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lcom to munsarang

문화인의 사랑방                                                                                                 Home   e-mail   Site-map

                                                 





 


문사랑닷컴은 여러분들의 열린 공간입니다.^^행복한 시간 되세요~~~^^

<문사랑 자유 사랑방>

접속된 회원 및 총회원 목록보기

현재 0분께서 회원으로 접속해 있습니다. 0 회원가입 회원로그인
459  1/12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모윤숙 시낭송회

서울詩壇 제69회 시낭송회 ․


嶺雲 毛允淑 詩朗誦會

영운 모윤숙 시낭송회


일시: 2010년 4월 20일 화요일 오후 6시
장소: 서울 강남문화원 강당(3층)
주최: 서울詩壇․강남문화원(363-5815/3454-1517)
후원: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 (재)한국문학진흥재단



차 례


사회 / 박상경총무 / 박부경 김효정
피아노 / 여현옥편집 / 남금선 서정혜
재무 / 송세라



안 재 진이 봄 꽃향기에 취하듯 5




❙제1부❙




참조개시                                   시 모윤숙 / 낭송 가영심 / 6

검은 머리 풀어시                       시  모윤숙 / 낭송 김수정 / 7

追慕추모시                                 시 모윤숙 / 낭송 김효정 / 8

로마를 걷는다시                        시 모윤숙 / 낭송 김자희 / 9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시             시 모윤숙 / 낭송 황귀선 / 10

스페인의 춤 시                          시 모윤숙 / 낭송 박부경 / 14

북구수첩에서시                         시 모윤숙 / 낭송 박찬미 / 15

친구야                                      시 모윤숙 / 낭송 여명옥 / 17

어느날 파리에서                        시 모윤숙 / 낭송 심정자 / 18

잘 웃던 사람아                          시 모윤숙 / 낭송 이시은 / 19

어느 순간                                 시 모윤숙 / 낭송 정인관 / 21

저 별과 강물의 노래                  시 모윤숙 / 낭송 주원규 / 22

9월 아낙네                               시 모윤숙 / 낭송 홍중기 / 24

마리아 像상이 있는 퀴논 해변     시 모윤숙 / 낭송 채인숙 / 25





❙제2부❙




▪강연: 펜클럽의 代母, 嶺雲 毛允淑 / 성기조



❙제3부❙




나비                                       시 모윤숙 / 낭송 박성락 / 26

올리브 숲의 밤                        시 모윤숙 / 낭송 남궁연옥 / 27

가슴 맞대고                            시 모윤숙 / 낭송 남금선 / 28

느티에 돌아오다                     시 모윤숙 / 낭송 이지언 / 29

목련                                      시 모윤숙 / 낭송 정광수 / 30

허무와의 대화, 침묵의 얼굴      시 모윤숙 / 낭송 두 안 / 31








인사말


이 봄 꽃향기에 취하듯

―모윤숙 선생 시 읽기에 부쳐―





재개발지역 구석 자리에 미처 옮기지 못한 늙은 산수유가 노오란 꽃을 피웠다. 긴 겨울동안 곱게 보아 줄 사람마저 떠난 척박한 땅에 외롭게 자신의 영혼에 불을 지펴 잃어버린 얼굴을 되찾은 작은 꽃봉오리는 아름답다기 보다 무척 경외스럽다.

죽은 것 같으면서도 살아있는 생명, 잃어버린 것 같으면서도 귀하게 간직한 신성, 이렇듯 찬란한 꽃의 신비처럼 영원속 빛으로 반짝이는 우리들의 시인을 찾아오는 행복한 노래를 부르려 한다.

그는 바로 비운과 질곡으로 얼룩진 최근세사의 한복판에서 가슴을 찢고 눈물을 뿌리면서 조국과 민족과 희망과 사랑을 찬양한 모윤숙 시인이다.

참담한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는 조국을 향한 민족의 가슴이 식을까 그리움과 고독과 사랑과 찬가로 미래 지향적인 민족의식을 음유한 시편들을 남겼고, 동족의 가슴에 불길을 퍼붓던 상잔기 전 후에는 조국의 아픔과 자유주의를 향한 애국 충정으로 가슴을 앓아 온 분이다.

또한 애정 고백서란 표제로 독자들의 심금을 울린 「랜의 애가」에서 볼 수 있듯 시인이 가진 민족관과 사회관을 격정적으로 설득한 이상주의적 세계관은 결코 지울 수 없는 우리의 꽃으로 오늘 봄이 익어가는 뜨거운 밤, 탐스런 꽃향기에 취하듯 선생님의 시심을 일깨워 우리 가슴이 충만하게 되는 뜨거운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선생님의 시 세계와 작가적 소론을 발표해 주신 청하 성기조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10년 4월 20일

서울詩壇 대표 안재진



참조개




               시 / 모윤숙

               낭송 / 가영심





조개는 천천히 말을 삼키고

젖가슴인 모래 속으로 든다.


따뜻한 물살이 사르르 오면

입을 열어 또 한 모금 목을 축인다

저절로 나왔다가 저절로 오무라지는

아기 조개는 바다의 귀염둥이

해가 저물면 어디로 갈까

눈도 없는 조개는 어디로 갈까.




*보통학교 5학년 시절







검은 머리 풀어






                    시 / 모윤숙

                    낭송 / 김수정





임 계신 곳 향하여

이 몸이 갑니다

검은 머리 풀어 허리에 매고

불 꺼진 조선의 제단에

횃불 켜 놓으러 달려갑니다.






*<東光> 誌에 처음 발표된 시





追慕추모

-사육신 오백년 기념제에






                              시 / 모윤숙

                              낭송 / 김효정






그 후 오백년 시간은 갔어도

어제런듯 이 나라 마음 속에 파고드는 울림

갓칠동 한강 어귀에 몸 버리운 날이

오늘에 마주치는 恨한처럼 가슴 벅차 오릅니다.


여섯 분 모진 싸움 나라 위한 아픈 사랑이

불에도 칼에도 오히려 내미시고

살저며 단근질에 그 또한 허허 웃어

굽힘 없는 높은 의기 뿌리며 가신 길

혼은 살고 말씀은 그대로 들리옵니다.


어이 당하셨나이까 그 아픔, 그 경멸, 그 누명,

칼부림, 벼슬 싸움, 그 흐린 나라에서

의연히 휘임 없이 바른 정기 뿜으시어

그 무지와 그 악을 항거하였으니

우러러 가신 임들 모습 앞에 이 겨레 머리 숙이나이다.


오백년 밝히신 길 이제야 알은 체 하옴은

임들이여! 모르시지 않으오리다

그날이 다시 오시어

오늘의 우리를 매만져 이끄소서

오늘의 이 겨레에도 그 의를 밝혀 주소서.







로마를 걷는다






                           시 / 모윤숙

                           낭송 / 김자희






로마를 걸으며

포롬과 콜로세움의 폐허를 본다

굴복하며 낡아가는 기둥과 터전

수만의 노예가 죽음을 끌며

애급과 시리야와 레바논에서

돌과 목재를 메고 와 여기 묻었으리라

사자도 날짐승도

이 광장에서 인간과 싸우며

시이저의 法悅법열을 흐느끼게 하던 곳

피와 학살의 연출장

그 밤을 가던 달이 여기 웃고 지난다.





*1958년 12월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나는 광주 산곡을 헤매다가 문득 혼자 죽어 넘어진 국군을 만났다.






                                 시 / 모윤숙

                                 낭송 / 황귀선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 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런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지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구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죽음을 통곡하며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원수가 밀려오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숨지었노라.


내 손에는 범치 못할 총대 내 머리엔 깨지지 않을 철모가 씌어져

원수와 싸우기에 한번도 비겁하지 않았노라

그보다도 내 피 속엔 더 강한 혼이 소리쳐

달리었노라 산과 골짜기 무덤과 가시숲을


이순신 같이 나폴레옹 같이 시이저 같이

조국의 위험을 막기 위해 밤낮으로 앞으로 앞으로 진격! 진격

원수를 밀어가며 싸웠노라

나는 더 가고 싶었노라 저 머나먼 하늘까지

밀어서 밀어서 폭풍우 같이

뻗어가고 싶었노라


내게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동생들도 있노라

어여삐 사랑하는 소녀도 있었노라

내 청춘은 봉오리지어 가까운 내 사람들과

이 땅에 피어 살고 싶었나니

아름다운 저 하늘에 무수히 날으는

내 나라의 새들과 함께

자라고 노래하고 싶었노라

그래서 더 용감히 싸웠노라 그러다가 죽었노라

아무도 나의 죽음을 아는 이는 없으리라

그러나 나의 조국 나의 사랑이여!

숨지어 넘어진 이 얼굴의 땀방울을

지나가는 미풍이 이처럼 다정하게 씻어주고

저 푸른 별들이 밤새 내 외로움을 위안해 주지 않는가!


나는 조국의 군복을 입은 채

골짜기 풀숲에 유쾌히 쉬노라

이제 나는 잠시 피곤한 몸을 쉬이고

저 하늘에 나는 바람을 마시게 되었노라


나는 자랑스런 내 어머니 조국을 위해 싸웠고

내 조국을 위해 또한 영광스레 숨지었노니

여기 내 몸 누운 곳 이름 모를 골짜기에

밤이슬 내리는 풀숲에 아무도 모르게 우는

나이팅게일의 영원한 짝이 되었노라.


바람이여! 저 이름 모를 새들이여!

그대들이 지나는 어느 길 위에서나

고생하는 내 나라의 동포를 만나거든

부디 일러다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고

저 가볍게 날으는 봄나라 새여

혹시 네가 날으는 어느 창가에서

내 사랑하는 소녀를 만나거든

나를 그리워 울지 말고, 거룩한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 일러다오

조국이여! 동포여! 내 사랑하는 소녀여!


나는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 간다

내가 못 이룬 소원 물리치지 못한 원수

나를 위해 내 청춘을 위해 물리쳐다오.


물러감은 비겁하다 항복보다 노예보다 비겁하다

둘러싼 군사가 다 물러가도 대한민국 국군아! 너만은

이 땅에서 싸워야 이긴다, 이 땅에서 죽어야 산다

한번 버린 조국은 다시 오지 않으리라, 다시 오지 않으리라

보라, 폭풍이 온다 대한민국이여!

이리와 사자떼가 강과 산을 넘는다

운명이라 이 슬픔을 모른 체 하려는가

아니다, 운명이 아니다, 아니 운명이라도 좋다

우리는 운명보다 강하다! 강하다!

이 원수의 운명을 파괴하라 내 친구여!

그 억센 팔다리 그 붉은 단군의 피와 혼

싸울 곳에 주저 말고 죽을 곳에 죽어서

숨지려는 조국의 생명을 불러일으켜라

“조국을 위해선 이 몸이 숨길 무덤도 내 시체를 담을

작은 관도 사양하노라

오래지 않아 거친 바람이 내 몸을 쓸어가고

젖은 땅의 벌레들이 내 몸을 즐겨 뜯어가도

나는 유쾌히 이들과 함께 벗이 되어

행복해질 조국을 기다리며

이 골짜기 내 나라 땅에 한 줌 흙이 되기 소원이노라.”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운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런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지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구나

가슴에선 아직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죽음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1950년 8월 그믐 광주 산곡에서








스페인의 춤






                          시 / 모윤숙

                          낭송 / 박부경








무대는 작은 놀이터

손바닥의 음향과 발의 리듬과

터지는 웃음과 긴 머리카락들과

끓는 샘 속에서 부르는 사랑의 갈망

놀람과 성냄에서 또 다시 부드러워져

그 눈흘김은 흐트러진 머리 올 사이에서 사그러진다

긴 부챗살은 떠는 눈을 가리고

발끝에 치마는 둥글게 꽃을 뿌린다

투우의 옷을 입은 젊은 사나이

기울인 사랑에 뒤를 못 따라

감길 듯 사라지는 치맛자락에

꺼지는 횃불같이 기절해버린다

사랑과 미움, 새움과 그리움이 분열되어

날쌘 칼이 하늘에 날리고

복수는 차라리 사랑보다 목말라

가슴에 흐른 피로 꽃을 피워

축배의 잔을 들고 미쳐버린다.




*1959년 11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북구 수첩에서




                       시 / 모윤숙

                       낭송 / 박찬미






바람이 덤불을 헤치고

구름이 큰 비를 몰아

웅덩이 나라에 물새를 불렀다.


긴 철배는 물에 달라붙어

기도의 자세로

어느 항구로 조심히 머리를 돌리고 있다

風女풍녀는 사진기를 들고

마른 숲을 뛰어다니며 햇빛을 찾는다

스톡흘름, 코펜하겐의 밤거리를 돌아

오늘 암스테르담의 안개를 마신다.


보랏빛 섞인 진노랑 숲 사이로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히피들

주소불명의 낙엽들과 어울려

배합된 언어로 발음한다

“인색한 대화들과

일그러진 전통의 사치들과

위선의 정치들을 배신하는

우리들은 轉身전신하며 이들을 저항하는 기수들이라고”


古風고풍의 얼굴로 팔을 벌린

세모진 바람 방아는 코카콜라를 마시고

중풍환자처럼 사지가 뻣뻣해 서 있다.


수줍은 벌레모양 희와 나는

껍질 속에 숨은 목소리로

제 멋과 제 소리를 풍기는 사람들이

그저 좋다고 지껄였다.


바다에선 쉴새없이 연어와 도미가

들어오고

육지로는 안네의 집과

렘브란트의 <야경>이 걸려 있는

중앙청보다 더 큰 박물관을 향하여

오전보다 오후엔 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우리는 추운 숙소에 돌아와

절인 고기에 배추 잎새를 얹어

제법 김치맛을 풍겨보며

또다른 지혜의 나라를 향해 떠났다.




*암스텔담에서 동행했던 조경희를 나는 풍녀라 이름짓고







친구야




                        시 / 모윤숙

                        낭송 / 여명옥




작은 흙바닥으로 된 이 방

창호지 문 밖엔 저 혼자 가는 새들

분홍빛 곡조로

피리 소리 날리면 맴돌고 있다.


친구야! 오늘은 옛 애인이 변해

聖衣성의를 입은 도적이 되어 문을 연다

나는 진숯을 갈아 검은 죄를 마신다

숯불 위에 불고기를 떠받들던

그 사람의 술잔에 毒독을 마신다.


空白공백과 단절, 서로 낯설어지는

이 시간들의 패배된 오늘

그 때는 오월이었는데

친구야! 지금은 어느 달이라 말할 수가 없구나.





어느날 파리에서



                        시 / 모윤숙

                        낭송 / 심정자


무성한 마로니에 나무 밑으로

조금도 낯설지 않은 사람들끼리

벤치에 앉아 인생을 대화한다.


서럽고 다정한

그들의 청춘, 그들의 老年노년을

고향이 없는 고향인들을 만나

숨바꼭질에 지친 행복과 불행도

이제는 지나간 술래잡기의 곡예

그 언제 4월을 피해 온 이 공원에

황금색 노을이 물들어 오고 있다.


라일락 향이 이처럼 맵싸할 땐

알프스의 연정을 불러본다

차가운 돌에 가슴을 식히면서

먼 먼 지중해로 달리고 싶어.





잘 웃던 사람아




                  시 / 모윤숙

                  낭송 / 이시은






걸어 다닐 때나 앉았을 때나

글을 읽으며 이따금 사람을 쳐다볼 때나

항상 方位방위가 어질어

동으로 가다 서로 돌아서면서도

어깨가 위로만 솟더니

무엇이 피곤하여 오래 거기 쉬는 거냐.


7죄의 무지개는 너에게만 있으랴

죄를 기도하는 너의 침묵은 그대로

못나서 잘 웃던 사람아!

웃음이 그리도 잘 헤어지더니

이제 맥없이 하늘을 등지고 어디로 가는 거냐?

나무도 가을도 가슴 맞대고 지껄이던 친구들도

아직은 함께 서서 너의 죄를 망설이고 있다.


어찌 생각하면 거기도 좋은 곳이다

술 안 취하고 인생을 생각할 수 있다는 일

젊음의 한때를 위해 이 마음 저 마음,

쥐어박으며 눈물어리던

명동의 밤을 떠났다는 일.


그 어두운 휴식의 은혜 속에서

常상아! 인생을 한번 꼬았다 풀었다

반복해 보라

사념의 호수에 그 영혼을 넣어

主주가 흘리신 피의 아픔과 더움을 한번 더 먹고 마시라




*1960년 9월 8일 具常구상의 공판정에서





어느 순간






                     시 / 모윤숙

                     낭송 / 정인관




나는 그 어느 순간을 차지한 우주의 한 점

그 태어난 자리 어디에라도 그의 손길이 닿아 커지고 자라리니

어둠이 떠는 나의 새벽이여

너는 나와 그의 사이에 두려움을 일으키지 말라.


나 비록 돌짝밭에 태어났어도

풍요한 나의 눈물이 그 땅을 적시리니

그 위에 빛나는 소나기의 광채와

멀리 뻗친 무지개 아래 이 생명 번성하리라.


자기의 자란 곳, 골고다를 걸으신 이여

내가 난 자리 그 깊은 요람에서

당신의 숨소리와 놀람을 듣게 하시라.




*1963년 6월





저 별과 강물의 노래






                        시 / 모윤숙

                        낭송 / 주원규





이제 끝나시었습니까?

여기 그 몸 태어나신 언덕에

장미 난초꽃이 웃어 화답하옵는데

한평생 목메어 부르던

어머니 조국이 여기 있는데

눌려 울던 이 나라 눈물로 감싸 안고

40년 방랑, 어느 하루 쉬시었을까?

이 백성 큰 사슬에 묶이었을 때

산에 물에 휘돌기 몇 만리

온 세계의 문을 두드리며

조국을 풀어 달라 싸우고 싸웠습니다.


그 저항 그 불굴의 독립정신

우리 땅 큰 소리를 그와 함께 일어났으니

큰 어름 모시고 온 누리에 휘날린 태극기

이 허전함이 이 고아 같은 흐느낌

그래도 그 어디 계시거니 했더니


숨지어 홀로, 이 땅에 돌아오시니

노여움도 역겨움도 없이 돌아오시니

그립던 이 흙에 그 몸 맡기시러 오신 길


두 손 모아 그 영혼 맞이하옵니다

보고 싶고 사무치던 고향

버리고 살기 싫다 피하는 이 疆土강토를

님만은 이 땅에 그 뼈를 감싸고 싶어

숨지어서라도 이 나라 흙에 묻히고 싶어

오늘 어머니 가슴에 안기셨습니다.


이제 조용한 숲에 그 몸의 피곤을 누이시옵고

생전에 목메어 사랑하옵던

저 별과 강물의 노래를

그 가슴에 영원히 담으시옵소서







*1965년 7월 23일 이승만 박사 추모시





9월 아낙네






                   시 / 모윤숙

                   낭송 / 홍중기




세모시 적삼 휘어 말리는

9월은 설레는 아씨의 눈동자

행주치마엔 늦여름 풋콩

제철 내음으로 저녁상이 상그럽다

아가의 몸은 잘 익은 사과

팔에 안겨 엄마를 숨쉰다

코스모스 헤살짓는 물살.


고추는 알알이 붉어 가고

얼레달 초승 밤을 쳐다보면

언제 한번 다녀온 친정이 아쉽다

먼 주막 길엔 별꽃이 한창인데

아가, 아빠는 어디서 돌아오지 않을까.


바느질 그릇에 생각을 담고

거울에 스미는 하늘로 돈다

철없이 기어오르던 그 나무에도

터지는 밤송이가 언덕에 구르겠지.





마리아 像상이 있는 퀴논 해변






                               시 / 모윤숙

                               낭송 / 채인숙





아름다운 퀴논의 바닷가, 猛虎맹호 부대는 이 해변을 누비며 越南월남 땅에 상륙했었다. 퀴논시에서 남쪽으로 5킬로 떨어진 이곳은 불란서 사람들이 살던 아름다운 별장들이 우거진 야자수 숲속에 자리 잡고 수많은 월남 사람들이 더위를 잊기 위해 몰려드는 피서지이기도하다. 맹호부대의 작전 지역인 이곳은 베트콩의 그림자도 얼씬하지 못한다. 태극기를 걸고 아침을 맞는 장병들, 바닷가 마리아 상에는 성탄과 새해를 축하하는 장식이 걸려 있다.






*1965년 12월 25일 퀴논에서





나비






                   시 / 모윤숙

                   낭송 / 박성락






비 속에서 미끄럼 치며

방황하며 명상하는 너

솜안개 풀리는 사이로

불빛 하늘이 밀려와

제대로 숨 못 쉬는 너를

두 팔로 안아 다시 날게 한다.


산길 강길로

숨찬 긴장을 끌고

너와 함께 속박없이 날고 있었다

시간의 초조함이

문도 지붕도 없는 거실로

나를 밀어 넣을 때까지.





올리브 숲의 밤




                        시 / 모윤숙

                        낭송 / 남궁연옥




제단 뒤로 노을이 피어올라

개나리꽃들은 하늘에 만발한데

신은 멀리 원무곡을 타며

달아난 막달라를 찾는다.


꼬리 긴 투구를 쓰고

별은 골리앗 장군을 초대하여

부상당한 병사들을 안내하며

범벅된 평화의 잔을 권한다.


그의 황금의 비녀로

윤나는 머리를 꾸미라 했고

장미의 문장으로 침실을 가리라 했다

소란한 수레들이 바다를 건너기 전.


깃 잃은 새들이

바람에 둥지를 잃고

서로를 찾아 헤매는 밤

나의 가롯 유다는 돌아오지 않고.







가슴 맞대고




                            시 / 모윤숙

                            낭송 / 남금선







한 핏줄 5천만은

복된 땅에 반만년을 살아

눈, 비, 서리. 거친 바람 이기고

어두운 동굴 속도 헤엄쳐 나와

끈기와 인고로 오늘을 창조했다.


넘치는 샘물에 우리 혼을 맑게 씻고

밝은 얼굴로 앞날을 밀어갈

세계의 고임 받은 푸른 이 민족

가리라 천대 만대 이 조국의 자손으로.


태풍에 몰려 우리 잠시 갈렸으나

굳센 뜻 모아 헤어짐을 합치리니

철조망이 무에랴?

이 겨레 힘으로,

가슴 맞대고 한 나라로 번영하리.





느티에 돌아오다




                         시 / 모윤숙

                         낭송 / 이지언






장답다 느티여!

네 생명 안에 살고 싶다.

그 생명 영원과 마주 섰다.

나! 적고 힘없는 나

아직도 희미한 자리에서 약과 싸운다.

오늘 아침 팔꿈치를 뻗쳐가며

처음 혼자 일어나 앉아 보았다.

스스로 일어나고 걷는 일도

얼마나 행복했음을 몰랐다가

새로 난 기운으로 신이 나에게 힘을 주웠다.







목련




                  시 / 모윤숙

                  낭송 / 정광수






은하빛 이슬이 모여와

하얀 꽃나무를 적신다.

움트는 사월의 소리들

안개가 감싸 안고 피어난다.

비록 지나간 시간들은

만날 수 없으나

다시 찾아온 목련

그 웃음들

내 가라앉은 추억들을

소생케 하네,

일으켜 주네.

生생은 이다지 부활의 소리를

천지에 아름다움을 뿌리나니

새로운 미소여!

충만하여라

온 땅에 겨울빛을 가시게 하고

이 동네 저 동네 봄이여!

움터라





허무와의 대화, 침묵의 얼굴






                                   시 / 모윤숙

                                   낭송 / 두 안







옥색물이다. 옥색 도포에 청옥색 대님이 띠를 둘른

감색신에 영기를 담은 몸이

숨가쁜 열기를 뿜는다.

경회루 누각 연못의 은어들이 바람을 탄다

어느 한 분의 갓끈이 긴장한다. 찬비늘 연못물 나래

가슴은 함께 불을 켠다.

젊은 분들은 황홀한 눈치로

회초리를 땅에 굴리며

파란 초롱의 희미한 그늘이

아롱거리며 어렴풋한 취기를 돋운다.


고통의 내면을 겁 없이 들어

벌거이 상기된 얼굴에 벌써 안개를 뿜어온다.

나지막한 별들이 송이송이 많아진다.

가슴은 두려움 없이 들리기 시작한다.

삼문은 박팽년의 어깨를 감으며

천척 땅 밑에 숨졌던 마음을 편다.





<렌의 애가> 중에서





                           시 / 모윤숙

                           낭송 / 하현옥



나는 가리라 이 눈물 씻어줄

그대의 마음속 눈으로 가리라

그 눈은 영원히 젊어 있어

내 혼 탄식의 생에서 구원하리

나는 살리라 그대 맘에 숨어서



바람 구름 어둠 없는 밝은 하늘 아래

그대의 눈동자 속에서 생을 노래하리라

그대 눈은 희망의 창

흐림도 번뇌도 없는 행복의 침묵



다려가 주 이 혼을

그대 맘속 아늑한 곳에

남 몰래 가만히 다려가주



님이 살라시면 사오리다

먹을 것 메말라 창고가 비었어도

빚더미로 옘집 채찍 맞으면서도

님이 살라시면 나는 살아요





<강연 원고>




펜클럽의 代母, 嶺雲 毛允淑









성 기 조

(시인, 한국문인협회 명예회장)







태산준령을 넘을 때, 고갯마루터기에서 피어오르는 뭉게구름을 보면 시원하게 느껴진다. 夏雲多寄峰이라 했던가? 하여튼 그런 구름을 보며 하늘을 올려다 보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는 일은 고갯마루에 올라오기까지 흘렸던 땀을 말끔하게 씻어 준다. 이 시원한 마음은 인간의 삶에서 느꼈던 진솔한 속내를 드러내는 한 편의 글을 쓰고 싶게 만든다. 고갯마루에 피어오르는 구름, 嶺雲을 만나면 꼭 그런 생각과 마음을 느끼게 된다. 영운이란 호는 春園 李光洙가 지어 주었다고 한다. 그가 이광수와 인연을 맺고 춘원을 따른 것은 梨專(현 梨大)을 갓 졸업할 무렵이었다고 하니 까마득한 옛날이다.



이광수는 영운의 처녀시집 �dc54빛나는 지역�dc55을 출간할 때 서문을 써주었다. 그 때 모윤숙의 나이 24세, 한창 젊었을 때였다. “모윤숙 여사의 시는 조선 시단의 중요한 재산이다. 여사의 시를 읽은 이는 그의 놀라운 상상력과 날카로운 인생관과 자연의 관찰과 향토애를 기초로 한 열정에 깊은 감격을 받지 아니치 못하였을 것이다. 모윤숙 여사는 梨專의 학창을 나온 지 아직 3, 4년이 못되는 젊은 시인이다.” 이렇게 서두를 꺼낸 이광수는 모윤숙을 許蘭雪軒에 비교했고 ‘조선말을 가지고 조선의 마음을 읊은 시인은 모윤숙이 최초’라고 쓰고 있다. 그 까닭은 허난설헌은 한문으로 글을 썼기 때문이다. 癸酉 9月에 이 글을 썼다고 하니 1933년이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스물을 갓넘은 모윤숙에게 이광수는 깍듯이 여사란 호칭을 쓰고 있는 점이다.



한 시인의 첫시집에 서문을 쓰기란 쉽지 않은 인연임이 분명하다.

모윤숙은 한국문단에서 가장 많이 영향을 받은 분들을 이광수, 주요한, 김억, 김소월이라고 말했다. 그 중에서도 이광수가 첫시집에 서문을 쓴 것은 두 사람이 서로 가깝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을 가진 필자의 마음을 모윤숙은 부인도 시인도 않은 채 빙그레 웃는 것으로 대신했고 어색한 웃음 다음에는 으레껏 ‘에잇’이란 소리를 질러대기 일쑤였다. ‘에잇’이라는 소리에는 다시는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지 말라는 경고였겠지만 나는 이런 경고를 귀담아 들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모윤숙의 춘원에 대한 생각은 각별한 데가 있었다. 춘원에 대한 얘기만 나오면 가가대소, 흔쾌히 웃다가도 어느 한 대목에 이르면 멍청하게 벽을 쳐다보기도 했고, 또 어느 때는 존경의 마음을 주체할 수 없는 듯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자세를 바로 잡기도 했다.



‘시몬, 양심의 횃불을 들고 이 현실을 극복해가며 광명한 미래를 건설하려는 여성인들 없을리야 있겠습니까? 우리들의 순결은 고독한 생활로부터 끊어질 듯 괴로운 때도 있으나, 진리와 정의를 앞세우고 숭고한 여성미를 높이 세우려는 노력도 있습니다. 저도 이 수많은 수난 속에 묻히어 사는 오늘의 한국 여성입니다. 시몬, 헤매던 혼이 당신을 보았습니다. 당신을 생각함으로 유쾌하게 하늘과 별, 높은 이상을 추구할 수 있도록 되어진 저는 모든 다른 여자보다 행복합니다.’ 이 글은 �dc54렌의 애가�dc55 第3信의 마지막 대목에 나오는 것이지만 모윤숙이 느꼈던 ‘고독한 생활로부터 끊어질 듯 괴로운 것’은 무엇이고 ‘수많은 수난 속에 묻히어’ 오늘을 사는 한국 여성이라고 고백하면서 ‘당신을 생각함으로 유쾌하게’ 이상을 추구할 수 있는 행복한 여자라고 말한 것은 누구에게 한 말일까? 두 말할 것 없이 사랑과 한이 어우러진 모윤숙의 가슴이 활활 타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이 때의 모윤숙의 심정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dc54렌의 애가�dc55를 쓸 때는 그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의 마음을 짐작도 못할 일이지만 그와 날마다 만났던 70년대 이후, 20년 동안, 그가 간직했던 못이룬 사랑과 못다 푼 한에 관해서는 아지랑이가 눈 앞에 펼쳐진 것처럼 아른아른 짐작할 수 있었다.



모윤숙은 울울한 가슴 속에 사랑의 씨앗을 간직한 여인이었으나 단 한 번도 그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 놓고 태워보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세상을 좁게 여기고 종횡무진, 활동하던 그는 의외로 세상 무서운 것을 알았고 남의 입초사에 오르내리는 것을 경계했다. 만천하 사람들이 인간으로서의 모윤숙 보다 활동하는 여자, 公人으로서의 모윤숙의 행실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무서워했기에 고독을 씹고 사는 데 익숙했다. 그 고독을 잊기 위하여 그는 많은 후배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냈다. 그것만이 속 편하고 즐거운 일이라 생각했다.



김광섭, 이헌구, 안수길, 박진 등과 어울려 마작을 하는 일이나 젊은 축이었던 우리들과 어울려 맥주잔을 기울이면서 마당 안에 우뚝 서 있는 느티나무를 쳐다보며 연방 “좋다, 좋아”라고 말하면서 뭇사람에게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주는 느티나무처럼 되기를 바라는 그의 독백은 가슴 속에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는 신명을 다 풀어내지 못한 괴로움에서 쏟아져 나오는 울부짖음 같았다.



안호상과 결혼하고 안암동 조그만 기와집에서 살림을 차린 뒤, 안박사의 고향집에 둘이 함께 갔었지만 대문에 들어서지도 못했다고 그는 말했다. 안박사 부모가 반대한 결혼을 했기 때문에 며느리로 인정할 수 없다는 노인들의 고집은 이해가 되지만 생전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그가 文總 최고위원 시절(자유당 때) 안동지방에 행사가 있어 함께 간 일이 있었다. 우스개 소리로 좌중을 잘 이끌어가는 박진(연극인) 씨가 도산서원 구경가자는 바람에 모두 따라 나섰으나 막상 도산서원에 당도하자 관리하는 사람이 나와 모윤숙만은 들어갈 수 없다고 막았다.



도산 선생이 기거하던 곳에 아녀자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조선시대에 있었던 철저한 내외관념이었다. 여자였기에 당한 이 때의 수모를 그는 일생동안 잊지 않았다. 여자로서 하대를 받거나 무시를 당하는 것 같으면 그 특유의 ‘에잇’ 소리를 내뱉았지만 안동에서 당한 여자 천시는 생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여자로 태어나 당당한 남자처럼 살다 간 모윤숙은 좁고 빽빽하게 얽힌 그물코 같은 봉건사상에 손을 든 여인이었다. 그 때마다 그는 ‘에잇’이란 소리를 내질렀지만 그를 얽어매는 낡고 탄탄한 봉건의 끈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그의 화양동 집은 뚝섬역을 지나서 있었다. 남으로 한강 쪽을 바라보면 우뚝한 관악산이 보이고 그 앞에 펼쳐진 채소밭은 서울 시민이 먹는 푸성귀를 대고도 남을 만한 넓은 들이었다. 지금처럼 개발이 안 되고 전동차가 다닐 때 건축가 金重業이 설계한 하얀 집을 짓고 별장으로 쓰던 곳. 그 집 마당에는 3백년이 넘는 큰 느티나무가 있었다. 그 느티나무를 국보라고 자랑하면서도 집 안에 느티나무가 있으면 팔자가 사납다고 스스로 말하였다. 그 말 속에는 남들이 갖지 못한 느티나무에 대한 은근한 자랑이 들어 있었다. 화양동 집에서 얼마 안 가 영동교가 있었는 데, 80년대 주현미가 부른 「비내리는 영동교」가 크게 히트했다. ‘밤비 내리는 영동교를/홀로 걷는 이 마음/그 사람은 모를꺼야 모르실꺼야/비에 젖어/슬픔에 젖어 눈물에 젖어/하염없이 걷고 있네’로 이어지는 가사를 그는 정확하게 따라 불렀다. 그러면서도 청승맞다고 했다.



“청승맞은 노래를 왜 자꾸 부르시죠?”라고 물으면 “성 회장은 몰라, 내 가슴에 쌓인 한을 - 그 사람은 모르실꺼야 비에 젖어 슬픔에 젖어 눈물에 젖어 하염없이 걷고 있네. 얼마나 좋아, 이 마음을 성 회장이 알아?”



나는 정말 몰랐다. 아무 걱정없는 분, 남자 몇 몫을 하는 통이 큰 분이 감상에 젖어 눈을 지긋이 감고 “내 한을 누가 알기나 해?”라고 말하면 그와 함께 비감에 젖을 수밖에 없었다.



50년, 서울이 인민군에 의해 점령 당했을 때 남한산성 근처에서 고생한 일을 생각해서일까? 모윤숙은 그 때의 이야기를 이렇게 했다. “나는 지하실에 숨기도 하고 산의 동굴에 숨기도 하면서 몸을 피했다. 공산당들은 내가 유엔총회에 참석한 경력이 있기 때문에 나를 잡으려고 혈안이 돼 있었다. 나는 서른 번이나 장소를 옮기면서 숨어 다녀야 했다. 풀잎을 먹고 연명했으며 나중에는 걸을 힘 조차 없었다. 발에서 흐르는 피를 마시기도 했다.” 남한산성이 있는 광주의 산골 동네에서 村婦로 변장한 모윤숙은 온갖 고생을 다하고 구사일생, 다시 목숨을 건졌다. 육이오 전쟁의 쓰라린 추억이었다.



파리를 함께 여행할 때 에펠탑 아래쪽, 세느강 가에 있는, 지금은 해양박물관이 된 건물을 가리키며 “저기가 우리 나라 독립을 승인 받은 곳이거든” 이렇게 말하면서 건국 당시 조병옥, 장면 등과 함께 유엔총회에 참석해서 활약하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1948년 12월 12일, 파리에서 열린 제3차 국제연합총회는 ‘유엔 감시하에 실시된 선거에 의하여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는 한국의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선언하며 점령국들은 가능한 한 조속히 한국으로부터 철수시킬 것을 권고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이로써 우리 나라는 독립국가로 승인받게 되었다.



몽마르뜨 언덕의 야경에 취해 그와 밤 늦도록 거리를 산책한 일들은 잊을 수 없다. 대한여자청년단을 이끌고 건국에 참여한 여장부로 지난 과거를 회상할 때는 눈가에 눈물이 비쳤다. 외로워서일까? 아니면 지나간 과거가 화려해서일까? 특히 조병옥에 대한 대목은 각별했고 인간적인 존경이 있는 것 같았다.



전쟁중에 그가 이끈 낙랑클럽은 뒷날 두 가지로 엇갈려 평가되었지만 나라를 위해서 스스로 論介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論介를 자주 입에 올렸고 그에 대한 長詩를 쓰기도 했다.



낙랑클럽은 뒷날 어려웠던 시기에 나라를 위하여 크게 이바지했다는 평가와 함께 밀실 외교를 펼쳐 영향력 있는 외국인에게 접대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는 말도 들었다. 그러나 그는 낙랑클럽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51년, 육이오 피난시절 이대통령이 불러 갔더니 외국 손님 불러서 기생 파티 열지 말고 레이디들이 모여 격조 높게 대화하고 한국을 잘 소개하라는 분부가 있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낙랑클럽을 조직하고 김활란 박사를 고문으로 하고 회장을 맡았다. 예쁘고 인기있던 여성 오십여 명이 모였고 손원일 제독의 부인 홍은혜, 화신백화점 박흥식 사장 부인 허숙자 등이 중심이었다. 송도 앞바다 바위 위에 지은 집을 허정 장관이 빌려 주어 ‘시 사이드 맨션’이라 부르고 파티를 열었고 비용은 장면 총리실에서 타냈다. 이 때 접대한 사람은 델레스 미 국무장관, 리지웨이, 콜터, 밴프리트 장군과 무쵸 대사 등이었다. “김활란 박사가 외국인과의 대화하는 매너와 에티켓을 지도했고 서툴지만 사교 댄스도 추었으며 때론 미인계도 썼지 뭐” 이렇게 거침없이 말하는 모윤숙은 낙랑클럽에 대한 어떠한 평가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민간 외교에 대한 자부심을 꺾을 수 없다는 배짱이었다.



한국에 펜클럽을 처음 만들 때 참 어려웠다고 회상을 하면서 “한국 문학이 3․8선 이남에서 제주도 북쪽에만 통용된다면 자랑할게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람은 활동무대가 크고 통이 커 국제적으로 놀아야 된다고 말하던 것은 그가 일찍 국제감각에 눈을 뜬 선각자였기 때문이었다. 런던을 지나다 펜클럽 간판을 보고 “하도 반가워 찾아 들어가 한국에도 펜클럽을 만들겠다”고 말해 승낙을 받고 돌아설 때는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는 그도 막상 서울에서 펜클럽을 만들 때는 위원장이 되지 못하고 변영로를 위원장으로 내세웠다. 이 때 뜻을 함께 한 이들이 김광섭, 이헌구, 안수길, 이무영 등이었지만 생각이 트이고 진취적인 문단에서 조차 여성은 단체의 대표가 될 수 없다는 철저한 여성 경시 사상의 덫에 걸려 가슴 속에 응어리를 품었다. 밤낮 부회장만 하다가 백철과 펜클럽 회장선거에서 내리 지고는 아예 반은 포기 상태에 있을 때 그는 젊은 사람들의 힘을 입어 드디어 펜회장으로 당선되었다. 그 때가 1977년. 대망의 펜회장이 되기 위해서 장장 20년 가깝게 참고 기다려야 했다. 그가 회장으로 당선될 때 수석 부회장은 나였고 또 한 분은 소설가 전광용, 그리고 번역가 이가형이었다.



펜클럽 회장이 되면서 일해 보겠다고 팔을 걷어 붙이고 동분서주, 하루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펜회장이 된 뒤 국방부와 청와대의 협조를 얻어 陣中文庫 설치운동을 펴게 했다. 연말연시, 또는 크리스마스 계절에 치약, 치솔 따위를 사 보내는 것보다 책을 보내 읽게 한다는 것으로 여러 군데에 설치해 주었는데 한 곳에 대개 3천∼5천권을 기증해 주었다. 그 때마다 사단본부에서 인계 인수를 했는데 별을 단 사단장들이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 사단장이 선그라스를 실내에서도 쓰고 앉아 우리를 맞았다.



“저이도 누구 본떴나. 방안에서도 검은 안경을 써.” 이 말에

“누굴 닮아요, 닮긴.” 이렇게 묻자

“몰라서 물어. 왜 있잖아.” 그러면서 넌즈시 박대통령을 지목했다.



모윤숙은 박대통령이 검은 안경을 즐겨 쓰는 이유를 자기 상관이었던 사람들이 일순간에 부하가 되었기 때문에 쑥스러워서 쓴다고 늘 말해왔다. 그러면서도 야외에 나가면 자신도 검은 안경을 즐겨썼다. 그 때마다



“나는 세상이 보기 싫어 쓰니까.”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그의 유모어는 기지가 번득였고 기발했기에 많은 사람을 웃겼다. 펜클럽 일에 관해서는 의욕이 지나쳐 때로는 앞 뒤 안가리며 일을 해서 과욕으로 비치기도 했다. 사무국을 개편하고 지원책을 논의하기 위하여 정부와 교섭하는 일로 하루 24시간이 모자랐다. 이 때에 내가 당한 어려움은 말할 수 없었다.



새벽부터 전화에 매달려 수많은 사람을 만나기로 약속해 놓고는 나보고 대신 나가라는 것이었다. “나는 사무적이 아니기 때문에 일의 마무리를 지을 수 없단 말야. 가서 끝장내고 와.” 밑도 끝도 없는 말로 독려 겸 재촉을 하고는 훌쩍 사무실을 나가면 그 많은 일은 내가 도맡아야 했다.



이 때 펜클럽의 일을 도와준 분들은 동아일보 회장 김상만,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 국제문화협회 홍성철 회장, 김경원, 부완혁 씨 등이었다. 이들은 대체로 모윤숙 회장의 뜻을 짐작했고 그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았기 때문에 내가 말하는 일에 선선하게 응해 주었다.



78년 봄, 후줄근하게 어깨가 늘어진 사람을 보면 영락없이 글쓰는 사람이란 말이 나돌던 때, 단군 이래 경제가 호황이라는데 문인들은 맥주값이 없었다. 빈주머니를 뒤져봐야 먼지만 날 뿐, 별도리 없었다. 그 때 생각해낸 것이 정주영 회장에게 떼를 써 하루 저녁 모임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실제로 얼마나 경제가 호황인가. 그리고 우리 나라의 생산력이 얼마나 신장되었는가 눈으로 직접 보자는 목적도 있었다. 뽕도 따고 임도 본다면 더없이 좋은 일, 이 뜻을 전하자 현대에서 O.K였다. 나는 공문을 발송하여 2백명에 가까운 문인들로 산업시찰단을 구성했다. 울산까지 전세 버스로 갔고 현대조선소 영빈관에 여장을 풀었다. 정회장이 작업복을 입고 공장에 나와 직접 안내를 맡은 것은 물론이었다. 이 행사에 참가한 문인들은 입이 딱 벌어졌다.



자동차가 조립 라인에서 나오는 것이 마치 방개가 물위를 기어다니는 것 같아 신기하기만 했다. 또한 조선소의 거대한 골리앗 클레인 등을 처음 보았다. 놀랄만한 일이었다. 百聞이 不如一見. 신문에서 경제호황이라고 써대던 것들이 사실이란 것을 확인하는 순간, 한국의 앞날이 결코 어둡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날 밤, 김희갑, 김세레나 등이 자리를 함께 해 재미있는 여흥이 벌어졌고 양주를 병째 방으로 가져가 마시면서 끼리끼리 얘기를 나눈 것은 오래 기억되는 일이다. 우리 나라에서 최초로 구성된 문인 산업시찰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 뒤 생산공장과 산업에 관한 글이 많이 쏟아져 나왔고 다른 기업체에서도 종종 소규모의 시찰단을 초청하기도 하였다.



정주영 회장의 노래솜씨, 모회장의 우스개는 청중을 압도했고 권일송 시인의 춤은 그날 밤 이후 권탱고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질탕하고 부산하게 놀 때의 모윤숙은 뒷일을 전혀 생각지 않는 정열의 화신, 그대로였다. 어디서 그런 신명이 나는지 알 수 없었다. 마치 신명을 뿜어내는 분수 같기만 했다.



“렌의 앞에는 청춘이 다가왔다. 민족의 수난이 파도처럼 거세게 그 정신을 놀라게 하였다. 가난과 추방이 그의 생을 가로 막았다. 수척해질 대로 수척해진 렌은 한 숭고한 이데아 때문에 해진 치맛자락을 끌며 그대로 자꾸자꾸 인생의 사닥다리로 걸어 올라간다.” 이 글은 영원한 미완성의 애가란 제목을 단 �dc54렌의 애가�dc55 서문이다. 민족의 수난이 파도처럼 거세게 다가오는 한편에는 사랑과 연민이 범벅이 된 고통이 따라 붙었을 것이고 이 고통을 이겨내야 된다는 결심이 삶을 지배하여 견딜 수 없었다는 고백이 맞을 것이다.



시몬은 누구인가? 살아가면서 죽도록 사랑해야 될 사람이 없는 기구한 운명에서는 ‘숭고한 이데아’로 밖에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 시몬을 어떤 남성에다 비기고 싶지 않은게 렌의 마음이었을 게다. “우리의 사랑은 종내 이 세상에서는 평행으로 각기 외로운 길을 갈 수 있으되 동행이 될 수 없는 운명을 가진 까닭이다. 불사의 환영을 따라 나는 나머지 인생을 여수로 끝마치려 한다. 내 혼이 죽지 않는 한 그대의 사랑도 소멸될 수 없는 것이다”란 글에서 나타나 있듯 끝내 이 세상에서는 함께 할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자신의 혼이 죽지 않는 한 그대의 사랑도 소멸될 수 없다는 기대는 보통 여자로서는 상상하지 못할 신명의 발상이요, 고귀한 사랑의 결정이다. 불같이 활활 타오르는 사랑을 한 번도 적나라하게 내비치지 못하는 여인의 슬픈 심정을 한으로 가라앉히고 그 가라앉은 앙금을 우발적으로 폭발하는 신명에 의탁하여 신내림을 경험해 본 여인이 있다면 아마 모윤숙의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펜회장을 하던 중, 가벼운 뇌졸증 증세로 안국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다가 경희대 병원으로 옮긴 때가 있었다. 80년대 초, 인권문제 때문에 펜클럽이 홍역을 앓고 있을 때였다. 정관에 따라 내가 회장직무 대행을 맡는다 하면 정부와 교섭하는데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그 까닭은 회의 공식 입장을 반영하기 보다 제3자적 입장에서 의견을 내고 조정하는 쪽으로 일의 가닥을 잡아 풀어가는 게 상책이었는데 회장 직무대행이라면 상대방이 내가 결정권을 가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구속작가나 구류된 시인들의 석방이나 방면 또는 조사 중 면회를 요청했을 때 일단 당국자들에게 거절을 당하면 다시 얘기를 이어갈 명분이 없었다. 그래서 전광용을 직무대행으로 지명해 달라고 말했더니 이내 승낙했다. 그 때 떨리는 손으로 갈겨 쓴 지명서를 지금도 내가 가지고 있다. 전광용으로 회장 직무대행이 결정되었다는 얘기가 흘러나가자 K시인을 주축으로 한 일부 인사들이 격렬하게 반대를 했다. 누가 회장단 회의도 없이 마음대로 직무대행을 지명하느냐고 말이다.



이런 반대에 직면하게 되자 내가 결국 회장 직무대행을 맡아 수행하게 되어 김지하, 고은 시인의 문제 등, 어렵기 짝이 없는 인권문제를 풀어가는 멍에를 짊어지게 되었다. 하루가 멀다고 영국 본부와 미국, 서독과 일본 등지에서 날아오는 석방 요구서를 당국자에게 전달하고 그들에게 선처를 당부했지만 그들은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 비정치적 문학 문제로 보지 않고 정치문제로 일을 착착 꾸며 나갔다.



정치와 문학, 예술에 있어서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길고도 험한 토론이 그들과 날마다 계속되었다. 그 때마다 좌절과 고통을 맛보았지만 정치세력과의 싸움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요 더욱 예술과 문학에 문외한인 그들에게는 먹혀들지 않는 공염불에 불과했다.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문학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 및 정치현실에 대한 저항권이 있고 이의 옹호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유로도 문인이 정치적인 희생물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 만약 그렇게 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치적인 희생으로부터 해방시켜야 된다는 생각을 가졌다. 이런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위로는 통치자로부터 아래로는 검사에 이르기까지 수없는 편지를 썼다. 그 편지에 답장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뜻밖에도 연락이 오는 때도 있었다.



양성우 시집 �dc54겨울 共和國�dc55 때문에 고은과 조태일이 구속되었다. 조태일의 부인이 어린 아이를 업고 모윤숙을 만나 석방운동을 부탁해 왔다. 만난 지 한 시간도 안되어 나를 잡고 “이봐 불쌍해 못보겠어. 감옥 간 놈들은 마누라 걱정 모를꺼야. 어린 것을 업고 왔는 데 눈으로 볼 수 없어, 성 회장이 알아서 처리해줘.” 이 말 뿐이었다. 그리고는 간간히 전화로, 또는 만났을 때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청와대에 편지를 보내고 하회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좀 기다려보시죠.” 이렇게 대답하고 있는데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다. “검찰총장을 만나라”는 것이었다. 부랴부랴 총장실에 연락하여 오탁근 총장을 만나고 담당 서익원 검사를 만났다. 약속시간에 검찰청에 갔더니 총장 비서실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에리베이터까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귀빈용을 타고 총장실로 직행했고 이 사건에 관한 문단의 시각을 검찰총장에게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문제는 감옥에 오래 두면 둘수록 들어앉아 있는 사람은 눈사람처럼 커집니다. 문학문제는 문학으로 해결해야지 정치적으로 해결해서는 안됩니다. 대한민국이 �dc54겨울 共和國�dc55은 아니잖습니까, 「겨울 공화국」에 관련된 사람을 구속해 놓으면 외국 사람들의 눈은 한국은 겨울 공화국, 꽁꽁 언 凍土로 보게 됩니다.” 귀 기울여 듣던 검찰총장은 담당검사를 만나라는 것이었다. 미남으로 서글서글한 서익원 검사는 얘기를 듣더니 고은과 조태일을 한 번 만나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각서를 쓰라고 했다. 그 내용은 다시는 이 번과 같은 사건을 되풀이 하지 않게 보장한다는 내용이었다. 각서를 써준 뒤, 한 20분 지나자 푸른 수의복을 입은 두 사람이 나타났다. 누우렇게 뜬 얼굴, 뜻밖이란 생각 때문인지 그들은 몹시 놀라는 표정이었다.



서검사가 오늘의 일을 설명하고 다시는 이런 일을 재발 않겠다는 각서를 쓰면 풀어 준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묵묵부답, “각서는 내가 아까 썼으니 그것으로 대신하고 풀어 달라”고 말했다. 그들은 석방되었다. 모윤숙은 이들이 풀려나자 얼마나 기뻤는지 눈물을 글썽거리며 나보고 수고했다고 치하했다. 그러면서도 꼭 빼놓지 않는 유모어 한마디, “빌어 먹을 놈들, 제 집안 식구를 생각하면 그러지 않았을텐데…” 그 말을 받아 “그래요? 고은은 식구가 없잖아요” 했더니.” “그럼 더 처넣어 둘걸 그랬어…” 그러면서 통쾌하게 웃었다. 웃고 난 뒤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냈다. 모윤숙의 인간성을 보는 순간이었다. 남자처럼 활달하고 거침없이 쏟아붓는 말은 거칠었지만 속마음은 결 고운 여인이었다.



세네갈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아프리카 서북부에 위치한 나라로 셍고르란 사람이 대통령이었다. 프랑스에서 독립했고 셍고르의 부인도 프랑스 여인이었다. 비동맹 중립을 표방했기 때문에 외교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서 우리 나라에서는 엠브랜스와 경운기를 주고 그 나라 기술 연수생을 받아 훈련을 시켜주기도 했다. 세네갈 정부가 모윤숙에게 훈장을 주겠다고 통지해 왔다. 외무부에서 그 통지를 내가 받고 모윤숙에게 연락했더니 뛸 듯이 기뻐했다. 그래서 “새까만 나라에서 주는 걸 가지고 뭘 흥분하십니까.”고 했더니 “그래도 그 사람이 멋쟁이 시인이잖아.” 이렇게 받았다. 글을 쓰는 동업자가 다스리는 나라는 피부 색깔이 검던 희던 관계치 않겠다는 생각, 그런 생각은 오로지 문학을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문학하는 사람이 문인을 알아주는 각별한 뜻이 담긴 세네갈 훈장을 응접실에 걸어두고 자랑하는 그의 모습은 꼭 어린아이의 천진스런 모습 같았다. 그는 오로지 문학을 하는 정열로 이 세상을 살아 갔다.





“시는 신앙이다. 시의 형태는 신앙의 형태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의 환경은 인간이 동일하지 않음과 같이 동일할 수 없다. 시대와 같이 시는 변화하고 시대와 같이 논의를 일으키고 있다.”고 말한 그는 일생동안 꾸준한 변신을 기도했다. 현실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늘 말하면서 변신된 상태에서 어떤 시가 나올까 기대하는 자세는 근엄하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그는 항상 자신은 인생의 삶에 미숙하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미숙한 삶에서 터져나오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도 했다.



3․1 문화상을 탈 때, 조선일보의 독자란에 친일파 모윤숙은 3․1 문화상을 타서는 안된다는 투고가 실렸다. 그 내용은 일제 말엽, 決戰勝利를 위한 강연을 했고 군국주의에 앞장섰기 때문에 친일 문인이란 것이었다. 이 기사를 보고는 신문을 북 찢어 핸드 백에 넣고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 기사는 1941년 12월 27일, 부민관(태평로 소재 옛 국회의사당) 대강당에서 열린 決戰婦人大會에서 ‘女性도 戰士다’란 강연 내용을 싣고 있었다. 강연 내용은 영국과 미국의 죄상(?)을 낱낱이 파헤치고 대동아전쟁(2차 대전)은 일본이 꼭 이겨야 한다는 것과 동양의 여성 가운데 장개석 부인 송미령이 미국과 영국의 사치, 향락주의에 빠져 70원(당시는 엄청난 거금이었음) 짜리 양말을 신고 미국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망녕된 사상을 추려 남편인 장개석에게 불어 넣고 있는, 이런 여성이 동양에 있다는 것을 한탄한다. 우리는 남보다 자신을 돌아보고 大和魂(야마또다마시․일본 정신)을 내세워 銃劍을 삼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지금은 기억에도 없는 그의 작품 「東方의 여인들」(新時代 42. 1.) 「어린 날개」(新時代 43. 12.) 등 일제 식민정책을 찬양한 작품들이 있었지만 본인은 물론 주변에서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을 들추어 내고 있었다.



모윤숙은 일제 때 쓴 이러한 작품들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일체 내비치지도 않았는데, 3․1 문화상 수상과 더불어 터져 나왔기 때문에 엄청난 수모를 느낀 듯했다. 그가 말이 없을 때는 분을 참지 못하는 때다. 분한 일을 당하면 모윤숙은 입을 다문다. 일체 함구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분함을 참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으랴, 며칠을 끙끙 앓고 난 뒤, “그 때 일본에 충성하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이 몇이나 돼. 난 대한민국 건국을 위해 온갖 험한 일을 다했단 말야, 내 나라 건국을 위해 온 몸을 희생한 사람이 3․1 문화상 타는 걸 가지고 헐뜯으면 어떡해”였다. 며칠 동안의 생각이 자세를 이만큼 바로 잡아 놓은 것 같았다. 마포 가든호텔에서 있은 시상식에는 문단에서 나 혼자만 배석했다. 시상식이 끝난 뒤 일생 동안 제일 받고 싶었던 상을 받았다고 좋아했다. “나에게는 노벨상 보다 더 좋은 상이야.” 그의 말은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일제에 협력했다는 것을 林鍾國이 쓴 �dc54親日文學論�dc55에 밝혀진 이상 더 숨기려고도 하지 않았다. “창씨 개명을 하라고 그렇게 권해도 난 하지 않았단 말야. 그들은 毛利란 성을 지어가지고 나를 회유했었지.



그래도 난 거절했었는데 어쩌다 그들의 마수에 걸려 들었어.” 이렇게 말하고는 광복 후 자신의 업적을 말하기도 했다. 건국에 큰 공을 세웠다는 것으로 自慰를 하는 것 같았다. 치마를 둘렀지만 남자 같은 여자, 정에 약하지만 고목나무처럼 우뚝한 여자, 사랑을 확실하게 펴보지 못했지만 보이지 않게 뜨겁게 사랑했던 여자, 많은 사람들은 모윤숙을 가리켜 변덕이 많다고 하여 ‘毛변덕’이라고 불렀다. 물론 이 말은 그가 듣지 않는 데서 소곤거렸지만 ‘발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이 말을 모를 리 없었다. “이 봐. 나 보고 모변덕이라고 하지만 말야 누가 자신을 관리하지 않는 사람이 있어, 나만큼 솔직한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그 좋아하던 청주를 한 컵쯤 마시면 눈을 지긋이 감고 이렇게 말하였다. 불쌍한 사람, 힘없는 사람을 동정할 줄 알지만 자신을 헐뜯거나 얕잡아 보는 사람에게는 사자의 모습, 호랑이의 咆哮로 달려드는 여인, 어떤 때는 입에 거품을 물고 머리를 부르르 떨기까지 했다. 정말 불같은 여인이었다.



스티븐 스펜더를 초청했을 때의 일이었다. 세계적인 시인, 영국 펜클럽 회장을 지낸 그를 초청하기 위하여 무던히 애를 썼다. 그가 체재하는 비용, 왕복 항공권 등은 국제문화협회에서 대기로 하고 그를 초청했는데 스펜더는 피아니스트인 부인을 대동하고 왔다. 초청교섭이 이루어지는 중간에 부부동반이란 사실을 알았지만 난감해 하는 쪽은 모윤숙이었다.



프라자 호텔 덕수홀에서 환영만찬이 있을 때 국제문화협회 홍성철 회장이 영국과 한국은 6․25를 통한 血盟이란 말로 인사를 해서 그를 놀라게 해 파문을 일으켰다. 스펜더는 “어디까지 난 개인 자격일 뿐 영국정부와는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에 혈맹이란 표현은 적절치 않다”고 되받았다. 정이 흐르는 문학모임이지만 외교적 관행도 무시할 수 없는데 스펜더의 말은 우리들을 무안하게 만들었다. 끝까지 혈맹이란 말이 적절하지 않다는 해명은 우리의 입장에서는 지나치게 느껴졌다.



스펜더는 김지하 이름이 적힌 쪽지를 들고와 김지하를 만나보겠다고 해서 이를 당국과 교섭했으나 실패했다. 당시의 한국 상황으로는 인권문제가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스펜더도 여간 근심스러운게 아닌 모양이었다.



스펜더와 나란히 서서 기념 사진을 찍은 모윤숙은 마치 기구라도 탄 듯 둥둥 떠 다니는 것처럼 가볍게 흥분하고 있었다. 엷은 하늘색 치마 저고리를 입고 어느 때 보다 짙게 화장을 한 모습은 주위 사람들의 놀림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옛날 애인이라도 되나요.”라고 찔렀더니 “그 옆에 있는 여자는 그럼 뭐야.”라고 스펜더 부인을 가리켰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어서 일이나 봐요.” 내 입을 막는 모윤숙의 태도는 쓸쓸해 보였다. 마치 보이지 않는 바람이 불어 주변에 흩어진 낙엽을 쓸어가듯 허전하게만 느껴졌다.



외국 사람들과의 우정, 그리고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지만 속에 들어있는 말을 모두 쏟아내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는 듯했다. 이럴 때마다 그는 입가에 쓸쓸한 미소를 날리고 먼 허공을 바라보는 게 버릇처럼 되어 있었다. 그러나 때로는 선배들, 특히 우리 나라 건국 초기에 활약했던 정객들에 대하여는 속사포를 쏘아대듯 욕을 퍼붓기도 했다. 그 때마다 ‘에잇’, ‘에잇’ 소리를 지르며 고개를 외로 꼬고 아니꼬운 듯 머리까지 흔들었다.



개인적인 흠집이나 잘잘못을 들추어 비방에 가까운 욕설을 할 때도 있었다. 깜짝 놀랄 만한 일이었다. 그 때마다 “함께 일하고서 비방하면 돼요?”라고 말하면 “선배들의 추문을 들쑤셔 그들을 오늘의 星座에서 내쫓으려는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다. 개인 대 개인, 선배 대 후배의 대결이 아니라 한 有機體의 보다 성한 부분이 한때 잘못해서 생긴 흉터의 유래를 검진하여 다시는 그런 불행이 없도록 하자는 뜻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리고서는 “나에 대하여도 그런 흉이 없을 수 없다. 나 죽거든 실컷 욕하라.”고 말하였다. 이럴 때마다 겉으로는 크게 웃지만 속으로 씹어 삼키는 눈물은 한숨이 되어 방안 가득 메웠다.



롯데백화점엘 함께 간 일이 있었다. 여성이 소용되는 물건을 파는 상점에서 머플러를 고르면서 값을 물었는데 점원이 “할머니 이 색상 참 좋죠.”라고 말했다. 그 때 모윤숙은 “내가 왜 할머니야, 응?” 그러고서는 고르던 물건을 놓고 돌아섰다. 브라질에서 펜대회가 열렸을 때 대표단에는 시조시인 이우재가 있었다. 그가 대회가 끝난 뒤 남미 여행을 떠나면서 “나이 든 노인들만 두고 떠나기 안되었다.”고 인사를 하고 갔다. 그 말을 들은 모윤숙은 귀를 자꾸 후비면서 “글쎄 나보고 나이 들었다나.” 전혀 딴 사람에게 말하듯 내뱉고는 돌아섰다. 그만큼 그는 나이 들었다는 것을 싫어했다. 나의 막내 딸 정원이의 생일은 5월 18일, 꽃이 피고 녹음이 짙어지는 호시절이다. 이 때만 되면 케익을 사들고 와서 예쁜 카드를 딸에게 주었다. 카드에는 ‘축 생일 성정원 양에게’란 글씨가 쓰여 있었다. 아이들과 놀기 좋아하고 늙기를 싫어한 여인, 정원이는 그 카드를 지금도 가지고 있다.



백년, 천년을 살면서 펜클럽 회장을 맡아 한국문학을 발전시켜 보겠다던 그도 늙는 것은 어쩔 수 없었는지 해가 지날수록 수척해지고 주름이 잡혀갔다. 그러나 그는 영원히 늙지 않는 활활 타는 불덩이 같은 여인이었다. 모윤숙은 한 남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딱 한 번 한 일이 있다. 크리슈나 메논, 인도 사람이다. 유엔 한국위원단 위원장이었던 그는 남한만의 단독 선거를 반대했다. 그 이유는 한국이 영구분단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승만은 남한만의 단독정부라도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두 가지 생각을 잇는 다리를 놓은 사람이 모윤숙이다.



메논은 모윤숙의 청에 못이겨 인도 정부의 입장이자 자신의 생각이었던 단독선거 반대를 남한만의 단독선거 실시로 방향을 바꾸었다. 메논이 유엔에 가기 전날 밤 이승만의 의견을 지지한다고 약속한 서명이 든 문서를 넘겨주며 그는 울었다고 했다. 메논과의 우정이 없었더라면 이런 극적인 상황도 벌어지지 않았고 단독선거도 실시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으면 대한민국도 탄생되지 못했고 이승만이란 대통령은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뒷날 회상기에 쓴 이 대목은 “고마운 사람 메논, 때로 나와의 우정에 금가지 않으려는 그의 노력은 정실에 흐르기도 했다. 그가 유엔에 가기 전날 밤 그를 이화장으로 데려가 이박사를 지지하는 서명이 든 두루마리를 그의 주머니에 넣어줄 때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모윤숙은 왜 울었을까? 새롭게 태어나는 나라를 생각하는 감격의 눈물이었을까? 아니면 우정에 금가지 않으려는 한 남자의 고마움을 가슴 속에 깊이 느꼈기 때문이었을까?



하여튼 모윤숙은 90년, 他界할 때까지 불같은 정열로 일생을 살았지만 어느 누구를 잡고도 그 정열을 숯덩이처럼 태워보지 못하고 가슴을 꼭 닫고 살다간 여인이었다.





번호별로 보기
Category 제목별로 보기 이름별로 보기 날짜별로 보기 조회별로 보기
기쁨
 "게임스토리텔링"이 출간되었습니다.

2011/03/07 1239
행복
 여러분들의 자유로운 사랑방입니다.

문사랑
2002/06/21 2557
457 일반
 2016년도 한국게임학회&디지털스토리텔링학회 공동 춘계학술발표대회 개최(6월24일)

2016/06/13 142
456 쫑알
 '남에게 상처 잘 주는' 버릇 고치는 방법 6가지

2015/05/26 212
455 일반
 해피 추석~~~^^

2015/09/25 189
454 일반
 내가 주식으로 여태 수백억 부자가 못 된 이유

2015/09/21 402
453 쫑알
 실패하지 앟는 창업을 위한 타당성 분석, 필수 요소 4가지

2015/09/15 281
452 쫑알
 멋지게 나이드는 법 - 매력 신중년 5계명

2015/09/15 310
451 쫑알
 논문쓰는 방법 -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님

2015/09/15 572
450 일반
 2015 춘계 한국게임학회 학술발표대회

2015/06/15 215
449 일반
 멘탈이 강한 사람들의 13가지 특징

2015/05/26 703
448 쫑알
 절대 잊혀지지 않는 강렬한 첫인상을 남기는 7가지 방법<--중앙일보

2015/05/26 368
447 쫑알
 자수성가한 부자들의 몸에 밴 ‘사소한 습관’ 10 <--인사이트

2015/05/26 239
446 쫑알
 어깨의 쓸모

2015/02/25 257
445 쫑알
 죽음? 또 하나의 여행일 뿐 -매일경제

2015/02/25 280
444 일반
 프리젠테이션 ‘15분 前’ 반드시 해야하는 ‘10가지’

2015/02/24 252
443 쫑알
 [페이스북 글구경] 법정스님 글 중에서(헤능스님)

2015/01/17 250
442 쫑알
 [謹賀新年]새해 새기운 듬뿍 받으시기 바랍니다.

2014/12/29 333
441 꽁시
 제 2회 대한민국게임포럼 개최(2014.10.24)

2014/10/14 393
440 기쁨
 우리나라 게임의 현재와 미래는? 제1회 대한민국 게임포럼 개최

2014/07/02 493
439 쫑알
 제 1회 대한민국게임포럼 개최(2014.6.26)

2014/06/17 513
438 쫑알
 어느 게임 개발자의 한국 탈출기

2014/01/19 686
437 쫑알
 2014년을 열며 인사드립니다.

2014/01/03 660
436 슬픔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타계를 애도합니다.

2013/12/08 744
435 사랑
 카툰에세이 연재코너: 김영훈의 생각줍기

2013/07/18 1127
434 쫑알
 이민간 백상훈 형님의 "hearing 이야기"

2013/07/10 1027
433 쫑알
 왕산 편지--술타령

2013/07/09 1401
432 쫑알
 Margaret Thatcher 전 영국 수상의 생활지표

2012/07/29 1327
431 쫑알
 [지혜] 마음은 닦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

2012/06/04 1204
430 쫑알
 [지혜]덕불고필유인(德不孤必有隣)

2011/11/14 1588
429 쫑알
 입과 혀에 대한 격언

2011/01/11 1489
428 쫑알
 인생 교과서

2010/06/09 1615
일반
 모윤숙 시낭송회

2010/04/28 2218
426 쫑알
 자녀에게 주는 교훈

반문섭
2010/04/22 1660
425 쫑알
 15분밖에 남지 않은 한 젊은이의 생애

반문섭
2010/04/05 1673
424 쫑알
 부끄럼과 게으름

반문섭
2010/03/24 1724
423 슬픔
 '무소유' 법정스님

2010/03/13 1877
422 쫑알
 내 두뇌에 날개를 달아주는 생각의 도구-가토 마사하루

반문섭
2010/03/03 2035
421 꽁시
 모리 슈워츠 교수의 마지막 메세지

반문섭
2010/02/18 1820
420 꽁시
 인생이 무척 긴 것으로 생각되나~

반문섭
2010/02/09 1893
1 [2][3][4][5][6][7][8][9][10]..[12] [next]
Copyright 1999-2018 Zeroboard / skin by 신의키스
아름다운 사람들의 공간. 문사랑...


 

Copyright(c) 2002 munsarang.com . All rights reserved.