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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홍의 소설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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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드렛당의 숙명

                         여드렛당의 숙명
                                                                                            
  "계, 누군고? 누구야?"
  눈을 잔뜩 찌푸린 김노파가 대문을 들어서는 그녀를 향해 누구냐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그녀는 쇠약해져 있는 김노파를 보며 눈시울을 적시었다.
  "할머니 저예요. 할머니 손녀 어진이요."
  "누구? 어진이? 아니 이년이 소식도 없이 웬일이냐?"
  김노파는 맨발로 뛰어나왔다. 그녀가 들고 있는 무거운 보따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김노파는 손녀의 몸을 와락 껴안았다.
  "어이구 내 새끼 왔는가? 어서 오소. 어서 와. 내 새끼. 내 새끼……."
  그녀를 껴안은 채 등을 두드리는 김노파의 팔은 연약하기 그지없었다. 숨을 몰아쉴 때마다 김노파의 쾌쾌한 냄새가 그녀의 코를 찔러왔다. 얼마나 그리웠던 냄새였던가. 어린 시절 같았더라면 숨이 막힌다고 할머니의 품을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 쳤겠지만, 그녀는 석고상이라도 되고 싶을 정도로 한동안 아늑함을 느끼고 있었다. 지친 자신을 의지할 수 있는 할머니의 품에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전신을 휘감았다. 다리가 휘청거렸다.
  "이놈의 계집애. 왜 이렇게 몸이 못쓰게 됐어?"
  김노파는 그녀를 풀어주며 버럭 소리 질렀다. 그제야 손녀의 보따리들을 받아 드는가 싶더니, 두 눈 부릅뜨고 그녀의 뒤쪽을 집요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누가 있나 싶어서 뒤쪽을 바라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기뻐하던 김노파의 얼굴은 갑자기 차디차게 굳어가고 있었다. 김노파는 손녀로부터 받아들었던 보따리를 땅에 내팽개치며 허둥지둥 부엌 쪽으로 뛰어갔다. 김노파의 발걸음은 민첩하였다. 다시 마당으로 돌아온 김노파의 손에는 바가지가 들려 있었다. 바가지에는 검정콩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이 요물이 어디라고 따라 붙었어? 훠이. 훠이. 저리 꺼져라. 이노옴!"
  김노파는 그녀의 뒤쪽에 검정콩을 마구 뿌려댔다. 김노파의 손길은 마치 성난 파도와도 같았다. 흩어지는 콩들은 파도가 던지는 포말이었다. 어린 시절에 어미를 향해 콩을 던지던 김노파의 성난 모습이 아스라한 기억 속에서 되살아났다. 그때는 어미가 미워서 콩으로 때린다고 생각하며 할머니의 치마를 붙잡고 목 놓아 울곤 하였다.
  김노파는 바가지를 다 털고 나서야 비로소 마루 쪽으로 향하였다. 김노파의 거친 숨소리가 거렁거렁 집안을 흔들어댔다.
  "어이구 그놈의 뱀이 끈질기기도 하더라. 어쩌다 너를 넘보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만, 조심해라. 니 에미쪽 날라."
  "할머니, 무슨 말씀이세요? 아무것도 안 보이던데……."
  "이 할미 눈에는 그 요사스러운 귀신들이 다 보인단다. 내가 젊었을 때부터 그 요사한 것들이 보이더라고, 니 에미가 시집올 때도 내 눈에 똑똑히 보였었어. 어쨌든 괴이한 일이로구나. 이젠 우리 집과 연을 끊은 줄로만 알았는데……. 우리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더니 뭐가 부족해서……."
  그녀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아비와 어미를 한꺼번에 잃었다. 그 후, 그녀는 김노파의 손에 의해 성장하였다. 김노파는 가끔 삶이 힘들 때마다 부엌에서 빛바랜 아들의 사진을 보며 흐느끼곤 하였다. 그러나 손녀 앞에서는 가급적 자식, 며느리의 이야기를 한번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손녀를 티 없이 키우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던 것이다.
  그녀 역시 그러한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었기 때문에,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마음속에 담아둘 수밖에 없었다. 김노파는 아들의 죽음이 '토산년을 맞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오늘날까지도 가슴을 치고 있다.
  고향에 내려온 그날 밤. 그녀는 회사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온 연유와 밤마다 뱀 꿈에 시달려 왔다는 사실들을 김노파에게 털어놓았다. 손녀의 이야기를 듣던 김노파는 뜻밖에도 며느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애야. 오늘 뱀귀신을 보고 나니까 개운치가 않구나. 너도 뱀귀신에 대한 이야기는 알아둬야 될 성 싶어서 하는 말이다. 니 에미는 뱀신이 다스리는 땅인 토산출신이었지……."
  예전에 토산에서는 집집마다 뱀신(蛇神)을 섬겼다. 그 제단을 흔히들 토산당이라고도 하고 여드렛당(八日堂)이라고도 하였다. 그 제일(祭日)이 초8일, 18일, 28일인데서 지어진 이름이다. 돌무더기 위에 기왓장을 올려놓고 하루 세끼 밥을 지을 때마다 뱀신에게 쌀을 뿌려주기도 하고, 여덟이라는 숫자가 드는 날에 시루떡과 명주로 다리를 놓아 정성스럽게 치성을 올리곤 하였다. 토산출신 여자들이 시집을 가면 뱀신이 함께 따라갔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곳으로 시집가든지 뱀신을 모셔야만 아무런 재앙 없이 잘 살 수 있었다. 뱀신을 모시지 않으면 식구들이 병이 들거나 집안이 우환이 들게 되었다. 그래서 제주도에서는 토산여자들을 며느리로 맞길 꺼려했었다고 김노파는 그녀에게 전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우리 어머니가 토산여자인데도 왜 며느리로 들였어요?"
  "내가 미리 알았더라면 어림도 없었지. 니 애비가 감쪽같이 나를 속이고 떠억 하니 결혼식을 올린 게지. 니 애비도 그저 활달하고 예쁜 미색에 빠져 한번 놀아 볼 심사로 니 에미를 만났던 것 같더라만, 정이 드니까 어쩔 수 없었던가 보더라. 니 애비하고 혼례를 올리던 그날도 뱀귀신이 니 에미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어서 토산출신인줄 알았지 뭐냐. 결혼식은 이미 치러졌고, 너마저 임신했으니 내가 참고 말았지. 그 덕분에 집안이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그러나 저러나 그 뱀귀신들은 딸한테로 옮긴다던데 혹시 너에게도……."
  "그럴 리가 있겠어요? 요즘처럼 과학이 발달된 시대에……."
  "아니다. 어쩐지 미심쩍구나. 시절이 바뀌면 귀신도 없어진다던?"
  김노파의 얼굴은 수심이 가득하였다. 김노파는 줄담배를 피우며 며느리를 맞은 후, 가문이 기울어가던 고통들을 하나하나 꺼내 놓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어미는 결혼 후, 시어머니가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뱀신을 모시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어미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숱한 병치레를 하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뱃일을 하던 남편마저도 뚜렷한 이유 없이 시름시름 앓았다. 아무리 병원을 찾아다녀도 병은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는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았는데, 집안에 여드렛당(八日堂)을 모시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여드렛당을 모시고 나서야 병은 호전되었다. 뱀신을 섬긴 후부터 그녀의 가정은 평온을 되찾게 되었다. 교회를 다니던 김노파도 뱀신을 모셔야 될 팔자인 며느리를 인정하고 말았고, 그러한 꼴들이 보기 싫어 따로 살림을 차렸던 것이 지금까지 혼자 살게 된 계기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녀의 아비와 어미는 뱃일을 하며 넉넉한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생활이 안정을 되찾게 되자 어미는 느닷없이 시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였다. 하나님 이외의 신을 모실 수 없다는 성서의 가르침대로 그녀의 어미는 여드렛당을 없애버렸다. 그런대로 아무런 탈이 없이 지내던 어느 날, 어미는 또 다시 갑자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정신이상이 오기 시작하였다. 여드렛당을 다시 모셔야 한다는 말이 오고 갔지만, 당사자인 어미는 여드렛당을 거부하며 십자가를 들고서 찬송가만 불러댔다. 그러던 중, 기묘하게도 그녀의 아비와 어미가 고깃배를 타고 나간 후,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길을 가고 말았다. 그 이후로 김노파는 모든 종교를 증오하기 시작하였다. 어떤 종교도 자식을 지켜주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온 후부터 계속 앓기 시작하였다. 눈을 감으면 그녀의 눈에는 뱀이 가득 차올랐다. 김노파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 될 수 있으면 꿈 이야기를 하지 않고 하루하루 견디어 나갔다. 그러나 꿈을 뿌리치려고 안간힘을 쓰면 쓸수록, 꿈속의 뱀은 그녀를 더욱 강하게 짓밟아 왔다. 밤이 두렵기만 하였다. 잠들기가 두려웠다. 그녀의 잠은 온통 뱀들의 유희장이었다. 뱀들은 매일 밤 그녀의 몸뚱이를 똘똘 감아 유린하며 온몸을 흥건하게 적시어 놓았다.
  그 징그럽고, 음탕하고, 무서운 뱀들과의 유희를 거부하기 위해 찬물을 끼얹으면서까지 잠을 쫓아보았지만, 그녀의 눈두덩을 짓눌러 대는 잠은 막아낼 방법이 전혀 없었다. 그녀의 두 눈꺼풀이 납덩이가 되어 꽝! 하고 닫히게 되는 순간, 수면 속의 무대는 어김없이 막을 열었다.
  신데렐라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무대 위에서 주인공이 된다. 무대는 온갖 아름다운 꽃들이 가득 피어 있는 널따란 들판이다. 무희가 된 그녀는 들판을 뛰고, 쓰러지길 반복한다. 꽃들이 갑자기 뱀들로 변한다. 서로 뒤엉켜 나뒹구는 무더기의 뱀들. 그녀는 비명을 질러대며 미친 듯이 뛰어 달아난다. 눈을 꼬옥 감고 마냥 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젠 뱀들을 모두 따돌렸겠다 싶어 눈을 뜨면, 아프리카 밀림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커다란 뱀 한마리가 그녀 앞을 가로막고 서있다. 뱀은 그녀를 휘어 감는다. 그녀는 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친다.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면 칠수록 뱀은 더욱 난폭하게 그녀의 온몸을 꼭꼭 휘감는다. 그녀는 뱀의 비늘에서 느껴지는 섬뜩한 감촉을 느끼며 비명을 지른다. 아아아악!  그녀가 눈을 뜨게 되면 뱀은 펑! 하고 사라지고 만다. 꿈속의 무대는 막을 내린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좀처럼 열리지 않는 눈꺼풀을 애써 들어올리면, 밤새 켜 놓은 채로 잠든 백열전등의 불빛이 일제히 그녀의 동공을 향해 몰려들었다. 온몸이 나른하였다. 마치 현수가 격렬한 정사를 끝내고 그녀의 몸에서 떨어져 나간 후에나 느낄 수 있었던 그런 나른함이었다. 간밤에 꼬옥 여미어 두었던 잠옷은 모두 헤쳐져 있었고, 팽팽하게 긴장된 젖가슴으로부터 시작되는 곡선마다 땀방울들은 꼬리를 물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몸에 돋아난 땀들을 손바닥으로 훑어 내릴 때마다, 알 수 없는 야릇한 감정을 느끼곤 하였다. 그렇게도 싫어하는 꿈, 그 꿈들이 분명 악몽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깨고 나면 오르가즘에 흠뻑 취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하였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두 눈을 부릅뜨고 세평짜리 작은 공간을 둘러보았다. 어느 구석에도 뱀의 흔적은 없었다. 책보자기만한 커튼이 드리워진 창문은 자물쇠로 꼭꼭 채워져 있었다. 쇠고리로 걸어 잠근 방문도 열린 흔적이 없었다. 그녀의 얼굴을 치장시켜 주는 조그만 화장대 서랍을 죄다 열어 보아도, 속옷들을 넣어 두는 플라스틱 서랍장을 열어보아도, 자게무늬가 박힌 이불장을 열어보아도, 그 어느 곳에서도 뱀의 흔적은 볼 수 없었다. 모든 사물들은 평소에 정리해 둔 그대로였다.
  그녀는 벽거울 속에 비쳐진 자신의 생소한 모습을 보며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산발한 머릿결 속으로 드러나는 앙상한 모습, 헤쳐진 잠옷 사이로 드러난 알몸은 너무 희었다. 현기증과 함께 가물거리는 아지랑이 같은 것들이 눈앞을 유영하였다. 거울 속의 허연 살결 위로 뱀이 기어오르는 환상을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보았다. 갑자기 자신의 몸뚱이가 추하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재빨리 잠옷을 여미며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추운 기운이 온몸을 강타하였다. 오돌 오돌 떨며 웅크리고 앉아 울기 시작하였다.
  "엄마 무서워. 엄마. 엄마……."
  그녀의 입에서는 이미 저승사람이 되어버린 어미를 불러대고 있었다. 밤만 되면 알몸이 되어 마당을 휘젓고 다니던 어미의 모습이 되살아났다. 어미는 달이 없는 밤이 되면 앞마당 뒷마당을 유령처럼 돌아다녔다. 어미는 뱀을 막아야 된다고 아비가 벌어다 준 돈으로 담벼락의 구멍을 막고 다녔다. 유년기의 집은 검은 화산암으로 된 돌담으로 둘려 쌓여 있었다. 그 당시 동네사람들은 그녀네 집 담구멍에서 돈을 안 주워 본 사람이 없었을 정도였다.
  어미가 그런 괴기스러운 행동을 할 때마다 그녀는 툇마루에 앉아 울부짖었다. '엄마 무서워. 엄마. 엄마……' 그때마다 어미의 눈빛은 날카롭게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눈빛은 뱀의 눈빛처럼 차가웠다. 평소 같으면
  "어이구 내 새끼, 엄마가 여기 있는데, 왜 그래?"
  하며 얼싸안아 줄 어미였지만, 그러한 밤에는 싸늘한 표정으로 그녀를 외면하곤 하였다. 그녀는 생소한 어미의 모습을 두려워하며 울음을 터뜨리곤 하였다.
  설마. 설마. 어미가 짊어지고 있었던 뱀귀신의 업보가 자신에게까지 이어질 리가 있겠는가. 그녀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밤새 잠을 설친 탓에 무거워진 머리를 흔들어댔다. 문밖에서 김노파의 인기척이 들려왔다.
  "어진아. 할미 밭에 나간다. 어서 일어나 밥 먹어라."
  김노파가 문고리를 붙잡고 흔들었다. 그녀는 문고리를 따고 김노파에게 문을 열어 주었다. 숱한 아침햇살들이 골바람에 실려 방으로 몰려 들어왔다. 그녀는 현기증을 느끼며 방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버렸다.
  "에구머니나. 몰골이 이게 뭐냐? 이러다간 무슨 변이 일어나겠구나."
  "오늘은 병원에 다녀오겠어요."
  "니 병은 병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병 같다. 안 되겠다. 밭일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당장 아랫골 무당집에 다녀오마."
  김노파는 재빠른 걸음으로 대문을 빠져나갔다. 그녀는 굳이 할머니를 막고 싶지 않았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들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화장대 앞에서 거울을 보며 머리를 빗었다. 긴 머리를 뒤로 넘겨 현수가 사 준 상아 핀을 꼽았다. 문득 기억의 언저리에서 현수가 그리워지고 있었다.

  현수네 가족이 마을을 쫓겨나던 그날은 이슬비가 촉촉하게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짙은 안개가 깔려 있었다. 커다란 이불 봇짐을 지게에 진 현수네 아비 김씨는 앞만 보고 걸었다. 살림살이를 머리에 인 현수의 어미는 땅만 보고 걸었다. 보따리를 양손에 쥔 현수는 뒤에 쳐져서 아비, 어미의 뒤를 쫓았다. 비에 젖은 현수의 등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마을 입구 당산나무 밑에서 현수를 보내던 그녀는 소리죽여 눈물 쏟아내고 있었다. 안개와 함께 사라져가던 현수는 가끔 뒤를 힐끔거리며 그녀를 보곤 하였다. 희미한 안개 속에서도 현수의 눈빛은 유난히 선명하게 보였다. 원망에 가득 찬 그 눈빛은 어린 그녀의 마음에 애처롭게 박혀왔다. 그 다음날 김씨가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접했을 뿐, 그 이후로 현수의 소식은 접할 길이 없었다.
  현수네가 마을에서 쫓겨난 것은 김씨가 마을을 지키는 구렁이를 잡아먹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육지에서 흘러들어와 품팔이를 하며 살아왔던 김씨는 폐병을 앓고 있었다. 김씨는 폐병에 좋다는 뱀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었다. 김씨가 가죽이 벗겨진 뱀을 질근질근 씹으며 들길을 걸어 다니는 장면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가죽이 벗겨지고 내장이 없어진 뱀이 시뻘건 피를 뚝뚝 떨어뜨리며 꿈틀꿈틀 김씨의 손을 휘감고 있었다. 섬뜩한 뱀의 생명력이었다. 그때서야 뱀이란 동물은 가죽이 벗겨지고 내장이 없어져도, 몸통에서 떨어진 문어발처럼 꿈틀거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우리 마을 한가운데에 서 있던 당산나무 주변에는 일 미터가 넘어 보이는 황구렁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꼬맹이들이 뱀을 향해 돌팔매질을 할 때마다 마을 어른들은
  "예끼 이놈들아. 마을을 지켜주는 뱀이니까. 못살게 굴면 안돼."
  라며 손가락질하는 것마저도 야단쳤다. 구렁이는 자주 눈에 뜨였다. 자신을 보호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던지 사람들이 나타나더라도 늘 태연하게  혀를 날름거리며 거드름 피웠다. 마을의 조무래기들은 그러한 녀석의 모습을 얄밉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아이들은 언젠가는 따끔한 맛을 보여 주겠노라고 벼르고 있었다. 그래서 쥐약을 먹고 죽은 쥐를 살그머니 당산나무 곁에 놓아두기도 하였지만, 노리던 뱀은 안 걸려들고 엉뚱하게 이장집 강아지가 그 쥐를 먹고 죽어버리기도 하였다. 뱀은 살아 있는 것만 잡아먹는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 구렁이가 어느 날부터인가 보이지 않았다. 이미 김씨의 뱃속으로 들어 가버렸다는 사실은 현수의 입에서 튀어 나왔다.
  "우리 아버지가 가마솥에 구렁이를 삶았는데 너무 맛있는 냄새가 났어. 나도 먹고 싶어서 혼났어. 이틀을 꼬박 불 지피느라고 혼났어."
  입 싼 민돌이 녀석 때문에 그 사실은 삽시간에 마을로 퍼져 나갔다. 그러던 차에 초여름의 장마가 시작되었다. 그해의 장마는 하늘이 뻥 뚫리기라도 한 듯이 며칠을 두고 장대비를 퍼부어 댔다. 마을 위쪽에 있던 저수지의 방죽이 터져 논밭은 완전히 황폐해지고 말았다. 속수무책인 장마 때문에 하늘만 바라보며 원망을 던지던 마을사람들의 입에서는 서서히 김씨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하였다.
  "아, 그 김가 놈이 마을을 지키는 구렁이를 잡아먹었기 때문에 이런 재앙을 받는 것이야. 그놈을 당장 쫓아내야 돼."
  마을 노인들은 '멍석말이를 해야 한다', '몰매를 때려 쫓아내야 한다'는 등, 장마의 피해를 전적으로 김씨의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결국 현수네 가족은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부모 없이 자라는 그녀가 불쌍하다고 감싸주던 현수. 그 아이는 홀로 있기를 좋아하던 그녀의 소꿉친구가 되어주었고, 아이들의 놀림으로부터 방패가 되어 주었다. 현수가 두 살이나 위였던 만큼, 그녀의 오빠노릇을 톡톡하게 해주었다. 그 아이가 마을을 떠나며 남긴 눈빛 때문에, 눈이 짓무르도록 밤낮을 울어댔던 기억들은 성장해서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기억의 흔적들이었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서울로 상경하였다. 육지로 간 선배의 추천으로 직장을 구할 수 있었다. 그 선배는 제주출신이 한명 더 근무하고 있다고 그녀에게 귀띔해 주었다. 바로 그 제주출신이 현수이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사실이다.
  현수는 자재과에 근무하고 있었다. 현수의 키는 그녀의 얼굴이 그의 가슴에 파묻힐 만큼 커져 있었고, 팔뚝에는 짙은 황갈색 근육이 징그럽게 튀어나온 청년으로 변해 있었다.
  그의 일이 자재담당이었던 만큼, 경리담당인 그녀는 그를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말이 많던 어린시절과 다르게 말 수가 적었다. 가끔 유년기의 이야기를 하며 살며시 흘리는 그의 눈웃음이 그녀의 가슴을 흔들어 놓곤 하였다.  
  회사의 동료들로부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미스코리아에 도전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들어올 정도로 그녀의 미모는 자타가 공인하고 있었다. 그러한 만큼 그녀의 주변에는 남자들의 엉큼한 수작도 많았고, 유혹도 많았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미 현수라는 한 남자가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회사에서 베푸는 회식이 있을 때마다 그녀는 의도적으로 술을 진하게 마시고 현수의 관심을 끌기에 바빴다. 나날이 그녀가 마시는 술의 양은 뭇 사내들 뺨칠 정도로 많아지기 시작하였다. 어쩌면 선천적으로 술그릇을 가지고 태어난 듯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현수는 그녀에게 핀잔만 던져댔다.
  "무슨 여자가 이렇게 헤프게 굴어. 술을 마시려거든 적당하게 마시라고."
  자신의 속마음을 몰라주는 현수가 야속하기도 하였다. 현수가 면박을 주면 줄수록 더 무게 있는 연극을 시도하였다. 사실 정신은 멀쩡하였지만, 술에 취한 척하고 현수의 옆에 쓰러지는 촌극을 자주 연출하였다. 현수에게 이끌려 집에까지 도착하곤 하였지만, 현수의 몸짓은 어디까지나 사무적인 태도일 뿐이었다. 마치 공장의 기계를 제자리로 옮겨놓는 듯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었다.
  "야, 임마 현수. 니가 뭐기에 그렇게 도도해? 나는 너를 좋아한단 말이야."
  급기야는 그녀가 자존심을 송두리째 집어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녀를 내팽개치고 돌아서기에 바빴다. 그녀는 입을 삐쭉거리며 정말 멋대가리 없는 남자라고 생각하였다. 숱한 남자들로부터 '사랑합니다', '좋아합니다'라는 추파만 받아왔던 그녀. 그녀는 자신의 입에서 어떻게 그런 닭살 돋는 말이 나올 수 있었는가 라고 생각하며 후회도 해 보았지만, 그를 향한 뜨거운 연정은 어쩔 수가 없었다.
  "너는 나에게 너무 버거운 상대야. 나는 너를 갖게 되면, 너를 단단한 새장에 가두게 될 거야. 그렇게 되면 너는 아마 숨이 막혀 죽게 될 지도 몰라. 그냥 어린시절 같은 추억을 가진 친구로 남자."
  언젠가 그녀에게 던졌던 현수의 말을 기억하며 물러터진 바보같은 사내라고 생각하였다.
  "혹시 고자가 아냐?"
  그녀의 마음은 그의 사타구니를 붙잡고 확인이라도 해보고 싶은 심정일 뿐이었다. 계집애 하나 단단하게 낚아채지 못하고 겁부터 먹는 얼간이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였다. 어쩌면 자신은 현수가 바라는 여인상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하였다. 그녀 스스로 자신의 성격을 알고 있었던 터였다. 어떤 구속을 싫어하는 계집애. 뜨듯 미지근한 것보다 화끈한 것을 좋아하는 계집애…….
  "미스 정은 남자 같아. 남자로 태어났으면 장군감인데. 정말 아까워."
  그녀를 만나는 거래처 인간들은 그런 식으로 자신들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는 억센 그녀를 은근히 꼬집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뒤돌아서서 '커피 한잔 함께 마시지 않겠어?'라든지, '우리 여행 한번 떠날까?'라며, 그녀의 각선미에 눈이 팔려 음흉한 눈길을 주곤 하였다.
  어떠한 유혹이 오더라도 그녀의 마음은 오로지 현수를 향하고 있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였던가. 어느 순간부터 그녀와 현수는 회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의 조그마한 방과 그의 널찍한 방을 전전하며 알몸으로 뒹구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그녀는 한동안 그를 위해 음식을 장만하는 일에 몰두해 있었다.
  그즈음부터 뱀 꿈은 시작되었다. 자신의 뇌 속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된 유년기의 뱀에 대한 기억들이 되살아난 후, 그녀는 무척 당혹해 하였다. 직장 동료인 정희는 이런 말을 그녀에게 던졌다.
  "얘, 네가 꾸는 뱀 꿈은 남자 꿈이래. 뱀은 남자의 그것을 상징한다고 그러더라. 혹시 누군가 죽도록 좋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
  어쩌면 정희의 해몽과 딱 맞아떨어지는 꿈일지도 모른다며, 밤마다 꾸어대는 뱀 꿈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정희의 해몽대로라면 자신이 현수를 너무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뱀 꿈을 오히려 친근하게 느끼게 되었다. 그 친근감은 오히려 유희적인 꿈으로 변화되기까지 하였다. 꿈속의 뱀은 그녀의 사타구니 근처를 휘감곤 하였다. 꿈에서 깨어나면 자신의 은밀한 곳이 촉촉하게 젖어 있다는 사실을 느끼며 두 다리를 꼬았다.
  꿈속의 뱀을 현실 속에서 만나게 된 것은 비가 구질구질하게 내리던 어느 날이었다. 갑작스럽게 퍼붓는 굵은 빗방울을 피해 자재창고 처마 밑에 서 있던 그녀는 창고로부터 나온 커다란 한 마리의 뱀을 발견하였다. 그녀는 너무 놀란 나머지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숨을 죽이고 뱀만 주시하였다. 한 덩어리의 번갯불이 천둥소리와 함께 빗속을 퍼져 나갔다. 그 순간 뱀의 눈이 빛났다. 아아. 자신이 항상 꾸는 꿈속의 뱀의 눈빛과 닮았다는 사실을 느꼈다. 어쩌면 저렇게 똑같을 수 있을까. 게다가 무늬까지도 똑같았다. 온몸에 소름이 가득 돋았다. 자신도 모르게 아악!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사무실로 뛰었다. 직원들이 뱀의 출현 소식을 듣고 밖으로 뛰어 나왔지만, 그 뱀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마안큼 큰 뱀이었어요."
  그녀는 두 팔을 벌리고 자신의 팔뚝을 보이며 뱀의 크기를 설명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과 살을 섞고 있는 현수까지도 믿어주지 않았다. 설령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거짓이라고 하더라도 현수만은 믿어 주었어야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현수가 너무 야속하였다.
  그 시점부터 그녀가 가지고 있던 현수에 대한 집착은 사라지고 있었다. 지나가는 여자를 힐끔거리는 현수의 허리를 꼬집으며 앙탈을 부리던 성질과, 회사로 걸려오는 전화의 상대가 여자란 사실 하나만으로도 현수를 귀찮게 만들던 성질은 점차 희박해지고 있었다. 현수 또한 그러한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 전개되면서 두 사람 사이의 전세는 완전히 역전되어 있었다. 그녀에 대한 현수의 집착이 시작되었다. 그는 튼튼한 새장을 그녀의 주변에 치기 시작하였다. 잔잔하게 흐르는 그녀의 미소도 새장에 가두기 시작하였고,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에 이르렀다. 한동안 그녀는 그가 만드는 새장에 갇히는 그 자체를 즐기기도 하였지만, 날이 가면 갈수록 숨이 막혀온다는 사실을 느끼며, 그녀는 현수로부터의 탈출을 꿈꾸기 시작하였다. 때로는 친구가 그리웠다. 때로는 생맥주집이 그리웠다. 때로는 노래방이 그리웠다.
  현수는 그녀가 오로지 자신과 함께 있어주길 바랄 뿐이었다. 현수는 영화를 좋아하였기 때문에 그녀를 만날 때마다 영화관이나 비디오방을 전전하였다. 그는 동적인 행위보다 정적인 행위를 좋아하였다. 그러한 현수에게서 그녀는 권태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급기야 그녀는 그가 만든 새장으로부터 탈출하기로 결심하였다.
  "안돼, 너는 이 새장을 벗어나면 아주 먼 곳으로 날아가 버릴 것 같아."
  그녀는 날아가지 않겠노라고, 항상 네 곁에 머물러 있겠노라고, 현수를 설득하고 애원도 해 보았지만, 그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밀고 당기는 갈등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회사에서 재고물품 파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매달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재고물품의 파악은 자재담당인 현수와 경리담당인 그녀의 일이었다. 현수는 재고 물건들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그녀는 목록 표에 표시하는 작업이었다.
  둘 사이의 사랑이 활활 타오를 때 같았으면 창고 안이 뜨겁게 달아올랐겠지만, 그녀와 현수의 일처리는 지극히 사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서로 상대의 시선을 피하기에 급급하였다. 구석에서 현수가 불러주는 재고품들을 열심히 받아 적고 있던 그녀는 외마디 비명을 질러댔다. 현수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저번에 내가 보았던 뱀이야."
  그녀의 오른손 검지가 머무는 그곳에는 커다란 뱀이 도도하게 똬리 틀고 있었다. 현수는 짧은 신음을 터트리며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뱀은 혀를 날름거리며 두 사람을 쏘아보았다. 더 이상 접근하지 말라는 협박 같은 눈빛이었다. 도망갈 생각은 아예 없는 듯 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꿈속에 나타나는 뱀이 현실로 나타나 자기 주변을 배회하는 그 자체가 두렵게 느껴졌다.
  "뭐해? 저 뱀을 빨리 잡아."
  그녀는 현수를 향해 광기에 가까운 목소리를 던졌다. 하지만 현수는 오히려 그녀를 끌어안으며 뒤로 물러섰다. 무슨 사내가 이렇게 겁쟁이일까. 덩칫값도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얼마 전에 뱀의 목격담을 믿어주지 않았던 현수를 골탕 먹일 절호의 찬스라는 생각이 그녀의 가슴속에서 치솟아 올랐다.
  "무슨 남자가 이렇게 약해? 저까짓 뱀 한 마리도 못 잡아?"
  그녀는 조롱하는 어투로 현수를 질타하였다. 현수는 눈을 내리깔며 작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집을 지키는 칠성 뱀이야. 건드리면 재앙이 올지도 몰라."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요즘 세상에 그런 미신을 믿어? 앞으로 어떻게 창고를 드나들 수 있겠어?"
  "저 뱀은 사람을 해하지 않는 뱀이야. 물론 독도 없고. 잠시 후엔 사라질 거야."
  "이런 순 겁쟁이. 무서우면 솔직하게 무섭다고 할 것이지……."
  현수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꼭 쥔 주먹만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녀는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겁쟁이. 사람을 부를 거야."
  "그래, 잡으면 될게 아냐?"
  현수의 목소리가 창고를 뒤흔들었다. 천둥소리만큼 컸다. 현수의 큰 목소리에 깜짝 놀란 그녀가 자신의 가슴을 쓰다듬는 순간, 현수의 몸은 뱀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그때서야 뱀은 움직이기 시작하였지만, 뱀의 움직임보다 그가 던지는 쇠갈고리의 속도가 더 빨랐다. 쇠갈고리는 뱀의 머릿부분을 강타하였다. 뱀은 제자리에서 몸을 꼬며 요동쳤다. 그 고통스러워하는 뱀을 보며 현수는 비틀비틀 물러서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바로 그때 배불뚝이 사장이 창고로 들어섰다.
  "왜 이렇게 시끄러워. 일들은 안하고 뭐하는 게야? 또 사랑싸움이야?"
  뭐? 사랑싸움? 그녀는 현수와 교제를 시작한 후, 사사건건 빈정거리는 말을 던져대는 사장에게 은근히 화가 났다. 그녀는 독기를 품은 눈으로 반격하였다.
  "사장님, 지금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저희들은 열심히 일했어요. 저놈의 뱀 때문에……."
  "아니 뱀이라니, 어디, 어디야. 아니 그렇다면 빨리 잡아야지."
  눈을 둥그렇게 뜬 사장은 그녀의 눈빛이 머물고 있는 구석 쪽을 바라보았다.
  "우와!  구렁이잖아. 현수. 갈고리를 이리 줘."
  배불뚝이 사장은 갈고리를 오른 손에 쥐고 뱀의 머릿 부분을 짓누르더니 왼손으로 뱀을 낚아챘다. 너무 능숙한 손놀림이었다. 이미 현수로부터 강타를 당한 뱀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였다. 사장의 손아귀에 든 뱀은 몸을 꼬며 저항하였지만, 사장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늘 횡재했어."
  사장은 입맛을 쩝쩝 다시면서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 나갔다. 현수는 사장의 뒤쪽에 대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사장님, 어떻게 하시려고요?"
  "탕을 끓이면 좋을 것 같아."
  "사장님, 그 구렁이는 그냥 버리세요. 재앙이 올지 몰라요……."
  "어허. 무슨 소리야. 요즘 이런 놈은 구하기가 힘들어. 한 돈 백만원은 족히 될 거야. 오늘은 자네들 덕분에 정말 횡재했어. 내가 한 턱 낼께."
  사장은 마치 복권에라도 당첨된 듯이 기고만장해 있었다.
  백 킬로는 넘음직한 비대한 몸집을 가진 사장의 얼굴은 항상 기름기가 반질반질 하였다. 그는 정력에 좋다는 음식은 가리지 않고 모두 섭렵하는 사람이었다. 정력에 좋다는 사슴피는 정기적으로 먹어댔으며, 게다가 뱀탕을 먹기 위해 지리산 등산모임에까지 가입하고 있었다.  
  그 후부터 그녀에게 이상한 변화가 일어났다. 사장에게 붙잡혀 꿈틀거리던 뱀의 눈빛이 내내 그녀의 가슴에 남아 그녀를 괴롭혔다. 또한 냉전 중이었던 현수는 뱀 사건 이후로 아예 그녀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가끔 스치는 그의 눈빛은 뱀의 눈빛처럼 싸늘하기만 하였다.
  그 싸늘한 눈빛은 그녀의 내면세계에 존재해 있던 안개 속에서 가느다랗게 전해 오는 한줄기 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분명 그 빛은 마을을 쫓겨나던 어린시절의 현수의 눈빛이었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그의 눈빛. 그 원망에 가득 찬 유년기의 눈빛이 새롭게 그녀를 향해 돌진해 왔다.
  사장이 구렁이를 꿀꺽해버린 후. 어느 누구의 입에서도 구렁이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모두 쉽게 잊어버린 듯하였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그 구렁이의 모습이 내내 찜찜하게 남아 있었다. 구렁이를 잡은 후로부터 그녀의 뱀 꿈은 전혀 다른 양상을 띠기 시작하였다. 가죽이 벗겨진 채 피를 뚝뚝 떨어뜨리는 뱀, 뜨거운 가마솥에서 요동치는 뱀이 그녀의 꿈속을 뒤흔들었다. 꿈에 출현하는 뱀의 눈빛은 현수의 눈빛과 교차되며 그녀의 잠자리를 괴롭혔다.
  날이 갈수록 현수는 이상하리만큼 이미 사장의 뱃속으로 자취를 감추어버린 뱀에 대해 강한 집착을 갖고 있었다. 뱀을 잡아버린 회사에 어쩌면 재앙이 올지도 모른다고 넋 나간 사람처럼 지껄여대곤 하였다.
  현수의 그러한 불길한 예감이 우연하게 적중했던지, 나라전체에 불어 닥친 불경기로 인한 필연이었던 지는 몰라도, 회사에서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줄을 이었다. 그렇게도 순조롭기만 하던 수입 원자재 값이 폭등하여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시작하였고, 자금회전이 갑자기 막히기 시작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작업장에서 프레스작업을 하던 직원의 손이 잘려 나가는 안전사고까지 일어났다.
  현수는 자신에게도 그 재앙이 오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기 시작하였다. 소도둑 같은 덩치에 비해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현수에게 그녀는 실망감을 느끼고 있었다.
  "벼엉신, 뱀귀신이 있다면 저 인간이나 잡아갈 것이지……"
  마치 그녀 입에서 나온 악담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사건은 터지고야 말았다. 자재창고의 멀쩡하기만 하던 선반이 무너져 현수를 덮치는 사고가 일어났다. 현수는 허리척추를 다쳐 전신마비증상을 일으켰다. 현수는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시작하였다.
  직원들의 임금까지 체불하게 되던 회사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이 창고를 태우면서 문을 닫고 말았다. 화재보험도 들지 않았던 관계로 그대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들이 한 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회사가 날아가 버렸고, 현수가 날아가 버렸고, 그녀의 일자리가 날아가 버렸다. 그녀는 한동안 현수의 곁에 머물면서 간병을 시작하였다. 땀을 흘리며 괴로워하는 현수가 금방이라도 일어나서 '너 때문이야!'라고 덤벼들 것 같은 환상을 맛보기도 하였다.
  그녀의 꿈속은 뱀과 현수의 합작품이 되어 상영되었다. 그녀 역시 나날이 병색이 짙어가고 있었다. 더 이상 현수의 곁에 머무를 수가 없었다.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고향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폭풍우 속에서 아비와 어미를 한순간에 날려버렸던 아픔들이 다시 되살아나 꿈틀거렸다. 아늑하기만 하던 보금자리는 온통 뱀들이 득실거렸었다. 초가지붕에서 혀를 날름거리며 부엌으로 뚝뚝 떨어지던 뱀들을 보며 기절초풍하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선명하게 되살아나고 있었다.
  이브를 꼬드겨서 금단의 사과를 먹게 하던 사악한 뱀. 그 사악한 속성을 지닌 뱀이 자신을 불행의 구렁텅이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녀는 머리를 감싸 안았다. 머리카락이 손바닥에 스칠 때마다 머릿결은 미끈미끈한 뱀의 몸통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 머리, 내 머리카락이 모두 뱀이야. 뱀. 뱀. 살려줘!"
  그녀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비명을 질러댔다. 문을 박차고 뛰어나가며 마당에서 뒹굴었다. 그녀의 눈에는 마당이 온통 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뱀들은 홍수처럼 그녀를 덮쳐왔다. 그녀는 숨을 헉헉거리다가 혼절하고 말았다.
  그녀가 깨어났을 무렵에는 무당이 울리는 징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무당의 자지러지는 목소리들 가운데서 다음과 같은 말이 선명하게 그녀의 귀를 파고들었다.
  "…… 내가 너를 찾아 머나먼 한양길을 갔더니 나를 공양하기는커녕 홀대하더구나. 너무하더구나 너무해……."
  그녀는 굿이 끝날 무렵에야 가까스로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무당은 혀를 끌끌거리며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네 어미의 업은 떨굴 수가 없구나. 너에게 남자가 생기면 사신(蛇神)은 어김없이 찾아든단 말이야. 여드렛당의 신이 노여움을 품었어. 네 어머니가 사신을 극진히 모시기만 하였던들, 너희 가문이 멸문을 하진 않았을 게야. 토산출신은 어쩔 수 없어. 여드렛당에 신을 모셔야할 팔자를 타고 태어났으니까…… 네 어머니의 사신이 너에게 옮겨 붙었으니 어기지 말고 깍듯이 숭앙하거라. 너마저 뿌리친다면 이 정도라도 명맥을 잇는 집안이 다 거덜 날게야. 네가 잘만 모시면 병도 깨끗하게 낳을 것이고, 집안이 다시 피어날 것이다. 시집도 좋은 데로 갈 것이고……."
  그달 초팔일날, 마을 사람들은 그녀와 김노파가 여드렛당을 지어 신에게 치성 드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제주작가』 2호(19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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