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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여행기4]황량한 공간에서의 귀환-유금호

제목   황량한 공간에서의 귀환
작성자   유금호

황량한 공간에서의 귀환

Rapa Nui 섬.
세상에서 가장 고립된 공간을 헤매다가 돌아와서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아있는 것이 두 가지.
붉은 화산석만 거칠게 깔려 있던 해안 위로 불던 바람과 흩뿌리던 빗줄기, 그 황량한 땅에 드물게 뿌리내리고 있던 엉겅퀴 꽃무리 들.
제대로 서 있기도 했지만, 목이 부러져 구르기도 하고, 코를 박고 엎어져 있기도 한 그 거대한 석상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그 섬 해안과 산등성이를 달려가던 바람의 기억이 가장 강하게 남을 듯싶다.
도무지 예측하기 힘든 날씨의 변덕.
그것은 타히티에 머물렀을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맑았던 하늘이 한 순간 우레와 번개를 동반해서 비를 뿌리고, 그런가 하면 10분도 못되어 다시 맑은 하늘이 얼굴을 드러내는 것을 ‘이스트 섬에서 똑같이 경험했다.

15개의 모아이가 모여 있는 tongariki 지역에서는 어쩔 수 없이 흩뿌리는 비를 그대로 다 맞았다.
한때 쓰나미에 휩쓸려 흩어져버린 것을 일본의 건설회사 ‘타다노’가 그곳까지 기중기를 운반해 와서 복구해주고, 그 인연으로 모아이 한 개를 오사카박람회에 옮겨갔다가 되돌아와서, 그 한 개는 다른 14개와 떨어져서 혼자 서 있었다. 일본까지 다녀왔다고 ‘바람난 모아이’, ‘외출한 모아이’로도 불린다고 했다.


일본 오사까까지 나들이 하고 온 '바람난 모아이


이스터 섬에서 영어가이드를 해 준 ‘페트리시아’

그 ‘바람난 모아이’곁에서 이미 젖기 시작한 겉옷은 산꼭대기 채석장에 올라가 만들다 둔 미완성 석상들과 옮기다가 버려 둔 모아이들을 확인할 무렵에는 완전히 젖었다. 그러나 산정의 바람이 거세어 옷은 두어 시간 후, 다시 건조되었다.

실제로 모아이를 굴러 내렸던 지점으로 여겨지는 미끄럼 장소가 지금도 남아있었다.
산자락으로 옮겨진 모아이는 멀게는 20㎞ 떨어진 해안까지 운반돼 세워졌으니 엄청난 토목 공사였을 것이었다. 그 토목공사에 나무들이 사용되어 지금 섬에는 나무가 거의 없다. 모아이를 옮기면서 계속된 벌목으로 섬은 황폐해졌고 환경이 변한 것이다.

이스터 섬 공항에 내리면 낮은 돌담으로 둘러싸인 공항 주변에서 ‘조인상(Bird man)’ 조각들이 눈에 들어온다.
옛날 라파 누이들이 신성하게 여겼던 ‘마케마케(Makemake·두 개의 큰 눈이나 새의 머리를 한 창조의 신)신’에 대한 정신적인 계승일 터.
절대 고독의 섬에서 라파 누이들이 새를 통한 일탈과 자유 의지를 꿈꾸었을지 모른다.‘새’에 대한 인간의 상징적 염원은 인류의 공통적인 꿈의 투사가 아닐까 싶다.
섬의 남서쪽 끝 '라노카오(Rano kao·410m)' 화산 근처 오롱고(Orongo) 마을의 탕가타 마누 축제(조인에 대한 의례)가 그것을 더욱 상징화시킨 것으로 보여진다.
'라노카오' 화산의 분화구는 호수를 만들고 있었는데, 그곳을 넘어서면 초원과 바다를 배경으로 한 축제 때의 임시 거주지가 보이고, 그 곁의 '마타응가라우(Mata Ngarau)' 전망대 바위에는 '마케마케' 신을 표현한 조인상과 해골 모양의 사람 얼굴이 곳곳에 새겨져 있는 것이 발견된다.그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절벽 아래 모투 누이(Motu Nui), 모투 이티(Motu Iti), 모투 카오(Motu Kao Kao)라고 불리는 섬 세 개가 보인다.
그 중 가장 큰 ‘모투 누이’ 섬은 봄이면 검은 제비갈매기가 알을 낳기 위해 날아오는 곳.





용사들이 목숨을 걸고 새 알을 찾으러 갔던 작은 섬

축제 때면 절벽 아래 바다를 헤엄쳐 그 새 알을 깨뜨리지 않고 맨 처음 찾아온 용사가 조인(鳥人, Bird man)의 위치에 올라 1년 동안 족장과 같은 권위를 가졌다고 한다.
절벽을 내려가 거친 파도 속의 섬에 가기까지는 목숨을 걸 정도의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절벽 끝에 서서 떠오른 것이 1994년 케빈 레이놀즈감독의 영화  Rapa Nui.


케빈 레이놀즈 감독의 영화 포스터

제이슨 스코트 리, 에사이 모랄레스가 출연했던 이 영화.
‘대이족(long ears)’과 소이족(short ears)의 갈등과 목숨을 걸고 새 알을 찾으러가는 대이족 청년 ‘제이슨 스콧’과 소이족 처녀, ‘샌드린드 홀트’의 로맨스를 담은 그 영화가 이 섬을 바깥세계에 알려주기도 했지만 지나친 공상화에도 한 몫 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영화의 엔딩은 언제인가 하얀 배가 자기들을 데리러 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모아이를 열심히 세우는 추장이 흰 빙산이 밀려오자 가족들과 그 빙산 위에 올라, 섬을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섬에 흩어져 살던 족장들이 죽은 후, 수호신이 되는 의미의"모 아이(Mo AI)"는 (*원래 두 개의 다른 단어지만 지금은 붙여서 하나로 사용하고 있다) "가지고 있다" "존재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이것이 과장되고 환상이 덧붙여져 바다를 바라보며 무엇을 기다리는 상징이라든가, 우주인이 만들었다는 터무니없는 과장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실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모아이’는 ‘아후 아키비’의 해안에서 2㎞쯤 떨어져 있는 모아이들 뿐.
전설 속의 ‘호투 마투아(Hotu Matua) 왕이 처음 일곱 명의 신하를 거느리고 왔다는 전설과 함께 섬 주민들을 지키려는 듯 바다 쪽을 향해 있고, 다른 모아이들은 모두 마을과 후손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마을쪽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들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는 말이 증명되는 셈이랄까.
물론 ‘사실(fact)'이라는 것이 반드시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기에 더러 환상이 덧칠해진 전설이 더 따뜻할 지도 모르겠다.  



소설가 유금호님의 남태평양의 여행기를 여기에 옮겨 둡니다.
출처: http://www.yookeumho.com/bullet.htm

  2007/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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