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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홍의 소설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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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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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야, 까치야.

                까치야, 까치야.
                                                                      


  집 밖에서는 우체부의 자전거가 벨을 울리며 지나갔다.
  톡!
  풀잎처럼 흐느적거리던 아이의 이가 잇몸으로부터 분리되는 소리였다. 그 순간, 이를 빼낸 천씨와 이를 빼앗긴 손자 사이에서는 너무나도 극과 극을 달리는 고요가 흘렀다. 천씨는 아이의 앞 이 한 개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마치 게임에서 이긴 승리자처럼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손자는 번갯불에 콩 구어 먹을 듯이 일어난 사건으로 인하여 얼이 빠진 채 커다란 눈을 굴리고 있었다.
  손자는 과녁을 노려보는 듯한 예리한 눈을 번뜩거리며 천씨의 손바닥에 놓인 자신의 이를 노려보더니, 급기야는 어깨를 들먹거리며 굵은 눈물방울을 떨어뜨리기 시작하였다. 그것으로써 잠시 동안의 고요는 산산이 갈라지고 있었다. 자신의 신체 일부가 떨어져 나간 아픔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흔들거리는 이를 그냥 만져만 보겠노라고 약속하였던 천씨로부터 배신을 당한 분노 때문이었을까. 손자는 아예 두발을 동동거리며 서럽게 울어댔다.  
  천씨는 자신의 손바닥에 놓여 있는 콩알만 한 이 한 개와 눈물이 범벅되어 훌쩍거리는 아이의 일그러진 얼굴을 번갈아 보며 난처한 듯이 너털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두 자식을 길러 오면서 녀석들이 젖니를 갈 때마다 모두 자신의 손으로 빼주었었기 때문에, 이를 빼는 일에 있어서 만은, 어느 치과 의사 못지않은 실력을 갖고 있다고 자부해 왔던 터였다. 어디 자식들뿐이던 말인가. 앞집 뒷집 할 것 없이 동네 아이들이 이를 갈 때마다 자신의 손을 통해야 하는 때도 있었다. 마치 치과 의사나 되는 듯이 이를 뺀 후에는 죽염을 만들어 놓았다가 죽염가루를 탄 물로 입안을 헹구어주기까지도 했었다.    
  며칠 전부터 집안에서는 내일모래면 초등학교에 들어갈 손자 녀석의 이가 흔들린다고 야단법석들을 피우고 있었다. 애비는 명주실을 문고리에 달아 놓고서 마치 노루몰이라도 하듯이 아이를 유인하다가 실패하고, 어미는 읍내의 치과에 가서 빼자고 실랑이를 하는 동안, 아이는 도망 다니기에 정신없었다.
  그런 아들과 며느리의 행동을 지켜보던 천씨는 못마땅한 듯이 눈을 흘기며 입맛만 쩝쩝 다시며 지냈을 뿐이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천씨는 아들내외에게 얹혀사는 처지였기에 큰 소리 칠만한 그런 상황이 못 되었다.
  어찌 되었던 간에 자신의 능란한 솜씨를 전혀 인정하려 들지 않는 아들내외가 섭섭하였다. 특히 자신의 손에 의해 모든 새 이를 가진 아들마저도 자신에게 한마디 의뢰가 없는 사실이 더더욱 괘씸하였다. 그까짓 이 하나 빼는데 그토록 집안을 들었다 놓았다 할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천씨는 아들 내외가 과수원으로 나간 틈을 타 손자의 이를 빼기로 작정한 후, 뒤주 속에 넣어 두었던 알사탕 한 개로 손자를 유인하였고, 무릎에 앉히는데 성공하였다. 너무 엄살을 많이 피우는 녀석이었기 때문에 한참 동안을 구슬려서 이를 만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어디 보자. 요놈이 너를 그렇게 속 썩이는 이빨이더냐?"
  손자는 할아버지의 손이 자신의 이에 닿는 순간, 자지러지게 고개를 흔들어댔다.
  "할애비는 니 이빨을 그냥 만져보고 싶을 뿐이야. 얼마나 흔들거리는지 좀 보고 싶을 뿐이니까. 만져보게 하면 사탕 하나 더 주지."
  손자는 사탕을 더 먹을 수 있다는 욕심으로 할아버지에게 이를 내맡겼다. 천씨는 흔들거리는 이를 확인하는 동시에 툭 쳐서 밀어 넣었다. 뿌리가 거의 뽑혀 있던 이는 힘없이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천씨는 아이에게 알사탕을 하나 더 내 밀었지만,
  "할아버지 미워……."
  라는 말만 연발하며 울음을 그치지 않고 있었다. 천씨는 두 손을 머리 위에 얹어 토끼 흉내를 내보기도 하고, 호랑이 흉내를 내보기도 하였지만, 녀석은 전혀 그칠 줄을 몰랐다.
  "아가야, 너 계속 그렇게 보채면,  저 아래 있는 우물가에도 못 간다. 새우가 너한테 침을 놓고, 붕어한테 뺨도 얻어맞게 되는 거여."
  천씨는 어린 시절에 부르던 동요를 흥얼거려 보았다.
  "이빨 빠진 노장군 우물가에 가지 마라. 우물가에 가면 새우에게 침 맞는다. 이빨 빠진 노장군 냇가에 가지 마라. 냇가에 가면 붕어에게 뺨맞는다."
  천씨의 노랫가락을 듣던 손자는 눈물을 훔치며 천씨에게 대들었다.
  "거짓말……."
  "정말이라니까……. 니 애비도 할애비가 이빨을 뺐을 때, 그래서 울지 않았어."  
  워낙 물장난을 좋아하던 녀석이었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믿기 어렵다는 투였다.  
  "아가야 새 이빨 빨리 갖고 싶지?"
  "응."
  "아가야. 그러면, 이빨을 저어기 지붕 위로 던지면서 이렇게 말해 봐라. 까치야, 까치야. 내 헌 이빨 가져가고 새 이빨 갖다 다오. 하고 말이다. 알았느냐?"
   손자는 언제 눈물을 흘렸냐는 듯이 천씨의 말을 듣고서 맑은 얼굴을 끄덕거렸다. 아이는 툇마루에서 내려서더니 운동화를 질질 끌며 헛간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팔을 휘휘 젓더니 자신의 이를 헛간 지붕위로 내 던졌다.
  "까치야, 까치야, 내 헌 이빨 가져가고 새 이빨 갖다 다오."
  아이의 말을 전해 들었다는 듯이 건너편 전선줄에 걸터 앉아있던 까치들이 허공을 향해 한 바퀴 선회하였다. 아이는 씽긋 웃으며 천씨의 품을 향해 달렸다. 천씨는 두 팔 벌려 손자를 꼬옥 안았다. 아이의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마당을 꽉 채웠다.
  그 때였다. 아들내외가 몸의 먼지를 털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아들 내외의 얼굴은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또 부부싸움이라도 했단 말인가. 천씨가 아들과 며느리의 표정을 곁눈질로 살피고 있을 때, 손자는 제 부모를 향해 줄달음질 쳤다.
  "엄마, 내 이빨 할아버지가 뺐어."
  "어머, 치과에 가서 빼야 위생적인데……. 소독은 했니?"
  아이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아이구……. 이 입술에 핏자국 좀 봐. 아버님, 애 이빨을 아무렇게나 빼면 되어요?  잘못하다가 균이라도 들어가면 어쩌시려고요. 그래서 내가 오늘 치과에 데려갈려던 참이었는데……. 집에 계실 땐 애가 밖으로 나가지 않게만 하면 되어요."
  며느리의 얼굴에서는 못 마땅한 표정이 역력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빠 내 이빨을 까치가 가져갈 거래……."
   어미의 손에 끌려 방으로 들어가던 녀석은 제 아버지를 향해 소리쳤다.  
   "그 놈의 까치이야길랑 하지도 마라. 머리 아프다. 머리 아파."
   천씨는 아들의 큰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아니 왜 그러냐?"
  "제법 잘 된 사과는 모조리 다 쪼아놓았으니 말입니다. 농사 다 망치게 생겼어요. 이 놈의 까치새끼들을 모조리 다 잡아 죽이던지 무슨 수를 써야겠어요."
  "허헛, 고 넘들도 좀 먹어야 살겠지……. 적선한 폭 잡으면 어떠냐?
  "아버지! 까치가 쌀을 가져다주던가요? 왜 그리 까치 말만 나오면 그렇게 관대하세요?"
  아들은 얼굴에 오만 인상을 다 찌푸리며 집을 나섰다.
  "허허……. 까치 몰아낸다고 총소리 나는 것을 설치하더니만 그것도 별 효과가 없는가 보군."
천씨는 툇마루에 걸터앉아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요 근자에 들어 까치의 숫자가 보기 드물게 불어난 것도 사실이다. 논에서 벌레나 잡아먹던 까치들이 과일을 쪼아 먹으리라고 누군들 생각이나 했겠는가. 천씨도 요즘 까치가 미움을 받을 만 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였다. 일년 동안 뼈 빠지게 정성들인 과일농사를 망치는 일은 정말 안 될 일이었다. 게다가 그 덩치가 큰 독수리들과도 싸워서 먹이를 독차지하고 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땐 세상 오래 살고 볼일이라고 피씩 웃기도 하였다.
  내내 손자의 놀이 친구가 되었던 천씨는 아들 내외가 돌아옴으로 인하여 혼자만의 자유를 얻게 되었다. 주섬주섬 담배 한 대를 빼어 물며 성냥불을 붙였다. 사립문 옆의 감나무에 두 마리의 까치가 날아와 앉더니 깍깍거리며 요란스럽게 펄쩍거렸다. 그 모습들이 정겹기만 하였다. 담배연기를 휘날렸다.  
  "어쩌다 니들이 찬밥 신세가 되었누……. 내 신세나 다름없구나……."
  무심결에 천씨의 입에서는 자신의 신세타령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둘째 아들 내외는 아직도 재산 분배에 대한 불만을 가득 안고 있었다. 자기들에게는 쓰러져 가는 시골집과 쪼그만 과수원 한 개가 전부였다며 울먹이던 그들. 천씨는 아내가 저 세상으로 간 후, 미리 아들들에게 재산을 분배해 주어버렸던 것을 내내 후회하곤 하였다.
  종갓집이라는 업보 때문에 제사지낼 일이며, 자신이 의타해야할 곳은 큰 아들집이라고 생각한 천 노인은 대부분의 알짜 재산은 큰아들에게 주었으며, 시골집과 전답을 둘째에게 떼어 주었다.
    하지만, 재산을 떼어주자마자 큰아들이 이민을 가버릴 줄 누가 알았으랴. 큰아들 내외를 따라서 호주로 간지 1년도 채 못 되어서 천씨는 한국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말과 문화가 통하지 않는 생활에 갑갑증을 느끼게 되자 줄행랑을 쳐버린 것이다.  
   국내로 돌아온 천씨가 기거할 수 있는 곳은 역시 작은아들 집뿐이었다. 하지만, 아들 내외의 눈길이 고울 리가 없었다. 그래도 자신을 기쁘게 맞아 준 것은 까치뿐이었다. 길가의 전봇대에 줄줄이 앉아 마치 환영 나온 인파들처럼 깍깍거리던 까치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 왔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천씨는 툇마루에 앉아 킁킁거리며 중얼거렸다.
   "까치만 밉다고는 할 수 없는 노릇이여. 농사짓는다고 독한 농약만 뿌려대어, 벌레들을 사그리 죽여 놓았으니, 까치가 먹고 살 것이 어디 있는 것이여? 지도 살겠다고 과일 좀 쪼아 먹었기로서니……. 그래서 까치를 다 죽인다고? 허허……. "
  천씨는 애먼 담뱃대로 재떨이만 두들겨 댔다.  
  "괘씸한 놈들……. 죽어도 싸지. 왜 사과를 먹긴 먹어? 그러니까 미움 받지……."
  이렇듯이 혼자만의 생각으로 좌충우돌하면서도 천씨에게는 까치를 미워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아니 미워할 수가 없었다. 까치를 보면 언제나 이미 고인이 된 어머니가 생각나기 때문이었다.  
  천씨의 어머니는 아침에 마당가에서 까치가 울면 그날은 분명 좋은 소식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한 믿음은 아버지 때문이었거니와, 지금까지 생사를 알 수 없는 남동생 때문이었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는 마당가에 서 있던 커다란 감나무도 가계에 한몫을 거들어 주었다.  감을 따서 내다 팔 때에도 나무 꼭대기에 열린 몇 개의 감들은 그대로 놓아두곤 하였다. 먹이가 귀한 겨울에 먹을 까치의 밥이라면서…….

  천씨의 아버지는 우시장의 거간꾼이었다.
  아버지가 소를 끌고 전국의 우시장을 돌아다녔기 때문에 천씨가 아버지의 얼굴을 접하는 날은 손가락으로 셀 정도였다. 아버지가 집을 떠날 때에는 언제나 돌아올 날을 기약하지 않고 훌쩍 떠나곤 하였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올 시기가 되면, 매일 아침 까치의 울음소리에 의존하곤 하였다. 평소보다 유난스럽게 까치가 울어대는 날이면 얼근하게 취한아버지가 어김없이 돌아와 주었다.  
  "어쩐지 아침부터 까치가 극성을 부리더구먼……. 니 아버지가 오시려고 그랬나보다."
  그토록 기다리던 아버지가 돌아왔지만, 어머니는 호들갑스럽게 반기는 일이 없었다. 두 손을 치마에 두르며 단지 볼에 홍조를 띄울 뿐이었다. 어머니는 가끔 까치와의 깊은 인연을 자주 입에 올렸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결혼할 무렵. 까치가 집 뒤쪽의 미루나무에 집을 지었단다. 집안 어른들은 좋은 징조라고 덕담을 해주었다는 것이다. 결혼을 한 이듬해에 어머니는 손이 귀한 집안에 떡 허니 아들 쌍둥이를 낳아주었다.
  "거봐라. 네 혼인을 앞두고 까치가 우리 집에 둥지를 틀더니……. "
  천씨의 할머니는 돌아가시는 날까지도 까치가 먹을 겨울나기 먹이는 꼭 남기셨다. 바로 그러한 시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탓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 역시 까치를 무척 좋아하였다.
   남겨진 감이 노랗게 익어 홍시가 될 무렵이 되면, 가끔 동네 아이들이 홍시를 탐내곤 하였다. 어머니는 빗자루를 들고 다니며 아이들을 향해 화를 내곤 하였다.
  천씨가 열댓살 되던 해에 까치집이 구렁이의 습격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제법 털이 돋아 통통해져 있던 새끼가 뱀을 피하다가 나무 아래로 떨어졌다. 어머니는 마치 흥부가 제비를 치료해 주듯이 정성스럽게 약까지 발라 둥지에 넣어주었던 적도 있었다. 물론 어머니의 청 때문에 천씨가 직접 나무를 타고 올라가 새끼를 되돌려 놓았었다. 남은 새끼는 두 마리였다. 하지만, 치료를 해 주었던 까치의 새끼는 며칠 후, 감나무 밑에 떨어져 죽어 있었다. 한 마리는 무럭무럭 자라서 둥지를 떠났다.
  바로 그 직후, 6.25전쟁이 발발하였다. 전쟁이 끝났을 때, 까치는 더 이상 둥지를 찾아오지 않았다. 동생처럼……. 천씨의 쌍둥이 동생은 전쟁통에 인민군에 의해 끌려간 후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천씨의 모친은 집 떠난 아들을 기다리며 살다가 운명을 달리하였다.
  아들이 꼭 살아 돌아오리라고 믿던 어머니는 폭격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마을을 떠나지 않았다. 모든 마을 사람들이 새 집을 지어 떠났지만, 어머니는 집터에 움집을 짓고 작은아들이 돌아올 날만 기다렸다. 어머니는 총탄에 의해 깊은 상처가 난 미루나무를 진흙으로 덧씌워 살려내기도 하였다.  
  "이 나무에 까치가 돌아오면, 분명히 네 동생도 돌아 올 것이다."
  어머니의 정성으로 여린 가지만 남아있던 미루나무는 마치 보은이라도 하듯이 곁가지를 뻗치면서 무럭무럭 자라났다. 어머니의 말대로 까치가 돌아왔다. 어머니는 마치 아들이 살아서 돌아온 듯이 기뻐하였다.
  "그래, 이젠 네 동생도 금방 돌아올 것이다."
  모친은 동생이 돌아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살았다. 하지만, 세월은 계속 흘러가도 동생으로부터는 감감 무소식이었다. 가끔 까치가 시끄럽게 울부짖으면 그 때마다 어머니는 방문을 열고 뛰어나가 문밖을 서성거렸다.
  세월이 흘러 어머니가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게 되었을 무렵,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라는 노래가 울려 퍼지며 이산가족 찾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가슴과 등에 집 떠난 아들의 이름이 새겨진 간판을 걸고 방송국 주변을 맴돌다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어머니는 더 이상 하얀 고무신발을 신어 보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갔다.
  어머니는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도 뒷문을 열어두고, 미루나무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까치를 찾고 있었다. 이미 귀가 어두워지기 시작할 때부터 어머니에게는 문을 열고 까치가 날아들었는지 어떤지를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었다.
  "아범아 오늘은 까치 안 울었냐?"
  매일 아침, 천씨에게 까치가 울었느냐 안 울었느냐를 확인하곤 하였다. 까치가 울었다면, 금방 얼굴에 화색이 돌며 동구 밖까지 걸어 나가 서성이는 어머니였기에, 설령 까치가 울었더라도 천씨는 어머니의 건강을 염려하며 까치가 울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마을 입구 쪽을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며, 그 어머니의 그 아들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거친 숨소리를 내며 생명이 꺼져 가는 그 순간까지도 어머니는  
  "아범아 까……치 울었느냐……."
  하며 묻고 있었다. 그 순간 천씨는
  "예 어머니 지금 까치가 울고 있습니다. 저 소리 안 들리세요? 어머니 정신 차리세요.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까치가 울었으니까. 동생이 곧 돌아 올 것입니다."
   까치가 울었다는 소리에 모친은 눈을 번쩍 뜨더니 희미한 미소를 갖고 저승길을 밟았다. 참 기묘한 것은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수많은 까치 떼들이 집 주변을 맴돌았다는 사실이었다. 이를 두고 마을 사람들은 입방아를 찧었다.
  "허허, 할머니의 넋이 까치가 되었나 보다. 허긴 그 양반 정말 까치처럼 살다 가셨구먼. 항상 까만 치마에 하얀 저고리만 고집하면서 억척같이 사시더니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날품팔이를 하면서도 돈이 모이면 모두 땅에 투자한 덕에 마을에서는 땅 부자라는 말까지 듣게 되었다. 까치 떼들의 이야기가 조문객들의 입에 계속 오르내릴 때 뒷전에서 문득 이런 말이 들리고 있었다.
  "무슨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야. 저 놈의 까치들이 요즘 먹이가 궁하니까 여기로 온 거지, 요즘 까치들은 쓰레기통을 뒤지고 다닌다던데……. 저것들이 음식찌꺼기 맛을 보려고 몰려 든 것이여."

   천씨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부터, 까치는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렸다. 과일을 재배하는 농가에서는 까치 때문에 몸살을 앓았다. 배나 사과 같은 과일이 적당하게 익어갈 무렵이 되면, 까치들이 죄다 구멍을 내어 피해를 입혔기 때문이다.
  농가에서는 까치를 퇴치시키겠다고 다들 손거울을 메달아 빛을 반사시키거나, 오색테이프를 사과나무 위에 설치하기도 하였고, 급기야는 그물을 과수원 위에 설치하며, 다양한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었지만, 워낙 영리한 짐승인지라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근래에는 뻥뻥 대포소리가 나는 전자장치를 설치해 놓고 까치를 쫓지만, 그 또한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듯 하였다.
  요사이 들어서 천씨노인의 등장 때문에 못마땅해 하고 있던 둘째아들은 그 모든 것을 까치에게 화풀이 하고 있는 듯 하였다. 천씨는 호주로부터 돌아 온 후, 아들의 웃는 얼굴을 본적이 없었다. 특히, 소리를 내는 전자장치와 스피커를 사느라고 많은 돈을 투자하였던 터라 별 효과가 없다면 또 다시 빛만 늘리게 되는 셈이었다.
  과일농사를 주로 많이 하는 마을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한결같이 까치를 지긋지긋해 하는데도, 천씨는 까치를 미워할 수가 없었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을 향하자, 며느리는 마당과 부엌을 부지런히 드나들었지만, 툇마루에 걸터앉은 천씨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천씨는 자신이 이방인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곱씹었다. 찬바람이 쌩쌩 부는 며느리의 치맛자락을 바라보던 천씨는 주섬주섬 일어서서 집을 나섰다. 벼이삭이 노랗게 고개 숙인 논들이 황량한 사막처럼 보였다.
  호주에서 돌아와 둘째 아들 집에 기거한 후, 아들내외가 자신에게 따스한 눈길을 준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자신의 신세가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재산분배 할 때 일전도 틀림없이 똑같이 나눠줄 걸 그랬다는 후회가 갑자기 찬바람처럼 몰려들었다. 다시 호주의 큰 아들집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을 안 해 본 것도 아니었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고 말았다.
  고개를 푹 수그린 천씨의 발길은 어느새 마을 어귀의 주막거리에 도달하고 있었다. 주막 앞을 지날 무렵, 갑자기 막걸리 냄새가 천씨의 군침을 돋웠다. 두부에 신 김치 곁들인 막걸리 한잔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유혹으로부터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번화가로 접어들었다. 그때였다. 안면이 있는 노인네들이 무더기로 마을 회관 쪽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벗들이 생겼다는 생각에 마치 잘 되었다 싶어 그들 무리에 끼었다.
  "서울에서 가수들이 왔다는 군. 경로잔치라나? 저녁 식사도 그저 준다고 해서 왔네."
  건너 마을의 박영감이 귀띔하였다. 천씨가 들어선 회관에서는 흘러간 가수들 몇 명이 번갈아 가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식탁에는 음식물들이 제법 푸짐하게 쌓여 있었다. 흘러간 옛 노래를 들으면서 잠시 시름을 달랠 수 있어서 좋았다. 게다가 소주까지 곁들여져 있어서 약간 취기가 돌면서 흥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랐을 때였다.
   사회자가 웬 상자를 들고 나왔다.
   "여러분들 즐거우시죠? 막간을 이용하여 만병통치 보약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 상품은 일본으로만 수출하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구할 수 없는 약입니다……."
  내용인 즉, 일본사람들에게 너무 인기가 있는 보약인데, 그 좋은 약을 쪽발이들에게만 파는 것이 안타까워서 살짝 몇 개 빼내었다는 것이고, 오늘 경로잔치에서 특별히 원가로 선물하겠다는 것이었다. 모두에게 다 줄 수는 없으니까 몇 사람만 추첨을 하여 주겠다고 하였다. 모두들 당첨이 되기 위해 아우성들이었다. 천씨도 번호표를 한 장 받았다. 사회자는 번호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아들 내외에게 갖다 주면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잘 대해 줄 것이라는 생각이 앞섰다. 만약에 당첨이 안 되면 뗏장을 써서라도 아들 것과 며느리 것 두 상자는 사야겠다고 생각하며 주머니의 지갑을 움켜쥐었다.  20번! 천씨의 번호였다. 천씨는 손을 번쩍 들며 불나게 뛰어나갔다. 상품을 받아들었지만, 가격이 만만찮았다. 백만 원에 일본으로 가는 상품을 20만원에 판다는 것이었다. 당장 현찰이 없어도 된다는 소리에 덥석 두 상자를 받아 들었다. 매달 얼마씩 갚아 나가기로 하고 서류에 주소와 이름을 사인하였다.
  그때까지 눈치만 살피던 다른 노인들도 두 상자를 집어 들고 의기양양해 하는 천씨를 보며  덩달아 상자를 받아 들었다. 밖은 이미 짙은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그 동안 어느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았던 든든한 비밀통장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가격 같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무게는 얼마 안 되는 상자였지만, 약 상자를 양쪽 손에 들고서 밤길을 걷는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양 어깻죽지가 뻐근하였지만, 그래도 발걸음은 힘찼다. 떡 허니 아들 며느리 앞에 던지며 자신을 우습게보지 말라고 생색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천씨는 마당에 들어서며 헛기침을 크게 하였다. 기다렸다는 듯이 방문이 열리며 형광 빛이 밖으로 새어나왔다.  
  "아니, 저녁도 안 드시고 지금까지 어딜 다니세요? "
  방문이 열림과 동시에 아들의 볼 맨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용돈이 부족하다고 퉁퉁 부어 시위를 하던 아들의 어린 시절을 연상시키고 있었다.
  "미안하구나. 난 이미 저녁도 먹고, 술도 한 잔 했다."
   천씨는 목소리에 힘을 주며 툇마루에 올라서자마자 서슴없이 아들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약상자를 아들 내외의 앞에 내려놓았다. 천씨는 어깨를 쭈욱 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오늘 너희들에게 주려고 보약을 사왔다. 아주 좋은 약이라니까 당장 지금부터라도 먹어봐라."
   목소리에 힘이 너무 들어간 탓일까. 쉰 듯 한 굵은 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벽을 향해 모로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던 며느리가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돌아앉았다. 약상자를 보는 며느리의 얼굴색은 분명 화색이 돌기 시작하였다.
   "아버님이 무슨 돈이 있다고……. 그런데 이거 어디에서 사셨어요?"
   아들은 어디에서 가져왔는지 모를 엽총을 손질하고 있었다. 아들은 슬쩍 곁눈질만 하고 계속 제 할 일만을 묵묵히 하고 있었다.
  천씨는 자초지종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대충 듣던 며느리는
  "에구머니……. 약장사들한테 속아 사셨군요. 월부로 샀다고요? 우리더러 그 약값을 갚으란 말밖에 더 되세요? 지금 우린 빚더미에 빠져 있는데,  하이고……."
  방안은 순식간에 줄초상이라도 난 듯이 한숨과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천씨가 바라던 상황은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 아들마저도 당장 내일 날이 밝으면 물러오라는 소리를 해대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자식내외가 너무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약값은 너희들이 걱정할 바가 아니다. 내가 지불한다. 먹든지 버리던지 알아서 해라!"
  결국에 천씨는 화를 내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아들이 닦고 있는 총신의 은빛 색깔이 싸늘하게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아들의 방에 들어설 때까지만 하더라도 떡 벌어졌던 천씨의 어깨가 한없이 조그맣게 움츠러들어 있었다. 방을 빠져 나온 천씨의 눈망울은 밤하늘에 머물렀다. 하늘의 별빛을 바라보며 한숨 한 덩이를 허공에 날렸다. 별똥이 하나 떨어지고 있었다.
  애꿎은 담배연기와 한숨을 방안에 채우면서 얼마 전에 자식에게 버림받았다고 농약을 먹어버린 건너 마을의 황씨를 떠올려 보았다. 고개를 저으며, 천씨는 날이 밝는 대로 양로원으로 가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있었다. 호주로부터 올 때도 아무 소식 없이 왔듯이, 내일 떠날 때도 아무런 말도 없이 떠나리라 다짐하였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비밀통장의 액수라면 자신의 몸 하나 거처할 수 있는 곳은 충분히 찾을 수 있으리라. 차라리 그 돈의 일부를 아들내외에게 주며 빚을 갚도록 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들내외가 괘씸한 생각만 들뿐이었다.  
  어쩌면 비밀통장의 돈은 행방불명된 동생의 몫이라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내내 동생이 돌아오면 주겠노라고 어머니가 장롱에 넣어 두었던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는 그 돈만이 자신의 구차함을 해소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요즘 들어서 동생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사람이라는 단정을 짓고 있었던 터였기에 이렇게 양로원 행의 결정도 쉽게 내릴 수 있었다. 남과 북이 화해의 무드가 싹트면서 동생의 행방을 발 빠르게 수소문해 두었지만, 역시 동생의 소식은 접할 수가 없었다.  

  다음 날이었다. 천씨가 눈을 떴을 때에는 이미 동이 훤하게 트여 있었다. 비몽사몽으로 들린 며느리의 식사요청을 거절한 후에 잠 속에서 헤매던 천씨가 눈을 뜬 것은 시끄럽게 짖어대는 까치소리 때문이었다. 무의식적으로 오늘은 무슨 좋은 일이 있을런가. 또는 귀한 손님이라도 올런가.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났다.
  천씨는 몇 가지 옷과 통장을 가방에 챙기고 떠날 준비를 하였다. 유료양로원에 관계를 하고 있는 옛 친구를 만나 볼 심산이었다. 집을 나서는 천씨는 집 주변을 날고 있는 까치들을 훑어보았다. 그날따라 까치들의 숫자가 평소보다 유난스럽게도 많았다. 여느 때 같으면 과수원 쪽에서 호시탐탐 먹을거리를 노리고 있었을 녀석들이었지만, 별일도 다 있다고 생각하였다. 우체부의 자전거가 따르릉거리며 곁을 스쳐 지나갔다. 평소처럼 집으로 오는 편지가 있느냐고 물어 보고 싶었지만,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하며 걸음을 떼었다.
  버스를 타기 위해 마을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뻥뻥거리는 총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다.  동네의 청년들이 총을 들고 다니며 여기저기에 총질을 하고 있었다. 농사가 다 끝난 후, 눈 덮인 겨울에나 하던 사냥을 생각하면서, 요즘처럼 바쁜 철에 한가하게 사냥이나 하고 있는 모습들을 한심한 듯이 바라보았다.
  까치들의 울음소리가 허공을 난무하였다. 까치 떼들이 마을로 몰려들어와 울부짖던 이유를 그제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문득 까치 사냥인가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났지만, 아마도 총소리에 놀라서 저럴 것이라고 이내 머리를 흔들고 말았다.
  태어난 이래 까치고기를 먹었다는 소릴 들은 적도 없거니와 까치를 향해 총질을 하는 사냥꾼도 없었다. 까치는 인간들과 너무 가깝게 동고동락 해 온 날짐승이었다. 아마 까치고기가 몸에 좋다거나 까치고기 맛이 좋다고 소문이 났더라면, 벌써 씨가 말랐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피씩 미소를 머금어 보았다.  
   땔감나무를 머리에 인 어머니의 치마폭을 잡고 읍내까지 다녔던 시절이 바람결과 함께 스쳐지나갔다. 오른쪽 치맛자락은 자신이, 왼쪽 치맛자락은 동생이 부여잡고 총총걸음으로 따라다녔다. 마른나무 뭉치를 50여 리나 되는 장터에 내다 팔면서 궁핍한 생계를 꾸리던 그 시절……. 지금 자신이 걷는 길은 그 당시에 새벽 별을 보며 걷던 길이었다. 세월의 흔적만큼 번듯해진 길에 옛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지난 추억에 젖어 큰 도로로 들어서기 직전이었다. 새 한 마리가 허공을 선회하더니 천씨의 앞에 툭 떨어졌다. 천씨는 갑작스런 상황에 놀라 발길을 멈추었다. 날갯죽지를 푸드득거리며 벌건 피를 흘리는 새는 검은 색과 흰색이 적당하게 가미된 까치였다.
  천씨는 철렁거리는 가슴을 부여안으며 까치의 죽음을 지켜보았다. 고통스러운 날갯짓을 멈춘 까치는 한동안 발발 떨더니 발을 쭈욱 뻗으며 숨을 거두었다. 아무런 미동도 없는 새를 지켜보던 천씨의 다리는 후들거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터벅터벅 나타난 것은 아들이었다.
   "어디 외출하실 건가요?"
   "네가 쏜 거냐?"
   "예"
   천씨는 아들을 노려보았다. 아들은 그 따가운 눈길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농사 다 망칠 것 같아서 동네 청년회에서 까치를 소탕하기로 했구먼요. 그 동안 모아두었던 발전기금으로 한 마리 3000원씩에 사기로 했어요."
   "꼬옥 이 방법밖에 없었더냐?"
   "농사 망치는 꼴을 보시면서도 그러십니까? 까치가 뭐 건데 아버지는 그렇게 까치만을 감싸십니까? 이득도 없고 쓸모없는 새를 없앤다고 뭐가 잘 못될 것은 없잖아요."
   아들은 씩씩거리며 길바닥에 축 늘어진 까치를 발로 한번 차더니 봉지에 주워 담았다.  천씨에게 까닭 없는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천씨는 몸을 홱 돌리며 아들의 멱살을 쥐어 잡았다.
  "그래 이놈아. 모든 것들이 너에게 이득이 없으면 쓸모가 없어지지. 이 애비도 너에게는 쓸모없는 인간인 줄 안다. 다 알아!"
  아들은 천씨로부터 빠져나가기 위해 몸을 비틀었다. 그럴수록 천씨의 손은 올가미가 되어 아들을 더욱 더 움켜쥐었다.
  "아버지 창피하게 왜 이러세요? 놓으시란 말입니다."
  아들이 거세게 몸을 빼내는 순간 천씨 부자는 함께 땅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아들의 손에 들려있던 총이 부자 사이에 끼어서 함께 넘어졌다. 그 순간이었다. 한방의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짙은 화약 냄새가 퍼져나가면서 천씨의 셔츠가 피로 물들기 시작하였다.

   천씨는 까치들의 극성스런 울음소리를 들으며 눈을 떴다. 벽이 온통 하얀 병실의 침상이었다. 아들내외와 손자의 모습이 천씨의 시야에 들어왔다. 아버지가 의식을 되찾은 것을 본 아들은 천씨를 와락 껴안으며 눈물을 흩뿌려댔다.
   "미안하구나. 내가 잘 못해서 이렇게 된 것을……."
천씨는 조용한 미소를 지으며 아들의 등을 토닥거렸다. 아들의 등이 따스하였다. 천씨는 자식의 이런 모습에 감격하고 있었다. 며느리가 미소를 띠며 다가왔다.  
  "아버님 큰 일 날 뻔했는데, 수술이 잘 되었어요. 아범이 밥도 안 먹고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몰라요."
  천씨는 겨드랑이의 뻐근함을 느끼면서도 아들내외의 따스한 얼굴들을 보게 되자 그저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참, 아버님! 작은 아버님이 북한에 살아 계시다고 연락이 왔어요."
  며느리가 하얀 봉투를 내 놓고 있었다. 천씨는 눈물을 흘리며 봉투를 받아 들었다. 천씨는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 그렇게 기다리시던 동생을 찾았습니다."
   숨을 거두면서도 집 떠난 아들을 찾던 어머니가 시야에 꽉 차 올랐다.  
    "그리고……. 저……. 아버님! 저희들을 위해 이렇게 통장을 준비해 두신 줄 몰랐어요. 감사합니다. 아버님……."
    "뭐? 뭐? 뭐라고? "
    아뿔싸…….  그 비밀 통장이 며느리 손에……. 천씨는 며느리가 쓴 가면 속의 얼굴을 찾고 싶어 지긋하게 바라보았다. 손자 녀석이 곁으로 다가서며 이가 빠진 입을 헤 벌리며 웃었다. 저 빈자리에 곧 하얀 이가 메워지겠지…….
                                                         『제주작가』 7호(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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