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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홍의 소설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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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 없는 날




                         재수 없는 날
                                                                                          
  "제길 헐. 나도 한참 잘 나갈 때가 있었지. 비까번쩍한 자가용에 마를린 몬로 뺨치는 여자들을 태우고 다니면서 북한강변에 으리으리한 식당들만 찾아 다녔어. 밤마다 불야성 같은 모텔에서 그녀들의 벗은 몸을 관찰하는 재미가 짭짤했었는데…… 그때 내 호주머니에는 빳빳한 수표들만 가득했었어. 역시 돈만 있으면 여자들이 사족을 못 쓰더라고. 내가 이 무슨 꼴인지 모르겠어. 아이엠에프(IMF)가 날 죽였어……."
  낚시터에서 만난 어느 한 인간의 푸념이었다. 배때기의 기름기가 팅팅한 것으로 보아서는 능히 잘 나가던 인간 같았다. 어떤 일을 어떻게 해서 그토록 재미를 보고 다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은 인간이었다. 더 이상 그의 푸념들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래서 그 인간이 지껄이든 말든, 잔잔한 수면 위에 드리워진 찌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 반응이 시원찮아지자 인간은 그제야 자신이 드리워 놓은 낚싯대 쪽으로 향하였다. 나는 괜스레 가래도 없는 목을 짓눌러 칵악카악 가래침을 뱉어댔다.
  요즘 낚시터에서는 온전한 인간들을 만나기가 힘들었다. 직장에서 쫓겨 난 인간들. 사업하다가 부도내고 도망 다니는 인간들. 마누라 등치고 사는 인간들……, 나 역시 아이엠에프인가 뭔가 하는 여파 때문에 잘 나가던 회사에서 잘린 처지라서 지금은 백수건달…….
  온전한 인간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저수지에 야광찌의 불빛이 불야성을 이루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라고 하더라도 살판난 것은 배부르게 먹이를 먹을 수 있는 물속의 고기떼들이었다. 내 앞에 놓인 두 낚싯대는 계속 미끼만 던지고 있었다.
  어쨌거나 내일 볼 면접시험이 걱정이었다. 직장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정리해고 당한 후, 이 회사 저 회사를 기웃거렸지만, 나의 능력을 사주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제로라는 숫자를 향해 달려가는 경제적 숫자는 한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극도로 저하시키고 있었다. 결국 나의 시름을 달랠 수 있는 수단은 낚시가방을 짊어지고 저수지로 떠나는 일이었다. 저수지 낚시는 정적(靜的)인 행위여서 좋았다. 가만히 찌를 바라보며 어떤 상상의 날개든지 펼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 마리의 물새가 내 곁을 스쳐지나 갔다. 분명 그 물새의 부리에는 먹이가 물려 있겠지……. 둥지에서 주둥이를 벌리고 있을 새끼 새들의 모습이 시야에 어른거렸다. 그와 동시에 생활비를 애타게 기다리는 노부모와 동생들의 모습이 교차되었다.  
  ‘차라리 월세 방값이라도 아끼기 위해 서울역 지하도에 나가서 노숙자들과 함께 있어볼까? 자선단체에서 공짜 밥을 준다고 하던데…… 아니야. 그런 짓은 내가 최후로 선택할 일이지. 그래 젊은 놈이 노력을 해야지. 리어카 한 대 사서 포장마차라도 해볼까? 그러려면 목돈이 필요한데…… 호스트 바에 가서 몸이라도 팔아볼까? 아서라. 이 몰골에 어떻게? 차라리 은행을 확 털어 봐?’
  이처럼 쓸데없는 망상을 즐기는 가운데 야광찌는 물고기들이 모여들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초저녁부터 후하게 밑밥을 뿌려 두었던 바람에 서서히 입질이 오고 있었다. 그 동안 말뚝을 박아 놓은 것처럼 전혀 움직일 줄 몰랐던 찌가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순간, 오른쪽 세 칸짜리 낚싯대의 찌가 두세 매듭 솟아올랐다. 챔질하기에 절호의 찬스였다. 조금만 늦어도 낚싯밥만 날리는 셈이 되고 말기 때문에 날렵하게 낚싯대를 끌어 당겼다. 낚싯대의 끝이 휘청거렸다. 손목으로 전달되는 감각으로는 제법 묵직했다. 잉어가 아니면 향어. 그것도 아니면 적어도 월척급에 근접한 붕어가 아닐까……. 팽팽하게 낚싯대를 치고 나가는 폼이 예사롭지 않은 듯하였다. 매우 끈질긴 놈이었다. 근 십여년 동안 강태공임을 자처해 온 내가 너를 놓치랴 싶었다. 당기고 땅기는 혈투는 계속되었다. 그 때였다.
  "아저씨 커피 한 잔 어때요?"
  아가씨인지, 유부녀인지, 과부인지 분간하기 힘든 여인네가 간드러진 목소리를 던져왔다. 달빛이 적당하게 어우러진 저수지에서 들리는 여자의 목소리는 소름이 끼치도록 감미로웠다. 수컷의 본능적인 호기심이 발동하는 순간이었다. 그 힘은 나의 팔로 전달되어 버리고 말았다. 덕분에 곧 지친 입을 떠억 벌리고 나에게로 다가와야 될 고기는 티잉하는 파열음과 함께 유유히 사라져 갔다. 휘청거리던 내 낚싯대는 허공에서 공허하게 흐느적거렸다.
  커피나 한잔 마셔볼 작정으로 눈길을 돌렸을 때에는 이미 그녀는 배때기 팅팅한 인간에게 가 있었다. 두 사람은 다정한 연인들처럼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커피가 아닌 술잔을 기울였다. 찌가 요동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인간의 손은 여자의 허리에서 피아노 건반연습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벌이는 수작들은 더 이상 옆에서 지켜보기가 역겨웠다. '정말 재수 없는 날이구먼.' 나는 커다랗게 헛기침을 내뱉으며 주섬주섬 낚싯대를 거두고 말았다. 어쩌면 내일 있을 면접을 위해서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같으면 놓친 고기가 억울해서라도 날이 새도록 놓친 놈을 기다렸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더라도 쉽사리 잠이 들 것 같지 않았다. 나에게 수면제 역할을 하는 것은 술과 비디오테이프이다. 술을 마실까도 생각하였지만, 호주머니 사정도 있거니와 내일 있을 면접시험에 술 냄새를 풍길 수는 없는 법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비디오 가게에 들렀다. 요즘 잘 나간다는 영화테이프 한 개를 들고 자취방으로 들어갔다. 역시 비디오는 수면제 역할을 톡톡히 해 주고 있었다. 눈이 감기는 사이에도 내 낚싯대로부터 도망친 큰 물고기의 잔영이 뇌리에 꽉 차올랐다.

  여인이 학처럼 나를 향해 다가왔다. 긴 머리카락, 연분홍빛 날개옷이 나의 눈을 어지럽혔다. 그녀가 내 곁으로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나는 분명히 떨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이 내 입술을 향해 다가왔다. 나는 두 손을 벌리며 그녀를 안았다. 그 순간이었다. 그녀와 나의 이러한 에로틱한 장면을 깨버린 것은 시끄럽게 짖어대는 개소리 때문이었다.
  분명히 정희였다. 그녀의 손도 제대로 못 잡아 본 나는 항상 가슴앓이만 하고 있는 중이었다. 비록 꿈일지라도 성공하지 못한 그녀와의 입맞춤이 아쉽기만 하였다. 나는 허공을 휘젓고 있던 두 팔을 힘없이 떨어뜨리고 말았다. 공허하기 짝이 없었다.
  눈꺼풀을 열고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하며 눈을 떠보았지만, 납덩이같은 무력감이 나를 꼼짝 못하게 옭아맸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열린 내 동공으로 빛의 무리들이 돌진해 왔다. 벌써 이렇게 밝았나 하고 생각하면서도 눈은 다시 감기고 있었다. 감은 눈 속에서는 민들레 꽃씨와 같은 하얀 솜털들이 유영하였다. 뇌에서는 일어나야 된다는 명령신호를 신경조직에 보내고 있었지만, 신경조직들은 뇌로부터 전달되는 명령을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었다.
  '일어나야 돼! 벌써 날이 밝았잖아.'
  '싫어!'
  '어서 일어나라니깐! 오늘은 면접이 있는 날이야.'
  '한 십분만 더 있다가 일어날게…….'
  뇌조직의 신호는 학창시절에 나를 깨우느라 극성이던 어머니와 같았다. 늘어지게 하품을 할 때, 책상 위의 괘종시계가 한심한 눈초리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두덩이의 눈곱들을 떼어 내며 시간을 확인하였다. 10시였다. 나는 벌에 쏘인 망아지처럼 후닥닥 일어났다.
  욕실로 뛰어 들어 온몸에 냉수를 끼얹었다. 갑작스런 한기가 엄습해 왔다. 오들오들 떨리는 입에서 재채기까지 나왔다. 늦잠을 잔 죄 값을 치룬 셈이었다.
  매달 초하룻날이거나 큰일을 치르게 될 때마다 부엌에서 냉수욕을 하던 할머니의 모습이 기억 속에서 피어올랐다. 덜덜 떨면서도 어쩌면 면접을 앞두고 정갈한 몸을 만들었다는 만족감이 앞섰다.
   타월을 들고 상쾌한 기분으로 몸을 닦았다. 휘파람까지 불어댔다. 기분이 좋아지면, 정희가 떠오른다. 하나의 버릇이었다. 간밤에 꾼 정희 꿈…… 너무 선명한 총천연색의 모습이었다.
   '그녀의 장밋빛 입술…… 아니? 진정 내가 칼라 꿈을 꾸고 말았단 말인가? 차라리 똥을 밟아 미끄러지는 꿈이던지, 용이 승천하는 꿈이라든지, 돼지꿈을 꾸었더라면 좋았을 걸…….'
  불현듯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할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꾸는 꿈은 색깔이 없는 벱이여. 혹시라도 색깔이 있는 꿈을 꾼 날은 각별하게 조심해야 혀."
  할머니는 남의 꿈을 곧잘 해몽해 주곤 하였었다. 흑백 꿈이 아닌 칼라 꿈을 꾸었다는 사실이 께름칙하게 나의 마음을 짓눌러 왔다. 내 머리가 노란 색으로 물들어 있는 꿈을 꾸었던 중학생 시절, 그 다음날 할머니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노란색의 머리는 노란 두건을 쓰게 될 꿈이었다. 할머니의 주검 곁에서 내가 꾼 천연색 꿈을 기억하며 그 얼마나 경악했던가.
  면접시험과 천연색 꿈의 상관관계…… 그것도 여자의 꿈. 좋은 징조는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머릿속에 가득 차올랐다. 나는 고개를 흔들며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쪽으로 생각을 유인하기에 급급하였다.
  휘파람도 불어보고 콧노래도 흥얼거리며 기분을 전환시키기 위하여 안간힘을 썼다. 벽의 콘센트에 꼽아 놓았던 전기면도기를 뽑아 꺼칠꺼칠한 수염을 깎았다. 불현듯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들이 머리카락과 손톱, 발톱을 깎아 남겨두고 떠난다는 말들이 생각났다. 그렇다면 나는 시험장에 수염을 남기고 가는가.
  아무런 의식 없이 리모컨의 스위치를 눌렀다. TV화면이 찌지직거리며 켜졌다. 보고 싶어서 켰다기보다는 그저 습관적으로 TV를 켰다. 부드러운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등 뒤에 두고 하얀 거품의 무스를 머리에 바르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일본의 큐슈지방에서는 야생원숭이들의 집단을 이용한 관광 상품이……."
  분명히 ‘원숭이’라는 단어가 아나운서의 입에서 또릿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갑자기 나의 가슴이 철렁 무너지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TV의 화면을 쏘아보았다. 우글거리는 원숭이들에게 옥수수 알갱이를 뿌려주는 사육사의 모습이 내 시야를 파고들었다. 나는 미친 듯이 TV의 전원 스위치를 꺼 버리고 말았다. 다른 날도 아닌, 면접일 아침부터 '원숭이'라는 단어를 들어버렸고, 원숭이를 봐 버렸다는 사실에 나는 경악하고 있었다.
  이러한 알레르기 현상은 초등학교시절의 어느 아침부터 시작되었다.
  그날은 상쾌한 가을 아침이었다. 학교 갈 준비를 끝낸 나는 어머니가 싸 주는 도시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하여 툇마루에 걸터앉아 말 잇기 놀이를 하였다.
  ‘원숭이 똥구멍은 빨개 / 빨간 것은 사과 / 사과는 맛있어 / 맛있는 것은 빠나나 / 빠나나는 길어 / 긴 것은 기차 / 기차는 빨라 / 빠른 것은 비행기 / 비행기는 높아 / 높은 건 백두산…….’
  백두산이란 단어까지 이어지게 되면 '백두산 뻗어내려 반도삼천리 무궁화…….' 라는 노래로 끝나는 말 잇기 놀이였다. 작대기로 툇마루까지 두드리며 구성지게 노래를 뽑아댔다. 노래가 끝났는데도 어머니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또 다시 말 잇기 노래를 되풀이하였다.
  '원숭이 똥구멍은 빨개…….'
  그 순간이었다. 부엌 쪽에서 나타난 어머니는 도시락을 내 던지며 내 머리를 콕 쥐어박았다.
  "왜 때려요? 내가 뭘 잘 못하였다고……."
  "이 썩은 놈아. 아침부터 재수 없이 원숭이는 왜 들먹거려? 아버지 장사 나가시는데……. 자고로 장사하는 집에서 아침부터 원숭이를 들먹거리면 하루 종일 재수가 없는 벱이여!"
  또 다시 어머니는 눈을 흘기며 머리를 쥐어박았다.
  "근거 있어요? 아침부터 머릴 때리는 것이야말로 진짜 재수 없는 일이야."
  좋기만 하던 나의 기분을 깨트린 어머니에게 보아란듯이 도시락을 팽개치고 학교로 향하던 철없던 기억이 스믈스믈 피어올랐다.
  그날은 하루 종일 우울한 일만 벌어졌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버지가 소판 돈을 도박으로 몽땅 날려버린 날이었다. 나는 밤새 말 잇기 놀이를 하며 원숭이를 들먹거린 것을 후회하고 또 후회하였다.
  그날 이후로부터 원숭이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은 지속되어 왔다. 동물원에 가더라도 원숭이 우리를 일부러 피하면서까지 나는 원숭이를 싫어하게 되었다.
  차라리 TV를 켜지 말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팬티와 러닝셔츠를 갈아입었다. 시계를 바라보았다. 우선은 밥 먹을 시간쯤은 있는 듯하였다.
  냉장고로부터 랩을 씌운 반찬그릇들을 꺼냈다. 배추김치. 총각김치. 오징어무침. 그리고 밥을 펐다. 문득 밥상 위에 놓인 그릇의 수를 헤아려 보았다. 하나. 둘. 셋. 넷……. 재빨리 오징어 무침그릇을 냉장고에 넣고 말았다.
  다른 날이라면 몰라도 오늘만큼은 넷이라는 숫자를 피하고 싶었다. 넷(四)이라는 숫자를 깨트리고 나서야 밥을 꾸역꾸역 입에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던 오징어무침이 빠진 밥상은 허전하기만 하였다. 어쨌든 오늘의 면접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라면 가릴 것은 확실하게 가려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미리 손질해 두었던 양복을 꺼내어 입었다.
  그때였다. 침묵을 지키던 전화가 징징거렸다. 나는 웃옷을 의자에 걸쳐두고 수화기를 집었다. 꿈속에서 나를 애태웠던 정희였다.
  "오빠야? 왜 연락이 없는 거야? 이젠 사랑이 식었나 보지?"
  "미안해. 조금 바빠서 그랬어."
  "오빠. 오늘 만날 수 있어?"
  "오늘은 시간이 없어."
  시간이 없다는 말을 수화기에 던지고 있었지만, 나의 내면에서는 '지금이라도 당장 너를 만나고 싶어.'라는 말을 뱉고 있었다.
  직장에서 정리 해고된 초라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기 때문에 한동안 연락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그녀. 재취업이 이루어지는 날, 그녀에게 제일 먼저 연락하여 샴페인 한잔을 기울이겠다는 생각을 가슴 깊숙한 곳에 새겨두고 있었다.
  "오늘은 꼭 보고 싶어."
  오늘만큼은 꼭 만나고 싶다는 정희의 콧소리는 시계의 초침소리와 맞물리고 있었다. 나는 시간에 쫓기며 초조하게 시선을 창가로 두었다.
  창가 쪽 천장에서 거미 한 마리가 대롱대롱 하강하고 있었다. 거미를 잡기 위하여 손을 뻗었다. 그러나 전화선이 짧았다.
   “아! 오늘 왜이래 정말로 재수 없게 생겼군.”
  공교롭게도 수화기에서 '나한테는 오빠밖에 없어…….'라는 정희의 말이 흐르고 있는 순간이었다. 무심코 뱉어버린 혼잣말은 이미 그녀의 귀로 옮겨지고 말았다.
  "지금 뭐랬어? 뭐? 재수 없어? 이젠 나 같은 것은 필요 없단 말이지? 연락 없는 것부터가 이상하다고 했더니……. 그래 잘 먹고 잘 살아!"
  미처 내가 해명할 시간도 없이 그녀는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나는 우선 거미를 잡아야 된다는 일념에 수화기를 내동댕이치고 창 쪽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거미는 보이지 않았다. 바닥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하였다. 칼날같이 다린 바지의 줄은 아랑곳하지 않고 먹이를 찾아 헤매는 한 마리의 굶주린 짐승이 되어 엉금엉금 기어 다녔다.
  "너를 놓치면 안 돼. 죽여야 해! 죽여야 해! 죽여야 해!"
  나의 입에서는 섬뜩한 살상의 단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창가에 놓아두었던 탁자를 뒤엎었다. 보이지 않았다. 쓰레기통을 뒤엎었다. 없었다. 만화책더미까지 뒤엎어 보았지만 내가 찾는 거미는 그 어느 곳에도 없었다.
  정희에게 전화를 할 힘마저 다 소멸된 내 몸이 갑자기 납덩이처럼 무겁다고 느껴졌다. 오늘도 면접장에서 들러리나 서고 말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나니까 차라리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취직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에 가끔은 내가 아닌 나를 발견할 때가 많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았다.
   수험표를 손수건에 고이 싸서 호주머니에 질러 넣었다. 집을 나섰다. 밖은 해맑은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에 어둠이 깔렸다.
  버스에 올라 빈 의자에 아무렇게나 몸을 던지고 나서야 가까스로 심호흡을 할 수 있었다. 흘러가는 길거리의 광경들을 바라보며 엉망진창인 오전의 일들을 떠 올렸다. 석연치 않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하필이면 시험을 보는 날에 내가 가장 재수 없게 생각하던 일들이 모두 일어났단 말인가. 총천연색의 꿈……. 원숭이뉴스……. 밥상 위의 네 개의 그릇……. 사라져버린 거미…….
  나는 거세게 머리를 흔들며 모든 것들을 떨쳐버리려고 애썼다. 하지만, 거미만은 내 머릿속을 계속 헤집고 다녔다.
  유년기부터 내 삶의 일부분이 되어 찰거머리처럼 붙어 다니던 금기사항들은 어머니로부터 이어받았다. 어머니는 불가사의하리만큼 철저하게 금기사항들을 잘 지켜나갔다. 밤늦게까지 바느질을 하던 어머니는 밤에 나타나는 거미를 가장 싫어하였다.
  "애야, 밤거미는 재수가 없단다. 죽여버려라."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는 호롱불 밑을 엉금엉금 기어가는 거미를 보며 나에게 거미사살명령을 곧잘 내리곤 하였다. 나는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거미를 잡아 호롱불에 태우거나 엄지손가락으로 짓눌러 죽이곤 하였다. 그때부터 나는 밤 거미뿐만이 아니라 내 앞에 나타나는 거미는 모조리 사살하게 되었다.
   유년기에 나는 잠자리를 즐겨 잡았다. 해질 무렵이 되면 마당에 가득하였던 고추잠자리를 잡기 위해 거미줄을 이용하곤 하였다. 대나무를 둥글게 휘어 만든 채로 처마 밑에 지어진 거미집을 훑으면 완벽한 잠자리채가 되어 주었다. 나는 거미집을 이용하여 마당에 날아다니는 잠자리를 손쉽게 잡을 수 있었다. 간혹 왕거미가 내 손에 들어오게 되면, 꽁무니에서 거미줄을 빼내어 엄지손가락에 칭칭 감는 장난이 재미가 있었다. 어쩌면 나는 거미를 너무 많이 죽인 탓에 죽으면 거미지옥으로 떨어질지 모르겠다는 망상까지 할 정도였다.

  "어허? 형씨 여기에서 또 만나네."
  잠시 과거로의 타임머신을 타느라고 넋이 빠져 있던 나를 현재로 돌려 준 사내는 지난번 S회사의 면접장에서 만난 적이 있던 털보였다. 귀밑을 뒤덮은 털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내 나름대로 털보라고 생각하였던 사내였다.
  "아직도 직장 못 구했소? 당신이나 나나 백수신세 빨리 면해야 될텐데……."
  세상이 좁긴 좁다고 생각하며, 그에게 피씩 웃어 보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버스는 영동대교를 건너고 있었다.
  한가롭게 떠가는 유람선을 바라보고 있던 순간, 갑자기 버스가 한쪽으로 기울며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나는 앞 의자에 얼굴을 박으며 통로로 쓰러졌다. 다른 사람들도 운전석 쪽을 향해 우르르 쏠렸다. 비명소리들이 버스 안을 꽉 채웠다. 버스가 둔탁한 소음과 함께 멈추고 나서야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넘어졌던 사람들도 오뚝이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어이구, 어이구. 사람 죽일 작정인가. 운전 좀 똑똑히 못해?"
  여기저기에서 운전기사를 향해 삿대질과 욕이 쏟아졌다. 그때서야 운전대에 머리를 박고 있던 운전기사가 뒤를 보며 일어났다. 기사는 하얀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였다.
  "죄, 죄송합니다. 펑크가 나서 그만……. 죄송합니다. 다치신 분은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구급 요청 할테니까요."
  버스 앞부분이 다리 난간에 걸려 있었다. 다리 밑은 시퍼런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현기증을 느끼며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나는 따끔거리는 이마를 만지며 역시 오늘은 재수 없는 날이라는 것을 재확인하고 있었다. 이마를 만졌던 손바닥에 핏기가 묻어 나왔다. 그때였다.
  "여기 이 노인 큰일 났네. 피를 많이 흘리는데……."
  뒤편에서 긴장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중년신사 한 명이 피를 흘리며 넘어져 있는 할머니의 이마를 붙잡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다가섰다.
  "아저씨 이렇게 붙잡고만 있으면 어떻게 해요?"
  나는 중년신사를 밀치고 얼굴을 떨어뜨리고 있는 할머니를 안았다. 제법 피가 많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재빨리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펼쳤다. 보이스카우트시절에 배웠던 응급처치를 기억해 내며 할머니의 이마를 싸맸다. 중년신사와 함께 할머니를 버스 밖으로 옮겼다. 구급차는 나타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지나가는 차들은 힐끔거리기만 할뿐 그냥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시계를 보았다. 면접시간이 임박해 오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면접시간을 넘겨버릴 것만 같았다. 또 다시 거미들이 머릿속을 기어 다니기 시작하였다. 이런 사건들은 이미 아침부터 예견된 일들이었던 듯싶었다.
  누군가는 할머니를 부축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보도블록 위에는 구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 속에 조금 전에 만난 털보도 끼어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며 할머니를 부탁하였다.
  "죄송하지만, 이 할머니를……."
  "아이고 나도 지금 아파 죽겠소."
  "어차피 병원으로 가실 바에는 이분을 부축하고 계시다가 함께 가면 어떻겠소?"
  "형씨는 병원에 안 가오? 이마가 상당히 많이 부은 것 같은데."
  "이 정도 가지고서…… 난 바빠서요."
  "이 보슈. 형씨. 이마를 보니까 2,3주는 나오겠어. 백수들은 이럴 때 한몫 쥘 수 있잖소. 며칠 호강 좀 받아 봅시다. 아이고 허리야……."
  멀쩡하게 말을 하던 털보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나동그라졌다. 속이 빤히 보이는 수작이었다. 하긴 이런 불경기에 저렇게라도 해서 몇 푼을 건질 수 있다면 횡재하는 것이 아닐까……. 오늘의 면접에서 붙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잘만 하면 밀린 방값은 벌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털보마냥 엎어져서 한번 뒹굴어 볼까 하는 생각이 자꾸 뒷덜미를 끌어당겼다.  
  때마침 구급차와 뒤따라오던 종로행 버스가 동시에 도착하고 있었다. 나는 구급대원들에게 할머니를 넘기고 잠깐 망설였다. 구급차를 탈 것인가. 종로행 버스를 탈 것인가. 나의 선택은 종로행 버스로 이어지고 있었다. 구급차로 향하는 털보는 나를 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분명 한심하다는 눈초리였다. 나 역시 그를 측은하게 바라보았으니까.
  버스에는 할머니를 안고 있던 중년신사도 함께 타고 있었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슬그머니 곁으로 다가왔다.
  "아까 응급처치 솜씨가 좋더군. 젊은이."
  "뭘요."
  "그나저나 아프겠소. 상당하게 부었어요. 아까 어떤 젊은이하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정도 상처라면 버스회사에서 보상이 나올텐데……. 나 같으면 병원으로 갔을 텐데……."
  한 순간의 검은 뱃속을 엿보인 듯하여 내 얼굴은 붉게 물들어 갔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한편으로는 부화가 끓어올랐다. 나는 그를 쏘아보았다.
  "아저씨. 지금까지 그런 양심을 가지고 살아왔습니까? 난 멀쩡합니다."
  "미, 미안하오. 내가 사람을 잘 못 본 것 같으오."
   중년신사는 내내 아무런 말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이마가 쏙쏙거리며 아려왔다. 차창에 비친 나의 이마는 벌겋게 부은 자국이 역력했다. 이런 몰골로 어떻게 면접에 임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그렇지 않아도 내 험상궂은 얼굴 때문에 현상금 붙은 사나이라는 별명까지 가질 정도인데, 면접관이 싸움꾼으로 오해나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꽉 메우기 시작하였다. 역시 오늘은 재수가 없는 날이란 생각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털보나 중년신사의 말처럼 차라리 앰뷸런스에 실려 가는 쪽이 실리를 추구하는 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또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면접대기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서 있었다. 모두가 가슴에 수험표를 달고 있었다. '제길 헐 웬 놈의 인간들이 이렇게 많아?' 나는 입을 삐쭉거리며 수험표를 찾기 위해 호주머니를 뒤졌다.
  수험표가 손아귀에 잡히지 않았다. 모든 주머니를 다 털어 보았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 정신을 차려 집을 떠날 때 수험표를 넣었는가 안 넣었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분명히 손수건에 싸서 넣었던 수험표였다. 손수건은 이미 그 할머니의 머리에……. 그렇다면 그때 수험표는 사라진 것이었다.
  면접장을 정리하는 사원들은 수험표가 없으면 면접을 볼 수가 없다고 완고하게 말하였다. 절망감이 앞섰다. 이대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나 머리까지 다쳐가면서 이곳까지 왔는데, 수험표가 없다는 사실만으로 돌아서야 한다는 것은 너무 억울하였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안내테이블로 다가갔다.
  "저어…… 아가씨, 수험표가 없으면 정말 면접을 볼 수 없나요?"
  "원칙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이 되돌아섰다. 그때였다.
  "저기요. 혹시 수험표를 잃으셨어요?"
  "네에."
  "여기 수험표가 한 장이 있긴 있는데, 혹시 성함이 김짜 진짜 호짜이십니까?"
  "네. 맞습니다."
  "수험표 여기 있어요."
  "아니 이게 어떻게?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나는 몇 번이고 그녀에게 고개를 꾸벅거리며 급히 면접장으로 뛰어 올라갔다. 내 순서는 이미 지나간 후였다.
  "당신 순서는 이미 지나버렸어요. 이렇게 늦어서 되겠어요? 그냥 돌아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요. 벌써 성실성에서 빵점이니까요."
  나는 까마득한 수험생들의 줄을 보며 제일 뒤편으로 갔다. 아예 구석진 곳에 주저앉았다. 수험표가 나에게 돌아왔다는 사실로만 보더라도 그렇게 운이 없는 것만은 아니라는 기대감이 골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맨 마지막 순번으로 면접장에 입장하였다. 어차피 이판 새판이란 생각으로 마음을 비우고 들어섰다. 타원형으로 앉은 5명의 면접관들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마치 천당문으로 들어 갈 것인가. 지옥문으로 들어 갈 것인가를 선고받는 자리인 것만 같았다. 될 수 있으면 의연하게 보여야 된다는 생각을 하며 몸을 빳빳하게 세웠다.
  "이봐요. 머리의 상처는 괜찮아요?"
  느닷없는 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버스에서 만났던 중년신사가 면접관들 속에 앉아 있었다. 그는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나를 향해 계속 입을 열었다.
  "요즘처럼 총체적으로 어려운 난국에 나도 대중교통을 이용해볼까 해서 버스를 탔더니 그런 변을 당했지. 자네 호주머니에서 빠진 것을 주워 보니까 우리 회사 수험표이더군."
  그는 지루하리만큼 혼자서 모든 질문을 다 해댔다. 특히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만 골라서 나에게 던지는 것으로 미루어 보면, 버스에서의 무례한 내 행위에 대해 복수라도 하는 듯한 인상이 들었다.
  면접을 끝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온 후, 수험표를 갈기갈기 찢어 냅다 뿌려버렸다. 그 작자가 면접관이라니……. 정말 재수 옴 붙은 날이었다.

  다음날 아침이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정희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금통장을 해약해서라도 그녀가 좋아하는 해물탕을 사주며 어제의 일을 사과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화기 속에서는 다음과 같은 소리가 들렸다.
  "합격 축하드립니다. 내일 오전 10시까지 회사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내 귀를 의심하고 있었다. 거미 한 마리가 전화기 위를 지나가고 있었다. 분명히 어제 못 잡았던 거미였다. 아침거미는 재수 있는 거미지……. 하지만, 재수가 없는 일만 일어난 날에 치른 면접시험이 합격이란 사실이야말로 어쩌면 정말 재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비존재 동인지』 5집(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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