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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홍의 소설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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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 순 이

      점 순 이
                                                                                      

  25년 전. 홀어머니를 하늘로 올려 보낸 후. 의지할 곳이 없었던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무작정 상경하였다. 서울 땅에서 나는 떠돌이 강아지 신세가 되어 빵집의 잡일꾼으로 떠돌아다녀야 했다. 그러는 동안 고향 땅에 대한 나의 기억들은 소멸되어 가고 있었다. 빵집 사장이란 오늘의 명함을 파게 되었을 때. 남녘에 새겨 두었던 과거는 나의 뇌리에서 완벽하게 제거되어 있었다.
  그러나 요사이 나는 과거로 회귀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한 마리의 연어로 변신하고 있었다. 신기루처럼 등장한 일미터 때문이었다. 그녀가 내 앞에 나타난 그날은 비가 후줄근하게 내리고 있었다.
  비를 피해 들어 온 여자 손님은 빗물을 털어 내며 팥빙수를 주문하였다. 팥빙수가 만들어지는 동안 그녀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가게 안을 두리번두리번 살피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벽에 붙은 나의 자격증들에 머물고 있었다. 카운터에 앉아 있던 나는 내 쪽을 힐끔거리는 그녀의 시선을 자주 의식할 수 있었다. 허, 참. 별 여자 다 보겠다고 몇 번이고 혀를 차 댔다.
  "저어…….아저씨가 장동열씨이신가요?"
  "예, 그렇습니다만."
  "고향이 저 아래쪽이시네요?"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장부다리에서  사시지 않으셨어요?"
  "예에?"
  나는 그녀의 물음에 퉁명스럽게 장단을 맞추다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가까이 다가갔다. 안경을 치켜세우며 그녀를 뜯어보았다. 작은 체구. 통통한 얼굴. 환한 웃음. 턱 아래의 흉터……. 아주 까마득한 낭떠러지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두레박의 윤곽 마냥 그녀의 얼굴에서 일미터의 모습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어허. 일미터. 맞지?  일미터!"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팔짝팔짝 뛰었다. 25년만의 만남이었다. 그녀는 이미 두 아이의 어미가 되어 있었다. 남편은 컴퓨터 회사를 다니며 지방 근무를 하고 있다고 하였다. 근처 아파트로 이사 온 지 반년이 지났다고 하였다.
  이렇게 나타난 그녀는 기억 수첩에서 삭제시켜 버렸던 내 유년 시절을 다시 재생시켜 주고 있었다. 나는 상실되었던 옛 추억들을 더듬기 위해 매일같이 그녀와 얼굴을 맞대곤 하였다. 어제 밤에도 일미터와 자정이 넘도록 술을 마셔 버렸다.
  점심시간을 넘겨서야 눈을 뜬 곳은 나의 침실이었다. 어제 마셨던 술기운 때문에 머리가 깨어 질듯이 아파 왔다. 그리고 속은 울렁울렁 뒤틀리고 있었다.
  "이봐, 요강! 요강 좀 줘!"
  요강을 가져 온 아내의 치맛자락에서 찬바람이 쌩쌩 불고 있었다. 요강이 내 앞에 놓이자마자 나는 꼬옥 끌어안고서 꾸왁꾸왁 토악질을 하였다.
  "흥, 왜 갑자기 요강을 샀나 했더니 이럴 때 쓰기 위해 사 오셨군요."
  아내의 째지는 목소리를 들었다. 몽롱한 정신을 회복하기 위해 심호흡을 자주 하였다. 그러면서도 내가 왜 요강을 찾았을까 하고 스스로 머리를 갸웃거려 보았다. 여느 때 같으면 세숫대야를 찾거나 방안의 쓰레기통을 꿰차고 해결했을 일인데 말이다.
  콧물과 눈물이 뒤범벅 된 얼굴을 요강에 쳐 박은 나의 기억 저편에서 갑자기 아버지의 모습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입가에 묻은 타액을 손바닥으로 닦으며 피식 웃고 말았다. 가슴 깊숙한 곳에 잠재되어 있던 유년 시절의 아버지를 흉내 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봐. 죽겠어. 등 좀 두드려 줘.
  "어이구 예쁜 소리 하시네요. 그 친군가 뭔가 하는 여자한테 두드려 달라고 하시지요."
  "아니, 왜 이래? 친구는 어디까지나 친구야. 여자가 속 좁긴……."
  나는 버럭 화를 내며 요강을 턱하고 내려놓았다. 그와 동시에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전개되고 있었다. 요강은 아주 조용하게 두 조각으로 나눠지고 있었다. 곧 이어 내가 쏟아 낸 누런 오물들이 방바닥을 엉금엉금 기어 다니기 시작하였다. 아내는 발을 동동거리며 걸레를 들고 와 닦아댔지만, 나는 걸레질하는 아내의 뒷모습만 멍청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요강은 일주일전에 인사동에서 사 왔다. 빵 재료를 구입하기 위해 지나다니던 인사동거리. 즐비한 골동품 가게에 진열된 옛 물건들. 내 눈에는 한낱 고물들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옛 기억들이 나의 뇌에 재생되면서부터 인사동거리는 아주 흥미 있는 거리로 변하고 있었다. 이 가게 저 가게에 진열된 옛 물건들은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꿰어 맞추는 게임을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지난 주, 어느 가게 앞을 지날 때. 가판대 위에 놓여 있던 하얀 요강이 유난히 나의 눈을 끌고 있었다. 요강의 하얀 표면에는 희미한 산수화가 그려져 있었다. 그 그림 속에는 달이 아니면 해일 것이라고 생각되는 까만 먹물이 찍혀 있었다. 전체적인 그림으로 보아 너무 선명하게 찍힌 먹물이었기에 강한 인상을 심어 주고 있었다. 그 먹물은 가물거리는 기억 속에 내재되어 있던 어느 여자의 엉덩이의 점을 연상시켜 주었다. 그래서 나는 주인이 부르는 가격에서 한 푼도 깍지 않고 요강을 덥석 사 버리고 말았다.
  아내는 그 많은 도자기들 가운데 하필이면 요강이냐고 내내 바가지를 긁어 댔다. 그 때문에 아내와 한바탕 싸움까지 벌였다. 아무튼 며칠간은 집에만 들어오면 아내의 독기 서린 눈을 피해 요강에 뭍은 묵은 때를 닦으며 광을 내기에 바빴다. 그 때마다 기묘하게도 요강은 요술 램프가 되어 내 어린 시절의 소중한 추억들을 뿜어내 주고 있었다.
  그러한 요강이 깨져 버렸으니 아내에 대한 미안함보다는 아깝다는 생각이 먼저 든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내가 찡찡대지만 않았더라도 요강이 깨어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불끈 치솟아 올랐다. 눈을 치켜뜨며 아내를 응시하였다. 그와 동시에 아내의 시뻘건 눈과 마주쳤다. 아내가 나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여자가 나타난 뒤로 요즘 당신은 전혀 딴 사람으로 변했어요. 정말 이상해졌어요. 이젠 내가 싫어졌나요? "
  "그래 싫어졌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불쑥 내뱉고 말았다. 아내는 방바닥에 배를 쭈욱 깔고 울어대기 시작했다. 나는 톤이 높아지는 아내의 울음을 피해 밖으로 뛰쳐나오고야 말았다.
  아파트를 빠져나오는 내 발걸음이 갑자기 초라하게 느껴졌다. 아내의 말대로 내가 그렇게 변해버렸단 말인가. 갑자기 카멜레온의 웅크린 모습이 떠올랐다. 양팔에서 소름이 돋아나고 있었다. 발길이 큰길에 닿자마자 나는 빵 가게로 향하기 위해 택시를 불렀다.
  "노량진! 노량진!"
  몇 대의 택시들에게 거부를 당하고 나서야 겨우 빈 택시를 잡을 수가 있었다.  몸을 시트에 던지자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눈을 감았다. 눈 속 까만 자막에는 눈물짓는 아내의 모습과 깨어진 요강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문득 요강 때문에 낭패스러웠던 한 조각의 추억이 흑백영화처럼 상영되기 시작하였다.

  누이와 한 방을 썼던 어린 시절. 우리 집의 화장실은 마당 건너 으슥한 곳에 있었다. 어두워지면 귀신이나 도깨비가 나타난다는 믿음 덕분에 밤만 되면 화장실에 갈 엄두를 못 내었다. 그래서 누이와 나는 한밤중에 소피보는 일을 방안에 놓인 요강으로 해결하였다. 누이는 허연 엉덩이 살을 드러낸 채 요강에 털부덕 앉아 소피를 보았고, 나 또한 누이 마냥 털부덕하게 앉아 소피를 보았다.
   하루는 친구네 집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되었다. 밤이 이슥해졌을 때. 소피를 보기 위해 평소의 습관대로 요강 위에 걸터앉았다. 그런데 이불 속에 쳐 박혀 있던 친구 녀석이 벌떡 일어나더니 나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얼레꼴레 가시나처럼 앉아서 싼 대요."
  친구 녀석은 나를 놀려대기 시작하더니 보아란듯이 요강을 들어 올렸다. 요강의 아가리를 자기의 것에 맞추더니 짜르르 시원스러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녀석은 요강을 방바닥에 내려놓으면서 거만한 웃음을 씨익 나에게 보냈다. 나는 녀석의 행동에 별로 관심을 안 두었으나, 남자란 대개 그런 폼으로 소피를 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녀석이 학교에 가서까지 그 이야기를 퍼트리는 바람에 한 동안 나는 창피를 당해야 했다. 그 후로부터 나의 요강 사용법은 바뀌게 되었다.
  그로부터 얼마 안 된 새벽녘이었다. 소피를 보기 위해 요강을 찾았을 때. 요강은 소변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나의 오줌이 들어갈 자리가 있음을 확인하고 요강을 들어 올렸다. 제법 무거웠다. 그래도 나는 고집스럽게 들어 올려 일을 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요강은 내 손에서 미끄러지며 방바닥 위를 나뒹굴었다. 당연히 온 방안은 오줌 바다가 되어 버렸다. 잠자는 누이의 얼굴에까지 오줌 벼락을 주고 말았다. 그 덕분에 누이는 다음날 하루 종일 밥을 굶은 채로 헛구역질만 하고 돌아다녔다. 그 벌로 한동안 지푸라기에 재를 묻혀 놋쇠 요강의 녹을 열심히 벗겨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커다란 이불이며 요가 마당에 내걸리는 소동이 일어났고, 동네에서는 내가 잠자다 그려낸 지도로 소문이 나버렸었다. 그런 소문 때문에 한동안 옆집의 두 여자아이들을 피해 다녀야 하는 수난까지 겪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 두 여자아이는 같은 반 동급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들은 나를 보면 손가락질까지 해 가며 쑥덕거리곤 하였다. 그 때마다 천연덕스럽게
  "야. 가시나들아. 느그들도 요강 들고 서서 오줌 싸 봐. 한번 싸 보랑께. 얼마나 힘든 일인디……."
  어깨에 힘을 주고 큰소리를 침으로써 수치감을 무마시켰다.
  나는 언제나 두 여자아이들 위에서 군림하였다. 그녀들이 해내기 힘든 일들만 골라 하면서 우쭐거렸다. 그 아이들은 내가 부는 휘파람 소리를 매우 좋아했다. 새로운 휘파람 소리를 연습할 때엔 잠자리에 들면서까지 열심히 불어 댔다. '밤에 휘파람 불면 귀신이 나온다'거나 '뱀이 나온다'고 누이로부터 쥐어 터져 가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휘휘 불어 댔다.
  그네들하고 소꿉놀이를 하더라도 생계를 맡는 일은 내가 다 해냈다. 애비노릇을 하기 위해서는 밭에 나가서 고구마와 딸기를 서리해야 했고, 암탉을 쫓아다니며 계란도 훔쳐 와야 했다. 계란을 찾아다니는 어머니를 뒷전에 두고, 계란 껍데기 속에 쌀을 넣어 군불 위에 놓고서 계란밥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들통이 나면 어머니가 휘두르는 싸리 빗자루를 피해 도망 다녔다. 지푸라기로 엮은 계란 한 줄이면 고무신도 바꿀 수 있었고, 양재기 하나라도 더 사 올 수가 있었기 때문에 한 때는 곡괭이자루를 든 어머니가 마을 입구까지 집요하게 나를 쫓아다녔다.
  한여름에는 동네 앞개울에서 헤엄을 치다가 그녀들에게 달라붙은 거머리를 떼어 내는 일도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키가 작아 일미터라고 별명이 붙었던 영숙이와 점순이라는 별명과 함께 몸뚱이가 몹시도 컸던 순자는 언제나 내 곁을 맴돌았다.
  그 두 명의 여자아이들 중에 나는 유난하게도 점순이를 더 좋아했다. 부잣집 딸이란 칭호가 붙었던 일미터는 가끔 나에게 심이 진한 새 연필을 주었고, 그 비싸던 비스킷도 남 몰래 내 호주머니에 넣어 주곤 하였지만, 나의 마음은 항상 점순이에게 가 있었다.
  그러한 사실들은 지금까지도 일미터의 가슴에 내내 앙금으로 남아 있었다.
  "넌 아주 못 됐어야. 입 속에 있던 껌까지 빼앗아 고년 주둥이에다 쳐 넣어 주었던 일은 기억하고 있제?"
  "푸하하하. 고런 일도 있었나?"
  능청스럽게 기억에 없는 척하였지만, 실은 생생한 기억들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껌이 너무 귀하였다. 껌이 하나 생기면 삭아서 가루가 될 때까지 몇 달이라도 두고두고 씹어 댔다. 밤이 되면 은밀한 벽 가장자리에 붙여 놓거나 달력 뒤에 붙여 놓았다가 다음날 아침이 되면 다시 떼어 씹곤 하였다. 학교엘 가면 선생님의 눈을 피해 책상 밑에 붙여 놓았다가 방과 후에 다시 떼어 씹기도 하였다. 잘못하여 땅에 떨어트리면 물에 씻어서라도 입에 넣고 다시 잘근잘근 씹었다. 결국에는 까맣게 되어 버리는 껌일지라도 식구들은 호시탐탐 껌을 노리곤 하였다. 점순이는 껌씹기를 너무 좋아하였다.
  소꿉장난을 하던 어느 날. 점순이와 일미터는 껌을 씹고 있었다. 점순이가 씹던 껌은 자동차 타이어 안에서 뜯어낸 생고무였고, 일미터가 씹던 껌은 구멍가게에서 산 쿨민트껌이었다. 그렇지만 껌은 점순이 쪽이 더 열심히 맛있게 씹고 있었다. 소꿉놀이를 할 때엔 내가 애비노릇을 했고, 에미역은 점순이가 맡아서 했다. 일미터는 키가 적은 탓에 항상 아기 노릇만 하였다.
  갑자기 일미터가 이젠 더 이상 아기 노릇만 할 수는 없다고 투정부렸다. 에미 노릇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때 나는 일미터가 씹는 껌을 점순이에게 넘겨준다는 조건을 달고서야 일미터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점순이는 그 때까지 씹고 있던 생고무를 버리고, 일미터가 씹던 껌을 낼름 입에 넣었다.
  "워메! 참말로 부드럽네잉."
  그녀는 흡족한 얼굴로 눈을 지그시 감았다. 좋아하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 한 구석에서는 어떤 뿌듯함이 맴돌고 있었다. 다음날, 점순이는 크레용을 잘라 껌과 함께 씹어 빨간색의 껌을 만들고 있었다. 가끔 입에서 껌을 꺼내 둘둘 말아 '따다닥'소리를 내기도 하였으며, 다시 입속에 넣고서 '뚝,뚝,딱딱'소리를 내기도 하였다. 껌을 씹으면서 나와 눈을 마주치면 속눈썹을 내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 속에는 조그마한 보조개도 함께 있었다.
  그러던 우리들은 고학년으로 올라감에 따라 언제 그런 소꿉놀이를 했냐는 듯이 그 누구도 소꿉놀이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게 되었다. 꼬맹이들이나 하는 놀이. 유치하기 짝이 없는 놀이라고 치부하였다. 시냇가로 헤엄치러 가더라도 팬티와 셔츠는 꼭 걸치고 놀았다. 그녀들은 물에 젖은 셔츠 위로 조금씩 튀어나오는 앞가슴을 손바닥으로 가리기도 하였다.
  우리들은 차츰 어른스러운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들 앞에서 더욱 우쭐거리기 위해 학교를 졸업한 선배 녀석들처럼 아버지의 풍년초 잎담배를 훔쳐다 피우기도 하였다. 매운 연기 때문에 콜록거리면서도 그녀들 앞에서는 헛기침을 하며 가루담배를 신문지 조각에 말았다. 그녀들은 점순이네 언니가 바르던 립스틱을 훔쳐 입술에 바르며 깨어진 거울 조각을 열심히 보았다. 빨간 립스틱은 일미터보다 점순이 쪽이 훨씬 어울린다고 생각되었다.
  가끔 점순이의 빨간 입술을 보게 되면, 나는 가출해 버린 그녀의 언니 미희를 떠올리곤 하였다. 미희는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뻔질나게 이 동네 저 동네를 싸돌아다니더니 어느 날 갑자기 훌쩍 가출 해 버리고 말았다.
  미희는 매번 소리 없이 사라졌다가 소리 없이 나타나곤 하였다. 그때마다 그녀의 머리는 들들 볶아져 있었고, 귓부분에는 노란 나비 핀이 꽂혀 있었다. 또한 그녀의 발에는 굽이 높은 새 구두가 빛나고 있었다.
  미희가 나타나면 어김없이 건너 마을 삼수네 사랑방에서는 술자리가 벌어졌다. 콧수염이 짙어진 동네 총각들과 제법 엉덩이가 굵어진 여자아이들이 벌이는 술자리이었다. 노랫가락에 맞추어 상을 두드리는 미희의 젓가락 장단은 박자가 잘 맞는다고 생각하였다. 어쩌면 건너 마을 술집에서 가끔 흘러나오는 과부의 젓가락 장단보다 더 구성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날 밤이면 그녀는 마을 뒷산 상엿집에서 옷을 고치며 살금살금 기어 나오곤 하였다.
  점순이가 자기 언니가 남기고 떠난 화장품들을 열심히 찍어 바르기 시작한 것은 육학년에 오르면서부터였다. 그녀는 키도 나보다 더 컸고, 다른 여자애들에 비해 가슴도 컸다. 밤중에 동네 총각들과 어울려 다니는 그녀의 모습이 빈번하게 발견되었다. 가끔 나와 마주치게 되면 입술에 발랐던 립스틱을 손수건으로 지우며 나를 외면하기에 바빴다. 그리고 입을 비쭉거리며 집으로 들어가 버리곤 하였다.
  "염병헐. 잘 놀아보그라. 지 언니꼴 날려구……."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투덜거리곤 하였다. 나는 죄 없는 돌부리만 걷어찼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건너 마을 영호네 형과 보리밭에서 나오는 점순이의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일미터와 나는 볏짚단 뒤로 몸을 숨기고 그들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점순이는 머리에서 지푸라기를 떼어 내고 있었다.  
  "뭣땜시 조것들이 저기에서 나온다냐? 무섭지도 안타냐? 문둥이가 보리밭에서 아그덜 간을 꺼내 먹는다던디……."
  "야. 바보야. 사랑을 허고 나오는 것이야."
  "사랑이 뭔디?"
  "아따 이 맹추. 입 맞추고 꼬옥 껴안아 부리는 것이랑께."
  그때서야 일미터는 큭큭큭거리며 침을 꼴깍 삼켰다. 점순이 일행이 사라지고 나서야 일미터와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밤새 뒤척이며 잠을 못 이루었다. 검게 그을린 천장에서는 영호네 형과 점순이가 보리밭 속에서 나오는 장면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였다. 눈을 끔뻑거리며 그들이 보리밭 속에서 나누었을 사랑행위를 나름대로 상상해 보았다. 부둥켜안은 두 사람의 형체가 눈앞에서 둥실둥실 떠 다녔다.
  다음날. 나는 점순이네 아버지 김씨에게 지난밤의 일들을 일러바치고 말았다. 점순이가 나에게 돌아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 동네는 김씨가 휘둘러 대는 회초리 소리와 점순이의 비명 소리로 얼룩지고 있었다. 나는 발을 동동거리며 어머니에게 매달렸다.
  "워메. 엄니. 순자 아부지가 순자를 죽여뿌리네요. 좀 말리랑께요."
  어머니가 맨발로 뛰쳐나가 매질을 말렸지만, 허사였다. 그녀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나는 이불 속에 얼굴을 박고 몸부림쳤다. 그 다음날부터 점순이는 학교에도 못 나가고 방안에서 끙끙 앓았다. 혹독한 매를 맞아 다리뼈를 다쳤다고 하였다. 한동안 지팡이에 의지하여 마당을 거닐던 그녀의 눈은 사슴의 눈동자처럼 슬퍼 보였다. 사과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녀를 찾았을 때. 그녀는 얼음 같은 시선을 나에게 던지며 아무런 말도 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며칠 후,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점순이는 제 언니처럼 훌쩍 집을 떠나 버리고 말았다. 그 때부터 나의 가슴 한 구석에는 뻥 뚫린 공간이 생성되었다. 나의 밀고 행위를 후회하고 또 후회하였지만, 그녀의 모습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일미터의 말에 의하면 점순이는 두 번의 결혼을 실패하고, 지금은 홀로 읍내에서 다방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한 사실을 접한 것은 어제 밤이었다. 술을 과하게 마시게 된 원인은 그녀가 발을 절고 있다는 사실을 들었기 때문이다. 목발을 짚고서 싸늘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 눈동자가 커다란 그물로 변해 나를 덮쳐왔다. 분명 그때의 상처가 아물지 않아 그대로 발을 절게 되었으리라. 그녀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나의 죄책감은 눈덩이처럼 불어갔다. 이대로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나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사과를 해야 한다. 사과를 해야 한다…….
  한강변을 달리는 택시 안에서 나는 가슴을 쥐어짜고 있었다. 목적지를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아저씨. 죄송하지만, 서울역으로 가 주세요. "
  운전사는 대답 대신 앞에 걸린 거울 속으로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갑작스런 결정이었다. 서울역에 닿을 때까지 발을 동동 굴리기도 하고, 휘파람도 불어 댔다. 내내 떫은 표정을 짓던 운전사는 요금만큼의 팁을 받아 쥐고서야 허연 이를 드밀며 떠나갔다.
  22시05분 목포행 통일호. 어린 시절 기차표 한 장에 꿈을 걸고 상경하였듯이, 나는 또 다시 기차표 한 장에 또 하나의 꿈을 걸고 귀향하고 있었다.
  덜커덩. 칙칙. 덜커덩. 칙칙.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5호차 25번 창쪽좌석에 앉아 기차 바퀴의 소음보다도 더 쿵쿵거리는 설렘 때문에 나는 계속 엉덩이를 들썩거리고 있었다. 타인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도 않았다.
  나는 25년이란 세월의 족쇄를 풀고 탈출을 감행하고 있었다. 아내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나는 전화 한 통도 없이 떠나고 있었다. 내일이 되면 어느 일간지 한 귀퉁이에 <새나라빵집 장동열사장님을 찾고 있습니다>라는 광고가 게재될지도 모를 여행을 시작하였다. 갑작스러운 결정이었지만 나는 이미 퇴색되어 버린 한 장의 흑백사진 속으로 빨려 들고 있었다.
  새벽 4시경에 도착한 목포역. 나무판자로 엮어져 있던 역 건물은 육중한 콘크리트 건물로 바뀌어져 있었다. 날이 밝을 때까지 쉬어 가라는 식당 아주머니들의 손길은 변함이 없었다. 나는 보이는 것들마다 옛 기억에 꿰어 맞추며 걸었다. 문득 내 코에 갯냄새가 찡하게 전해지고 있었다.
갯냄새를 쫓아 걸었다. 어둠에 쌓여 빛나는 가로등의 노란 불빛이 스르르 다가왔다가 스르르 스쳐 지나갔다. 나의 발길은 좁은 골목길들을 지나 부두로 향하였다. 갑자기 어둠 속에서 아가씨 한 명이 튀어나왔다. 그녀는 형사마냥 내 팔을 거머쥐었다. 피할 틈을 전혀 주지 않는 노련한 솜씨였다.
  "아자씨 쉬었다 가세요. 싸게 해 드릴게요."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를 뿌리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몇 미터를 찰거머리마냥 붙어 있던 그녀는 아무 반응이 없는 나의 팔을 놓고서 떨어져 나갔다. 그녀는 두툼한 입술 아래에 점을 갖고 있었다. 점. 점. 점…….저 여자도 점순이겠군…….하고 생각하였다. 갑자기 내 머릿속에는 또 다시 점순이의 생각으로 가득 찼다.
  점순이. 그녀의 이름은 분명 순자였지만, 모두가 점순이라고 불렀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얼굴에 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의 점은 누구도 쉽게 볼 수 없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점을 발견하게 된 어처구니없었던 순간들을 기억해 냈다.

  점순이와 내가 땔감나무를 구하기 위해 산에 오른 것은 아카시아 꽃이 만발하던 봄이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둘이는 서로의 망을 채워 주는 공동 작업을 하였다. 꼴망태가 솔잎으로 가득 채워지게 되면 우린 허기진 배를 채우는 일에 몰두하였다. 내 지게에 꼽아 놓았던 괭이를 꺼내어 보라색 꽃을 달고 있던 도라지 뿌리를 나누어 먹었다. 뿌리라면 칡뿌리가 한결 맛있었지만, 땅 속 깊이 박힌 칡뿌리를 캐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땅파기가 실증나면 나는 향기를 듬뿍 풍기고 있는 아카시아 나무에 올랐다. 낫으로 몇 가지만 꺾어 내려오면 꽃은 실컷 먹을 수가 있었다. 일일이 꽃을 하나하나 따먹는 것이 아니라 꽃줄기를 입에 넣고서 훑으면 입안 가득하게 꽃이 들어왔다. 싱그러운 아카시아의 내음과 함께 달콤한 맛이 입에 맴돌면 점순이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머리를 흔들어 댔다.
  어느 정도 배가 불러오자 우리는 꼴망태에 기대어 꾸뻑꾸뻑 졸았다. 내가 남쪽을 향해 기대면 그녀는 북쪽을 향해 기대었다. 골바람이 불어오면 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나의 얼굴을 간질였다. 입을 벌리면, 몇 가락의 긴 머리카락이 내 입술을 비집고 들어왔다. 질근질근 씹어 보았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순자야 니 시집갈 거제?"
  "바보. 시집 안 가는 가시나 봤냐?"
  "허긴 그리여. 누구헌테?"
  "모르는 일이제."
  그녀는 머리를 홱 돌리었다. 입속의 머리카락이 달아났다. 점순이는 눈을 깜빡거리며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니는 누구헌테 장가갈꺼냐?"
  "너헌테 가야제."
  "바보."
  "워째 내가 바보냐? 소꿉놀이할 땐 나헌테 여보라고 해뿌렸잖어……."
  "몰라. 문둥이. 바보."
  그녀는 나를 향해 한줌의 나뭇잎을 집어 던졌다. 빨갛게 달아 오른 그녀의 볼을 향해 나도 아카시아 꽃을 한 움큼 집어던졌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그녀는 우는 시늉을 하였다. 아카시아 꽃송이 한 개가 그녀의 왼쪽 귓불 쪽의 머리카락에 걸려 위태롭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꽃송이 한 개를 오른쪽 귓불 쪽에 달아 준다면 아름다운 귀걸이 형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꺾어놓은 아카시아 나무를 바라보는 순간, 한 올의 실바람은 그녀의 귓불에 달린 꽃송이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꿀벌이다!"
  내 목소리는 산마루를 타고 꼬리를 물었다. 나는 고무신을 벗어 손에 쥐었다. 꺾어놓은 아카시아 꽃에 앉은 꿀벌을 향해 살그머니 기어갔다. 고무신으로 잽싸게 낚아챘다. 벌은 고무신 꼭지 부분에 걸려 앵앵거렸다. 벌을 놓치지 않으려면 고무신을 한참 동안 뱅뱅 돌려야 하였다. 돌리던 신발을 땅에 내동댕이쳤다. 신발 속에서 축 늘어진 벌이 나왔다. 꽁지의 침을 빼내었다. 몸통과 머릿 부분을 누르자 벌은 눈곱만한 꿀을 토해 냈다. 나는 분홍빛 감도는 점순이의 혀끝에 꿀을 찍어 주었다.
  "워메, 달어라."
  잠시 토라졌던 그녀는 금방 되돌아왔다. 그녀의 얼굴에서 아카시아 향기와 같은 미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엉덩이춤을 추며 빙글빙글 주변을 살피었다. 또 다른 한 마리의 벌을 발견하였다. 내가 휘두르는 고무신에 어김없이 빨려 들어왔다. 이번에는 내가 먹을 차례였다. 꽁지의 침도 뽑지 않고서 그녀에게 보란 듯이 혀끝으로 꿀을 빨았다. 그러나 그것이 실수였다. 꽁지 부분이 아랫입술에 스치는 순간 나는 팔짝 뛰고 말았다.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따가웠다.
  "워메, 쏘여 뿌렸어."
  "워디?"
  "요기."
  내 입술을 쭈욱 내밀며 보여주었더니 그녀는 피씩 웃었다. 웃는 그녀를 못마땅해 하며 나는 서둘러 지게에 나무를 얹었다. 쏙쏙 거리며 아파 오는 입술은 점차 부어오르고 있었다.
  "오줌을 발라야제."
  "싫어!"
  더러운 오줌을 어떻게 입술에 바르느냐는 듯이 침을 확 뱉었다. 입술은 쏙쏙거리며 통증이 계속되었다. 입술을 이빨로 악물며 나는 잠시 주저하였다. 그녀의 말대로 지게를 팽개쳤다. 저만큼 걸어가서 등을 돌리고 고무신에 소피를 보았다. 아무리 사타구니에 힘을 주어도 오줌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난감해 하는 나를 바라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토인의 입술처럼 부어오르는 나의 입술을 보더니 내 손에 들려 있던 고무신을 빼앗아 갔다. 그리고 소나무 옆으로 갔다. 주저앉으며 그녀는 말했다.
  "보면 안돼."
  "그려."
  나는 단호하게 대답을 하고서 눈을 감았다. 그러나 어느새 내 눈길은 그녀의 새하얀 엉덩이로 향하고 있었다. 방앗간의 밀가루보다도 더 희었다. 왼쪽 엉덩이 한 가운데 박힌 까만 점은 유독 크게 보였다. 그녀는 불그스레한 얼굴을 하고서 소나무 뒤에서 나왔다. 얼굴을 돌리며 나에게 내민 고무신에는 따스한 오줌이 가득하였다. 고무신을 건네받은 나의 가슴은 쿵쾅쿵쾅 뛰고 있었다. 나는 그녀로부터 등을 돌려 오줌을 입술에 찍어 발랐다. 입술이 쓰라렸다. 입술에 뭍은 그녀의 오줌이 자꾸만 나의 입안을 파고들었다. 몇 번이고 침을 콱콱 뱉어 내었다. 오줌이 든 신발만은 소중하게 들고 산을 내려왔다. 가끔 입술에 찍어 가면서.
  그 후. 나는 그녀의 엉덩이에 까만 점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즐거워하였다. 가끔 나는 그녀 곁으로 다가가서 조용히 속삭이듯 내 뱉었다.
  "점순아……."
  그 때마다 그녀는 울상을 지으며 발을 동동거렸다. 나는 그러한 그녀의 모습이 좋아 점순이란 별명을 계속 불러 댔다. 내가 부르는 점순이라는 별명은 까닭도 모르는 학교 녀석들까지 써 먹었다. 삽시간에 그녀의 별명은 널리 퍼져 나가 버렸다. 가끔 괴로워하는 순자의 모습을 보며 후회도 하였으나 이미 주워 담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부두는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부둣가 어시장의 철문들은 하품을 하며 열리고 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묵었던 적이 있는 부둣가 여관을 찾아 들었다. 그 곳에서 나는 해가 중천에 떠오르도록 단잠을 잘 수가 있었다.
  나는 무안행 시외버스를 집어탔다. 비포장이었던 도로는 번듯한 아스팔트로 뒤덮여 있었다. 목포시를 벗어나 한 동안 달리던 버스는 내가 살았던 장부다리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
  벨을 눌러 버스를 세웠다. 문이 열리고 내 발이 땅을 디디는 순간 아스팔트가 너무 딱딱하고 차갑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머리를 흔들며 떠나려던 버스 문에 다시 매달려 차 안으로 뛰어들었다. 버스기사의 째려보는 눈을 피해 엉덩이를 의자 속으로 밀어 넣었다. 나는 스쳐 지나가는 주변 풍경을 동공 안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잔디 썰매를 탔던 언덕배기. 나무를 하러 다니던 크고 작은 산들. 어머니의 손때가 절어 있던 논밭들. 아버지가 돛을 올리던 바다쪽…….그 흔적들은 남아 있는 듯하였지만, 왠지 낯선 풍경이었다. 콧등이 시큰거렸다.
  마을 입구에는 파란 잎이 새겨진 새마을 깃발이 세워져 있었다. 박이 열리던 초가지붕도, 소달구지를 끌던 신작로도, 부역 나가 흙더미에 깔렸던 아버지도, 신발 공장으로 돈벌이 나갔던 누이도 새마을 깃발 아래서 소멸되어 갔다. 그래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이상하리만큼 새마을 깃발을 대하는 나의 마음은 차갑기만 하였다.
  버스가 읍내에 도착하자 곧바로 별다방을 찾아 나섰다. 일미터의 말대로 별다방은 소방서 옆에 있었다. 다방 앞에서 몇 번이고 심호흡을 하다가 문을 열었다. 발걸음이 떨리었다. 아담한 공간이었다. 흘러간 가요가 구성지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는 다방 내부를 두리번거리며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점순이와 같은 중년의 여인은 보이지 않았다. 카운터에 있던 젊은 아가씨가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뭘 드시겠어요?"
  "커피."
  서울 말씨를 쓰는 그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았다. 그녀는 내 눈과 마주치자 쌩긋 웃으며 주방으로 향하였다. 다방에는 그녀와 나 둘 뿐이었다. 나는 아가씨를 향해 한잔 더 가져오라고 소리쳤다. 그녀는 주문대로 두 잔의 커피를 들고 나타나 내 곁에 앉았다. 점순이의 행방을 물었다. 그녀는 친정집에 갔는데 저녁에야 돌아 올 것이라고 아가씨는 대답하였다.
  "참, 마담 언니는 발의 건강이 안 좋다고 들었는데. 언제부터 그랬지?"
  "아, 언니 발이요?  10년 전에 교통사고로 다쳤다고 하더군요."
  "어렸을 때부터가 아니구?"
  "아니예요. 처녀 적에는 테니스도 치고 건강했다고 하던데요."
  "정말인가요?"
  "예 정말이에요."
  아가씨의 말은 나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어떤 죄의식을 소멸시켜 주는 청량음료였다. 애드벌룬을 타고 마냥 허공으로 솟구치는 시원함을 느끼며 다방을 나설 수 있었다. 마담 언니가 있을 때 또 다시 들리겠노라고 커다란 목소리를 지르며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읍내 장터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옛 장터는 이미 사라지고, 현대화된 점포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장이 설 때마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삼십 여리 길을 걸어 다녔다. 밭에서 거둔 보리 몇 되, 콩 몇 되에서 생긴 돈으로 아이스케이키나 사탕을 사 먹는 재미로 그 먼 길을 싫다 하지 않고 따라 다니곤 하였다.
  당시 우리 집은 궁색한 환경이었기에 과자를 듬뿍 사 먹는다는 것은 일종의 사치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산과 들에서 꽃과 열매를 따 먹으며 사탕에 대한 욕구를 해결하곤 하였다. 아카시아 꽃과 진달래꽃을 따먹거나, 머루나 으름, 맹감 등을 따먹기도 하고, 풋콩이나 햇보리를 불에 구어 먹곤 하였었다. 때문에 장날이 오길 손꼽아 기다렸었는지도 모르겠다.
  장이 서는 날에는 십리 사탕을 즐겨 사곤 하였다. 십리 사탕은 우선 다른 눈깔사탕들에 비해 쌌다. 돌처럼 단단했기에 오랫동안 입안에 남아 있어서 더 더욱 좋았다. 그 사탕을 입속에 넣고 오물거리다 보면 맨 나중에 좁쌀 한 톨이 나왔다. 그 좁쌀이 나오도록 빨아 삼키는 동안 십리는 족히 걸을 수 있다 하여 십리 사탕이라고 하였다. 가끔 새 신발을 사면 행여 닳을까 봐 새 신발은 손에 쥐고 맨발로 집에까지 뛰어 오곤 하였었다.
  장터의 큰 마당에는 커다란 보험회사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장날이 되면 약장사들의 공간이 되었던 곳이었다. 약장사들은 '춘향전'이나 '심청전' 또는 '이수일과 심순애'를 무대에 올려놓고 시골 노인들을 울리기도 하였고 웃기기도 하였다. 가끔 막을 올리는 서커스는 나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어머니는 그들의 열렬한 팬이었다. 심청전을 볼 때마다 손수건이 흠뻑 젖도록 울었다. 어머니는 공연이 끝나면 당연하다는 듯이 그들이 파는 약을 사주었다. 어머니는 그들에게서 회충약을 사서 억지로 나에게 먹이곤 하였다.
  옛 기억들을 더듬고 또 더듬다가 출출한 생각이 들어 선술집으로 향하였다. 산 낙지를 한 접시 시켜 놓고 소주를 마시기 시작하였다. 한 병을 다 비워 갈 무렵. 한 사내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 어디에선가 많이 보던 사내였다. 그는 나를 힐끔거렸다. 나도 그를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그와 나의 시선이 일직선을 그었을 때. 어느 누구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여어! 라는 탄성을 내지르며 서로의 손을 부여잡았다. 사내는 후배인 동수였다.
  유년시절 녀석의 머리에는 기계충 때문에 백태가 항상 끼어 있었다. 허구한 날 노란 코를 훌쩍이던 녀석은 선배들이 바지를 벗고 기타를 치라면 자기 고추를 내 놓고 기타 치는 흉내를 내곤 하였다. 벼랑을 타는 위험한 장난은 혼자 도맡아 하였기에 머리가 터지면 된장을 질끈 동여매고 히쭉거리며 학교에 나타나곤 하였다.
  "그나저나 성님 워떠케 지내 왔소?"
  녀석은 어떻게 살아왔느냐는 나의 질문을 뒷전에 두고 오히려 나에게 질문공세를 폈다. 녀석과 나는 같은 테이블에 앉아 술에 걸신들린 사람들 마냥 쉴 새 없이 몇 병의 소주를 비우고 있었다. 나는 얼큰하게 취했고, 급기야는 녀석에게 이곳에 들리게  된 동기까지 털어놓고 있었다.
  "사실은 소방서 옆에 있는 별다방의 마담 점순이를 좀 만나볼까 해서 왔어."
  "그래라우? 근디 워째서 성님은 순자를 점순이라고 하는감요?"
  "어허 너는 잘 모르는가 본데. 점순이라는 이름은 별명이야. 허허허."
  "아니 점도 없는 여자헌테 말쌈이십니까?"
  "모르는 소리 하지 마. 여기 엉덩이에 있으니까."
  나는 녀석의 엉덩이까지 손으로 찔러 가며 횡설수설하였다. 아주 큰 비밀이나 이야기하듯이 소리까지 죽여 가면서 말이다. 녀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되물었다.
  "워메 성님은 워떠케 그 여자의 숨겨진 점까지 알고 있다는 말쌈인가요?"
  "헛.헛.헛. 그것은 상상에 맡기겠어."
  "말 좀 해 보란 말이요!"
  녀석은 언성을 높이며 아주 집요하게 물어 왔다. 끈질긴 녀석의 질문에 나는 짜증이 났다.
  "짜식, 몰라도 돼."
  찌푸린 나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던 녀석은 밖으로 튀어 나가 버렸다. 왜 갑자기 취기가 가득한 녀석의 눈에서 광채가 빛났는지 알 수 없었다. 별 싱거운 녀석 다 보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소주잔을 비웠다. 조각난 몸체를 꿈틀거리던 낙지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병이 바닥날 때까지 동수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선술집을 나와 별다방을 향해 걸었다. 어슴푸레한 땅거미가 스멀거리고 있었다.
  별다방에 들어섰을 때 다방 안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함께 술을 마셨던 동수 녀석이 웬 아낙의 머리채를 잡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주인아저씨가 우리 마담 언니 죽이겠어요. 좀 말려 주세요."
  낮에 보았던 아가씨가 나를 보자 발을 동동거리며 매달렸다. 끌려 다니던 아낙은 점순이었다. 재빨리 다가서던 나는 '주인아저씨'라는 단어를 듣고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동수와 점순이는 부부 사이였다. 점순이는 아무런 반항 없이 동수의 팔에 끌려 다녔다.
  내가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두 명의 경찰이 나타났다. 경찰의 손에 끌려 나가는 동수는 계속 악다구니를 해댔다. 동수의 손아귀에서 풀려난 점순이는 구석에 파묻혀서 흐느껴 울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서지도 못하고 못이 박힌 듯 서 있었다. 그녀는 일어서서 헝클어진 머리를 뒤로 넘기며 힐끗 나를 바라보더니 곧바로 밖으로 사라졌다. 그녀는 심하게 발을 절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직선을 그었던 그녀와 나의 시선 사이에서는 강한 전류가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잠간 스쳐지나간 그녀의 눈에서 어린시절 나의 밀고에 의해 곤욕을 치렀던 그날의 싸늘한 눈빛을 또 다시 발견하고야 말았다. 나는 머리를 감싸 안으며 의자에 주저앉고 말았다.
  "아저씨, 오늘 장사는 끝났어요."
  훌쩍이는 아가씨의 말에 나는 겨우 머리를 들 수 있었다. 냉수 한잔을 부탁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마담 언니는 혼자 산다고 하던데……."
  "세달 전에 재혼하셨어요. 평소에는 주인아저씨가 언니한테 잘하는데요. 가끔 트집을 잡아 저렇게 행패를 부리지 뭐예요. 의처증이래요. 오늘도 어디에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점이 어쩌고저쩌고 하며 저 난리였어요."
  나는 깊은 심호흡을 하며 벌떡 일어나 다방을 빠져나왔다. 밖은 새까만 밤이었다. 앞이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더듬더듬 버스 정류장을 향해 발을 옮기었다.
  나를 태운 버스가 서서히 장터를 빠져나갈 때. 희끄무레한 가로등 밑에 한 여인이 버스 쪽을 응시하며 서 있었다. 나는 차창을 열었다. 그러나 그녀는 절뚝거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사라져 간 검은 공간을 바라보며 몇 번이고 가슴을 쥐어짜고 있었다. 버스가 갑자기 덜커덩거리었다. 차안의 소음은 요강 깨어지는 소리로 변하고 있었다.
                                                           『조선문학』(1998,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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