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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홍의 소설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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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쓰기의 숙명성과 그 정체성 찾기- 「팔녀각」 해설(한승옥)

이재홍 소설집 「팔녀각」 해설

[소설쓰기의 숙명성과 그 정체성 찾기]

                                        한  승  옥(숭실대 국문과 교수, 문학평론가)

  이재홍의 작품 경향은 다양하다. 소설의 소재가 다양할 뿐 아니라 그 기법도 작품마다 다르다. 이것은 그가 매우 실험적인 작가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고 이재홍이 실험에만 매달리는 모더니스트란 뜻은 아니다. 그의 세계는 우리의 토속적 정서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집을 묶으면서 많은 경향의 소설 중에서 표제작으로 「팔녀각」을 선택한 것만 보아서도 알 수 있다.
  이재홍은 목포에서 태어나 제주도에서 성장한 작가다. 제주도는 신비의 섬이다. 신비한 설화가 살아서 숨쉬는 곳이다. 그러면서도 버려진 땅이었고, 역사적 비극이 처참하게 얼룩진 땅이기도 하다. 이런 곳에서 성장한 작가에게는 제주도가 상상력의 원천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상상력은 민속적이고 샤머니즘적인 어떤 것일 터이다. 이재홍이 바다에 휩싸인 목포에서 태어나 제주도에서 성장하였다는 사실은 그를 소설 창작으로부터 숙명적으로 멍에 지워지게 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재홍에게 목포는 육신의 고향이며, 제주도는 정신적 생명의 근원이다. 그가 아무리 도회에 나와 세속의 잡다한 일에 휩싸인다 해도, 그리고 그것으로 호구의 지책을 꾸려간다 해도 이 영원한 고향의 숨결은 놓칠 수가 없었으리라. 어디에 있든 무엇이 되어 무슨 일을 하던 그에게는 제주도의 파도소리가 환청으로 들리고 제주의 바람소리가 가슴을 쓸어내리고 제주의 죄 없이 죽어간 무수한 원혼이 손짓을 하여 하루도 편한 날은 지탱해 나갈 수 없었으리라. 이는 그의 이력만 보아서도 금시 알 수 있다.
  이재홍과 필자가 만난 것은 1984년도쯤으로 기억된다. 이재홍이 숭실대학교 국문과 석사과정에 입학할 생각으로 나를 찾아와 의사를 타진하고서부터다. 나는 그 전에도 숭실대학보사에서 주최한 다형문학상 소설부문에 응모한 작품을 통해 이재홍을 이름으로는 알고는 있었다. 그가 공과대학 전자공학과 재학생 중에 하나였을 때다. 나는 그때 이재홍의 작품을 읽으며 공대학생 중에 문학을 좋아하는 문학 지망생이 열심히 습작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였을 뿐이다. 그 당시만 해도 공대학생들이 숭실대학교 교내 문학 동아리인 다형문학회에 많이 가입하여 나름대로 열심히 작품을 쓰고는 있었지만 국문과를 비롯한 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 비해 글 솜씨, 특히 수사적인 면에서 많이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취미 정도로 문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 솔직한 그때의 심정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재홍이 정색을 하고 국문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찾아 온 것이다. 하나의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공학도가 아닌가. 더구나 직장도 전자공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실기교사였다. 그러나 나는 생면부지의 다만 숭실대학교에 인연이 되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나를 찾아온 그에게서 남다른 문학에 대한 열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재홍은 숭실대 국문과에서 석사과정을 이수하면서 가족사 소설을 깊이 있게 연구하게 되었다. 그가 가족사 소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인간의 끈끈한 유대나 가족이 지닌 숙명적 얽힘 등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답을 찾기 위한 시도였다고 생각된다. 석사를 마치자 그는 바로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대학교에 입학하여 비교문학을 전공하기에 이른다. 여기서도 그가 전공한 것은 가족사 소설이다. 그에게는 끈질김이 있다. 그는 동경에서 공부를 하기 위해 고학생이 걷는 길을 고스란히 체험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것이 근 10여년에 해당한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 공주 영상 정보대학의 문창과 교수가 된다. 결국 그가 끈질기게 추했던 문학창작을 위한 교두보를 처음으로 확보한 셈이 된다. 이재홍은 지금 서강대학교 게임교육원에서 게임 창작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제주도의 토속적인 분위기와는 180도 다른 행보라 하겠다. 그가 어떻게 이렇게 변신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다. 그러나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그것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제주도의 토속적 신비의 세계와 공과대학의 과학도로 쌓은 기술과 동경 유학을 하면서 터득한 도회성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합작품이 바로 지금의 이재홍일 터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오기까지 이재홍의 방황은 참담함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가 잃지 않았던 지속적인 정체성은 바로 제주도의 신비성이며, 원색적 본능이며, 건강한 바람소리 파도소리이며, 아직도 편히 잠들지 못하는 원혼들의 절규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이를 풀어내지 못하면 그의 삶은 죽은 삶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루하루가 무의미한 생물학적인 삶의 연장일 뿐일 것이다.  
  이재홍이 소설집을 처음 묶으면서 표제작으로 「팔녀각」을 택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그에게는 데뷔작이자 현재까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팔녀각」은 이재홍이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은 혼신의 작품일 터이다. 그만큼 작가의 영혼이 실린 작품이며 동시에 그의 작품 경향이 잘 드러나는 소설이며, 앞으로의 그의 작품 세계를 암시해 주는 키 역할을 하는 작품일 터이다.

  아침 이슬을 털며 솟아오른 태양이 뒷산에 걸터앉을 무렵.  넋건지기굿을 구경하기 위한 사람들이 장산포 앞바다 방파제로 꾸역꾸역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박수무당들이 연주하는 징과 장고, 제금과 해금의 소리가 방파제를 타고 은은하게 퍼져 나가는 동안, 버드나무 가지로 엮어 만든 고리짝의 장단은 구경꾼들의 어깨를 들썩거리게 만들었다.
  철썩거리던 파도 소리는 굿판에 압도되어 이미 숨을 죽이고 있었다. 바다쪽을 향해 차려진 상위에는 용왕께 바쳐지는 제물, 산신께 바쳐지는 제물, 지신께 바쳐지는 제물들로 가득 채워졌다.
  남색 치마에 몽두리를 걸친 당골네는 거센 파도처럼, 때로는 잔잔한 파도처럼 춤을 추어댔다. 그에 뒤질세라 안울립 벙거지마저 당골네의 머리위에서 덩실거렸다.
  "……정미년 햇머리 시월 초여드렛날 박씨 영가 혼령이 수사에 갔으니 대신을 넣고 극락으로 모실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아무쪼록……."
  법사들이 외치는 지신경의 청아한 화음을 타고 땅을 짓이기듯 콩콩 뛰는 당골네. 그녀의 손에 쥐어진 칠성 방울과 칼이 쉴 새 없이 허공을 찔렀다.
  구경꾼들이 당골네의 춤사위에 넋을 뺏기고 있는 동안, 한편에서는 갓 베어 온 싱싱한 대나무가 조심스럽게 놓여졌다. 아주 굵고 곧은 대나무는 어머니의 혼백을 낚아 올릴 대신대였다.

  「팔녀각」의 서두부분이다. 샤머니즘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어조와 문체다. 서두는 작품 전체를 지배한다. ‘넋건지기굿’‘박수무당’‘당골네’ 등으로 이어지는 샤머니즘적 분위기는 팔녀각의 운명적 이야기와 함께 팔녀각을 지키려는 할머니와 이에 저항하는 비극적인 어머니의 한 많은 삶이 대비되면서 서술자 ‘나’의 성장소설적인 체험적 회상이 전개된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바보 산지기 성두와의 육욕을 불태우는 불륜의 어머니, 그러나 이것을 불륜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처절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가 이 작품의 심층 주제임을 우리는 알아차릴 수가 있다.

  「팔녀각」은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팔녀각에선 한판의 굿이 펼쳐진다. 대나무로 대신대가 만들어 진다. 죽은 어머니의 넋을 건지기 위한 것이다. 당골네는 나에게 대신대를 주며 직접 어머니의 영혼을 낚으라고 한다. 나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대신대를 받는다. 그러나 어머니의 넋은 낚기지 않는다. 대신 어머니의 기억들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나는 어렸을 때에 팔녀각에 모든 운명을 거는 할머니의 말에 반항하여 팔녀각의 기둥에 도끼질을 한다. 마을 사람들이 말려 기둥을 부러뜨리는 데는 실패한다. 하지만 그 후 나에게 팔이 마비되는 현상이 생긴다. 동티가 났다는 것이다.
  팔녀각은 바다에 몸을 날려 정조를 지킨 여덟 명의 마을 아낙네들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위령비이다. 하지만 나에겐 온갖 잡귀들의 집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집을 할머니가 지키는 것이다. 그 잡귀들은 우리 송씨 집안에 시집온 여자들은 모두 죽음으로 몰아갔다. 그 뿐이 아니다. 우리 송씨 집안은 예전부터 집안 남자들이 일찍 죽는다. 인근 마을에서는 이를 알아 처녀들이 송씨 집에는 며느리로 들어오는 사람이 없었다. 나의 어머니는 이를 모르고 먼 마을에서 시집을 온다. 그러나 어머니가 이를 알고 나서부터는 팔녀각을 저주하기 시작한다. 어머니는 숙명적인 팔녀각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교회를 찾게 된다. 이를 반대하는 시어머니로부터 교회에 다닐 수 있는 명분을 얻기 위해 어머니는 나를 이용한다. 할머니에게 졸라 교회를 다니게 하려는 것이다. 당연히 할머니의 반대가 이어졌고 어린 나이에 밥을 안 먹고 단식 투쟁을 한 결과 교회에 나가도 좋다는 허가를 얻는다. 하지만 조건이 붙는다. 여름 방학 동안이라는 기간이 조건이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다. 어머니는 교회에 다녀오는 길에 송씨가문의 산지기인 성두라는 마흔이 넘은 바보의 인도로 매번 풀숲으로 우거진 아버지의 무덤을 찾는다. 나는 어머니가 돌아올 동안 성두의 딸과 같이 지낸다. 그러던 중 갑자기 비가 많이 내리자 나는 어머니가 걱정이 되어 우산을 들고 어머니를 찾아 아버지의 무덤을 찾는다.

  아비의 무덤가에는 성두도 어머니도 보이지 않았다.
  소리 내어 어머니를 부르려던 순간, 숲 속으로부터 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비는 더욱 거세어지고 있었다. 복례를 무덤가에 두고서 나는 숲을 헤쳤다. 커다란 소나무 옆에 서 발견한 어머니와 성두를 보며 하마 터라면 소리를 지를 뻔 하였다. 어머니는 소나무를 잡고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성두는 어머니의 허리를 잡고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기이한 모습이라고 생각하였다. 어머니의 신음소리를 듣고서야 더 이상 그 광경을 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였다. 되돌아서서 냅다 뛰었다. 아비의 무덤가에 있던 복례의 손을 낚아채 무작정 뛰었다.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 온 나는, 툇마루에 앉아 처마 밑에서 떨어지는 빗방울만 말없이 바라보았다. 복례는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복례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나는 얼굴을 붉히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 언제인가 장터 국밥집 앞에서 이루어지던 암캐와 수캐의 행위가 연상되어 떠올랐다.

  그 이후 어머니는 임신을 하게 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할머니와 어머니는 다툼이 심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방파제로 나간다.

  어머니와 내가 방파제에 이르렀을 때, 거센 파도는 한두 덩이의 포말을 장난스럽게 던져 왔다. 그때서야 비로소 나는 어머니의 치마를 잡아당기며 집으로 돌아가자고 졸랐다. 어머니는 방파제 위에서 나를 꼭 껴안았다. 어머니의 품은 따스하고 포근하다고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깊은 한숨이 또 다시 나의 귓전에 내려앉았다. 나는 어머니의 팔에 꽁꽁 묶여 있었다. 숨이 막혀 왔다. 그래도 나는 빠져나가지 않았다. 그래야만 조금이라도 어머니를 위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순간 어머니가 나를 놓아 주었다. 싸늘한 공기가 내 볼을 스치는 순간, 어머니의 몸이 파도를 향해 날아갔다. 본능적으로 내 팔이 나아갔지만, 파도가 어머니의 몸을 덥썩 삼켜버린 후였다.
  "엄니!  엄니! 엄니!"
  파도소리는 마치 조롱하듯이 내 절규를 삼켜버렸다. 나는 '엄니!'를 계속 부르며 마을 쪽으로 뛰어갔다. 시위를 떠난 천둥번개가 마을 한가운데를 강타하였다. 순간, 번갯불에 반사된 팔녀각이 내 시야에 떠올랐다. 그리고 이내 사라졌다.

  어머니가 죽은 후 시신을 찾지 못한 할머니는 영혼이라도 건지기 위해 굿을 하였지만 번번이 건지지 못한다. 결국 할머니는 남은 옷가지들로 아버지 무덤 옆에 초라한 무덤을 만들어 준다. 그 후 성두는 독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했지만 딸 복례의 발견으로 목숨만은 부지하나 몸은 마비된다.
  여기까지가 나의 회상부분이다. 나는 당골네가 준 대신대를 들었지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결국 당골네가 대신대를 가져갔고 둘러선 사람들 중에서 어머니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찾기 시작한다.

  어머니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인가…… 초조한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그때였다. 구석진 곳에서 교미중인 한 쌍의 개가 내 시야를 파고들었다.  순간 나의 뇌리에서는 용접 불꽃같은 그 무엇인가가 떠올랐다. 나는 벌떡 일어섰다. 읍내 쪽을 향해 내달렸다. 당골네의 춤사위는 계속 이어졌다.
  바리지게에 성두를 지고 굿판으로 되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한결같이 토끼가 되어 귀를 쫑긋거렸다. 둥그렇게 뜬 눈들은 벌겋게 상기된 채 씩씩거리고 서 있는 나와, 바리 위에서 웅크리고 있는 성두를 번갈아 보았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지게를 세우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성두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성두를 대신대 쪽에 앉혔다.
  성두는 퀭한 한쪽 눈만 깜빡거리며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에 바빴다. 나는 동네 구멍가게 아주머니가 쥐고 있던 대신대를 빼앗아 성두에게 내밀었다. 성두는 내가 시키는 대로 대신대를 받아 들었다. 할머니를 비롯한 어느 누구도 나의 행동을 막지 않았다. 오히려 당골네의 춤사위와 박수무당들이 울리는 악기 소리는 더욱 더 요란스러워져 갔다.
  구경꾼들은 웅크리고 앉아 대신대를 쥔 성두의 모습을 보며 귓속말들을 주고받기에 여념이 없었다. 성두의 등장은 뜻밖에도 시든 굿판을 되살리고 있었다. 주변상황에 아랑곳 하지 않고 성두는 진지하게 대신대를 움켜쥐고 있었다. 환자답지 않게 자세도 곧았다. 무슨 말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의 입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듯이 쉼 없이 움직였다. 그 대화의 상대는 아마도 어머니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성두의 몸이 뒤틀리며 바다로 빨려 들었다. 당골네는 황급히 성두에게 다가섰다.
  "워메, 걸려부렸구먼!"
  누군가의 입에서 탄성이 튀어나왔다. 당골네는 날렵하게 성두를 낚아채 둑 가장자리로 끌어올렸다. 웅크렸던 성두의 몸은 꼿꼿하게 펴지기 시작하였다. 대신대를 꽉 움켜쥔 그는 당골네의 몸짓마냥 허공을 향해 껑충껑충 뛰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대신대에 매달았던 물건들이 물 밖으로 튀어 오르며 물보라를 일으켰다. 석양빛에 어우러진 물보라는 아주 짧은 사이에 앙증맞은 무지개를 만들었다. 성두는 대신대를 머리 위로 올려 거머쥐었다. 대신대와 성두의 몸은 직각을 이루었다. 성두는 대신대를 휘휘 휘저으며 마을을 향해 뛰었다.
   당골네는 대신대의 끝을 잡고서 허둥지둥 뒤따랐다. 뒤뚱거리며 뛰어가는 성두의 모습을 보는 사람들의 입과 눈은 커다랗게 열린 채 한동안 닫히지 않았다. 성두의 모습은 창을 머리 높이 올려 적진으로 돌진하는 병사를 연상하게 하였다. 쇠약해져 걷기조차 힘들었던 성두에게 들린 어머니의 혼령은 기적을 연출해내고 있었다.  
  어머니의 넋을 찾긴 찾았지만, 어머니는 끝내 송씨 가문을 거부하였다. 성두를 앞세운 어머니의 넋은 우리 집을 외면한 채 산마루를 탔다. 당골네가 성두를 막아 세우며 팔녀각 쪽으로 인도하였으나, 성두에게 실린 어머니의 의지는 막을 길이 없었다. 어머니는 고개를 넘더니 성두의 집으로 들어갔다. 결국 어머니의 넋을 하늘로 올리는 승천 굿은 성두네집에서 이루어졌다. 어머니의 밥그릇에는 한 오라기의 머리카락이 들어 있었다. 그날밤, 성두는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로 숨을 거두었다.

  그날 새벽 주인공은 팔녀각이라는 괴물이 피를 토하는 악몽을 꾸게 된다. 그 때 팔녀각은
불에 타고 있었다. 그 안에 할머니가 들어앉은 채……

  성장소설적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는 「팔녀각」은 여러 개의 소설적 모티프가 혼재되어 있는 작품이다. 할머니와 팔녀각으로 암시되는 숙명적 인습의 질곡과 샤머니즘적 세계관이 표면적인 모티프라면 그를 거부하려는 새로운 세계관인 어머니의 탈인습적 의지와 당당히 본능에 충실하려는 생물학적 욕구와 그 좌절에서 오는 절망과 죽음이 이면적 모티프로 작용하면서 그것이 나의 순진한 시점을 통해 형상화되고 있다. 이상에서 볼 때 이재홍이 왜 이 작품에 그토록 애정을 지니고 있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바로 그의 성장의 전부를 상징적으로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지향하는 소설적 목표는 이 함축적인 정서랄까 한이랄까 본능이랄까 건강성이랄까 무당의 끼라할까 등을 풀어나가는 것이다.
  이점은 유금호가 「숨비소리」를 평하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이재홍의 단편 「숨비소리」는 소설적 대립과 갈등을 어떻게 화해 쪽으로 결말지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단편구조의 한 전형성을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다.
  알다시피 ‘숨비소리’란 해녀들이 깊은 수심 속에서 숨을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다가 수면으로 떠 오르면서 내는 긴 숨소리이다. 말하자면 물 속이 상징하는 어둠, 갇힘, 인내의 공간과 수면 밖의 열림과 생존, 자유의 두 가지 세계에 대한 통로가 ‘숨비소리’인 셈이다.
  제주라는 조금 특별한 공간과 해녀라는 직업들과 제주 방언들이 조화를 이루며 특수 상황 속의 인간 실존과 화해에 대해 이재홍은 나름대로의 해답을 제시한 셈이다.      

  이재홍에게서 제주도는 숙명적인 덫인 동시에 행복한 창작력의 보고이기도 하다. 그가 제주도에서 자라났다는 것은 한 생을 소설 창작으로부터 자유스럽지 못하게 억매이게 하는 질곡의 밧줄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다른 작가가 가지지 못한 상상력의 원천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또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가 이 보고를 어떻게 잘 이용하느냐가 앞으로의 그의 소설가로서의 성패를 좌우할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노벨 문학상도 자기 지방을 처절하게 사랑하고 그것을 최고의 가치로 긍정하면서 생생한 체험으로 풀어나간 작가들에게 주어지는 것임을 상기할 때, 이재홍에게도 제주도의 생체험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소설적으로 형상화하느냐가 관건이 됨은 재언을 요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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