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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홍의 소설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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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무도회


                           가면무도회
    

   퇴근을 위해 수위실을 지나칠 때였다.  낯익은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허허……. 좋은 시절이 오긴 온 것 같구먼……. 의문사의 진상을 규명하는 위원회가 생겼다니…….”
   “너무 늦었어요. 억울한 원혼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제야…….”
   60이 다 된 김씨의 말에 50을 바라보는 박씨가 대꾸하는 내용이었다. 현관을 나서는 나의 머리에서는 박씨의 굵직한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리고 있었다. 억울한 원혼……. 억울한 원혼…….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도로변으로 나섰다. 매콤한 냄새가 났다. 밀린 차들의 꽁무니에서 풍기는 매연 때문일까. 재채기를 해댔다. 세 번씩이나……. 콧물을 훌쩍거리던 나는 문뜩 최루가스의 냄새를 기억해 냈다. 내내 가슴속에 각인되어 있던 녀석의 환영이 심장을 콕콕 찌르기 시작하였다. 갑자기 심한 한기가 몰려들었다. 옷깃을 여몄다. 귀가를 서둘렀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곧 소파에 몸을 던졌다. 눈을 감았다. 퇴근길에 떠오른 녀석은 가슴을 계속 헤집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우울함이 온몸으로 녹아들고 있었다. 사면의 벽이 나를 가두어버릴 듯이 포위망을 좁혀왔다. 숨통이 막혀 곧 질식할 것 같은 위기의식이 서성거렸다. 벌떡 일어섰다. 커튼을 열어 젖혔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몰려들었다. 나의 공간에 싱싱한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TV를 켰다. 볼륨도 크게 높였다.
  스피커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타이거마스크’라는 스포츠애니메이션이 방영되고 있는 중이었다. 링 위에서 레슬링을 하던 타이거마스크가 상대에 의해 마스크가 벗겨지는 순간이었다. 호랑이 가면 속에 감추어져왔던 주인공의 실체가 공개되기 일보직전. TV속의 관중들은 주인공의 참모습이 공개되는 상황을 열광하고 있었다.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그 장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러나 타이거마스크는 위기를 벗어나 도도하게 링을 떠나고 있었다. 아주 오래된 낯익은 애니메이션이었지만, 생소한 작품처럼 나의 관심을 끌었다. 그 순간 핸드폰의 벨이 울렸다. 핸드폰의 벨소리는 아득한 옛 기억 속의 또 다른 전화벨로 변하여 방안을 울리고 있었다.  
  그래……. 그 날도 나는 흑백 TV속에서 타이거마스크를 보고 있었다. 타이거마스크의 가면이 벗겨질 위기의 순간에 나는 녀석의 가면도 벗겨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아무튼 타이거마스크의 가면이 벗겨지는 그 절대적 순간에 전화벨은 울렸다. 그래 그녀석이 떠나간 아침나절에…….

  철커덕!  
  내 손을 떠난 검은 플라스틱 수화기가 전화통 위에 풀썩 주저앉았다. 얼음 조각이 뒤섞인 상대방의 목소리가 내 귓전에 날벼락 같은 소식을 전해 왔다. 후텁지근한 비구름이 잔뜩 낀 일요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1주일 전까지만 하여도 건방지게 내 침대 위에서 나뒹굴었던 녀석. 내 공간 구석구석마다 끈끈한 흔적을 남겼던 녀석. 도대체 내가 객인지 녀석이 객인지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뻔뻔스러웠던 놈이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접했던 것이다.
  내가 집에 있건 없건 녀석의 출입은 자유로웠다. 집을 비울 때마다 녀석을 위해 우체통에 열쇠를 넣어 두곤 하였다. 녀석이 오는 날엔 내 방의 키 작은 냉장고는 배가 불렀고, 녀석이 사라짐과 동시에 냉장고는 홀쭉한 배를 움켜쥐었다. 냉장고에 들어가는 모든 것들은 내가 지불해야 하는 몫이었다. 집 앞 구멍가게에서 내 이름을 달아놓고 물건을 들여오기 때문이었다. 구멍가게의 할머니가 귀갓길을 붙잡는 날은 반드시 녀석이 나타났다는 신호였다.      
  “총각, 애인이 와서 오늘은 이만 이천 삼백 원을 외상 했어.”
  “그래요? 달아두세요. 월급날 드릴 테니…….”
허리가 꾸부정한 백발의 할머니는 그 날의 외상값을 정확하게 알려주었다. 애인……. 푸후후……. 할머니는 녀석이 내 집으로 드나든 지 두세 달이 지난 후에서야 여자임을 알게 되었다.    
  “흐미……. 난 남자인줄만 알았었는데, 여자였더구먼……. 약혼녀라면서? 당차게 생겼어……. 진즉 나에게 말해 줬어야지. 내가 감쪽같이 속았잖아.”
   눈을 흘기는 그 할머니의 시선이 얼마나 따가웠던지…….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녀석이 생리대를 급히 사면서 할머니와 꽤나 실랑이를 벌였던 듯싶었다.
  “아니, 사내들만 사는 집에 뭔 일이야? 땍끼! 이런 것을 가지고 장난치면 안돼!”
  녀석은 급기야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밝히고서야 할머니로부터 오해를 풀 수 있었다. 그 날 밤, 녀석은 엉뚱하게 나에게 화풀이를 하였다.
  “오빠. 말해봐. 내가 그렇게 여자 같지 않아? 좀 말해봐!”
  “네가 정말 여자가 맞니? 길가는 강아지더러 물어봐라.”
  “뭐? 강아지에게? 말을 해도 너무했다.”  
  씩씩거리며 구석에 앉아 소주를 거푸 마시던 그 모습. 솔직하게 말한다면 처음으로 녀석이 귀엽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어쨌든 녀석은 나와의 관계를 변명하기 위해 약혼녀로 둘러치고 말았던 것이다.  
  “인마, 누구 혼삿길 막히는 꼴을 봐야 되겠니? 그 할머니 얼마나 입이 싼데…….”
  “후후……. 오빠는 나에게 꼼짝없이 붙잡혔어. 하하하”
  녀석을 향해 고개를 설래 흔들며 벽을 붙잡고 애원했다.  
  “아이고 하느님! 저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소서…….저 귀신을 제발 좀 잡아가시죠!”
  녀석과 나의 대화는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서로 그 어떤 짓궂은 말이나 표현을 하더라도 결코 섭섭하다는 표정은 짓지 않았다. 내심은 어떤지 모를 일이었지만……. 녀석은 나보다 다섯 살 아래였다. 나이 차이로 본다면 애인이 될 자격조건은 충분히 갖추고 있는 녀석이었다.  
  녀석이 생리대를 깊숙한 곳에 감춰두고서 한 달에 한번씩 쓰는 것을 보며, 녀석의 남방셔츠에 봉긋하게 솟아오른 젖가슴을 보며, 녀석의 귓불 밑에 가지런하게 솟아난 솜털을 보며……. 분명 여자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엉큼한 생각은 철저하게 배제하였다. 설령 그런 생각이 떠오르더라도 금방 냉정함을 되찾곤 하였다.
  물론 내가 가장 아끼던 친구의 여동생이라는 사실도 한 몫을 하였겠지만, 항상 헐렁한 바지차림의 모습과, 성큼성큼 걷는 걸음걸이와, 쇼트커트를 한 머리스타일과, 허스키한 굵은 음성에서 트랜스젠더 쯤으로 생각하고 말았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하여 내가 남자로서 달고 있어야 될 것을 못 달았다거나, 성적으로 불구도 아니다. 가끔 보너스가 나오는 달이면 벗들과 함께 미아리의 텍사스촌을 찾아가는 일도 있었으니까.
  녀석이 시도 때도 없이 내 방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민주화운동의 열기가 극심하던 시기였다. 자신의 자취방이 경찰의 감시에 들어가게 되면서 녀석은 내 방을 은신처로 삼기 시작하였다. 한때, 예고도 없이 불쑥불쑥 나타나는 녀석을 뱀이나 송충이, 아니면 바퀴벌레 보듯이 구박도 해보았지만, 두 눈 깜빡하지 않던 녀석이었다.
  녀석을 항상 변함없이 받아 주었던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녀석의 오빠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한 배려이기도 하였으며, 내 스스로 던져버린 운동권에 속죄하는 마음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어쩌면, 겉으로는 여자가 아니라고 머리를 흔들면서도 나의 내면은 녀석을 통해서 여자를 알아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정신을 차리고, 병원으로 가기 위해 자동차에 올랐다. 자꾸만 녀석의 환영이 내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녀석의 모습을 눈에 가득 담고 시동을 걸었다. 한강을 넘어 강남 S병원까지 가려면 광화문 네거리를 통과해야 된다. 한 시간이면 족히 갈 수 있으리라고 추측하였다.
  녀석은 어떤 모습으로 떠나갔을까?
  포장마차를 서너 군데 전전하다가 비틀거리며 헤어지던 그 취한 모습으로 떠났을까? 최루가스 속에서 전경들에게 끌려가듯이 이를 앙 다문 모습으로 떠났을까? 내 자취방에 쳐 박혀 식객노릇을 하다가 살짝 사라지던 모습으로 떠났을까?
  카오디오에 녀석이 즐겨 불렀던 ‘고래사냥’이란 가요테이프를 꼽았다. 녀석은 노래를 부르되 한번도 음정과 박자를 맞추어 부른 적이 없었다. 녀석의 노래는 시낭송이나 시조낭송에 가까웠다. 노래를 시키면 가사만 쭈욱 나열하고 끝내는 것이 녀석의 트레이드마크가 된지 오래되었다. 누구를 막론하고, 헤어질 때에는 한결같이 고래사냥이란 노래를 지겹게 구시렁거렸다.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자! 이만 빠이빠이.”
  녀석과 마지막으로 헤어진 바로 일주일전가지만 하여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대사였다. 나와 녀석에게는 하나의 불문율이 있었다. 헤어질 때, 서로의 행선지를 묻지 않는 일이었다. 또한 나 역시 녀석이 어디로 가든 상관할 바가 아니라고 여기며 살았다.  
  데모 현장에 가서 열심히 화염병을 던지든, 술을 쳐 먹으로 가든, 제 조그마한 가슴을 드러내 놓고 목욕탕으로 들어가든, 관심 밖이었다. 녀석이 가는 곳은 언제나 동해바다였기 때문이다. 녀석이 은밀한 친구들 몇몇에게 알려준 연락전화번호는 내 전화번호였다. 그래서 가끔 녀석의 행방을 묻는 전화가 오면,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동해바다로 간다던데……. 뭐 고래를 잡으러 간다던가?”
  내 대답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무슨 암호가 아닌가 하고 오해를 하였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멀쩡한 사람에게 농지거리나 하고 있는 개뼈다귀 같은 놈이라고 실컷 욕을 하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더 심하면 나를 정신이상자로 생각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나의 스타일을 알고 있는 사람 같으면, 나를 향해 녀석이 어디로 갔느냐는 식으로는 묻지 않았다. 단지 묻게 된다면, 어떤 메시지를 남기지 않았냐는 식의 질문만 던져왔다.
  계집애이면서도 어찌 보면 도깨비 같은 녀석, 카멜레온과 같은 녀석, 피에로 같은 녀석……. 해삼, 멍게, 말미잘 같은 녀석이었다. 도대체 녀석은 어떤 모습으로 갔을까? 왜? 자살을 했을까? 라는 막연한 의문만이 내 뇌리에서 난무하고 있었다.
  도무지 이해하기도 힘들고, 속내를 알기도 힘든 녀석. 언제쯤이면 녀석의 참모습을 볼 수 있을까 내내 궁금하던 차였다. 그런데……. 녀석이 참모습을 보이지도 않은 채 떠나갔단 말인가? 나쁜 계집애 같으니라고……. 코끝이 시큰거렸다. 녀석이 갔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녀석에 관한 뇌 속의 파일들이 뒤죽박죽 얽히기 시작하였다.  

  내가 졸업반이었을 때, 녀석은 2학년이었다. 교내 축제에서 녀석은 가면무도회를 기획하였다. 녀석은 자신의 몸집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야수의 가면을 만들어 썼다. 귀여운 토끼의 가면이거나, 아니면 안경처럼 생긴 베트맨 가면이 더 나았으리라는 생각을 하였다.
  야수의 가면을 뒤집어 쓴 녀석은 무도장을 종횡무진 하였다. 평소의 느린 동작과는 달리 피터 팬처럼 날렵하게 뛰어다녔다. 사내들의 엉덩이도 툭툭 쳐대는 짓궂은 행동들로 보아 도저히 여자라고 생각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녀석은 자신이 마치 사내라도 된 듯이 미모의 여학생들만 골라 끌어안고서 춤을 추며 다녔다. 미녀와 야수……. 어쨌든, 가면을 쓰면 저렇듯이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인가……. 신기한 눈초리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그 당시는 군부정권이 쇠퇴의 길을 걷고 있던 무렵이었기 때문에 민주화 투쟁이 격렬하게 일어나던 시기였다. 녀석은 허구한 날 최루가스 속에서 화염병과 돌을 날리는 투사였다. 때문에 빈번하게 형사들의 추적을 받았다.
  운동권 학생들이 축제에 참여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가면무도회였다. 수많은 학생들이 운집한 가면무도회에 형사들이 들이 닥친다하더라도 쉽게 노출이 안 되고, 교묘하게  빠져나갈 수 있는 틈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양반전을 민중극으로 꾸며 공연할 때에도 가면을 쓴 녀석의 리얼한 연기 때문에 전교생이 모여들 정도였다. 그 날도 역시 운동권 학생들을 붙잡기 위해 형사대가 파견되었다. 하지만, 학생들이 겹겹이 에워싸고 있는 상황에서 형사들은 도저히 진입할 수가 없었다. 만일 그들이 진입하여 운동권을 체포한다면, 그 많은 학생들이 가만히 있었겠는가? 녀석은 그러한 모든 상황을 미리 계산해 두고서 운동을 하였다.    
  그러한 녀석의 활동을 지켜보며, 문득 녀석이 차라리 연예계로 진출한다면 좋으리라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하였다. 자신은 제대로 웃지도 않으면서 상대를 웃기는 코미디언이나, 개성이 있는 연극배우 또는 탤런트가 되면 가능성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자주 하였다.
  그러나 늘 녀석의 주변에 서려있는 어두운 그림자가 문제였다. 그러한 어두운 이미지를 벗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언제나 좀 모자란 듯이 웃고 있었지만, 진정 웃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웃음 속에 숨겨져 있던 칙칙한 그늘……. 포장된 웃음. 무늬만 웃음일 뿐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닐 때였다. 여름의 늦더위가 뒤섞인 초가을. 자정 무렵에 녀석은 나타났다. 남루한 모습으로 쓰러지듯이 찾아들었다. 어쩌면, 쓰레기통을 뒤지고 다니는 들고양이 같았다고 표현하는 쪽이 더 어울릴만한 단어였다.
  녀석이 방에 들어섰을 때, 땟국 물이 절절히 묻은 옷에서 피어나는 최루가스냄새는 수없이 재채기를 쏟게 만들었다. 종로에서 경찰들과 한판 붙었다고 하였다. 손에는 기름때가 묻어 시커멓게 그을리고, 여기저기 생채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화염병과 돌이 난무한 치열한 싸움이었던 듯싶었다.  
  샤워를 하고 헐렁한 내 옷으로 갈아입은 녀석의 몸은 한없이 작게만 보였다. 녀석은 씩씩거리며 밥통의 밥을 걸신들린 사람처럼 퍼먹었다. 아껴두었던 내 술병까지 꿰차고 벌컥벌컥 비워댔다. 졸업한 후 처음 대하는 녀석은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그런 모습에서 문득 측은한 생각이 든 것은 왜였을까. 녀석과 나의 인연이 닿지 않았더라면? 또한 녀석의 오빠가 실종만 되지 않았더라면? 여느 여학생들처럼 생기발랄한 모습으로 학교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녀석의 오빠 정호……. 정호는 신입생시절부터 나와 함께 의기투합하여 민주화운동 대열에 앞장섰다. 우리는 강의시간을 제외한 시간을 몽땅 학생회의 골방에서 보냈다. 하얀 전지에 매직펜으로 글을 써서 대자보를 만들었고, 붉은 페인트로 집회구호를 썼으며, 빈병에 휘발유를 채우며 화염병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오로지 우리들의 민주화는 내 손으로 쟁취해야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집회가 열릴 때에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앞장섰다. 목이 터져라 민주화 구호를 외쳤다.
  집회가 끝난 후엔 형사들의 검거망을 피해 숨바꼭질하기에 급급하였다. 2학년 겨울방학이었다. 운동권 학생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한 특별 검거령이 내려진 적이 있다. 정호와  나는 뒤쫓는 형사들을 피해 잠시 부산에 있는 녀석의 집에서 한 이틀 숨어 지낸 적이 있었다. 당시에 중학생이었던 정호의 누이동생을 만났다. 나에게 목마를 태워달라고 할 정도로 아주 말괄량이였던 그 녀석…….
  바로 그녀석이 고교생으로 둔갑하여 나에게 나타난 것은 군에서 일병 계급장을 달았을 무렵이었다. 사실 나의 입대는 강제로 이루어 졌다.
  종로 네거리를 점거하고 서울지역 연합시위가 이루어지던 날, 나는 재수 없이 전경들의 포위망에 걸려 구금되었다. 이미 반성문이 몇 장 쌓여있었던 나는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다행히도 아버지의 뒷수습으로 인하여 철창신세를 면하였다. 그 대가로 군 입대를 선택하게 되었다.  
“우리 오빠가 실종되었어요. 혹시라도 오빠에게 연락이 있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그러나 군입대를 한 이후, 정호와는 연락이 끊겨 있었다. 그의 실종소식을 접한 이후, 어디에선가 잘 숨어 지내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제대를 하고 복학하였지만, 정호의 소식은 접할 수가 없었다. 그 대신에 정호의 여동생이 신입생으로 들어와 있었다.  
  정호는 수사기관에 의해 실종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추측만이 무성하게 나돌았다. 심증은 그러하였지만, 뚜렷한 물증이 없었기에 이렇다할 대책도 없이 점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의 존재는 차차 소멸되어갔다.
  5대 독자인 자식이 실종된 정호네 집은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쇼크를 얻어 자리에 누운 지 오래되었고, 아버지는 실어증에 걸려 살아갔다. 녀석이 우리 대학에 입학한 것 역시 오빠에 대한 흔적을 스스로 더듬어 보겠다는 열망 때문이었다.

  제대한 후, 나는 운동권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공직생활을 하는 아버지를 더 이상 힘들게 할 수가 없었다. 배신자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왔지만, 귀를 닫고 도서관에 파묻혔다. 전공이 법학이었던 만큼, 사법시험준비에 빠져 있었다.          
  비록 실종된 상태이지만, 한때 나의 절친한 친구였던 정호를 보아서라도 어떻게든 녀석을 보살펴 주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용돈을 아껴 가끔 녀석을 찾았지만, 녀석은 나의 호의를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내가 졸업할 무렵, 녀석은 제 오빠의 적극성을 그대로 닮고 있었다. 제 오빠에게서 대를 물려받기라도 한 듯이 녀석은 철저한 투사가 되어갔다. 마르크스와 레닌의 혼령은 남매에게 철썩 붙어 있었다.
  나는 그저 제 3자의 입장에 서 있었다. 기껏해야 은신처를 제공하는 정도에서 녀석의 뒤를 보아주고 있는 셈이 되어버렸다. 어쨌든 내 곁을 맴도는 것만으로도 녀석을 지켜볼 수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뿐이었다.          
  녀석이 운동에 더 이상 빠져들게 되면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이었다. 그 날도 녀석은 피신하여 내 좁은 방을 찾았다. 소주잔을 가운데에 두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네가 이렇게 싸운다고 하여, 오빠의 보상을 받을 수는 없어. 이제 곧 졸업이다. 네가 오빠의 몫까지 병석에 계시는 부모님께 효도를 해야 하지 않겠니?”
  녀석은 그저 실실 웃기만 하며, 나를 노려보았다.  
   “오빠, 왜 그래?  오빠답지 않게…….”
   “나답지 않다니?”
   “그 동안 내가 오빠에게 의지해 왔던 것은 내가 걷는 노선이 나쁘다 좋다 말 한마디 않고 나를 지켜주는 것 때문이었어. 어디선가 무주고혼이 되어 떠돌고 있을 우리 오빠를 생각한다면 그런 말은 안 할 것이라고 생각해.”
  녀석은 연거푸 술잔을 비워댔다. 자신의 오빠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녀석은 상당히 괴로워하였다. 나도 서글픔을 견지지 못하고 새벽녘까지 녀석과 술을 마셨다.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던 녀석이 취기가 돌자 입을 열고 주절거리기 시작하였다.
  “형 같은 부르주아들은 몰라. 가진 것 없는 자들이 그 동안 핍박받아 온 것을……. 우리 집안이 얼마나 불쌍한 집안인 줄 알기나 해? 우리 할아버지가 빨치산 유격 대장이었어요. 아무튼 6,25전쟁이 끝나고 난 후에 우리 아버지는 빨갱이 자식이라는 딱지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고……. 헌데, 그 연좌제법 때문에 우리 사촌들까지도 취직을 하지 못하더라고. 게다가 우리 오빠까지 그들에 의해 희생물이 되었어. 이 세상은 뒤집어져야 돼. 군부 독재가 있는 한, 우리들의 불행은 끝없이 이어질 것이고……. 나도 부모님 생각을 하지 않겠어? 우리 집안이 무너져 가는 굉음이 항상 귓가에 들려오고 있어. 하지만, 나는 계속 투쟁을 할 거야. 우리가 살길은 민주화를 쟁취하는 길이야. 비명횡사하여 시체마저도 돌아오지 않는 우리 오빠의 한을 풀기 위해서라도…….”
  취기가 돌아 방바닥에 쓰러져 잠이 들기까지 녀석은 혀 구부러진 소리로 계속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얼마나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까. 녀석이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따발총 쏘듯이 나에게 이야기한 것은 드문 일이었다. 녀석에게 아무런 할 말이 없었다. 그저 한숨을 푹푹 쉬며 고개를 끄덕거려 주었을 뿐. 잠 속으로 빠져든 녀석의 머리에 배게는 받쳐 주었다. 이불도 씌워주며 녀석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정녕 이 얼굴이 너의 얼굴이란 말이냐……. 녀석은 잠을 자면서도 시시각각 고통스럽게 일그러지다가 미소 짓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녀석은 제 호주머니에 땡전 한 푼이 없으면서도 난색을 표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위장병으로 고통이 오더라도 끝내 아픈 표정을 짓지 않았다. 경찰의 지명수배를 받고 떠돌면서도 전혀 힘든 표정을 짓지 않았다. 피신을 하면서도 틈틈이 번역작업 끝에 쥐어진 제법 두툼한 돈 봉투를 받아들면서도 전혀 기쁜 표정을 짓지 않았다. 웃기는 코미디를 함께 보면서도 나는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지만, 녀석은 볼만 실룩거리다 마는 그런 식이었다.
  녀석은 정말 멋대가리 없는 여자였다. 제 아무리 슬프고, 힘들고, 괴로운 상황들이 있더라도 녀석은 언제나 속내를 감추고 웃음으로 넘기는 편이었다.
  “인마, 너의 진짜 얼굴을 좀 보여줘 봐! 그리고 여자다운 표정 좀 지어보고……. 너는 항상 가면을 쓰고 사는 것 같아…….”
  참다, 참다 보기가 안쓰러워지면, 내가 내뱉는 핀잔이었다.
    
  일주일 전에도 녀석은 몹시 지친 얼굴로 나타났다. 신문을 들고 나타난 녀석은 울분을 터뜨렸다.
  “오빠! 이것 좀 봐요. 대공 분소에 끌려가더니 애가 이렇게 죽었단 말입니다. 그냥 한 대 턱 치니까 억하고 심장마비로 죽었다는데, 말이나 됩니까? 어쩌면 우리 오빠도 이렇게 죽어갔는지 모르겠어요. 나도 요즘 그들에게 잡히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네요.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자 애들도 있던데…….”
  이미 뉴스화가 되어버린 떠들썩한 죽음이었다. 원인 규명이 어떻게 될지가 문제였다. 그 고문치사사건 때문에 군부정권과 학생들 간의 대립은 극과 극을 달렸다. 녀석은 깊은 밤까지 꺼억꺼억 울부짖으며 소주를 펐다. 녀석은 제 잔도 아니고, 내 잔도 아닌 빈 잔에 술을 따르며 노래를 읊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고개를 숙인 녀석의 어깨가 들먹거렸다. 술잔 속에 눈물방울이 툭! 내 앞에서 처음 보이는 눈물이었다. 녀석의 눈물은 나의 눈가에도 이슬을 맺히게 만들었다.  
   “오빠! 나한테 가면을 쓰고 사는 듯 하다고 했지요? 내 진정한 얼굴이 아마 이 얼굴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자 보시라니까.”
  녀석은 눈물과 콧물이 범벅된 얼굴을 디밀었다. 내 얼굴에 너무 가깝게 다가왔던 탓에 자칫 코와 코가 거의 닿을 뻔하였다. 내 몸이 꼿꼿하게 굳어지는 순간이었다. 녀석의 숨결 냄새를 맡아버렸기 때문이다. 알코올 기운이 적당하게 스민 따스한 콧김이 나를 감전시켰다. 녀석은 배시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오빠는 가면을 쓰지 않고 참모습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밤에 자는 그 순간까지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오빠는 몰라요? 저 거울을 한번 보시려오? 이 세상에서 제 본 모습을 제대로 드러내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피 튀기는 살벌한 전쟁터에서 살아가고 있는 셈이지.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면을 쓰고 살아야 해. 어린아이들이라고 해서 마냥 순수하다고만 생각할 수는 없어……. 그 아이들도 가면을 쓰고 있으니까요. 배가 고프면, 그냥 밥을 주라는 말을 할 수 없으니까 마구 울며 뗏장을 놓잖아. 울고 있는 가면……. 하하하.
  오늘 있잖아요.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사람구경을 많이 했어. 긴 머리, 짧은 머리, 노란 머리, 까만 머리……. 긴 팔 셔츠, 짧은 팔 셔츠, 하얀색 블라우스, 빨간색 블라우스, 청바지, 미니스커트, 롱스커트……. 가방을 맨 사람, 맨 손인 사람……. 아무리 지켜보아도 똑 같은 스타일은 하나도 없었고, 똑 같은 얼굴도 안 보이더라고. 그만큼 저마다 자신들의 개성에 맞게 완벽한 분장들을 하고 살아가고 있다고 보였어. 그렇게 보니까 가면 무도회장이 따로 없었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가면 무도회장이란 사실을 느낄 수 있었어. 완벽한 가면들을 쓴 사람들……. 맞아! 진정한 얼굴을 되찾기 위해 우리는 투쟁을 하지 않으면 안 돼! 진정한 민주화가 되고, 진정한 평화가 이루어졌을 때 민중들은 자기의 진짜 얼굴로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을 테니까…….“
  길고 긴 넋두리를 뱉어낸 녀석은 또 다시 노래를 읊었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앉았네.…….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술이 얼큰하게 달아오른 녀석은 비틀비틀 일어섰다. 흐느적거리며 춤을 추어댔다. 점차 나에게로 다가왔다.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녀석의 허리를 바라보았다. 유연한 허리의 놀림이 엉덩이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순간 온 몸에 짜릿한 전기가 흐르고 있었다. 육감적인 느낌……. 누가 여자가 아니랄까봐서…….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이었다. 녀석이 갑자기 나를 향해 안겨왔다. 나를 꼭 껴안으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오빠……. 왜 오빠는 나를 여자로 안 보지?”
  “어어? 야가 취했구나.”
  더 이상의 말문이 막혔다. 녀석의 뜨거운 입김이 나의 턱밑을 파고들었다. 황급히 녀석을 뿌리치며 도망치듯이 화장실로 튀어 들어갔다. 녀석의 입김이 내 살결에 와 닿는 순간, 주체할 수 없는 욕정이 내 사타구니에서 촉발되고 있었다.    
  세면기 위에 걸린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았다. 녀석의 말대로 나도 가면을 쓰고 살아왔음이 분명하였다. 아무리 녀석을 남자처럼 생각하고 있었지만, 내 내면 속에서는 녀석을 여자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얼굴이 가렵기 시작하였다. 내 얼굴에 가려진 가면이 곧 벗겨지고, 내 실체가 드러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혹시 녀석이 나의 실체를 미리 알아차리고 비난하는 의미에서 공격을 감행해 온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위선자인 셈이었다. 모든 것을 거짓으로 살아온……. 원인 모를 식은땀이 샘솟았다. 수도꼭지를 틀어 얼굴을 씻었다. 흔들리는 감정을 추스르고 싶었다.
  화장실 문이 열렸다. 녀석이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은 느낄 수 있었다. 오늘따라 별난 일도 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이 내 집을 드나들면서 함께 화장실에 들어간 일은 한번도 없었다. 아무리 급하더라도 상대편이 나온 후에야 들어서던 금녀 혹은 금남의 공간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녀석을 향해 되돌아서지 않고 그냥 이를 닦는 일에만 충실하였다.  
  그러나……. 순전히 감이었지만, 욕실을 겸한 화장실의 하얀 타일들이 밝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물로 입을 행구며 뒤돌아섰다. 그녀를 보며 깜짝 놀라 자지러질 뻔하였다. 다행히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녀석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로 서 있었다. 언제나 칙칙한 옷 색깔에 가려져 있었던 녀석의 몸뚱이는 한 송이의 백합이었다. 눈이 부셨다. 녀석은 꼿꼿하게 서서 나를 노려보았다. 일말의 어떤 부끄러운 빛도 녀석의 얼굴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다. 담담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빠 나 씻을 힘이 없어. 좀 씻어 줄 수 있어?”
  마치 녀석의 마술에라도 걸린 듯이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나는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샤워기의 꼭지를 틀었다. 서서히 녀석의 하얀 몸에 물을 끼얹었다. ‘비너스의 탄생’이란 명화를 감상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손은 끝없이 떨리고 있었다. 녀석의 살결도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동이 틀 무렵, 내 몸은 녀석의 육체 위에 겹쳐져 있었다. 그 순간에 내가 본 것은 녀석의 눈동자였다. 잔잔한 호수의 수면과 같았다.    
  섹스가 끝난 후에 녀석과 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훅! 천장을 향해 연기를 쏘아 올렸다. 시트에는 녀석의 선혈이 연분홍 꽃으로 피어 있었다. 녀석은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슬픈 표정도 없었거니와 후회의 표정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담배를 뻑뻑 피우던 녀석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이제 내 모습을 다 보았지? 나도 여자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보고 싶어 하던 너의 참모습은 이 모습이 아니었다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싶었다. 내가 입을 열며 말을 하려 하였지만, 녀석은 내 입을 막았다.
  “오빠, 오빠는 아무 말도 안 했으면 좋겠다. 내 순결은 오빠에게 주고 싶었으니까……. 쥐도 새도 모르게 더러운 들개들에게 당하게 되면 너무 억울하게 될 것 같아서……. 오빠에게 짐을 주고 싶지 않아. 내가 원한 일이니까. 정말이야. 정말…….”  
  아침이 되자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녀석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훌훌 떠났다.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오빠! 이만 갑니다!”        
  녀석은 또 다시 동해바다로 출발하기 위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평소와는 달리 애써 씩씩하게 걷고 있었다. 창문을 통해 본 녀석의 그 뒷모습이 바로 영원한 이별이 되었다.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이별……. 녀석이 육체로 남긴 메시지는 무엇이었단 말인가…….
  
  내 차는 복잡한 도심을 빠져나가 한강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갑자기 내 시야에 나타난 녀석의 벗은 몸이 사라지지를 않았다. 울적한 마음이 나의 온몸을 타고 휘돌았다. 내 얼굴이 가렵고 거북스럽기 짝이 없었다. 가면의 사이즈가 안 맞는 것일까? 내가 어울리지 않는 가면을 걸치고 있는 것일까?
  머리 위에 걸린 거울을 아래로 당기며 내 모습을 슬쩍 바라보았다. 술에 절어서 까만빛을 발하고 있는 내 얼굴의 색상부터가 짜증을 불러 일으켰다. 밤새 퉁퉁 부어버린 얼굴, 눈동자에 서려 있는 드라큘라의 실핏줄, 코끝으로 내민 한 두 개의 코털……. 게다가 감춰진 나의 이중성들…….
  녀석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나의 존재성이 상실되어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녀석이 떠났다고 할지라도 내 육체에는 녀석의 육체와 영혼이 숨쉬고 있었다. 녀석이 없다는 사실이 내가 없다는 사실로 이어지고 있었다. 녀석도 찾고, 나도 찾고 싶었다. 갑자기 멀미가 났다. 창문을 열었다. 욕지기가 일었다. 아침에 마셨던 우유가 하얗게 되돌아 올 것만 같았다.  
  한강 한 가운데에서 비상램프를 켜두고 차를 세웠다. 뒤따라오던 차들이 경적을 울려댔다. 하지만, 상관하고 싶지 않았다. 한강다리 난간에 기대어 한동안 욕지기를 계속하다가 울컥 솟아오르는 핏빛 덩어리를 강물에 쏟았다. 그리고 주저앉았다.
  실감이 가지 않던 녀석의 죽음이 그제야 느낌으로 와 닿고 있었다. 눈물은 거침없이 앞을 가렸다. 차에 다시 올랐다.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았다.      
  병실에 도착하였을 때, 녀석은 하얀 시트에 휩싸여 있었다. 시트를 들추었다. 시퍼런 멍 자국이 온 몸을 뒤덮고 있는 녀석의 얼굴은 눈물만 흘리지 않고 있을 뿐, 분명히 울고 있는 얼굴이었다. 무슨 말인지 하고 싶다는 듯이 입을 조금 열고 있었다. 나에게 푸념을 늘어놓던 입이었고, 술을 마시던 입이었고, 담배를 피우던 입이었고, 민주화를 외치던 입이었고, 내 입술에 머물렀던 입이었다.
  “인마! 네가 자살했단다. 네가 자살했단다. 누가 믿어? 귀신으로라도 살아나서 너를 이렇게 만든 놈을 응징하라! 응징하라!”
   나는 흐느끼며 녀석의 얼굴에 시트를 다시 덮어주었다. 가면을 벗고 있을 줄 알았던 녀석의 얼굴은 여전히 가면의 얼굴이었다. 녀석의 가면무도회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내가 제 정신을 차렸을 때, 나의 눈가에는 눈물이 범벅되어 있었다. 타이거마스크가 방영되던 TV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현판이 걸리는 화면이었다. 내일이면 나는 저 간판을 볼 수 있으리라…….
                                                         『소설시대』 3호(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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