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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웠던 젊은 날의 고백(소설가 유금호)

젊은 날의 고백

*엉덩이에 뿔난, 그러나 사실 지독한 외로움 속에*
                              


왜 그렇게 장난들을 심하게 했을까.
까까머리 고등학교 시절, 방학이 되어 남쪽 바닷가에 있는 고향집에 가면,
한 밤중 악동들과 어울려 그곳 비봉산 중턱, 아기무덤들이 있던 돌무더기 까
지가서 돌무더기를 헤치고 두개골들을 꺼내오는 내기들을 하고 했으니까.

그 해골바가지 안에 작은 손전등을 켜서 동네 어귀 팽나무 가지 사이에 끼
워 놓고, 아낙네들이 새벽시장에 푸성귀를 팔러나가다가 비명을 지르며 주저
앉는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다가 히히덕거리고....


지금이야 장난에 동참했던 악동들 역시 세상을 떠나기도 했고, 객지로 가서
소식이 끊겼거나, 또 많이 늙어버리기도 했지만, 내게 있어서 고향은 꿈, 혹
은 유년, 문학, 그 모두를 포괄하는 N.Frye식 낙원의 공간으로 늘 마음 깊은
곳에 살아 있다.


저 남쪽 끝, 고흥 반도귀퉁이에 있는 녹동( 洞)이라는 작은 포구가 내가
낳고, 유년을 지난 고향이다. 최근에는 득량만 쪽 바다 낚시터에다, 소록도
(小鹿島)가 포구 건너편에 있어서 객지 사람들에게도 얼마간 알려진 곳이지
만, 내가 어렸을 때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참 궁벽한 땅 끝 마을이었던 셈이
다.


나는 그 포구에서 1.5k 정도 떨어진 언덕배기의 과수원집 아들이었다.
농사나, 고기잡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그 시골에서 과수원집 아들이
라는 것은 얼마쯤 국외자적인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 끝나면, 나무를
하러 가거나, 소를 먹이고, 부모를 도와 그물 손질을 해야하는 또래들 중에
나는 탱자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인 그 과수원 자체를 혼자의 놀이터로 가지
고 있었던 셈이었다.
아이들은 솎아내는 복숭아나, 익기 전에 떨어진 배를
나누어줄 수 있는 내 눈치를 많이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들과
는 다르게 나는 그 울타리 안에서 자주 혼자였다는 생각이 든다.


한의(韓醫)셨던 할아버지는 95세, 돌아가신 날까지, 붓으로 작은 글씨의 약
처방문과 한시(漢詩)들을 필사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버지는 술친구들이
많았지만, 대부분 시간을 과일나무를 손질하거나, 거기 관계되는 책을 뒤지
며 지냈기 때문에, <양봉전서(養蜂全書)><전지(剪枝)의 기술(技術)>따위  
아버지가 보시던 책들을 아무거나 뒤적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읽었던 소설이 <15소년 표류기>였는데, 그 책
이 왜 우리 집에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과수원 언덕에서 화물선이나 흰 돛
배를 단 작은 배들이 바다를 떠가는 걸 매일 보아 왔던 시골 소년에게 그
책 속에 펼쳐진 상상력의 공간은 얼마나 큰 충격이었겠는가.
시골 소년은 날
마다 바다를 내려다보며 배를 타고 먼 무인도로 떠나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그때는 중학교에 직접 가서 보는 입학시험이 있었다.

나는 광주서중에 합격이 되었는데, 그때 떠난 고향이 내게는 결국 내 삶 전
체를 완전한 타향살이로 이어지게 해버린 셈이었다.
군내에서 단 한 명 합격
생이 나올 만큼 시골 초등학교에서는 대단한 출세를 한 이 촌놈은 광주 유
학 생활을 하면서부터 서서히 엉덩이에 뿔이 돋았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과수
원 언덕에서 내려다보던 바다와 과수원 울타리에 둥지를 만들던 뱁새며, 오
목눈이에 대한 끝도 없는 그리움, 열 두 살 먹은 소년에게 그 지독한 향수와
결핍의 감정은 상상의 세계 속에서만 충족될 안타까움이었다.
그러니 방학이
되어 시골에 내려가면 악동들과 어울려 날이면 날마다 무슨 장난을 할까, 그
런 궁리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지금 같은 입시 지옥이 없었던 탓에 중 고교 시절 전부를
학과 공부보다는 하숙집 앞에 연이어 있던 헌 책방에서 날이면 날마다 책을
빌려 지독한 남독의 시절을 지냈다.
그때 나이는 나보다 위였지만 이청준이
같이 중 고교를 다녔는데, 그는 공부도 아주 열심히 했었다.  


그러나 학과 공부는 뒷전으로 아무 책이나 읽어대었던 그 남독의 시절을
나는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학교 공부를 열심히 했었다면 나는 가족의 뜻
대로 의사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무렵 나는 막연하게나마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는 소설가가 되기로 작정을 해 버렸다.


문제는 할아버지의 의업을 이어받지 않고, 과일나무를 가꾼 아버지는 본인
의 불효를 내가 대속(代贖)해서 의사가 되기를 바랐었다.
그 갈등의 와중, 나
는 고3 말까지 의과대학 지망을 숙명으로 받아드리다가, 끝내 고개를 젓고
소설가가 되기로 혼자 결심을 했다.
그런데 그 나이에도 이 땅에서 소설만
써서는 먹고살기 힘들 것 같아, 일단 국어선생이 되기로 계획을 세웠다.

러나 의대 지망에서 갑자기 국립사대 국문과 지망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 국립사대가 3개였는데, 서울사대는 시험 과목에 제2외국어가 있어서 짧
은 시간 준비가 도저히 불가능했다.
공주사대와 대구사대 두 개를 놓고, 지
도에서 고향에서부터 거리를 재어보니, 공주 쪽이 조금 가까웠다.

좋다. 공주로 가자. 계룡산도 있으니까 도 닦는 기분으로 가서 소설가가 된
후에 하산하자, 그렇게 결정을 해 버렸다.


그런데 입학하고 나자, 그 해 1학년 때 4.19 혁명이 일어났다.

이듬해에는 또 5.16이었다.    

20대 초, 민감하던 나이의 외부적인 이 충격들 속에서 가족적인 불행도 연
달았다.


손아래 남자 동생이 죽었고, 어머니는 병으로 쓰러지고, 아버지의 과수원은
육지에서 처음 시도했던 귤 재배의 실패로 잡초 밭이 되어 갔다.

혼돈과 상실감, 그 외로웠던 좌절의 젊은 날들, 탈출구는 유일하게 소설을
써서 그 무한한 상상력의 공간을 통해 나를 보상받는 방법밖에 없었다.
하지만 소설가가 되는 것이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었다.


나는 대학의 수요문학회 회장을 맡아, 이를 갈면서 회원들과 토론하고, 또
밤새워서 소설을 썼지만 신춘문예에서는 계속 낙방이었다.
많은 것이 고통스러웠던 젊은 날이었다.


속을 부글거리며 고향에 내려가서는 비봉산 중턱에서 꺼내 온 해골 조각
을 바바리 안 주머니에 휴대용 막걸리 잔으로 넣고 다니다가, 부둣가 대포
집에 들려 그 잔에 술을 따라 마시기도 했다. 너무 외로웠다.


2천 매 짜리 <장편서사시 전봉준>을 쓴 장효문이 그때 서라벌을 다니면
서 우리 과수원에서 멀지 않는 곳에서 살았는데, 그 친구는 제 방 사면 벽을
새까만 종이로 도배를 해놓고, 벽에다가 <김동리, 서정주, 그대들을 내 언젠
가 문단에 추천하리라> 시건방지게 제 선생님 두 분을 자기가 추천하겠다고
써 붙여 놓고 악을 쓰며 시를 쓰고 있었다.


계속되는 낙선 속에서도 쉬지 않고 쓰기는 썼다.


마지막 졸업을 앞두고는 소록도 나환자들의 꿈과 그 한, 절망을 담은 <하
늘을 색칠하라>를 써서, 그 당시 제일 현상금이 많았던 서울신문 신춘문예
에 우편으로 보내놓고 나는 고향 바닷가로 내려 와 버렸다.
새 해가 되었는데도 나는 여전히 지난해처럼 신문사에서 아무런 연락도 받
지를 못했다.


내 문학적 능력의 한계를 쓰게 곱씹으며 나는 부둣가 대포 집에 앉아 바
바리 코트 안 호주머니에서 해골 조각 술잔을 꺼내 거기에 술을 받아 마시
고 있었다.

그 날이 1월 5이었을 것이다. 밤이 깊어서 몇 명인가 어깨동무를 한 채 바다
에다 오줌을 내갈기고, 악을 쓰면서, 비틀거리며 녹동 우체국 앞을 지나게
되었다.

그때 내 얼굴을 아는 우편 배달부가 그 시간, 나를 발견하고는 내 우편물이
많으니 가져가라는 것이었다.

한 아름의 우편물 속에서 신춘문예 소설당선 축하 편지와 엽서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작가와 연락이 안 되어 우선 당선 소감을 싣지 못하고 당선작을 발표하니,
작가는 급히 신문사로 연락을 바란다는 1964년 1월 1일자의 신문까지 그 속
에 끼워 있었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안되겠지만 전화는커녕 전보마저 더러
증발하던 1964년의 이야기이다.    


심사위원 황순원, 최정희 두 분.
두 분 다 고인이 되셨지만 나는 그 후 20여 년이 지나서 황순원 선생님을
지도교수로 학위 논문을 썼으니, 인연치고는 참 길고 질긴 인연인 셈이다.
그 새벽 일찍 죽은 동생 무덤 앞에 가서 모처럼 실컷 울었다. 네가 다 살지
못했던 삶, 형이 작품을 통해 대신 살아주겠노라고....중얼대면서.


그러나 당선이라는 것 자체가 소설 쓰기에 있어서는 새로운 시작이었을  
뿐이었음을 그 당시에는 잘 알지 못했다..

세월이 많이 지나, 또 새 해를 맞으면서, 글 쓰기란 늘 또 시작하는 일이라
는 것을 지금의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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