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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홍의 소설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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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



                    화해(和解)

                                                                                              
  
   서울을 떠나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할 때까지만 하여도 온통 새까만 세상이었다. 신탄진을 알리는 표지판이 시야에 전개될 즈음에야 여명은 서서히 꿈틀거리고 있었다. 필서는 몽롱한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분명히 운전대를 붙잡고 열심히 달려 왔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깊은 잠에서 깨어난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남쪽으로만 계속 질주해 왔던 시간들은 기억 속에서 완전히 소멸되어 있었다.
  필서의 눈동자는 속도계기판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계기의 바늘은 제한 속도인 100킬로를 훨씬 뛰어 넘어 150킬로 근방을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프로야구의 투수가 던지는 볼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지나갔다. 급히 액셀러레이터로부터 발을 떼었다. 차의 스피드가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옆자리에 앉아있는 아내와 갓 태어난 아들녀석을 흘깃 바라보는 순간, 필서의 피부에는 닭살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지금껏 고속도로를 질주해 온 자신이 허공의 외줄에 매달려 위태롭게 곡예를 하고 있는 곡예사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내와 아들의 안전한 모습을 확인이라도 하듯이 한번 더 힐끗 바라보았다. 문득 잠든 아내의 얼굴에서 슬픔의 흔적을 느꼈다. 경상도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에 김씨 가문의 며느리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괴로움을 지닌 여자였다. 이번 귀향에서 아내의 고통스러운 부분들을 말끔하게 지워야 된다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어쨌든 위안이 되는 것은 김씨 가문의 대를 이어갈 핏덩이 아들녀석을 앞세우고 귀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새벽녘의 깊은 잠을 깨운 것은 아버지의 위급한 소식을 전하는 전화벨소리였다. 아버지의 몸이 안 좋다는 소식은 접하고 있었지만, 다급한 어머니의 목소리는 아닌 밤중에 날벼락같은 소식이었다. 몽롱한 정신으로 서울을 출발하면서도 아버지가 이대로 돌아가시면 안 된다는 생각만이 머리 속을 꽉 채우고 있었다.
   필서의 시야에 큼직한 안내판이 나타났다. 직진방향 화살표 쪽에는 '부산'이라는 글자가, 우측방향 화살표 쪽에는 '광주'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필서의 동공 속을 파고들더니 금새 사라져버렸다. 경부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로 나뉘어지는 회덕분기점에 다다르고 있었다.
  표지판이 스쳐지나간 시야 속에서는 문득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솜털처럼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필서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던 형 덕분에 아버지를 따라 심심찮게 서울나들이를 하곤 하였다. 고속버스가 회덕분기점을 지나칠 때마다 아버지는 부산 쪽으로 시선을 던지며 푸념을 늘어놓곤 하였다.
  "어허……. 이제사 버려진 땅에서 벗어나는가 보다잉. 워메, 저것 좀 보그라이. 화물차들이 빼곡하게 달리는 저놈의 경부고속도로를 좀 보란 말이다. 지금 독재를 하고 있는 대통령도 아마 경상도 출신들이라제?"
  뻔한 사실들을 중얼거리는 아버지는 혼잣말을 하고 있는 듯 싶었지만, 분명히 필서에게 들으라는 듯이 목소리의 톤을 높였다. 아버지의 뒤틀리는 심사는 늘 그런 식으로 표출되었다.
   비가 너무 오는 것도, 비가 너무 안 오는 것도, 그래서 농사가 잘 안 되는 것도 자신이 버림받은 호남지역에 살고 있는 탓으로 돌렸던 아버지였다. 한술 더 떠서 덕이 없는 대통령이 나라를 다스리기 때문이라는 논리도 아버지의 입을 떠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그러한 피해의식은 교묘하게도 시대의 흐름에 끈을 달고 있었다. 아버지가 한번 입을 열면 역사학자가 되었다.
  "자고로 산세(山勢)가 험한 북쪽지방이나 산세가 좋은 남쪽지방은 나라를 뒤집을 만한 인재가 나올 가능성이 많다고 혀서 옛날부터 기를 꺾어 왔던 땅이란 말씀이다 이거야. 얼마나 버림받은 땅이었으면 귀양살이하는 사람들이나 보냈겄어. 전라도에서 소리꾼이나 그림쟁이들이 많이 나오는 이유를 너는 알것냐? 머리는 좋은디 출세를 할 수가 없었기 땜시야. 왜놈들한테도 많이 짓밟힌 땅이고, 빨갱이들한테도 많이 짓밟힌 땅이지. 지금도 번듯한 공장 하나 있더냐?"
  귀에 못이 박히도록 숱하게 들어왔던 아버지의 넋두리였지만, 필서는 처음 듣는 말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두 눈 크게 뜨고 귀를 기울여 주곤 하였다. 낮선 손님을 맞더라도, 마을회관에서 담배내기 장기를 두더라도, 아버지는 마치 자신의 유식함을 내세우기라도 하듯이 자주 들추어내는 십팔번 논리였다.
  "그렁께 우리 집 장남이 공부를 열심히 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말씀이야. 우리 김씨 가문도 부흥되는 것이고, 그 덕분에 우리 고장과 우리 사회가 부흥되는 것이랑께……."
  필서는 아버지의 말을 어제의 일인 듯이 생생하게 기억해 내며 미소를 머금었다. 하지만, 그 아버지가 병석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것이다. 혹시라도 자신이 도착하기 전에 아버지가 숨을 거두게 된다면, 자신은 영원히 씻지 못할 불효자로 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아비의 반대를 무릅쓰고 부부의 연을 맺어 아기까지 낳아버린 결혼생활은 평생 어두운 그림자를 달고 다닐 것임에 분명하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한쪽 손을 운전대로부터 이탈시켜 담배 갑을 더듬었다. 담배 한 개비를 입술에 끼워 넣고 눌러 놓았던 시거 잭에서 불을 얻었다. 한숨소리가 뒤섞인 휘파람소리에 담배연기를 실어 보냈다. 살짝 열린 창문 사이로 연기는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버스 전용차선을 달리고 있던 필서는 우측 점멸등을 켜고 호남고속도로로 진입하였다. 그때까지 넓고 확 트인 고속도로를 달려온 탓이었던지 편도 2차선인 호남고속도로로 들어선 후로부터는 조금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제서야 필서는 고향으로 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버려진 땅으로 들어가는구나……."
  필서는 무심코 아버지의 말을 흉내 내고 있었다. 오른쪽 손으로 잎을 가리며 옆 좌석에 앉아 있는 아내를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아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아내는 생후 1달째인 아들녀석에게 통통한 젖가슴을 맏긴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아내가 들었더라면, 틀림없이 '못난 사네'라는 핀잔을 퍼부어댔을 것이다.

   서울로 가출하여 건설회사에 입사하였을 때, 아내는 경리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미스 신이라고 불리우고 있었다.
  회사에서 마련해 준 독신사원주택에 입주하였을 때, 이미 아내는 그곳에서 살고 있었다. 입주 초기에는 서로 눈인사만 나누는 사이일 뿐이었다.
  필서는 어느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았다. 사원주택에 입주해 있던 사람들은 필서의 입주를 두고, 너무 재미없는 친구가 들어왔다고 속닥거렸다. 밥을 먹을 때 입을 여는 일 외에는 입을 열지 않는 무뚝뚝한 사내라는 이미지 때문에, 그들은 필서에게 굳이 말을 붙이려 하지 않았다.
  사실, 필서는 어느 누구로부터도 지방에서 갓 상경한 촌놈이라는 단어를 듣고 싶지 않았다. 되도록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이다. 보따리 하나 달랑 들고 상경한 촌뜨기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면 자신을 경멸하게 될 눈초리들을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필서의 과묵함은 철저하게 계산된 위장전술이었던 셈이었다.
  청운의 꿈을 안고 뛰어든 서울이었지만, 서울은 필서를 쉽사리 껴안아 주지 않았다. 직장을 찾아 돌아다닌 시간들은 마치 천년과 같은 긴 세월로 인식되었고, 취직을 위해 뿌려댄 이력서를 모은다면 산더미 같은 분량으로 기억될 정도로 취업의 문은 바늘구멍보다 더 좁았던 것이다. 게다가 가장 참기 힘든 모멸감은 다음과 같은 말이었다.  
   "전라도출신인가?"
   면접관의 그 한마디가 이어지는 곳은 어김없이 어떤 연락도 받을 수 없었다. 필서는 사원모집에서까지 굳이 출신지를 따지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호주머니의 돈을 아끼기 위해 묵고 있던 노동자 합숙소에서마저 주정꾼들은 서로 경상도편과 전라도편으로 나뉘어져 편싸움을 하였다.
  두 지역의 지역감정에서 초래되는 대리싸움은 서울이라는 커다란 링에서 격렬하게 치루어지고 있었다. 응원하는 관중이나 심판들이 경상도쪽의 손을 올려주는 편파판정을 하고 있다는 피해의식이 필서의 가슴속에 쌓여가고 있었다. 필서의 내면세계에서는 점차 자신이 전라도 촌놈이라는 콤플렉스가 둥지를 틀기 시작하였다. 전라도 땅은 '버려진 땅'이란 아버지의 말을 곱씹는 생활로 이어졌다.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을 철저하게 위장시켜야 한다는 생존의 본능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울말을 하루 빨리 터득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갖게 되었다. 길거리를 거닐며, 화장실에 들어앉아, 자신의 골방에 틀어 박혀, 정신질환자마냥 혼자서 중얼거리며 서울말을 터득하여 나갔다.
   가끔 자신에게 친절을 베푸는 미스 신을 향해서도 말문을 제대로 열 수 없었던 것은 그녀가 경상도말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출신지역에 대한 콤플렉스를 느끼면 느낄수록 그녀에 대한 거리감은 커지고 있었다.
  고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회피하고, 적당하게 말을 돌려 외면해버리는 자신의 행동을 '비굴한 놈'이라고 스스로 질타도 해 보았다. 고향을 부정한다고 하여 부정될 수 없는 고향이라는 사실을 가슴에 담아 놓고 울부짖었다. 필서는 자신의 변신이 역겨울 때마다 가끔 옥상으로 올라 한 마리의 늑대처럼 울부짖었다. 필서는 보름달이 뜨는 밤이 되면 어김없이 옥상으로 올라가 달을 바라보며 흐느꼈다. 달 속에는 철저하게 외면해버리고 떠나온 부모와 땅속에서 백골이 되어가고 있을 형의 모습이 있었다. 필서의 울부짖음은 마치 늑대의 울음처럼 음산하게 허공으로 퍼져나갔다. 필서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미스 신이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미스 신은 그런 달밤의 괴상한 행동에 놀라면서도 어쩌면 저 사내도 자신처럼 오갈 곳 없는 천애의 고아일지도 모르겠다는 연민의 정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그녀가 느끼는 연민의 정은 서서히 필서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가끔 음식을 만들면 필서와 나누어 먹게 되었고, 남자 혼자만의 방에서 묻어나는 쾌쾌한 냄새들을 없애주기 위해 방 청소까지 자청하게 되었다.
  필서 역시 그녀를 흠모하고 있던 터라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객지생활에서 움트는 외로움은 그녀를 향한 연정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녀의 볼에 난 보조개, 커다란 눈, 도톰한 입술, 늘씬한 몸매, 넉넉한 마음 씀씀이, 반듯한 옷차림 등은, 본디 필서가 꿈꾸던 이상형이었다. 하지만, 한가지 흠이라면 그녀가 경상도출신이라는 것이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상하리만큼 그녀를 마주하게 되면 아무런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어쩌면 그녀가 구사하는 강한 경상도사투리가 쉽게 필서의 마음을 열 수 없게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마 그녀마저도 전라도사람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필서와 부부의 인연을 맺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고향을 등진지 3년만의 일이었던가. 설을 맞이하여 필서가 고향으로 떠날 때 그녀는 무척 부러워하였다. 그녀는 자신이 오고 갈 곳이 없는 고아신세라는 것을 필서에게 털어놓았다. 부모가 모두 타계한 고향은 그녀에게 의미가 없는 곳이었다. 필서는 자신에게 마음을 열어주는 그녀에게서 용기를 얻어 정식으로 프로포즈를 취하게 되었다.
  "미스 신!  미스 신도 아시다시피 나는 버려진 땅, 전라도사람입니다. 나 같은 전라도 사람도 남편감으로 괜찮다면……."
   필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 그녀는 이내 미묘한 미소를 머금으며 송곳같은 말을 던져왔다.
  "그렇게 말하면예, 지는 증오의 땅 영남사람인가예? 정말 필서씨 못났네예. 젊은 사람이 지역주의에 빠져서 스스로 자신을 비약하지 마이소. 내는 그 자체가 비극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깐예. 쥐꼬리만한 땅덩어리가 남북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도 비극인데, 게다가 동서로 갈라져 편싸움을 하는 짓거리들은 나라를 말아먹을 일이 아닙니꺼? 모두가 정치하는 사람들 때문인기라예. 우리가 정치꾼들의 농락에 빠져서 놀아나서야 되겠습니꺼."
  그녀는 노조 여성부장을 지낸 여자답게 당차게 입을 열었다. 말 한마디 잘 못 던져놓고 본전도 찾았다는 생각이 필서의 뇌리를 스치는 순간이었다. 차라리 '미스신! 우리 결혼할까요?'라고 간단하게 말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때늦은 후회를 하고 있었다. 이미 쏟아진 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못났다'는 그녀의 표현은 필서의 알량한 자존심 한구석을 콕콕 건드리고 있었다.  
  "미스 신은 직접 피해를 안 당해 봤으니까 그런 평화주의적 논리가 나올 수 있겠지만, 직접 피해를 당한 당사자들은 그렇지가 않아요. 우린 한이 잔뜩 서려 있지요."
  "우짜꼬, 무슨 사람이 그렇게 삐뚤어져 있습니꺼? 남이 진심을 이야기하면 그 진심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닙니꺼? 도대체 뭘 어떻게 당했다는 건데예. 앞으로 내 남편이 되어 볼 생각이라면 그 사고방식을 한 참 뜯어고쳐야 되겠네예. 도대체 한이라는 극단적인 말까지 사용해야 됩니꺼?"
  "최소한 나는 그 한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광주민중항쟁에서 하나밖에 없는 형을 잃었습니다."
  "뭐라꼬 예?"
  그녀는 토끼처럼 놀라고 있었다. 더 이상 그녀는 필서에게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녀의 말속에 '내 남편이 되어 볼…….'이라는 부분은 너무 화끈한 답변이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부터 필서와 그녀는 결혼을 전제로 교재를 시작하였다. 경상도출신의 그녀를 맞음으로 인하여 필서의 내면 속에 똬리 틀고 있던 지역감정의식은 조금씩 소멸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부모님께 그녀를 소개하는 일이었다. 한번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면 끝까지 고집을 피우는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피해의식 속에서 싹트는 껄끄러운 감정의 대상이었던 경상도는 형의 죽음으로 인하여 철저하게 배제되는 지역이었다. 형의 죽음은 아버지의 모든 꿈을 소멸시키는 동시에 한을 심어 놓았다.

  김씨 가문의 종손이었던 형은 아버지의 희망이었다. 쇠운의 길을 치닫고 있던 종가집을 되살리는 길은 형의 손에 달려있다고 아버지는 굳게 믿었다. 그래서 형은 중학시절부터 서울에서 유학생활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얼마 남지 않은 문중의 땅덩어리를 팔아치우면서까지 형의 서울유학생활을 뒷바라지하였다.
  신경통으로 꿍꿍 앓으면서도 밤과 낯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던 아버지가 만세를 부른 것은 형이 서울의 S대학교 법대에 합격하던 날이다. 아버지는 그날을 자축한답시고 빛을 내어 동네잔치를 벌였다. 납부금을 밀려가면서 실업계고교를 간신히 다니고 있던 필서에게는 울화가 치미는 일이었다. 괜스레 외양간에 메어 있는 소의 등짝만 갈기며 심통을 부려댔다.
  "너는 조금만 공부해도 되는 것이여. 형이 나중에 법관이 되고 나면 너는 가만히 있어도 형의 덕을 입을 것잉께. 불평불만은 하지도 말더라고……. 형이 잘 되어야 우리 가문이 살아나는 것잉께."
   필서의 등을 두드리며 달래는 아버지의 말이었다. 그러나 형의 대학생활은 최루까스와 화염병으로 얼룩지고 있었다. 형은 가끔 느닷없이 나타나 집에서 쉬다 돌아가곤 하였다. 식구들 모두는 집이 그리워서 왔다가는 것이려니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형사들이 들이닥치고 난 후에야 대모를 하다가 도망쳐 왔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형은 필서의 입을 틀어막았다. 아버지가 알면 피를 토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형은 아버지까지 자신이 하는 운동에 아버지를 동조시켜 나갔다. 군부의 독재가 이 땅에서 하루 빨리 청산되어야 한다는 운동권의 논리는 아버지가 평소에 지니고 있던 피해의식과 교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아버지는 형이 무슨 말을 하던지 맞장구를 쳐주며 격려해 주었다. 큰아들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하더라도 믿어주는 아버지였다. 형이 증오하는 정부는 곧 아버지의 증오의 대상이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듣다가도 아버지는 곧잘 흥분하곤 하였다.
  "저런 독재자 때문에 나라가 요 모양 요 꼴이랑께."
  야당지도자에 대한 탄압이 팽배해 있던 상황 속에서 영남과 호남지역의 갈등은 끝없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당시의 호남권의 민중들은 정치적 상황에서 파생되는 소외감으로 분노하였다. 그 분노는 결국 광주민중항쟁으로 이어지는 불씨가 되었다.  
   광주민중항쟁은 형이 경찰의 추적을 피해 고향으로 내려와 군입대를 준비하고 있었던 시기에 일어났다. 형이 내려와 있던 한 달이란 세월은 필서네 가족이 좀처럼 맛보기 힘든 오붓한 시간들이었다. 형은 바깥외출을 일체 하지 않고, 오로지 가족들과 함께 열심히 집안 농사를 거들어주었다.
   항쟁이 겉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닫기 시작하자 형은 일손을 놓고 한동안 번민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형은 입을 굳게 다물고 외출준비를 하였다.
  "군인들이 전라도 사람들을 다 죽이고 있다고 하는디, 이대로 앉아서 죽을 수는 없는 일이구만. 어른이고 애고 할 것 없이 다 죽어 나자빠지고 있다고 허는디 나가서 상황 좀 보고 올란다. 너는 집단속이나 잘 하고 있거라잉."
   그 길이 형의 마지막 길이 되리라고는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였다. 형의 시체가 저수지에서 퉁퉁 불어터져서 떠오른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 뒤의 일이었다. 주머니에서 나온 신분증이 아니었더라면 도저히 형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처참한 모습이었다. 머리와 가슴에는 총알이 뚫고 지나간 흔적들이 뱀구멍처럼 뻥뻥 뚫려 있었다. 그 구멍들은 커다란 동굴로 변하여 살아 남아 있는 가족들을 송두리째 삼키고 있었다. 형의 몸에 난 구멍은 한 줄기의 빛도 침범하지 못하는 암흑의 동굴이었다. 산소 한 모금도 드나들지 못하는 밀폐된 공간이었다.
  아버지의 꿈이 산산조각 났다. 더불어 김씨가문의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말았다.  
   "워메 저 김씨네. 완전히 미쳐버렸는가베여."
   "멀쩡한 자식을 잃고서 온전할 리가 있겄는가? 미쳐가는 집이 워디 저 집 한집뿐인감? 이 무심한 놈의 세상……."
   동네 사람들의 소곤거림이 그랬듯이, 아버지와 어머니는 미쳐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한동안 마을 입구 당산나무 밑에 주저앉아 큰아들이 돌아오길 기다리다가 어둠이 드리워지면 허탈한 모습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여보 마누라. 오늘은 큰 애가 좀 늦는구먼. 방 청소는 해 두었는가?  먼길 오느라고 시장할텐디……. 미리 밥상 좀 차려 노소."
  분명히 두 눈 크게 뜨고서 아들의 시체를 확인하였고, 자신의 품안에 두어야 된다며 자신이 묻히게 될 가묘 바로 밑에다 손수 묻어 주기까지 하였던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어머니도 역시 끼니때마다 형의 밥을 퍼놓았으며, 밥이 식을까봐 이불 속에 꼭꼭 묻어두기까지 하였다.
  "이놈의 땅은 저주받은 땅이야. 버려진 땅이야……."
  몇 달이 흐른 후에야 정신을 되찾은 아버지의 일성이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가슴과 땅을 번갈아 두들기며 통곡하였다. 국가를 전복시키려한 중죄인으로만 치부된 형의 죽음은 말 그대로 개죽음이었다. 아버지의 가슴 깊숙한 곳에는 오로지 증오만 이글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들의 생명을 앗아간 총을 증오하였고, 그 총을 쏜 진압대를 증오하였고, 발포명령을 내린 자들이 영남출신이라는 사실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그놈들을 용서 못하제. 내 자식을 죽인 놈들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니께. 경상도 땅에는 발도 내딛지 말아라잉. 경상도 것들과는 상종도 하지 말아라잉. 모두가 원수들이란 말이여……."
  아버지는 한동안 경상도의 '경'자만 들어도 눈을 부릅뜨고 자지러질 듯이 신경을 곤두세웠다.
  집안 분위기는 허우적거리면 허우적거릴수록 깊은 수렁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무덤 속과 같은 집을 감당할 수가 없었던 필서는 탈출을 꿈꾸었다. 끝없이 괴로워하며 피폐해져 가는 노부모를 생각한다면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모습에서 반사되는 자신의 미래의 모습을 보면서 탈출의 뜻을 굳히고 있었다. 어쩌면 극히 이기주의적인 발상이라고 비판받을지라도 죽은 자는 어디까지 죽은 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엄니, 살아있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발버둥치며 살아나가야 하는구만이라우. 우리 김씨 종가가 인자 나 한 사람한테 달려 있지 않소. 그래서 이제부터 돈을 벌어야 쓰겄구먼이라우. 내가 서울에 가서 성공해 돌아올텡께 그때까지만 고생하시쇼."  
   필서는 아무런 소식도 없이 떠날까 생각하였지만, 어머니에게만은 떠날 결심을 털어놓았던 것이다.
   "무신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랑가? 니 아버지가 제 명에 죽지 못할 것 같은디……. 우리를 버리고 니가 떠나버린다면 우리는 어떻게 한다냐? 안 되지. 그라면 안 되는 것이제. 니가 없으면 이 집을 누가 꾸려나간단 말이냐?"
  어머니는 필서의 옷자락을 붙잡고 통곡하였다. 어머니의 슬픈 목소리를 듣고 뛰어 나온 아버지는 필서를 지긋이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마누라 말릴 필요 없어. 떠나뿌려라. 이 땅은 사람이 살 땅이 아니니께. 짐승도 살기 힘든 땅이란말여. 이것 좀 봐라이. 이 흙을 보란 말이다. 피로 물든 땅이 아니더냐. 떠나거라. 떠나. 그리고 다시는 이 땅을 밟지 말아라."
  붉은 빛이 감도는 황토를 흩뿌리며 필서를 보내던 아버지는 필서가 사라질 때까지 하늘만 바라볼 뿐이었다.
  필서는 부모로부터 등을 돌리는 순간, 집을 떠난다는 자신의 생각이 잘못된 결단이 아닐까 하는 고뇌가 물밀 듯이 밀려왔다. 그러나 발길은 계속 집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서울행 기차에 몸을 담고 나서야 모든 고뇌를 잠재울 수 있었다. 덜커덩거리는 기차바퀴소리와 더불어 '이 땅을 다시 밟지 말아라'는 아버지의 떨리던 말이 필서를 괴롭혔다. 피가 끓는 듯한 절규의 목소리였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자신들과 의절을 선언하고 떠나는 것에 대한 분노였을까? 아니면, 진정 아무 희망이 보이지 않는 버려진 땅을 떠나 날개를 펴 보라는 격려였을까? 어지러운 상념들은 서울에 도착하고서도 계속 이어졌다.
   세월이 약이라고 하였던가. 죽은 형에 대한 아픈 상처들도 서서히 아물어가고 있었다. 필서의 가출이 부모에게는 오히려 굳굳하게 버티어나갈 수 있는 오기를 불어 넣어준 듯 싶었다. 김씨 가문의 종손인 아버지는 조상 섬기기를 게을리 할 수 없는 처지였다. 자신에게 맡겨진 숱한 제사들을 모시기 위해서라도 빨리 안정을 찾아야 했던 것이다.
   필서와 미스 신은 사랑이 깊어지면서 동거생활을 시작하였다. 혈육이 없는 그녀는 빨리 결혼식을 올린 후, 시부모를 모시며 부모의 정을 느끼고 싶어하였다. 필서에게 있어서는 그녀의 뜻이 너무 고마울 뿐이었다. 돈을 벌어보겠다는 꿈을 가지고 상경하였지만, 직장생활로만은 그 꿈을 이루기가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차라리 귀향하여 부모를 봉양하며 특용작물을 경작한다면 오히려 월급쟁이 생활보다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필서 부부는 갖고 있었다. 그러나 부모의 완강한 거절로 인하여 그 꿈은 계속 지연되고 있었다.
   영남지역에 대한 끝없는 적개심을 품고 있던 아버지가 영남출신의 며느리를 보는 것은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었다.
  "이놈의 불효 막심한 자석아. 구천에 떠도는 네 형을 잊어뿌렸냐? 나더러 경상도며느리를 맞으라고?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야그는 하지 말더라고. 내 눈에 흙이 들어오더라도 안 되는 일은 안 되는 일잉께."
  완강한 아버지만큼 필서도 굽히지 않았다. 이미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고, 혼인만 하지 않았을 뿐, 부부의 연을 맺고 동거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모의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시간을 충분히 갖고 기다리겠다던 필서의 마음은 아내가 임신을 하게 되면서 초조해지기 시작하였다. 배가 부르기 전에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서 결혼식을 치루어야 된다는 압박감만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필서는 아내의 임신 소식을 갖고서 몇 번인가 고향을 찾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콧방귀를 뀔 뿐이었다. 아내는 아내대로 면사포를 써 보지도 못하고 아기를 낳게 된다면, 떳떳한 가정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필서는 몇 번인가 더 고향집에 내려가서 아버지를 설득하여 보았지만 변함없이 고개를 숙인채 발길을 돌리곤 하였다. 결국, 필서는 아버지의 허락을 포기하고 말았다. 조그만 단칸 셋방에서 찬물 한 그릇 떠놓고 간략한 혼인식을 마치고 혼인신고를 하였다. 투정을 부려 볼만한 여자의 본성이 아내에게 없는 것도 아니었거늘, 그녀는 변함없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허락을 기다리겠다며 오히려 필서를 위로하였다.

   호남고속도로에서 빠져나간 필서의 차는 국도를 따라 지리산자락을 휘어 감았다. 쉬지 않고 달려 온 덕분에 해는 그때까지도 중천에서 반짝거리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었다. 낯익은 산야를 휘돌자 형이 뭍혀 있는 산이 전개되었다. 동시에 필서의 눈과 아내의 눈이 마주쳤다. 둘은 빙긋이 웃었다. 자신들이 일으킨 산불을 기억해낸 탓이었다. 비록 문중의 무덤들을 송두리째 태웠지만, 덕분에 어머니의 마음만은 돌릴 수 있었다. 필서의 기억 속에 그날의 일들이 생생하게 피어올랐다.  
  
  아내의 배가 점점 불러오르기 시작하던 이른 봄이었다. 아내는 옆집에 살고 있던 무당집을 드나들더니 느닷없이 형의 무덤을 찾자고 제안해 왔다.
  "당신의 형님이 외롭게 구천을 떠돌고 있다고 하데예. 그래서 우리 결혼을 막고 있다고 ……. 부적을 태우고 향나무를 두그루 심어주면 형님의 넋이 조금은 위로를 받을 거라 하데예. 쓸데없는 짓을 하려 한다고 욕하지 말고예 이번에 갔다 옵시데이. 훗날 뱃속의 우리 아기도 형님께서 잘 보살펴 줄거라카데예."
  형의 영혼이 떠돌면서 아버지의 발목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결혼식을 올릴 수 없다는 것이 점쟁이의 점괘였다. 필서는 아내의 말대로 길을 떠났었다. 아내의 부탁도 들어 줄겸, 배가 부른 며느리를 보면 부모님도 인정해주리라는 기대가 앞섰기 때문이다.  
  숱한 조상들의 무덤들이 촘촘하게 박힌 김씨 문중의 세양산에 도착하였다. 아내와 함께 풀을 헤치며 산허리를 돌아 형의 무덤에 다다랐다. 형의 무덤은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었다.
  "형, 그 동안 잘 지냈어? 옆에 선 여자가 내 마누라야. 마누라가 경상도여자라서 아버지가 아직 허락을 안 했지만……. 형의 몫까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데 말이야. 형이 좀 도와줘야겠어……."
  필서는 읍내에서 사온 국화꽃을 형의 무덤 옆에 놓았다. 소주를 종이컵에 따르고 마른 오징어도 안주로 올렸다. 절을 올린 후 소주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무덤에 뿌려 주었다. 한잔 술에도 벌겋게 취하던 형의 모습이 선명하게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곁에서 엉거주춤 서 있던 아내는 무표정한 얼굴로 필서를 지켜보고 있었다. 오징어 다리를 뜯어 그녀에게 권하였다.
  "우리 아버지 고집은 말고집이야. 형이 망월동으로 갔으면, 외롭지도 않았을 텐데 말야. 당신 곁에 두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형의 무덤으로부터 바로 위쪽에 있는 또 하나의 무덤을 바라보았다. 속이 텅 비어 있는 가짜 무덤이 진짜 무덤보다 더 기세 등등하게 버티고 서 있었다. 아버지가 들어갈 무덤이었다. 아버지는 '가묘를 만들어 놓으면 자식농사가 잘 될 것이다'는 말을 접한 후, 고집스럽게 자신이 들어갈 무덤을 미리 만들었다.
  무덤을 만들던 날. 아버지는 마치 타인의 장례식을 치러 주기라도 하는 듯이 돼지를 잡고, 제물을 한 봇짐씩이나 장만하여 정성 들였다. 인부들이 땅을 파는 가운데에도 나침반을 들고 앞장서서 진두지휘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진지하기만 하였다. 명당이 되기 위해서는 관의 방향을 앞산 꼭대기와 일치시켜야 한다며 방향 잡는 일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빈 관이 땅속으로 내려지던 순간, 필서는 아버지의 표정을 훔쳐보았다. 아버지는 안면에 미소를 가득 띠고 있었다. 어쩌면 미래의 자신의 죽음을 훔쳐보며 즐기고 있는 듯도 싶었다. 빈 관에 흙을 끼얹고 밟아서 다지는 작업을 하고 있던 형과 자신의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던 아버지의 알 수 없는 미소는 내내 필서의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한 자락의 골바람이 불었다. 쌀쌀한 느낌이 들었다. 아내는 자신의 조그만 가방 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내고 있었다. 자신이 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였다.
  "여보 이 부적과 당신 옷을 함께 태우고 동서남북으로 세 번씩 절을 하라카데예. 그리고 저 앞에다 나무를 심으면 되고예."
  필서는 라이터를 건네주었다. 아내는 주변에 있는 소나무가지를 꺾어 솔잎들을 뜯어낸 후, 앙상한 가지에 필서의 속옷과 부적을 걸쳤다. 그리고 불을 붙였다. 옷은 붉은 섬광을 일으키며 타 들어갔다. 아내는 불길을 바라보며 필서를 향해 만족스러운 미소를 던져왔다. 아내는 동쪽을 향해 삼배, 서쪽을 향해 삼배, 남쪽을 향해 삼배, 북쪽을 향해 삼배를 올렸다.
  그 때였다. 꺼진줄로만 알고 있던 불씨가 골바람을 타고 되살아나다. 일대는 순식간에 불바다를 이루었다. 필서 부부는 솔가지를 꺽어 불을 끄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잠시 후에 동네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 속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도 있었다. 즐비하게 늘어선 조상들의 무덤을 홀라당 태우고 나서야 산불은 꺼졌다.
  뒷수습을 하고 집으로 돌아 온 필서 부부의 모습은 흑인 버금가는 몰골이었다. 게다가 아내의 얼굴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가시덩쿨에 스친 상처가 제법 컸던 탓이었다. 산불을 내게된 동기를 듣던 아버지는 아내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약을 휙 던져놓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워메 이것아. 얼마나 놀랐냐? 뱃속의 애기는 안 놀랐겄냐? 그러코롬 반대하는 결혼을 꼭 혀야 되겄냐? 이그 불쌍한 것 같으니라고…….니도 팔자구나잉."
  어머니는 잔뜩 겁먹은 아내를 치료해 주며 오히려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이미 어머니는 며느리를 받아주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기를 낳을 즈음에는 상경하여 산후수발까지 들어주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반대는 요지부동이었다. 산불을 낸 그날, 상경하던 아내는 얼굴에 난 상처를 감싸며 미소 짓고 있었다.
  "보라니까요. 산불은 냈지만, 정성들인 효과가 났지예?"
  
   마을이 가까워지면서 비포장길이 시작되었다. 덜커덩거리는 소음 때문에 지난 기억의 수렁으로부터 헤어날 수 있었다. 아내는 필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산불은 냈지만, 정성들인 효과가 났지예?"
  아내는 그 때와 똑같은 말을 꺼내고 있었다. 필서는 커다란 웃음을 와락 쏟아냈다. 아기가 놀랬던지 울음을 터뜨렸다. 아내는 아기를 달래며 필서를 향해 눈을 흘기었다. 차가 집 앞에 다다르자 아내는 조금 굳은 얼굴표정을 짓고 있었다. 매번 홀대를 받으며 떠나던 순간들을 되새김질하고 있는 것일까…….
  마당으로 들어선 필서는 흠칫 놀라며 텅 빈 마당 한 귀퉁이를 바라보았다. 사랑채가 사라지고 없었기 때문이다. 사랑채는 흉물스럽기 짝이 없는 재래식 건물이었다. 오래 전부터 집의 미관을 봐서라도 허물어버리자고 아버지에게 누차 말하였지만, 아버지는 버럭 화만 낼뿐이었다. 형의 흔적이 깃든 사랑채를 부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서 오니라. 괜시리 헛걸음질을 한 것 같다. 오늘 아침까지 정신이 오락가락하던 양반이 몸을 씻어달라고 성화를 부리더구나. 그래서 지금 막 몸을 씻겨드리고 옷도 새로 갈아 입혀 드려 뿌렸다. 며늘아기 너도 오느라고 고생했구나잉."
  부엌에서 나온 어머니는 치마에 손을 닦으며 며느리의 두 손을 꼬옥 잡았다. 아내로부터 손자를 받아 안았다.  
  "어디 보자 내 새끼. 어디 보자. 얹그제 낳은 놈이 이러코롬 커버렸단 말이냐? 오메……. 이렇게 잘 생길 수가…….장군감이야."
  손자를 받아든 어머니는 아기의 얼굴부터 손가락, 발가락까지 유심하게 뜯어보았다.
  "즈그 아비를 꼭 빼 닮아 뿌렸어. 들어가자."
  아버지는 잠든 듯이 이불 속에 누워 있었다.
  "영감! 아들 내외하고 손자까지 왔소. 아따 눈 한번 크게 떠 보시랑께."
  아버지는 푸른빛 감도는 눈까풀을 열고 잠깐 필서 부부를 바라보았다. 필서 부부가 큰절을 올리기 위해 아버지 앞에 섰을 때  
  "아픈 사람에게는 절을 안 하는 벱이다. 그냥 앉그라."
  어머니는 며느리를 주저앉혔다. 다시 감겨진 아버지의 눈까풀이 바르르 떨렸다. 아내는 다소 머뭇거리는 듯싶더니 입술을 지긋이 깨물며 뼈밖에 안 남은 시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아버님 예, 손자 한번 봐 주이소."
  아버지의 눈이 다시 뜨여지면서 힘없는 시선으로 며느리와 아기를 번갈아 응시하였다. 아버지에게서 예전처럼 차디찬 눈빛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내는 시아버지의 얼굴 앞에 아기를 가까이 대어 주었다. 아버지의 시선은 아기의 얼굴에 머물렀다. 아기가 생긋 웃었다. 아버지는 깡마른 한 쪽 손을 들어 아기의 볼을 매만졌다. 그리고 며느리의 얼굴에 난 흉터를 어루만졌다. 산불을 냈을 때 얻은 흉터였다.
  "아가야. 흉이 남아버렸구나……."
  아버지의 볼에 한 방울의 눈물이 주루륵 흘러 내렸다. 어머니는 손수건을 들어 아버지의 눈물을 닦았다.
  "이 양반이 요즘 들어서 이렇게 눈물을 잘 뺀단다. 며칠 전에 내가 밭에 나간 틈에 사랑채에 불을 질러 몽땅 태워버리질 않나……. 소방차가 오고 난리가 나부렸단다. 네 형의 물건에 손만 대어도 야단을 치시던 양반이……. 며느리가 손자를 낳았다는 말을 듣더니 그 자리에 집을 새로 지어서 너희 부부가 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불을 놓았다지 뭐냐. 그렇게도 경상도며느리를 못 들여놓겠다고 하더니, 손자새끼를 낳았다고 하니까 이름을 짓고 야단법석을 떨었지. 너희들은 모를 것이여. 아버지가 너희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를……."
  어머니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아버지는 한두 번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버지는 손을 들어 문갑 쪽을 가리키며 어머니에게 눈짓을 보냈다.
  "손자 이름 지은 것을 가져오란 말이요?"
  어머니의 반문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내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아버님, 경상도 사람들이 아들을 빼앗아 갔다고 미워 하셨지 예? 경상도 며느리가 다시 그 아들을 되돌려 놓았다고 생각하시고, 이젠 저를 미워하지 말아 주이소……. "
  잠시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던 아버지는 미소를 머금으며 며느리의 손을 부여잡았다. 아버지의 미소는 잠깐 동안이었다. 가래가 그렁거리는 고통스러운 숨결이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어머니가 내어놓은 하얀 봉투를 열었다. 필서의 눈은 커다랗게 열리고 있었다. 하얀 종이에는 '김필영'이라는 형의 이름 석자가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
  점차 아버지의 숨소리가 작아지고 있었다. 아버지의 얼굴은 평화로워 보였다.
                                                            『제주작가』5호(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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