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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소설가 이문구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존경하던 소설가 중의 한 분이 세상을
떠나셨군요...                                                                      
-문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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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의 굴곡을 온 몸에 안고 살던 이문구 형이 드디어 떠나버렸습니다
-유 금 호-


 소설가 이문구(李文求.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선생께서 25일 오후 10시 40분 서울 을지로 백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하셨습니다.
향년 62세. 선생은
1941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으며, 1966년 『현대문학』지 추천으로 등단했고, 농촌 현실을 토속적인 문체로
그린 소설집 「관촌수필」을 비롯해 「우리동네」「장한몽」「매월당 김시습」「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등의 작품을 남겼으며
한국펜문학상, 만해문학상, 동인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선생은 1974년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발기인과 간사로서 문학의 사회참여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펜클럽 이사, 한국문인협회 소설분과이사, 한국소설가협회 이사,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2년전 위암과 담낭 제거수술을 받았던 선생은 최근 지병이 악화돼 백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아왔으며, 병원측으로부터
"신변을 정리하라"는 통고를 받은 선생은 지난 15일 가퇴원, 투병중 쓴 동시 66편을 묶은 동시집 「산에는 산새 물에는 물새」 등의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 뒤 열흘만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소설가 이문구씨 타계
‘농촌 최후의 이야기꾼’ 25일 밤 세상을 떠난 ‘관촌수필’의 작가 이문구는 토속적인 아름다움을
담은 해학적인 문체로 한국문학에서 독특한 경지를 일궈 왔다.
대중적 인기를 크게 누리지는 않았지만 그의 문체는 한국 문단에서 독보적인
것이었다.
걸걸한 입담에 충청도 방언이 지닌 고유의 의미와 미감을 실은 그의 문체에 대해 작가 송기숙은 “시골 밭둑의 싱싱한 수풀
같다”고 평했다.

2년 전 위암으로 자리에 눕기 전까지 그는 문단 행사나 문인 초상 등에서 일 맡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어울림’을 아는 사람이었다. 친구
많기로, 선후배 챙기기로는 첫손가락에 꼽히는 문인이었다.
좌익에 가담했던 부친을 6·25전쟁 때 잃은 그는 두 형마저 ‘빨갱이
자식’이라는 이유로 대천해수욕장 바닷물에 산 채로 수장되는 뼈아픈 고난을 겪게 된다.
아들과 손자를 먼저 보낸 조부와 어머니도 그 뒤를
이어 세상을 떠났다. 가족을 모두 잃은 그는 고향 대천에서 중학교까지 마친 뒤 1959년 상경해 서울 신촌시장에서 좌판을 벌이거나 떠돌이 행상,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서라벌예대에 응시했고 면접을 봤던 김동리는 “특이한 문장”이라며 그를 ‘을류
장학생’으로 뽑아줬다. 동급생으로는 조세희 한승원 이건청 등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름을 날렸던 ‘선수’들 중에서 ‘노가다’
문장으로 주눅들어 있던 이문구. 그의 스승인 김동리는 그를 “한국 문단에서 희귀한 스타일리스트가 될 것”이라고 아낌없이 독려해 줬으며 그의
습작을 논하라는 시험문제를 내기도 했다.
대학시절 이후 이문구는 김동리를 아버지처럼 섬겼다. 김동리의 추천으로 이문구는 등단했고
‘월간문학’ ‘한국문학’ 등 문예지의 편집장을 맡기도 했다. 졸업 후 이문구는 생계를 위해 노량진에서 동작동까지 도로확장공사도 했고 연희동
외국인학교 터에 있던 공동묘지 3000기를 옮기는 일도 했다. 그러면서 노동의 현장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법을 배웠다.
1970년대
유신시절, 보수와 순수문학을 대표하는 김동리와 진보 진영, 참여문학의 선두에 선 이문구, 스승과 제자의 문학적 경향은 상극이었다. 그럼에도
사제지간의 정은 조금도 변치 않았다. 1988년 서울에서 국제펜클럽대회가 열렸을 때 참여문학을 대표하던 민족문학작가회의와 김동리가 대립 양상을
보이자 그는 스승에게 돌을 던질 수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 작가회의를 떠나기도 했다. 스승이 타계한 뒤 1995년 이문구는 김동리기념사업회를
만들고 첫 사업으로 김동리문학상을 제정했으며 떠날 때까지 사업회의 회장직을 맡았다.
2000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으로 취임한 뒤 그는
김지하 등 작가회의와 소원했던 인물들을 끌어안는 작업을 시작으로 문인 복지에 목소리를 높였다. 작가회의나 문인협회도 군사독재의 시대적 산물이라
여겼던 그는 이런저런 정치적 현안으로 성명을 내야 하는 일에 괴로워했다.
작가는 서재로 돌아가 글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던 그다.
문학평론가 유종호는 그를 “농촌 최후의 시인”이라고 했다. 기세가 담긴 전통사회의 농촌 언어로 빚어온 그의 작품들에는 늘어지고 휘감기는 문장,
풍요로운 토박이말과 사투리를 비롯해 판소리 사설 같은 구수함이 깃들여 있다. 조상으로부터 이어받은 선비 기질과 직접 경험한 밑바닥 삶,
6·25전쟁에 대한 기억이 이문구 문학의 바탕을 이룬다.
“이름 앞에 어떠한 수식도 붙여지길 원치 않는다”는 작가 이문구. 그는 “죽을
때까지 현역작가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마지막 길을 떠나며 이문구는 동시집 ‘산에는 산새 물에는
물새’(창작과비평사)를 남겼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이문구씨 연보
▼ 1941년 충남 보령 출생 서라벌예술대 문창과 졸업 1966년 ‘현대문학’에 단편 ‘백결’이 추천되어 등단

1970∼1972년 ‘창작과 비평’에 장편 ‘장한몽’연재
1970∼1972년 ‘월간문학’ 편집장
1972년 제5회
한국창작문학상 수상
1973∼1975년 ‘한국문학’ 편집장
1977∼1997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1978년 제5회
한국문학작가상 수상
1982년 제1회 신동엽 창작기금 받음
1984∼1989년 ‘실천문학’ 발행인
1987∼1988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1990년 제7회 요산문학상 수상
1991년 ‘장곡리 고욤나무’로 흙의 문예상 수상
1991년
펜문학상 수상
1992년 제2회 서라벌문학상 수상
1993년 제8회 만해문학상 수상
1995∼1996년 한국소설가협회
상임이사
1996년 96문학의 해 집행위원회 출판 홍보분과위원장
1996∼1998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강사

1998∼1999년 민족문학작가회의 부이사장 1999∼2001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2000년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로 동인문학상 수상
소설집 ‘이 풍진 세상을’(1972), ‘으악새 우는 사연’(1978), ‘우리 동네’(1981) 장 편
‘산너머 남촌’(1990), ‘매월당 김시습’(1992) 연작소설 ‘관촌수필’(1972∼1977) 외 다수


'관촌'으로 돌아간 문단 터줏대감
한국 문학과 문단의 마당쇠이자 터줏대감을 잃었다." 소설가 이문구의
부고 소식을 듣고 몰려든 문인 등 문화예술인들은 깊은 슬픔과 상실감을 쏟아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이승에서의 삶이 얼마 남아있지 않다는 소식에
어제, 그제 병상을 찾아 李씨의 손을 붙들고 다 꺼져가는 말로 인사를 나누며 슬픔을 참았었다. 그들이 이제 "여한 없이 살다 가신다고 했으니
여한없이 잘 가시라"며 슬픔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 15일 병원 측으로부터 "이 세상에 정리할 것 있으면 정리하시라"는 통보를 받은
李씨는 그날로 집으로 가 마지막 원고를 손질해 동시 60여편의 동시집과 산문집 한권 분량의 원고를 출판사로 보내 세상과의 거래를 끝냈다.그리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 감사와 충고를 전하고 싶은 선.후배 문화예술인들을 불러 인정도 정리했다.
"산에는 산새/들에는 들새/물에는 물새/들고
나는 새/하고많아도/울음소리 예쁜 새는/열에 하나가 드물지./웬일이냐고?/이유는 간단해./듣는 사람이/새가 아니란 거야."('새'전문) 세상에
있는 말로는 양이 안 찬다며 새로 말도 만들어서 긴 만연체로 쓰던 소설과는 정반대로 李씨는 위와 같이 단순하고 명료한 동시로 마지막 투병을 하고
있었다. 출판사로 넘긴 동시집의 제목도 '산에는 산새 물에는 물새'로 마음 속에 정해놓았다.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고승대덕(高僧大德)의
말씀과 이 동시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있는 것을 있는 것 자체로 받아들이는 단순한 마음으로 돌아가 李씨는 죽음도 순연하게 맞아들인
것이다.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싶다"며 "내 이름을 딴 어떤 추모사업도 벌이지 말고 무덤도 쓰지 말 것이며 어릴적 뛰놀던 고향 관촌
뒷동산에 뿌려달라"는 유언과 함께 숨을 놓았다.
유년시절과 전통적 유학자 집안이 남북 이념대립에서 빨갱이로 몰락한 집안 내력을 서구 소설
양식에서 벗어나 동양의 열전 형식과 수필 양식으로 넓힌 출세작 '관촌수필'의 고향, 충남 보령의 관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의 문체는 평단
전체가 달라붙어 연구해도 모자랄 그런 풍요로운 숲"이라고 일찍이 김지하 시인은 말했다. 다른 작가와는 다른 이야기, 형식, 언어, 문체를 부단히
개발한 그는 진작부터 스승인 김동리에게서 '우리 문단의 가장 이채로운 스타일리스트'란 평을 들었다. 李씨는 문학이 풍요로웠을 뿐만 아니라 좋은
관계로서 '가장 풍요로운 인간의 숲'을 이뤘다.
"당신의 한 작품 제목처럼 '이 풍진(風塵) 세상'에 와 남의 먼지 다 씻겨주고
당신에게서는 먼지 하나 안 날린 분"이 李씨 아니냐며 진보.순수 문단, 재야.보수 문화계 등 이념과 경향을 뛰어넘어 많은 인사가 조문을 와
李씨의 포용력을 덕담으로 나누고 있다.
김동리와 서정주의 제자로 보수.순수문단에서 시작해 1970년대부터 진보.참여문단을 이끈 李씨.
그는 진보 문단 수장으로 있으면서도 보수 문단을 배제가 아니라 포용하며 함께 일해 나가고자 애썼다. 해서 "문학의 경향.파벌 다 아우르며 포용한
분은 문단사상 李씨밖에 없다"며 그동안 갈라섰던 한국문인협회.민족문학작가회의 등 모든 문학단체가 함께 문인장으로 장례를 치른다.

"흑백논리로 가차없이 선배.동료.후배 할 것 없이 재단, 처벌해버려 덕성이 사라졌다. 스스로 서로를, 상대방을 감싸 안아줄 때 본래의
덕성으로 돌아갈 것이다." 李씨가 병석에서 해준 이 말은 오늘 같은 '배제의 시대'에 더욱 크게 울린다. 이경철 문화전문기자(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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