터로부터 네 번째 방 앞에서 벨을 눌렀다. 문이 열리고, 앳된 남자가 그녀를 맞이하였다. 그녀를 대하는 남자의 숨결은 거칠었다. 남자는 난폭하게 그녀를 끌어안았다. 두 사람의 입은 뜨거운 불을 내뿜기 시작하였다. 김노인은 침을 꼴깍거리며 그들의 동물적 행위를 바라보았다. 욕정의 불덩이가 식어갈 무렵, 남자가 갑자기 목청을 돋웠다.
  "어떻게 하겠어? 남편을 선택 할 거야. 나를 선택 할 거야?"
  "무슨 말이야? 나는 남편을 버릴 수가 없어. 이런 식으로 나오면 말이 안 되잖아."
  "더 이상 그 녀석에게 너를 안겨 줄 수가 없어."
  "흥! 몇 번 몸을 섞었다고 해서 나를 차지하겠다는 것은 오버센스. 우린 그저 불륜의 상대일 뿐이야. 정신 차려."
  "니가 나를 놀리는 거야? 너의 그 붉은 주둥이로 사랑한다는 말을 얼마나 지껄여댔는지 알기나 해?"
  "그러니까. 영계들은 안 된다니까. 우리 이젠 끝날 때가 되었군. 안녕."
  그녀는 침대 위에서 벌떡 일어서며 흐트러진 옷을 고쳐 잡았다. 그 순간 남자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남자의 손은 그녀의 목을 조이기 시작하였다. 버둥거리던 여인은 서서히 무너져 내리며 침대 위로 나뒹굴었다. 여인의 생명시계는 이미 멈추어 있었다. 축 늘어진 여인의 몸에서 또 하나의 그녀가 빠져나왔다.
  문득 김노인은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던 시절, 지상에서의 옛 기억들을 떠올렸다. 단 한 순간의 바람기 때문에 아내의 가슴에 못을 박았던 일이 뻐근하게 가슴을 짓눌러 왔다. 그 허물 때문에 아내에게 단단히 죗값을 치르기는 하였지만 말이다. 단 한 번의 실수였다고는 할지라도, 그 이후의 아내의 심적 변화는 끈질기게 김노인을 괴롭혔다. 아내의 뻔질난 외출에도, 아내의 늦은 귀가에도 김노인은 묵묵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쓰라린 과거사.
  젊은 여자의 영을 천상으로 이끄는 저승사자로서의 임무를 완수하고 다시 돌아온 지상은 이미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하지만 제사상을 받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궁리하였다. 갑자기 절친했던 벗인 박사장이 생각났다. 함께 버스 사고를 당했던 박사장은 아직 살아있었다. 허공으로 치솟아 올라 박사장의 흔적을 찾았다. 왕십리 쪽에서 박사장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시계의 초침이 서너번 움직일 사이에 김노인은 그의 집으로 날아들었다.
  박사장은 두꺼운 이부자리 위에 팔자 좋게 누워 있었다. 아직도 사고의 여파로 몸이 성하지 않은 듯 링거주사를 꼽고 있었다. 그의 아내는 다소곳이 앉아 사과를 깎고 있었다. 사과를 박사장의 입에 넣어 주는 그의 아내. 아름다운 미모는 변함이 없었다.  
  암으로 본처를 잃은 박사장이 두 번째로 맞은 젊은 아내였다. 여전히 그녀의 불거진 가슴은 탄력 있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김노인이 지상에 있었을 때, '자네는 여자 복도 많구먼!'하며 박사장을 자주 놀려대곤 하였다. 김노인은 똑같은 말을 다시 그에게 던지고 있었으나 허공에 메아리칠 뿐이었다. 박사장은 미소를 가득 채운 얼굴로 아내와 정담을 나누었다.
  "내가 사경에서 헤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당신 덕이오."
  "당연히 내 공을 알아 주셔야죠. 호호호. 이제 건강해지셨으면 저에게 씨를 넣어 주셔야죠. "
  "허허 이 늙은 놈이 무슨 힘이 있다고……."
  "당신을 닮은 아들 하나 나아서 당신의 사업을 이어받게 하고 싶어요."
  박사장은 싱글벙글하며 여유있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늘밤에 약속이 있는데, 돌아 와서 봐요. 네?"
  "그려 한번 힘 좀 써볼까? 허허허."
  박사장은 입을 크게 벌리며 아내를 감싸 안았다. 박사장은 본처 소생인 딸만 셋이었기에 아들을 원하는 그의 집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듯하였다. 박사장의 거대한 재물을 챙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그의 아내의 노력과 박사장의 아들욕심은 맞물려 있었다.  
  문득 김노인은 아들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몇 시간 뒤에 보게 될 얼굴들이었지만 말이다. 제 어미를 닮아 평상시에는 병약하고 조용하기만 했던 녀석들. 때문에 녀석들의 할머니는 손자들이 한결같이 외가 쪽만 닮았다고 서운해 하였다.
  "참. 어머님두. 이렇게 못생긴 저를 닮았더라면 저 녀석들 장가라도 갈 수 있겠어요? 차라리 제 에미를 닮은 것이 낫지요."
  어머니의 서운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애쓰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많이들 변해 있으리라. 두 아들의 모습이 김노인의 시야를 가렸다.
  잠시 자식들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초인종이 울렸다.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방으로 몰려 들어왔다. 박사장이 평소에 다니던 교회의 교인들이다. 그들은 간단한 인사들을 나누고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
  "……주여 당신의 자녀 박사장님께서 병마와 싸우고 있습니다. 주여! 어서 하루바삐 병마를 이기고 주의 성전에 나갈 수 있도록……"
  모두들 진지하게 기도하였다. 김노인은 편안한 마음으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모두 머리를 조아리고 기도를 하고 있었지만, 유독 새우 눈을 깜빡거리며 주변을 살피는 한 중년 남자가 김노인의 시야에 들어왔다. 기도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그의 눈길은 박사장의 아내에게 머물러 있었다. 아주 끈끈한 눈길이었다. 그 눈길은 박사장 아내와 일직선을 긋고 있었다. 박사장의 아내는 한쪽 눈을 지그시 감아 보이며 엷은 미소까지 던지고 있었다. 두 남녀 사이에 교차되는 눈길에는 묘한 여운이 감돌았다. 기도가 '아멘'이란 단어로 끝날 무렵. 두 사람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태연하게 자신의 행동에 열중하였다. 기도가 끝난 교회 사람들은 구성진 목소리로 찬송가까지 부르더니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이 사라진 직후. 박사장의 아내는 외출 준비를 하였다. 밖으로 나가는 그녀의 발걸음은 경쾌하였다. 김노인은 그녀의 상기된 볼에서 묘한 호기심을 느꼈다. 김노인은 어느새 그녀의 뒤를 밟고 있었다.
  어둠은 저편에서 스멀스멀 기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다. 김노인은 그녀의 옆 좌석에 앉았다. 빨간 신호등에 걸릴 때마다 그녀는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쳐 댔다. 가끔은 샐쭉 웃으며 콧노래까지 불러댔다.
  그녀의 차가 정지한 곳은 한강변에 위치한 어느 카바레의 주차장이었다. 그녀는 어두컴컴한 카바레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박사장네 집에서 눈을 마주치던 중년의 남자가 거드름을 피며 그녀를 맞이하였다. 두 남녀는 음악에 맞추어 화려한 불빛 속으로 사라졌다.
  갖가지 색상의 조명은 현란하게 움직였다. 그 불빛 아래에서 흐느적거리는 남녀의 모습들에서 굶주린 뱀들을 연상할 수 있었다. 박사장의 아내는 사내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육의 쾌감으로 떨었다. 김노인은 쓴 입맛을 다시며 카바레를 나와 버리고 말았다. 싱싱한 여자의 육신이 병상에 있는 남편에게서 얻을 수 없었던 쾌감의 공백을 메우는 한 순간의 일탈 행위라고 생각하였다.

  김노인은 자신의 집인 후암동 쪽으로 가기 위하여 남산을 향해 솟아올랐다. 남산 골짜기 곳곳에는 환생할 몸체를 찾아 떠돌고 있는 무주고혼(無主孤魂)들의 아우성이 흩날리고 있었다. 잠시 산허리에 앉아 불야성을 이룬 서울의 야경들을 지켜보았다. 조금 전에 보았던 카바레의 현란한 불빛과 흡사하였다. 불빛들은 숱한 업보들을 부추기는 촉매역할을 하고 있는 듯 하였다.
  김노인은 남산의 산정을 향해 구불구불 이어진 오솔길에서 잠시 쉬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육을 갖고 있던 시절, 매일 아침 산책하던 기억들이 스멀스멀 피어올라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한 손에는 약수병, 또 다른 한 손에는 배드민턴 라켓을 들고 땀을 흘리던 날들이 생생하게 시야를 스쳐지나갔다.
  한 쌍의 젊은 남녀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김노인의 주변을 서성거렸다. 그들은 평평한 풀 더미를 찾아 앉았다.  
  갑자기 고요를 깨우는 찬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은 정체불명의 영이 몰고 온 바람이었다. 정체불명의 영은 다시 윤회를 하기 위해 육신을 찾아 헤매고 있는 무주고혼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김노인과 같은 천상에서 온 영들은 몸에 무지갯빛이 서려 있지만, 지상에서 떠도는 영들은 회색빛을 발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떠돌이 무주고혼들을 쉽게 알아 볼 수 있다.
  정체불명의 영은 김노인을 외면한 채, 뜨거워지고 있는 젊은 남녀의 동태를 집요하게 탐색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벨트가 벗겨지고 있었다. 영은 여자의 자궁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였다. 김노인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이보시오."
  "안녕하십니까? 천상에서 오신 분이시군요. 저는 환생해야 할 육을 찾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 젊은이들에게?"
  "네, 그렇습니다. 저들이 내가 환생할 수 있는 육을 줄 것 같아 계속 쫓아다니고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이 그 기회가 될 것 같아서……."
  "에잉. 잘못 선택하였소. 만약 당신이 저 친구들의 씨로 환생하게 된다면, 나중에 산부인과에서 세상도 못보고 생명이 끝날 것 같으오."
  영은 고개를 푹 묻고서 진저리 쳤다. 영은 김노인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 자신에게 계속 이어지고 있는 윤회의 고통을 털어놓았다.
  그는 인간의 육을 얻은 후, 사업에 실패하고 자살하였다고 하였다. 자살을 한다는 것은 업을 씻을 수 있는 기회를 준 천명(天命)을 거역하는 일이었다. 무거운 업을 또 다시 만들게 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때문에 천상의 문턱에서 지옥생활을 더 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육을 얻으려고 발버둥쳤지만, 워낙 업보가 많아서 육을 얻을 때마다 그에게는 고통이 따랐다.
  그의 환생은 개구리로 시작되었으나 어린아이들에게 붙잡혀서 땅바닥에서 내팽개쳐져 죽음을 맞이하였고, 다음은 실험용 흰쥐로 환생하여 결핵균이 배양된 빵조각을 먹고 병에 걸려 죽음을 맛보았다. 그 다음에는 소로 환생하여 호된 채찍질과 힘겨운 농사일을 하다가 도살창에서 쇠망치에 맞아 죽음을 당하였다. 그러나 결국 숱한 윤회의 길을 거쳐 인간으로 돌아 왔지만, 또 다시 인간의 육을 걸쳐야 할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보시오. 그렇다면 나하고 동행합시다. 오늘이 나의 제삿날인데. 제사상을 받은 후. 확실하게 당신이 환생할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겠소."
  "어찌 저 같은 무주고혼에게 그러한 도움을……."
  "이 또한 깊은 인연(因緣)이겠지요."
  김노인은 박사장에게 영을 안내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영은 고개를 계속 굽실거리며 김노인의 뒤를 따랐다.
  지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류의 쾌락들. 천신(天神)은 인간들에게 고통만 주는 지옥을 주기에는 잔인하다고 판단하였던 탓인지, 인간들에게 내린 고통들만큼의 쾌락도 함께 내려 주었다. 또한 천상의 세계에 오르기 위한 훈련과정을 겸한다는 의미에서도 쾌락을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승에서 자손을 남긴다는 행위는 곧 윤회되는 영혼들을 구제한다는 의미이다. 구제과정의 고통은 전생의 업보를 소멸시켜 나가는 하나의 선행(善行)이다. 새 생명을 탄생시킨다는 것은 스스로가 짊어진 업보를 소멸시키는 계기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천신은 환생의 매개역할을 수행하는 생명체들에게 성(性)적인 쾌락을 덤으로 준 것이다.
   그러나 인간들에게 주어진 쾌락은 세속적인 욕정을 충족시켜주는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천상에서는 급기야 에이즈라는 병까지 퍼뜨리며 인간의 무질서한 환락을 경고하였지만, 탐욕의 포로가 된 인간들은 계속 혼돈의 수렁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영과 김노인은 제사에 참석하기 위하여 후암동으로 날아갔다. 일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김노인의 육신이 활보하고 다녔던 골목길. 좌판대를 열고 있는 채소장수 할머니는 여전히 다리를 절면서도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붕어빵을 굽는 장씨도 열심히 쇠틀에 밀가루 반죽을 부어 대고 있었다. 그들이 반가워 손이라도 덥석 잡아 보고 싶었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집에 도착하였을 때. 집안은 온통 음식냄새로 가득하였다. 김노인이 늘 아침 산책을 시키던 복슬이가 꼬리를 흔들며 짖었다. 녀석만은 김노인이 온 것을 알고 있었다. 김노인은 가까이 다가가서 복슬이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녀석은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김노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옆에서 그러한 광경을 지켜보던 영이 복슬이를 보며 말하였다.
  "마치 우리가 온 것을 아는 것 같습니다."
  "개는 영물이지요. 우리의 실체를 느낀답니다. 이렇게 비쩍 마르고, 털들도 서로 엉켜 지저분한 것을 보면, 아무도 이 녀석을 보살피지 않는다는 증거이지……. "
   복슬이는 계속 낑낑거리며 꼬리를 흔들어 댔다.
  "제사가 시작되는 것 같은데, 들어가서 우리 자식들에게서 술잔이나 받읍시다."
  김노인은 생전의 습관대로 헛기침을 하며 뒷짐 쥐고 현관으로 들어섰다. 팔자걸음으로 문간방들을 기웃거리다가 안방으로 들어갔다. 영은 김노인의 뒤를 졸졸 따라 다녔다. 제사상은 말 그대로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차려져 있었다. 혈육으로 인연이 맺어진 반가운 얼굴들이 방안 가득하였다. 설레는 가슴을 쓸며 방안을 휙 둘러보았다. 이상하게도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가족들의 틈을 지나며 한명 한명의 얼굴들에 김노인은 볼을 비벼댔다. 그들이 느끼든 안 느끼든 김노인은 그들의 체온을 느끼고 싶었다.
  제사가 시작되었다. 유일한 김노인의 혈육인 동생이 올리는 제주(祭酒)를 음미하였다. 가족들의 재배(再拜)를 받으며 김노인은 싱글벙글 웃었다. 김노인은 옆에 서 있는 영을 보며 계면쩍게 입을 열었다.
  "내가 천상에 오름으로써 저들과의 인연이 끝난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 것 같구먼. 오묘한 조화야."
  김노인은 큰아들이 올리는 술잔을 음미하기 위하여 상머리에 앉았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큰아들이 따르는 술잔에 김노인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김노인은 힘을 내어 손을 다시 뻗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노인의 손은 잔으로부터 튕기고 있었다. 멀쑥해진 김노인은 옆에서 지켜보는 영을 바라보았다.
  "지금 술을 올린 분이 정말 당신의 아드님이십니까?"
  "그럼, 내 큰아들이지."
  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로 그 때였다. 찬바람이 휭 감돌며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또 다른 회색 영이 나타나 술잔을 음미하였다. 김노인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갑자기 나타난 회색 영의 행동을 바라볼 뿐이었다. 두 아들이 따라 주는 술잔을 그는 넓죽넓죽 받아 음미하고 있었다. 옆에 서 있던 영은 형체도 없는 회색 영에게 소리 질렀다.
  "네 이 노옴! 감히 이 제사상이 누구의 제사상인데 함부로 나타나서 얼씬거리는 것이냐? 썩 물러가지 못하겠느냐?"
  고함소리는 상위의 촛불이 흔들릴 정도로 컸다. 영은 형체가 없는 회색 영을 밖으로 끌어내려 하였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큰 소리를 내며 버티었다.
  "이보게. 자네는 나와 똑 같은 떠돌이 신세야. 가만 좀 있어 봐. 이 제사상은 저 천상양반의 제사상이지만, 이 술을 따르는 저 놈들은 내 피를 이어받은 놈들이오. 내 자식들의 술잔을 받기로서니 뭐가 잘 못 되었소?"
  김노인은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흠칫 놀랐다.
  "아, 아, 아니? 당신은 복덕방 노형이 아니오?"
  김노인은 허탈감에 빠져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아내가 있었다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다그치기라도 해 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평소에 동생 동생하며 김노인 집을 제 집 드나들듯 하던 복덕방의 노가. 두 아들의 씨가 자신의 정자에 의해 형성된 씨가 아니란 사실은 너무 큰 충격으로 와 닿았다.
  "이보게. 동생 나는 가보겠네. 자네야 천상에 올랐지만, 나는 이렇게 떠도는 신세가 되어버렸다네. 내가 자네 가문의 대를 이어 주었으니 고맙다고나 하게. 그만 감세."
  그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김노인은 두 자식들을 바라보며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김노인은 충격으로 비틀거렸다. 김노인의 곁을 맴돌던 영이 위로의 말을 던졌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어쩌면 당신은 천상에 오를 수 있었는지 모르겠네요. 육신의 자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훌륭하게 키워 놓으신 것을 천신께서도 가상하게 여기셨던 모양입니다."
  계속 알 수 없는 분노가 김노인을 지배하였다. 그 분노라는 것은 김노인 스스로 만들어 내는 고통이었다. 고통스러워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김노인은 아내를 찾기 위해 팽그르르 돌면서 하늘로 치솟았다. 아내는 인천 앞 바다 조그만 섬의 골방에 있었다.
  김노인이 들어서는 정문에는 양로원이란 팻말이 달려 있었다. 병색이 짙은 아내는 조그만 상에 물 한 그릇 떠놓고 눈물을 쏟고 있었다. 분명 아내는 김노인의 기일에 맞추어 물 한 그릇으로 제사를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반평생 살을 섞으며 살아왔던 아내의 얼굴이 낯설게만 보였다. 갑자기 양로원에서 초라하게 생활하는 아내가 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지상과의 인연을 끊은 김노인으로서는 더 이상의 흥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순간 그 어떤 것도 보기 싫었다. 어서 천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김노인은 발을 멈추고 말았다. 김노인 곁을 졸졸 따라다니는 영 때문이었다. 영은 김노인의 약속을 굳게 믿고 있었다.
  할 수 없이 김노인은 아내를 뒤로 하며, 박사장네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박사장은 혼자였다. 벽시계만을 계속 응시하며 진한 담배 연기를 퐁퐁 올리고 있었다. 그가 보는 시계는 자정을 알리고 있었다. 방안에는 이부자리만 덜렁 깔려 있을 뿐이었다. 떠도는 영을 박사장과 맺어주기 위해서는, 부부의 잠자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김노인은 공중으로 튀어 올라 박사장의 아내를 찾아보았다. 강변의 카바레 옆에 세워진 호텔에서 그녀를 찾을 수 있었다. 두 남녀가 알몸이 되어 뒹굴고 있었다. 김노인은 머리를 쥐어짜며 괴로워하였다. 그 순간이었다. 영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아이구 고맙습니다."
  김노인이 눈을 떴을 때에는 이미 영은 여자의 자궁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이보게 자네가 들어서면 안 되는 곳 같네!"
  아무리 소리를 질러 보아도 이미 영은 박사장 아내의 자궁 안으로 들어가 버린 후였다. 김노인은 자신의 제사상에서 느끼던 분노와 슬픔을 또 다른 사람들이 느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돼! 정말 안 돼!
  육을 가졌던 시절. 대문 밖에서 서성거리며 아내를 기다리던 자신의 모습과 담배를 꾸역꾸역 피워 대며 아내를 기다리던 조금 전의 박사장의 모습이 시야에 겹쳐지고 있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아내들은 이렇게 다른 남자의 품에 있었단 말인가. 알 수 없는 분노가 김노인의 온몸을 뜨겁게 만들었다.
  쾌감에 젖어 땀을 흘리고 있는 여인의 얼굴이 너무나 가증스러웠다. 김노인은 뒤엉킨 두 사람 사이로 뛰어들었다. 냅다 여인의 머리를 휘어잡고 말았다. 거의 무의식적인 행위였다. 그러나 웬일이란 말인가. 그녀의 영혼이 김노인의 손아귀에 딸려 들어 왔다. 머리채를 붙잡힌 여인의 영혼은 버둥거렸다. 동시에 그녀의 자궁으로 사라졌던 영이 튀어나왔다. 그때서야 김노인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이미 육을 빠져 나와 버린 그녀의 영혼을 보며 김노인은 망연자실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야 그녀의 영혼을 원상복귀 시킬 수 있단 말인가?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과 번개가 치고 있었다.
                                                         『공주문학』 10호(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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