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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홍의 소설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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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신

                    변    신
                                                                                    
  녀석이 갑자기 귀국해 버렸다. 온다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편지 한 장 달랑 남겨두고 일본 땅을 떠나버린 무심한 녀석. 어디가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녀석이었다. 형편없이 뚱딴지같은 녀석이었다. 제 잘난 멋에 살다가 제 멋대로 내 곁을 떠나 가버린 녀석. 어쩌면 잘 귀국해버렸다는 생각이 들어 홀가분하기도 하였다.
  나는 연구실 사물함에서 발견한 편지봉투를 쥐고서 평소에 녀석과 활보하던 은행나무거리로 나섰다. 봉투는 제법 두툼하였다. 말없이 사라지는 자기변명만 가득할 것이라는 생각만 들뿐이었다.
  녀석이 사라진 캠퍼스는 텅 빈 공간이란 느낌이 들었다. 녀석과의 마지막 만남을 가졌던 은행나무 그늘 아래 박혀 있는 의자들도 텅 비어 있었다. 식당에서 점심식사가 끝나면 늘 한 잔의 커피를 마시던 곳이었다. 녀석이 없는 그 시점에서의 의자는 이미 의자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것 같아 보였다.
  나는 의자에 앉자마자 편지의 겉봉을 뜯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봉투를 뜯던 손은 멈추고 있었다. 문득 녀석이 일본 땅을 황급히 떠난 이유들을 나름대로 추리하기 시작하였다. 그동안의 녀석의 톡톡 튀는 행동들이 기억 속에서 스믈스믈 기어 나오기 시작하였다.
  몸을 뒤로 눕히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새파란 은행잎들이 나의 시야를 꽉 메웠다. 간혹 물결치는 잎사귀들 사이로 파란 하늘이 엿보였다. 신기루와 같은 녀석의 행적들이 내 기억의 은막에서 상영되기 시작하였다.
  
  녀석과 내가 처음 만난 것은 군복무를 마치고 4학년에 복학하였을 때였다. 강의실에서 만나는 녀석은 항상 구석진 곳에 앉아 있곤 하였다. 될 수 있으면 창문이 없는 자리, 될 수 있으면 빛이 안 드는 자리에 웅크린 녀석은 언제나 검정물감으로 염색한 군복을 입고 있었다. 녀석의 얼굴에 솟아오른 광대뼈를 볼 때마다 마치 배고픔에 시달리는 아프리카의 어느 소년의 모습을 연상시켜 주고 있었다.
  하지만, 퀭한 녀석의 눈은 광채가 빛나고 있었다. 분명 살아 있는 눈이었다. 그 눈빛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강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녀석은 골수 운동권이었다.
  "우리 고조할아버지는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되찾겠다고 독립운동을 하다가 갈기갈기 찢겨 돌아가셨지요. 그 분들이 목숨을 바쳐서 이루어 놓은 나라를 머리에 똥만 가득 찬 놈들이 정치를 한다니 원."
  녀석과 처음으로 대화의 물꼬를 텄을 때, 나를 향해 대뜸 던져 온 말이었다. 녀석은 강의가 끝나기 무섭게 동아리실로 향하곤 하였다. 매일 동아리실에 처박혀 소주병에 신나를 붓고 솜뭉치를 틀어막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지포라이터를 그어 댈 때마다 녀석의 눈동자는 라이터의 불꽃 이상으로 이글거리곤 하였다.
  내가 일본으로 떠나온 후에도 들리는 풍문에 의하면, 녀석은 운동권 후배들과 함께 '군부독재타도'라는 머리띠를 두르고 데모대의 선봉역할을 계속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녀석은 군사정권에게 있어서 꽤 골치 아픈 존재였다. 그래서 군사정권은 녀석에게 「감방생활」과 「유학생활」이란 양자택일의 기회를 주었다고 하였다. 녀석은 끝까지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겠다고 발버둥쳤지만, 결국에는 일본유학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듯하였다.
  어쨌든 녀석은 사비(私費) 유학생으로 어렵사리 생활하고 있는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국비(國費)유학이란 배지를 달고 일본에 나타났다.
  녀석은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나를 찾아왔다. 막무가내로 쳐들어 온 녀석은 내 방을 점거하였다. 국비유학생에게 주어지는 유학생회관이란 안락한 방을 내팽개치고 토끼장 같은 나의 방에 똬리를 틀어버렸던 것이다.
  녀석의 일본생활은 소금에 푹 절인 배추처럼 시들시들하게 시작되었다. 하루 세끼 밥을 먹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끼도 재대로 못 먹는 사람처럼 비슬거렸다.
  정치학을 연구한답시고, 녀석과 나는 술자리가 벌어지는 날만 되면, 허구한 날 한국의 정치현실을 입에 올리곤 하였다. 녀석은 한술 더 떠서 때때로 일본의 시사 잡지에 한국의 군부정치에 대한 비판원고를 게재하기도 하였다.
  녀석은 소위 친한파라는 일본인들과 남쪽도 아니고 북쪽도 아닌 재일동포들 사이에서 인기가 치솟았다. 그 인기 덕분에 나는 녀석의 팬들에게서 공짜 술을 얻어 마실 기회가 많았다. 갈수록 녀석은 오만해 지고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녀석에게 시어머니 노릇을 하곤 하였다.
  "내 나라의 일을 이곳 일본에서 까발린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못돼. 한국이 안 되길 가장 바라는 놈들한테 자존심 상하잖아."
  그래도 녀석은 군사독재는 물러가야 한다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내 잔소리가 듣기 싫어지면 다다미방 위에 뒹굴며 '아침이슬'을 불러댔다.
  일본의 브라운관을 통해 연일 민감하게 보도되는 한국 학생들의 데모뉴스를 대할 때마다 그는 술을 찾곤 하였다. 알코올기가 몸에 돌기만 하면, 비듬이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괴로워하였다.
  "형. 나는 비겁자야. 나는 도피자야."
  그렇게 괴로워하던 녀석은 내가 다니는 T대학원의 연구생이 된 후로부터 밝은 모습을 되찾기 시작하였다.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쪽발이 말을 공부하게 될 줄이야 알았겠어? 내 원 참."
  녀석은 평소에 자신이 가장 싫어하던 일본 땅에 와서 그것도 그렇게 싫어하던 일본어를 습득해야 하는 현실을 볼멘소리로 하소연하였다.
  녀석이 일본에 발을 디딘 지 1주년이 되던 날. 우리는 신주쿠(新宿)의 어느 이자카야(선술집)에서 술독에 빠져 있었다.
  "형, 쪽발이들. 모두 개미같이 열심히 일하며 잘 살고 있어."
  "그래, 그것이 우리가 배워야 할 점들이지……."
  "그렇지만 말이야. 그들이 마냥 밉게만 생각되는 이유는 뭘까?"
  "그 문제는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일지도 몰라. 우리가 이들에게서 받은 아픈 상처가 너무 깊숙하게 박혀 있기 때문이지."
  "내가 일년을 살아본 결과, 짜식들이 한국인들을 너무 무시하고 있는 듯해. 내가 일본말이 짧아 함부로 따지지는 못하지만 말야. 내 입이 터지는 날엔 가만 두지 않겠어."
  녀석은 어느 정도 일본사회에 적응이 되었나 싶었더니 그렇지도 못한 듯하였다. 내 경험대로라면, 한 일년정도 유학생활을 하게 되면, 우선 새로운 문화와 환경에 대해 친밀감을 갖기 마련인데, 녀석은 가슴에 예리한 칼을 품고 있었다. 한솥밥을 먹으면서 그 정도까지 응어리를 갖고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문득 '아! 내가 녀석에게 너무 무관심했다'라는 생각이 들자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그래서  벚꽃이 만발한 어느 휴일. 녀석과 함께 도쿄(東京)시내를 구경하게 되었다. 일일 관광버스가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천황궁 앞이었다. 각종 인종들이 다 전시되어 있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수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들끓고 있었다. 지방에서 올라 온 일본인 단체들은 한결같이 숲에 가려진 궁을 향해 목례를 올리고 있었다. 녀석은 신기한 구경거리라도 된다는 듯이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해가 구름에 가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햇살을 피하는 듯한 찡그린 표정을 지어대던 녀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 인간들은 자기네 왕궁 앞에 와서 기도를 하네."
  "신기할 것 없어. 저들의 천황은 죽으면 신이 되는 족속들이니까. 미리서 신이 될 사람한테 인사하는 것이겠지 뭐."
  나는 생각나는 대로 지껄인 다음, 관광버스로 발길을 돌렸다. 천황궁 앞에는 도쿠가와이에야스(德川家康)가 심어 놓았다는 소나무들이 가득 늘어서 있다. 아름드리 소나무들은 너무 인위적인 분재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너무나 잘 가꾸어 놓은 자연의 분위기 속에서 나는 또 한번 일본의 힘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도쿄의 중심지에 도도하게 자리 잡은 천황궁과 건너편에 즐비한 금융가의 빌딩 숲들을 유심하게 바라보던 녀석은
  "우리 임금님은 온데간데없는데, 이 놈들의 왕은 건재하군. 더러워서."
  라고 투덜대며 침을 찌익 뱉어댔다. 버스에 다시 승차하자 가이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천황궁을 뺀 지역들이 B29전투기에 의해 불바다가 되었다는 말을 해 주었다. 나는 녀석에게 통역을 해 주었다. 녀석은 나의 통역을 듣다가 제 가슴을 두드려댔다.
  "멍청한 맥아더……. 맥아더는 두 번의 실수를 한 셈이군. 우리 6.25때 중국에 핵 한방 떨어트렸더라면 우리나라가 반으로 조각나지도 않았을 것이고, 도쿄 공습 때에도 천황궁을 때려댔더라면 우리의 한풀이도 되었을 텐데……."
  녀석은 맥아더가 천황궁을 폭격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는 사실을 너무 억울해 하였다.
  "형, 일본이 천황을 구심점으로 똘똘 뭉치고 있듯이, 만약 우리나라의 왕정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면, 일본보다 더 잘 뭉칠 수 있었겠지?"
  창밖에 시선을 두고 있던 녀석은 잠꼬대처럼 입을 열어댔다. 조선왕조가 계속 이어졌더라면, 한반도가 분열되는 비극도 없었을 것이고, 정통성이 없는 정부가 판을 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주절거렸다.
   그즈음, 한국에서는 대통령 선거로 인해 선거의 열기가 한참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어느 날, 밖에서 들어온 녀석은 밝은 미소를 가득 띠고 있었다.
  "형, 곧 군사독재정권이 사라질 거야. 민주정권으로 바뀐단 말이야.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야당후보들이 단일화만 된다면 말이야. DJ와 YS는 단일화를 이룰 거야. 암. 꼭 그렇게 될 거야."
  녀석의 얼굴에는 희망의 장미꽃 한 아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한동안 녀석은 도서관에 박혀 살다시피 하였고, 일간신문과 주간지들의 자료를 통해 한국의 대통령 선거전을 분석하며 선거의 향방을 점치기에 바빴다. 매일 한국 신문을 대할 때마다 녀석의 얼굴표정은 시시각각 변하였다.
  집에 돌아와 녀석과 얼굴을 맞대기만 하면, 나는 마치 닭싸움이나 하듯이 녀석과 입 싸움을 계속하였다. 왜냐하면 나는 녀석과 달리 단일화가 안 될 것이라는 쪽이었기 때문이었다.
  "정치하는 인간들은 다 도둑들이야. DJ이건 YS이건 제 아무리 민주화를 위해 희생해 왔다고 하지만, 서로 양보하지 않을 걸. 서로 제 잘 났다고 떠들고 있으니까 말야. 한발만 앞서면 왕관을 거머쥘 수 있는데 누가 양보할 수 있겠어? 또한 경상도와 전라도가 벌이고 있는 망국의 지역감정은, 두 사람 중 한사람을 택할 수 있는 성숙한 선거풍토로 이어지지 않게 하고 있어. "
  "형, 누가 뭐라고 해도 DJ가 양보해야 될 거야."
  "아니야. 나는 YS가 양보해야 된다고 생각해."
  녀석과 나의 입씨름은 먹던 밥상의 물 잔을 집어던지기 직전까지 가곤 하였다.
  "봐라 봐. 지금 당장 너와 나부터가 서로 점찍고 있는 상대가 틀리잖니. 두 후보자나 그 뒤를 따르는 추종자들은 모두가 욕심에 꽉 차 있어……. 이번에는 단일화가 안 돼. 만일 단일화가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안 되면 역사는 역행되는데도? 그런 바보짓은 안 할거야."
  "두고 보면 해답이 나올 게야."
  두 야당 후보가 본격적으로 선거전에 돌입하기 시작하였을 때, 왠지 그 입심 좋던 녀석의 말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녀석은 더 이상 신문도 보지 않았다. 점점 녀석의 두 눈은 원한이 가득한 원귀의 눈동자로 변해가고 있었다. 술을 마시는 빈도도 갈수록 많아졌다. 군인의 억센 발길에, 경찰의 박달나무 곤봉에 유린당하면서도 찾기 위해 발버둥치던 녀석의 민주화는 다시 멀어지고 있었다. 녀석은 밤마다 소쩍새처럼 뒤척거리며 잠을 못 이뤘다. 녀석에게서는 한동안 알 수 없는 증오가 가득 넘쳐흐르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우리들의 민심을 이끌어 갈 구심점이 없기 때문이야. 역시 한국은 임금님이  다스리는 나라이어야 했어."
  "군주제를 다시 하자는 거야?  차라리 전주 이씨로 성을 바꾸지 그래."
  내가 핀잔을 주어도 녀석의 임금님타령은 입버릇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녀석은 한국이 가진 모든 문제점들의 원형은 일본인에게 있다는 신념이 깊어지고 있었다.

  날씨가 화창한 어느 일요일이었다. 녀석과 나는 일본의 「조선 침략사」에 대한 리포트를 작성하고 있었다. 녀석은 책상 위에 쌓인 자료더미를 정리하였고, 나는 그 자료들을 보며 컴퓨터의 자판을 두들겼다.
  "토지세 개정과 징병령에 반대하는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선 조선을 정벌해야 한다!"
  이러한 정한론(征韓論)을 외치던 메이지(明治)시대 유령들이 자료더미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와 내 동공 안으로 뛰어 들어올 것만 같았다. 그들 중에서도 가장 눈에 뛰는 인물은, 일본돈 만엔(萬円)짜리 지폐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 후쿠자와유키치(福澤諭吉)였다. 그는 1894년, 시사신보(時事新報) 지면에서
  "조선을 협박해서라도 개방시켜야 한다."
  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갑자기 녀석이 책꽂이의 책들을 뒤적거리기 시작하였다. 파란 커버를 한 책장 속에서 끄집어 낸 것은, 녀석이 비상금으로 숨겨 두었던 만엔짜리 지폐였다. 녀석은 지폐에 박힌 후쿠자와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미간을 있는대로 찌푸렸다.
  "짜식말야. 너마저 우리나라를…….평소에도 보면 볼수록 기분 나빴어. 형, 이 녀석 말이야 정말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는데?"
  녀석은 '에이 나쁜 놈. 에이 나쁜 놈.'이라고 중얼거리며, 빳빳한 지폐를 꾸깃꾸깃 구기기 시작하였다. 그러더니 구겨진 돈을 주먹 속에 다시 넣고, 있는 힘을 다 해 꽉 쥐었다가 풀고, 또 다시 쥐었다가 풀기를 반복하였다.
  잠시 후, 녀석은 손을 펴며 구겨진 지폐를 책상 위에 떨어트렸다. 제멋대로 뭉크러진 지폐는 고통스럽다는 듯이 꿈틀거렸다. 녀석은 뭉크러진 지폐를 다시 펼치며 후쿠자와를 향해 큰 목소리로 호통을 치고 있었다.
  "그래, 이처럼 아픔과 고통이 얼룩진 얼굴을 하고 있어야지."
  나는 그러한 녀석의 행동이 어느 정신병원에서나 볼 수 있는 사이코드라마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녀석은 곧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구겨진 지폐를 바지주머니에 아무렇게나 넣어 버렸다.
  나는 그러한 녀석의 파괴적인 행동을 흘낏 바라보며,
  "변태……."
  라고 비웃듯 말하였다.
  "형. 그 말 취소하지 않으면, 오늘밤. 이 돈은 몽땅 내 입으로 들어가고 말걸. 아! 오늘밤의 쐬주 맛은 너무 좋을 거야."
  "어? 술 마실 돈이었니? 그럼, 취소다. 취소. 후쿠자와님을 잘 모셔라."
  술이란 무기로 나의 기를 꺾은 녀석은 다다미 위로 벌러덩 누웠다. 녀석은 계속 몸을 비틀며 하품을 늘어지게 하였다.
  "형, 무료하다. 아무리 우리가 국제정치학을 공부한다고 하더라도 일본인들에 의해 강점 당했던 과거의 우리 역사를 들춰본다는 사실……. 어쩌면 이미 나 있는 상처 위에 또 다른 상처를 덧입히는 것과 같은 아픔인 것 같아."
  "나도 동감이야. 그러나 돈에 인쇄된 후쿠자와의 면상을 구겼다고 해서 우리네 폐부 깊숙한 곳에 구겨져 있는 자존심이 회복될 수 있겠니?"
  녀석은 화투짝만한 전화수첩을 뒤적거리며 전화 다이얼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녀석에게로 향하고 있었던 의자를 컴퓨터의 모니터 쪽으로 돌려놓고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내 나라와 관계된 리포트를 대충 끼적거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자꾸만 나를 책상 앞으로 이끌고 있었다.
  내 등에 닭살이 번지도록 은근한 목소리를 수화기에 던지고 있던 녀석이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있었다.
  "형, 어쩌지? 데이트 약속이야. 마무리는 저녁에 들어와서 내가 할께. 참, 오늘 저녁밥은 내가 챙길 테니 마음 푹 놓으쇼. 그리고 쐬주 한잔도……."
  "사라지려거든 조용히 사라져라."
  녀석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팔다리를 배배 꼬며 사라졌다. 녀석이 나간 뒤에야 나는 내 이마를 한대 내리쳤다. 녀석과 공동 리포트를 만든다는 자체부터가 잘못되었음을 새삼 느끼고 있었다. 나는 입을 삐쭉거리며, 죄 없는 자판만 두들겨 팼다.
  다다미 위에서 오전 내내 다소곳하게 침묵을 지켜오던 다이얼식 까만 전화통이 울어대기 시작하였다. 전화벨은 갓난아이처럼 징징거리며 보챘다. 나는 수화기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뇌리 한구석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리포트의 내용을 정리하기에 바빴다. 내 오른손이 곤충의 더듬이 마냥 더듬더듬 수화기 쪽으로 향하고 있을 때까지 전화벨은 집요하게 울렸다. 리포트를 낼 때마다 글자 하나에서부터 내용 하나까지 끈질기게 지적해 나가던 야마와키(山脇)선생의 집요함이 머릿속에서 맴맴 떠돌았다.
  수화기 속에서 녀석의 목소리가 내 귀청을 뻥뻥 찼다.
  "아이고! 집에 있었잖아! 형님! 전화 좀 빨리 받을 수 없어?"
  "너도 야마와끼선생 닮아 가냐? 안 받으면 끊을 것이지. 금방 나간 녀석이 웬 전화질이야? 바쁘니까 용건이나 빨리 말해!"
  나의 짜증스러운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밖으로 나오라고 떼거리를 놓았다. 내가 아무리 시간이 없다고 해도 녀석의 진드기 근성은 이길 수 없었다.
  "이 웬수야. 어디냐?"
  "여기 신주쿠(新宿) 포엠!"
  웬수, 웬수, 웬수라는 단어를 되씹으며 나는 수화기를 거칠게 내려놓았다. 오늘까지 끝내야 할 리포트를 뒷전으로 두고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짜증스럽기만 하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긋지긋한 리포트지옥으로부터의 해방감을 느끼는 아이러니가 나를 지배하였다.
  나는 여섯 장짜리 다다미방 구석에 있는 싱크대에 머리를 박아 고양이 세수를 하고서 외출 준비를 끝냈다. 이윽고 습한 공기를 헤치며 나의 자전거는 다이따바시(代田橋)역을 향해 질주하였다.
  특급전차가 지나가는 요란한 소리를 듣고서야 나는 역에 다다랐음을 느꼈다. 그 순간까지도 나는 녀석의 얼굴을 떠올리며 웬수,웬수,웬수라는 단어를 되씹고 있었다.
  기계충 자국마냥 뻥 뚫린 역앞 작은 빈터에 자전거를 세우고, 녹슨 자물통을 걸어 채웠다. 플랫폼에 들어서서 시간표를 확인하기도 전에 완행 전차가 스르르 미끄러져 들어왔다. 신주쿠(新宿)역까지는 1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포엠>이라는 찻집에 들어섰을 때, 녀석의 모습은 정면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나를 본 녀석이 씨익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총총 걸음으로 걸어가 녀석을 마주보며 앉았다. 테이블 위의 재떨이에는 녀석이 피운 마일드 쎄븐 꽁초가 가득 쌓여 있었다.
  녀석은 잠깐 나에게 짧은 미소를 보냈을 뿐, 결코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두 눈을 부릅뜬 녀석의 눈썹은 첨탑마냥 하늘을 향하고 있었고, 녀석의 주둥이에 삽입된 담배에서는 구급차를 방불케 하는 불빛이 마냥 번쩍거렸다. 녀석이 흥분해 있을 때마다 나타나는 줄담배 습관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형. 돈 좀 빌릴 데가 없을까?"
  "어디에 쓰려고?"
  "현미 빚 좀 갚아줄려구. 내가 가진 돈으로는 턱없이 모자라서 말야. 걔, 더 이상 아르바이트를 못 나가게 해야 되겠어."
  "니가 무슨 자선 사업가라도 되는 거냐? 자선사업을 하려거든 니가 돈을 벌어서 해야지. 도대체 얼마가 필요한데?"
  "한 오십만엔 정도……."
  "야, 이 닭대가리 친구야. 오십만엔이 누구네 애 이름인줄 알어? 일반 샐러리맨의 월급이 15만엔에서 20만엔밖에 안 된다는 거 몰라?"
  "구렁텅이로 떨어지고 있는 아이를 그대로 놔 둘 수는 없잖아. 빌어먹을 쪽발이 녀석들. 글쎄 말이야. 짜식들이 학교까지 찾아와서 현미를 치근댄다는 거야. 그리고 말이야. 일본 환락가 한 복판에서 한복 입고 쪽발이들한테 웃음을 판다는 것이 꼭 현대판 위안부 같아서……."
  녀석이 현미를 만난 것은 한달 전의 일이었다. 한국유학생회에 다녀온 녀석은 아주 예쁘고 참한 여동생이 생겼다고 좋아하였다.
  디자인 공부를 하겠다고 일본 땅을 밟은 현미, 그녀는 미모 때문에 쉽게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녀가 하는 일은 코리언클럽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술손님을 접대하는 일이었다.
  한때는 엔화를 벌기 위해 연예인 자격으로 송출된 미녀들이 코리언클럽을 점령하고 있었지만, 일본의 버블경기가 깨진 후로부터는 송출미녀들이 급격하게 줄었다. 그러한 공백들을 유학생들이 대신하고 있었다. 가난한 유학생인 현미가 세계적인 고물가의 도시에서 쉽게 살아갈 수 있는 일자리는 역시 코리언크럽 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녀석의 의협심이 좋다고 하지만, 요사이의 녀석을 보면 무리한 수를 두고 있는 바둑판을 보듯 자꾸만 불안하게 여겨졌다.
  얼마 전에는 생활비가 없어 궁지에 몰려 있던 유학생에게 장학금을 통째로 줘 버리고 나에게 의지하였던 녀석. 내 친동생 같았으면 쥐어박아서라도 녀석의 괴벽을 고쳐주었으련만,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유학생활 3년째로 접어든 녀석은 일본어를 뛰어나게 구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녀석은 연구생에서 대학원생으로 신분이 바뀌었고, 내가 속해 있는 국제정치학전공으로 들어 왔다.
  녀석의 투쟁정신은 일본 땅에서 다시 새로운 싹을 틔우고 있었다. 녀석은 재일교포의 인권문제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였으며, 종군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이 벌이는 집회에 자진해서 찾아다니기도 하였다. 학교생활을 내팽개치다시피 하고 돌아다니는 녀석의 눈에는 광채가 번뜩거렸다. 강의실에서 처음으로 녀석에게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던 그때의 눈빛처럼.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며칠씩이나 집을 비웠다가 돌아 온 녀석은 난데없이,
  "형, 정말 자존심 상해 죽겠어. 못된 짓만 골라서 해 온 녀석들이 잘 살게 되었다고 뭐든지 돈으로만 해결하려고 든단 말이야. 자기들이 일으킨 전쟁에 대한 어떤 죄책감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고……. 요놈의 섬나라를 삽으로 푸욱 떠서 태평양속에 집어넣어야 정신 차리려나?"
  삽질하는 흉내를 내는 녀석의 모습을 보며, 나는 어이가 없어 넘어지는 시늉까지 연출하였다. 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핀잔을 던졌다.
  "이 화상아. 결국 오랜만에 집에 들어와서 한다는 이야기가 고작 비현실적인 삽질 이야기냐?"
  "하도 답답해서 하는 소리야.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을 돈 몇 푼으로, 그것도 민간차원에서 해결하려는 저놈들의 저의가 괘씸하단 말이야. 우리의 짓밟힌 자존심을 되찾겠다는 데, 놈들은 우리의 자존심을 더 무참하게 짓밟고 있어."
  "그것은 우리가 그만큼 약하기 때문이야. 일본이 미국이나 유럽의 열강들에게 콧대를 세우는 것을 본적이 있니? 약자에게는 한없이 강하지만, 강자에게는 한없이 약한 민족이니까……. 그러니까 극일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국력이 켜져야 돼. 가끔 축구나 권투 하나 이겼다고 해서 만족할 일들이 아니라고."
"제길, 일본여자들을 우리나라 군인의 위안부로 썼어야 했는데 말이야. 우리 임금님은 왜 이 놈들한테 당했는지 모르겠어."
  녀석은 나의 말에 수긍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당장 치밀어 오르는 부아를 못 참겠다는 듯이 주먹으로 책상을 탁탁 쳐댔다.
그렇게 반정부를 일삼던 철저한 운동권이었던 녀석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민족주의자로 변신되어 가고 있었다.

  녀석이 일본을 떠나기 3일전의 일이었다. 아침부터 리포트자료를 얻기 위해, 녀석을 앞세우고 영상자료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전쟁 기록테이프를 대출 받아 비디오플레이어에 꼽았다.
  동남아시아와 태평양에서 종횡무진 하는 일본인들의 잔인한 전쟁놀이가 펼쳐지고, 강제연행, 강제징용, 전쟁물자 수집, 곡식수탈, 이어서 가미가제, 원자폭탄 등으로 이어지던 테이프는, 일왕(日王)의 항복문서조인과 함께 서서히 끝나가고 있었다.
  "텐노헤이카. 반자이! 반자이! 반자이!(천황폐하. 만세! 만세! 만세!)"
  일장기의 물결이 일왕 앞에서 일렁거렸다. 2차 세계대전의 패전을 담은 기록영화에 나타난 일장기의 물결은 너무 강렬하게 파도쳤다. 패배했으면서도 패배한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자신들의 왕 앞에서 광적으로 환호하는 기모노를 입은 일본인들. 그들은 패배한 왕을 위해 만세를 불렀다.
  일장기의 흔들림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비디오의 화면에서는 제작진들의 이름들이 흘렀다. 갑자기 흑백화면은 화면 조정용 컬러판으로 이어지면서 잠시 후에, 검은 반점들이 얼룩진 화면으로 변하였다.
  녀석은 계속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녀석은 잠든 듯이, 죽은 듯이,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녀석의 눈은 이상하리만치 진한 광채를 띠었다.
  2차 세계대전의 기록테이프 속에서, 나는 그들 군국주의가 뿌려 댄 피비린내 나는 살상과 피지배 민족에 대한 학대자료를 얻고자 하였지만, 그 어느 구석에서도 만족할 만한 자료를 발견할 수 없었다. 동남아 각국에서 활약하던 잔인한 흡혈귀의 얼굴은 항복문서 한 장에 가려져서 온데간데 없었다. 오히려 원자폭탄 한방을 맞고 여기저기에 붕대를 잔뜩 감은 그들의 얼굴만이 피해자로 클로즈업되어 부각되고 있었다.
  우리는 영상자료실을 빠져나왔다. 푸른 은행잎들이 가득한 터널을 지났다. 녀석과 나는 자료를 복사하기 위해 세이쿄(生協)로 발길을 돌렸다. 세이쿄와 기숙사 사이의 길바닥에는 세일 중인 전자제품들로 가득하였다.
  진열된 TV들이 정규방송을 흘러 보내고 있었다. 방송사들마다 며칠 후면 결혼할 황태자의 모습과 예비 황태자비의 모습을 화면 가득히 채우고 있었다.
  내 시선이 화면에 머물었을 때에는, 황태자의 성장과정과 예비 황태자비의 성장과정을 흘러 보내는 중이었다. 가끔은 왕제(王制)를 택하고 있는 다른 나라들의 왕가(王家)결혼식 장면들을 맛보기로 보여 주기도 하였다.
  무심결에 화면 속에 푹 빠져 있던 나는, 정신을 차리고 녀석을 찾았다. 녀석은 건너편 대형화면 앞에서 아예 쭈그리고 앉아 넋을 뺏기고 있었다. 나는 녀석에게 다가가 녀석의 엉덩이를 발길로 툭 걷어찼다. 그때서야 녀석은 엉거주춤 일어섰다. 발길을 돌리면서도 녀석의 눈은 화면 속에 몰입되어 있었다. 화면에서는 단란한 왕가의 가족사진들이 전개되고 있었다.
  "야! 부럽다. 형, 저기에서 일본의 힘을 느낄 수 있지 않아?"
  나는 녀석을 향해 고개를 끄덕거려 보이며 세이쿄로 들어섰다. 세이쿄의 왼쪽입구에는 복사를 하기 위해 늘어선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복사카드를 사기 위해, 연극티켓이나 극장표 등을 예매하는 조그만 상점 앞으로 갔다. 내가 복사카드를 사는 동안, 녀석은 또 다시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녀석의 멍한 시선이 머물고 있었던 곳은 여행안내 코너였다. 계단식 진열대에는 세계의 여행안내 팸플릿이 가득하였다. 녀석은 경복궁(景福宮)의 전경이 담긴 팸플릿을 집어 들었다. '2박3일 환상의 서울 투어'라는 글씨가 크게 박혀 있는 팸플릿이었다. 녀석은 기숙사 쪽에서 흘러나오는 일본 왕가의 화면과 경복궁의 사진을 번갈아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일본의 단조로운 궁궐보다 우리네 궁궐이 훨씬 아름답지? 그러면서도 말이야. 경복궁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마치 독백처럼 지껄이던 녀석은, 갑자기 배를 감싸며 계단 아래쪽의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나도 녀석의 뒤를 쫓았다. 화장실은 어두웠다. 녀석은 소변기를 붙잡고 몇 번인가 구토를 하고 있었다. 내가 건네주는 화장지 조각으로 입을 몇 번이고 닦았다. 피씩 웃는 녀석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형, 고마워. 오늘 아침밥을 잘 못 먹은 것 같아……. 제길 헐."
  나는 녀석의 등을 두드리며 세이쿄를 빠져 나왔다. 녀석은 비틀거리며 벤치에 걸터앉아 다시 입을 열었다.
  "형. 실은 말이야. 갑자기 명성황후의 잔영이 떠오르더니 속이 뒤틀렸거든?"
  며칠 전, 녀석과 나는 츠노다후사코(角田房子)가 쓴 「민비암살」이라는 책을 접하였다. 책을 읽고 난 후에 나와 녀석은 밤새도록 다다미방 위에서 명성황후의 살해사건에 대해 논의를 하였었다. 츠노다후사코는 일본인으로서는 최초로, 명성황후의 죽음은 일본 정부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식의 논리를 전개하고 있었지만, 우리 한국인들의 속이 뻥 뚫릴만한 그런 명쾌한 답은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황후의 죽음 이후부터 이어지는 조선왕조의 비극, 그것은 대한민국 역사의 비극이라는 사실을 츠노다는 간과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쨌든 녀석의 뇌 속을 잠식하고 있던 잃어버린 왕조의 비애는, 여행가이드에 나타난 경복궁의 사진을 대함으로써 다시 되살아나고 있었다. 녀석이 갑자기 어린아이의 목소리를 내며 장난스럽게 질문을 던져왔다. 나 또한 아무 부담 없이 녀석에게 답을 던졌다.
  "우리 임금님은 어디로 갔지?"
  "아리랑고개 너머로 갔지."
  "우리 임금님은 왜 안 돌아오시지?"
  "네가 불러주지 않으니까."
  "어디에 계실까?"
  "하늘과 땅 사이에."
  "돌아오시면, 어디에서 살지?"
  "아파트."
  "에이, 임금님의 집은 궁궐이잖아. 경복궁도 있고, 덕수궁도 있고, 창경궁도 있고……."
  녀석과 나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낄낄대며 웃었다. 녀석은 너무 재미있다고 발을 동동거렸다.
  둘은 다리를 쭉 뻗고 벤치 등거리에 머리를 기대었다. 은행나무 사이사이로 하늘이 엿보였다. 녀석과 나는 계속하여 말을 주고받기 시작하였다. 녀석과 나의 입은 붓이 되어 하늘 속에 잔잔한 수채화를 그려가기 시작하였다.
  "경복궁에서 왕세자비 간택이 완료되었음을 발표한다."
  "근정전 뜰에서는 축하 궁중악이 울려 퍼지고, 국내외의 많은 취재진들이 취재를 하느라고 야단법석을 떤다."
  "궁중복을 입은 왕세자와 예비 왕세자비의 모습이 TV화면에 가득 차 오른다."
  "얼마 후. 백마를 탄 왕세자와 꽃가마를 탄 왕세자비가 종로통에서 결혼행진을 한다."
  "온 국민들은 관광버스를 타고 종로통으로 구경을 온다."
  "아침마다 TV에서는 임금님께 문안인사를 올리는 왕세자 부부의 모습이 방송되고, 국민들은 자식들에게 본받으라고 일러준다."
  "아들을 목마 태우고, 왕가의 궁중생활을 보기 위해 경복궁으로 소풍을 간다."
  "아들아, 저쪽은 임금님이 사시는 곳이란다. 저 분은 우리나라 몇 대 임금님이시란다. 그 위는 누구이시고, 그 윗대는 누구누구이시란다."
  "저 우리의 전통 의복들을 보아라. 우리 한민족의 아름다움이 베어 있단다."
  "뉴스시간에는 외국의 방문객들이 우리 임금님께 하례 올리는 장면들이 흐르고……."
  한 무리의 비둘기 떼가 날아드는 바람에 수채화 그리기는 이쯤에서 끝내고 말았다. 비둘기들을 지켜보며 생각났다는 듯이 녀석은 말을 이었다.
  "서구 여러 나라의 왕조(王朝)는 자기 국민들의 힘에 의해 쓰러져 갔어. 그들에게는 더 이상 왕조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우리의 왕조는 우리 국민들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일본이란 외세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어. 오백년이란 그 기나긴 역사를 지닌 조선이라는 왕조가……. 우리는 독립이라는 환상 속에서 왕조를 망각해 버렸어. 실은 일본으로부터 독립했을 당시에 왕정(王政)이 복구되었어야 했어. 우리가 진정으로 왕정을 원치 않았다면, 복구시킨 후에 우리 민족의 힘으로 왕정을 해체시킬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그리고 말야. 우리의 왕조 앞에 일본의 왕이 무릎 꿇고 사죄도 해야 되었고……. 조선왕조 오백년 역사는 최소한 우리 민족의 자존심의 맥(脈)이었으니까."
  "녀석아. 꿈꾸지 마라. 현실적으로 이미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으니까."
  "형. 웃기지 마라. 어째서 불가능한 일이야? 어쩌면 우리나라의 정치판이 갈팡질팡 엉망인 것도 힘을 한군데로 모을 수 있는 구심점이 없기 때문이야. 어쨌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해. 단 하루만이라도 우리 왕조를 복원시켜서 우리의 자존심을 세워야 해. 일본인들에게 보아란듯이 말이야."
  나를 향해 항변하는 녀석에게는 어떤 확고한 신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 역시 녀석의 말에 동감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네 말이 틀리지는 않아. 어쨌든 일이 잘못 풀린 것은 이승만 정권 때문이었지 뭐. 자유당의 정권욕 때문에 말이야."
  "일단 왕정이 복구되었더라면, 구심점이 있었기에 6.25같은 동족상잔도 안 일어났을 것이고, 쪽발이들이 감히 우리를 얕잡아 보지도 않았을 거야 ."
  "과거는 흐을러 갔다아아! 라는 노래가 있지. 공연히 머리 아플 필요가 없어. 고리타분하게 스리……."
  "고리타분하다고? 우리에게 직면해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인데도? 그렇다면 총독부건물이었던 박물관을 왜 부셔야 하는 거지? 그것은 우리 민족의 자존심의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 아니겠어? 형! 한번 물어보겠어. 형은 우리나라가 진정으로 광복을 찾았다고 생각해?"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으로 무슨 말이야?"
  "우리가 진정으로 광복을 찾았느냐, 그 말이야."
  "1945년 8월 15일은 광복절!"
  "아니야. 우린 광복을 찾지 못했어. 임금님을 찾지 못하고 어떻게 광복을 찾았다고 할 수 있는 거야?"
  녀석은 머리를 흔들며 절규하였다. 녀석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녀석은 나에게 간다는 말도 없이 가방을 들고 성큼성큼 걸어가 버렸다. 나는 녀석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화염병을 들고 성큼성큼 걸어가던 녀석의 옛 모습이 문득 기억 저편에서 되살아났다.

  내 손에 쥐어진 편지를 뜯어 내용물을 꺼냈다. 세이쿄에서 보았던 경복궁의 여행안내 팸플릿이 들어 있을 뿐이었다. 나는 황당한 기분을 느끼며 경복궁 사진을 바라보았다. 아랫부분에 검은 글씨가 나의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임금님을 찾기 위해 떠나는 거야……. 이젠 우리의 자존심을 찾는 운동이 시작될 때가 되었어.'
                                                    『교단문학』 (1998,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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